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84화 (284/371)

〈 284화 〉 청혼

* * *

다행스럽게도, 시험이 중지되는 일은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평균보다 강력한 우두머리가 출몰해 격퇴했다는 건 시험을 지속할 근거지 중단할 이유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이트 또한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마력 공학 쪽은 잘 모르겠지만, 아카데미 지하에 있는 게이트와 마찬가지겠지.

무언가 우두머리 외의 다른 수단으로 게이트를 유지하고 있으리라.

한 가지 유감스러운 점이 있다면, 우두머리를 노릴 예정이었던 학생들 쪽이겠지만…….

'뭐, 힘들겠지.'

학생들 수준에서 사냥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다.

오히려 피해 없이 끝난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겠지.

"피해가 없다고요?"

"앗, 미안."

물론 정말로 피해 없이 끝난 건 아니었다.

여하간, 윤하가 입은 부상이 사라지지는 않았으니까.

덕분에 윤하는 때 아닌 양호실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학생들도 마력 고갈 증세는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

심각한 상처는 아니었던 만큼 곧바로 돌아갈 수 있었다.

때문에.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확보한 임시 양호실엔 나와 윤하 뿐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로서도 멋쩍기는 매한가지였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이런 상황 속에서 윤하를 방치할 수는 없었다.

물론 윤하 또한 치명상은 아니었다.

필시 퇴원할 즈음엔 흔적도 남지 않겠지.

그러나.

만약 우두머리를 상대한 게 윤하가 아니었다면 필시 치명상이 되었으리라.

덕분에 나 또한 그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어, 어색해…….'

그 결과.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품고 말았다.

……딱히 우리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대화가 끊기지는 않았으니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러기도 힘들었다.

화두로 삼을 일이 얼마나 많은데.

당장 이번 사건만 해도 그렇고.

단지.

"어색해요?"

"응? 뭐, 뭐가?"

"내가 이렇게 나오는 거."

무언가 억지로 화제를 피하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윤하는 이런 일에 몸을 사리는 성격이 아니었다.

과연, 실제로도 그랬다.

방금 전까지 망설이고 있던 게 거짓말이라는 듯, 윤하는 짐짓 태연한 어조로 그리 입을 열었다.

"그만두려고요."

"어?"

"그러니까, 그만둔다고요. 시시콜콜하게 간만 보는 거. 어차피 처음부터 내키지도 않았고."

뒤통수에 손을 얹은 채, 윤하는 한껏 뒤로 몸을 젖혔다.

협회 측에서 제공한 침대가 새하얗게 삐걱였다.

"궁금해요?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무래도 얼떨떨한 감정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났던 모양이다.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자, 윤하는 피식 웃으며 마저 말을 이었다.

"저, 죽는 줄 알았거든요."

단순한 과장.

그렇게 말할 수는 없겠지.

물론 이번 시험은 어디까지나 기말고사의 일부.

나를 포함한 교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이상, 만에 하나라도 위험한 일은 없었으리라.

적어도 나는 그런 각오로 임하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아무래도 윤하는 그렇게 생각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아니, 처음에는 알고 있었어요? 시험이라는 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 우두머리가 나타난 순간, 윤하는 지금 자신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던 듯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당연한 일이었다.

달리 의지할 사람 한 명 없는 상황 속, 처음으로 마주한 고랭크 몬스터의 살기.

세세한 사정 따위가 기억에 남았을 리 없지.

그 결과.

윤하는 사력을 다해 우두머리 몬스터와 싸웠다.

거기에 내가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혹 따위, 끼어들 여지도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작렬한 일격과 함께, 끝이 찾아왔다.

"뒈지는 줄 알았는데, 진짜."

"미안하다."

"아니, 탓하는 거 아니거든요?"

단지.

짧은 심호흡과 함께, 윤하는 조용히 덧붙였다.

"주마등을 봤어요."

"주마등?"

"네."

맞춰보실래요?

자신의 죽음조차 개의치 않는 듯한 어조였다.

때문에.

파르르 떨리는 손끝으로부터 시선을 돌린다.

물론 구태여 고민하는 척 생각에 잠길 필요는 없었다.

윤하의 가정 사정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쎄, 가족들?"

"정답."

뭐, 그렇겠지.

다만.

"그 옆에 선생님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게 지금 주제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걸까.

그렇게 물으려던 내 입을 닥치게 만드는 훌륭한 카운터 펀치였다.

"이 업계가죽음이랑 이웃하고 있다는 게 실감이 가더라고요."

"그러니?"

"네. 심지어 우리들은 더하잖아요?"

"윤하야. 몇 번 말했지만, 신세계 질서랑 싸우는 게 부담이 된다면……."

"아니, 그런 얘기 하는 거 아니라니까!"

찰싹찰싹.

힘 빠진 손바닥이 내 어깨를 연신 타박했다.

"뭐, 그냥 그랬다고요."

드문 이야기는 아니었다.

헌터들은 결국 죽음이 친숙할 수밖에 없는 직종이니까.

자신의 죽음이든, 타인의 죽음이든.

때문에.

잔뼈 굵은 사냥꾼들은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

적어도 그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윤하가 말하는 바 또한 마찬가지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나는 윤하를 방치할 수 없었다.

"선생님."

다만.

윤하 또한 그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으리라.

마치 선수를 치듯 내 말문을 가로막은 윤하는, 그대로 창 밖의 풍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진 나도 알아요."

"윤하야."

"아는데, 나도 심사숙고한 거라고요. 설마, 별다른 생각 없이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떨리는 목소리.

혹은, 그 이상으로 떨리는 걸 숨기려 하지 않는 목소리로 윤하는 그렇게 말했다.

턱 하고 말문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확실히, 나도 모르게 그리 생각한 건 사실이었다.

윤하는 시원시원한 성격이다.

그런 윤하가 처음으로 죽음을 실감했으니, 후회 하나 남기지 않겠다고 막무가내로 구는 건 아닐까.

내심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는 없었다.

동시에,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슬쩍 창문을 향해 고개를 돌린 윤하의 시선은, 창 밖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허면, 그 시선은 도대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대답은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윤하는 시선을 돌린 게 아니었다.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바보 같은 의문이었다.

부끄러우니까.

이런 말을 하면서 시선을 맞추는 건 쑥쓰러우니까.

그제서야 내 눈엔 빨갛게 달아오른 윤하의 귓볼이 보였다.

……황윤하는 틀림없이 대범한 성격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심 장군감이라 홍소를 터트린 적도 있다.

그렇지만.

밑도 끝도 없이 대범한 건 아니다.

평범하게 죽음을 두려워하듯, 평범하게 연심을 고백하며 얼굴을 붉히는 여고생.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건 언제나 변함없는 철인이 아니라 바로 그런 소녀였다.

때문에.

"그러니까, 선생님?"

"어, 응?"

"눈 감아요."

다음 순간.

짐짓 허세를 부리며 그렇게 말한느 그녀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황윤하는 생각했다.

내 상상력은 쓰레기다.

솔직히 말하자면, 비슷한 상황을 상상한 적이 없는 건 아니다.

물론 상상 속에선 먼저 입을 맞춘 게 그녀가 아니라 담임 쪽이라는 차이점이 있었지만.

그거야 어쨌든, 상상 속 입맞춤은 퍽 싱겁기 그지없는 이벤트였다.

당연한 이야기지.

고작해야 입맞춤.

인체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입술을 맞댈 뿐이다.

도대체 뭐가 그리도 황홀하다는 건지, 황윤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는.

실제 입맞춤은 달랐다.

상상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상대가 박우찬이기 때문일까.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었기에, 황윤하는 자신을 향해 밀어닥치는 이 감각을 한껏 즐기기로 했다.

닫힌 눈꺼풀 너머로 별무리가 날뛴다.

입술을 통해 서로의 오감이 오가는 듯한 감촉이었다.

그런 시간 속에서, 황윤하는 조심스레 눈을 깜빡였다.

다행스럽게도, 박우찬은 눈을 감고 있었다.

때문에,황윤하는 상상할 수 있었다.

저 눈꺼풀 너머에 어떤 감정이 깃들었을까?

본인의 말에 따르면, 쓰레기 같은 상상력으로.

물론알고 있었다.

적어도 자신에 대한 사랑은 아니겠지.

안타깝게도,박우찬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좋아해.'

상관 없었다.

그야 박우찬이 자신을 향해 사랑을 속삭인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겠지.

다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 없다.

황윤하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녀에게 있어, 이 세상은 바닥 없는 진창이었다.

언젠가 침몰할 게 예정된 삶. 미래 없는 인생.

박우찬은 그런 그녀의 인생을 처음으로 긍정하고 진지하게 생각해 준 사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그녀가 박우찬에게 품은 마음은 평범한 연애 감정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 깃든 대견함이 좋아서.

모종의 부채의식이나 시인 욕구 때문에.

이토록 팍팍한 세상 속, 박우찬 이상으로 자신을 이해해 줄 사람도 없을 테니까…….

시덥잖은 이야기였다.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지.

하지만, 딱 거기까지.

어느 쪽이든 아무래도 좋을 잡설이다.

설령 그 근간이 된 감정이 무엇이든, 황윤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푸핫 하는 소리와 함께, 입술이 떨어졌다.

그리고.

잔뜩 얼굴을 붉힌 채, 평소 자신이 신세를 지는 호방한 태도에 힘입어 황윤하는 입을 열었다.

"야!! 박우찬!!"

"……응?"

"누나 앞으로 1년 반이면 졸업한다!!"

썩 얼빠진 대답이었다.

단지.

황윤하는 단순한 여자였다.

자신을 마주보고 있는 저 시선 속에 환멸 어린 감정이 없다는 점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 만큼.

"몸만 와!! 누나가 먹여살려줄게!!"

아니, 잠깐.

그런 말이 나올 틈도 없었다.

씨익 웃으며, 황윤하는 그렇게 선포했다.

"결혼하자, 이 개자식아!!"

동시에.

쩍 벌어진 입. 경악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한 그 반응에, 황윤하는 다시 한 번 홍소를 터트렸다.

뙤약볕 내리쬐는 초여름 날에 있었던 이야기였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