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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85화 (285/371)

〈 285화 〉 축제입니까? 아뇨, 장례식입니다.

* * *

시험이 끝났다.

거기에 맞추어 여름도 깊어지니, 방학이었다.

덕분에 나 또한 윤하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윤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스스로가 말했듯 졸업 이후를 노리는 건지, 아니면 다른 노림수가 있는 건지.

어느 쪽이든, 지금으로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거겠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제자이며 학생.

적어도 내가 그런 윤하의 마음을 받아들일 리는 만무했으니까.

허면?

졸업 후는 어떨까.

솔직히 말하자면, 역시 모르겠다.

아니, 내가 되먹잖은 녀석인 건 매한가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나 그 마음을 거절했음에도, 내가 어떤 녀석이라 해도 상관 없다며 밀고 들어오는 그 모습.

만약 윤하에게 학생이라는 직함이 없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잘 알 수가 없었다.

제, 제기랄.

아무리 그래도 너무 쉬운 새끼 아닌가, 나……?

내심 그런 환멸이 들 정도였다.

어쨌든.

그런 만큼, 윤하도 곧바로 대답을 들으려 하지는 않았다.

단지, 주변에 숨기는 기색도 아니었지만.

덕분에 나는 나날이 첩첩산중이 되어가고 있는 하숙집을 뒤로하고 여기까지 걸음을 옮긴 셈이었다.

스윽, 주변을 훑는다.

알싸한 향 냄새.

퍽 단정한 정장 차림새.

거기에 곡소리까지.

더할 나위 없는 장례식 한복판이었다.

'어색해…….'

물론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듯했다.

일단 자리를 잘못 찾은 기분부터 장난이 아니다.

애시당초 상주들이랑 얼굴 하나 모르는 사이였으니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정말로 생판 하나 모르는 남의 일가 장례식에 끼어든 건 아니고.

여기에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무엇을 숨기랴, 지금 내 옆에서 옷소매를 잡아당기고 있는 그녀 때문이었다.

"선생님, 선생님."

"왜 그러니?"

"돌아가고 싶어요……."

"걱정 마, 나도 그래."

그 말에 울상을 짓는 지희.

하필이면 이 장례식장 안에선 유달리 눈에 띄는 백발이 퍽 화사하게 흩어졌다.

그럴 때마다 이 쪽에 날아드는 시선을 보며, 나는 숨막히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번에 내가 방문한 장례식은, 다름 아닌 류 씨 일가의 장례식이었다.

*

류인형은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그렇게 설명할 수 있겠지.

일전에 류인형이 지희와 접촉한 이유.

자신의 부친이며 지희에게 있어선 할아버지라 할 수 있는 류 씨 일가의 큰어르신.

한때는 재벌이었다는 노인이 오늘내일한다는 이야기는 단순한 풍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믿었던 류인형이 지희 대신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지희는 마저 연락을 끊어버린 이후.

정말로 마음에 한으로 남았던 건지, 병석에 누웠던 양반의 형세는 시시각각 악화되었다고 한다.

고작해야 반 년 만에 죽음을 맞이할 정도로.

물론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류 씨 일가는 최승준을 통해 아카데미 측에 그런 통보를 보냈고.

당연히 그런 이야기는 지희의 담임인 내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뭐,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류 씨 일가는 지희의 앞날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양반들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의 집안 장례식 이야기를 내 임의로 은폐할 수도 없는 법.

때문에 나는 지희에게 이번 장례식 이야기를 남김없이 전달했다.

그리고 지희는 그 말에 망설이다 참석을 결정했고.

아니, 그야 그렇겠지만.

물론 연을 끊고 사는 가족들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대다수 사람들은 설령 연을 끊은 가족이라 해도 누군가 죽었다면 한 번 찾아보긴 하는 법.

장례식 당일까지 얼굴 한 번 맞대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은 역시 드물었다.

하물며, 지희로서는 마음의 짐도 있었겠지.

자신의 할아버지라는 양반이 그녀를 찾아 기다리고 있었다는 이야기야 진즉부터 들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희는 류 씨 일가를 방문하지 않았다.

나로서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사안이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덕분에, 지희로서는 마지막 가는 길에 얼굴 한 번 비추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건 지희 쪽의 사정이고.

반대로 말하자면, 다른 류 씨 일가는 어떨지 모른다.

여하간, 추정컨대 얼마 남지도 않은 류 씨 일가의 자산을 두고 다투기 위해 지희를 끌어드리려 했던 양반들이다.

허면?

장례식장.

마음에 남은 짐.

한껏 울적한, 달리 말해 감성적인 분위기.

그런 상황 속에서 지희에게 달라붙어 무언가 노리려 하는 양반들이 없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막말로, 이번에 돌아가셨다는 그 양반이 지희 앞에 남겨둔 무언가 따위를 노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때문에.

나는 지희에게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이번 장례식에 참여할 땐 류 씨 일가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어른 한 명을 반드시 대동할 것.

내 말에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느냐 싶은 표정을 짓긴 했지만, 지희도 동의했고.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내가 생각했던 건 남상원 쪽이었다.

지희의 보호자 겸 류 씨 일가의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양반만한 인물도 달리 없었으니까.

다만.

"지희야, 남상원 그 양반이랑 상주 서는 사람이랑 아는 사이냐?"

"네? 아, 네. 예전에 멱살 잡은 적 있을 걸요."

"씁."

아무리 그래도, 지희의 장례식 참가를 위해 고인 앞에서 개쩌는 S랭크 거인 비스므리 전투 라이브를 찍을 수는 없겠지.

그렇게 남상원을 제외하고 나니, 남은 사람은 단 한 명.

나 뿐이었다.

씨발.

자승자박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겠지.

결국 나는 때 아닌 장례식에 참여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부, 불편해.'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가 한 말을 나 스스로 뒤엎을 수는 없고.

덕분에 나와 지희는 여름방학 시작과 동시에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의 장례식에 참여하게 되었다.

물론 다행인 점은 있었다.

아니, 기대했던 대로라고 해야 할까.

적어도 지희에게 윽박지르며 건들거리는 하객 따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무력으로 따지면 설령 그런 양반들이 나타난다 해도 지희가 마음만 먹으면 척추를 반으로 접어버릴 수 있겠지만…….

흘끔, 지희의 낯빛을 살핀다.

딱딱하게 굳어있는 모습이 퍽 안쓰러웠다.

'하긴.'

지희가 그럴 수 있는 성격은 또 아니지.

한껏 허세를 부리며 말싸움을 부릴 수는 있어도, 술에 취한 취객 따위에게 직접 손을 휘두를 만한 용기가 있을 쪽은 아니다.

무엇보다, 하객 또한 마찬가지.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겉보기에 지희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두른 여고생일 뿐.

교복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초 실전 압축 근육 따위를 한 눈에 간파하는 건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겠지.

까놓고 말해, 지희를 겉모습만 보고 얼추 A랭크 가까운 실력자라 파악할 수 있는 양반이 있다면?

그 날로 아카데미 교직원 한 명 충당하는 거다.

여리여리한 계집애들이 조약돌을 던져 음속을 넘고, 탱크 세 대로 여고생 한 명을 상대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이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아직도 외모에 연연하는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또한 마찬가지였다.

만약 지희 혼자 왔었다면 시덥잖은 양반들이 얽힐 수밖에 없었겠지.

장례식장에 염색을 하고 왔냐며 묻는 사정 모를 하객이나, 혹은 본가 쪽 사람들의 끄나풀까지.

다만.

지금은 달랐다.

왜냐하면 그 옆에 퇴역 S랭크 헌터 겸 근육 떡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나였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내심 상처였다.

아니, 내가 그리 무섭게 생겼나……?

"네."

"진짜로?"

"아니, 겉보기는 그냥 몸 좋은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요."

"그럼 뭔데?"

"분위기가 사람 하나 담가버릴 것처럼 생겼어요."

존나 너무하네.

어쨌든, 덕분에 지금 나는 지희 옆에 달린 토템 역할이었다.

한 가지 다행인 게 있었다면,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는 점이다.

일면식도 없는 수준이라 말하긴 했지만, 정말로 내가 류 씨 일가 사람들과 연이 없던 건 아니다.

아니, 까놓고 정신병원에 류인형을 쳐박으려면 어느 정도 연락을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당시 내가 전해주었던 류인형의 몸상태를 류 씨 일가 붕괴의 신호탄으로 보고 감사할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류인형을 망가뜨리고 대충 사건을 파묻으려고 조작했다 생각할지.

뭐, 어느 쪽이든.

흘끔흘끔 이 쪽을 바라보면서도 자리를 내주는 모습을 보건대, 장례식이 끝난 이후 내게 말을 걸 사람들은 꽤나 있어 보였다.

덕분에 나로서는 적당히 머릿속으로 찬송가를 암송하며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찬송가의 영향인지, 지희가 으슬으슬하다는 듯 팔을 쓸어내리긴 했지만.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만약 장례식에 안 왔으면 지금 상황 속에서 바다 따위에 갔어야 할지도 모른다.

씨발, 작년에 그런 약속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1년 전, 더 놀고 싶으면 내년에 다시 오자는 식으로 적당히 주절거린 작년의 박우찬이 원망스러웠다.

그런 식으로 마음을 다듬고 있는 가운데.

별 일 없이 흘러가던 장례식에 묘한 흐름이 생긴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입구 근처에서 들리는 웅성거리는 소리.

동시에.

쭈삣 하고 목 뒤의 솜털이 솟구치는 감각과 함께, 입구 근처로 한 무리의 인간들이 들어왔다.

아니, 그 모습을 보고 인간이라 말할 수는 없었겠지.

물론 겉보기로는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극히 누군가를 닮은 백발을 제외하고도, 장례식장에 발을 들이고 있는 저 개자식들을 인간이라 생각할 양반들은 없었으리라.

왜냐하면, 외모에서 지나칠 정도로 빛이 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 선생님……?"

당연한 이야기일 테지.

놈들은 그 외모로 인간을 능멸하기 위해 진화한 종족.

즉, 몽마였으니까.

다음 순간.

나는 누군가 말리기도 전에 몸을 날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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