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3화 〉 잔재
* * *
'좆같네.'
황윤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필이면 이런 결과가 나온 데에는 몇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으리라.
허나, 개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요인을 꼽자면 역시 자신의 미숙함을 들 수 있겠지.
만약 자신이 평소부터 격투기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이 주먹으로 우두머리의 머리를 노릴 수 있었더라면.
최소한 상대방이 머리 또한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더라면.
덕분에 흉판 쪽으로 마력을 집중할 수 없었더라면…….
하다못해 이런 결말이 되지는 않았으리라.
가열차게 내지른 일격.
황윤하의 전력이 담긴 권격은 우두머리의 흉판을 주먹 모양으로 우그러뜨렸다.
치명적인 부상.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두머리의 심장을 취하지는 못했다.
눈 앞에 펼쳐진 결과를 보고, 황윤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피식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신장 170cm.
살면서 단 한 번도 아쉬운 적 없던 키가 이제 와서 부족하게 느껴질 줄이야.
'개그 만화도 아니고.'
키가 안 닿아서. 주먹이 머리에 안 닿아서.
그래서 토벌 실패라니, 농담도 못 되거늘.
숫자의 차이는 절대적이다.
그렇게 말하던 담임의 얼굴이 눈 앞에 선했다.
직후, 황윤하의 몸이 허물어졌다.
비장의 수단을 숨기고 있었던 건 자신만이 아니라는 뜻이겠지.
황윤하의 마지막 일격과 교차해, 우두머리 또한 꼬리를 휘둘렀다.
줄곧 창을 내지르듯 사용하던 꼬리를, 마치 채찍처럼 후려갈기는 일격.
여태까지 우두머리가 시도한 모든 공격 중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매서운 위력이었다.
탄력을 본격적으로 활용한 꼬리의 공세 앞에선 모래의 칼날이나 방패도 별다른 쓸모가 없었다.
……승부가 갈렸다.
그 자리에 있는 전원이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학생들의 얼굴에 절망이 스치고, 우두머리는 갑각을 삐걱이며 기쁨을 표출한다.
하지만.
한 가지, 그들도 잊고 있는 게 있었다.
지금 이 싸움은 단순한 생사결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아카데미의 기말고사였다.
때문에.
"수고했다, 윤하야."
무너지던 윤하의 몸이 바닥에 닿기 직전.
조용히 나타나 그녀의 몸을 받아든 박우찬은 그렇게 말했다.
*
박우찬이 곧바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이번 전투는 단순한 우발적 교전이 아니라 시험의 일부였다는 점.
당연한 이야기지만, 교사인 박우찬이 개입하는 시점에서 황윤하 팀의 기말고사는 거기서 종료.
곧바로 귀환하게 된다.
박우찬은 그 점이 내키지 않았다.
여하간, 박우찬은 평범한 고등학교 담임 교사가 아니다.
헌터 아카데미에 소속된 사냥꾼이다.
그리고 아카데미의 목적은 어엿한 사냥꾼을 양성하는 데에 있는 바.
만약 여기서 지레 겁을 먹고 우두머리와 싸워서는 안 된다며 윤하를 만류한들 무엇이 달라질까?
박우찬은 퍽 회의적이었다.
물론 당장엔 위험을 피할 수 있겠지.
다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땐 오히려 윤하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떠미는 짓이나 다름없다.
……우두머리의 토벌은 아카데미 측에서 제공한 과제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녀들이 자체적으로 내세운 목표일 뿐.
그러므로.
상의를 거듭한 끝에 움직였다 한들 무조건 바람직한 결과가 뒤따르는 건 아니다.
윤하를 비롯한 일행들은 그런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아직 교사들이 뒤를 봐주고 있을 때 실수하는 편이 오히려 나을 수도 있겠지.
박우찬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우찬이 윤하가 쓰러진 뒤에야 개입을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개입할 타이밍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억지로 싸움 중간에 끼어들어 어깃장을 놓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
다만.
우발적인 사태.
단순한 시험, 충분히 사냥할 수 있기에 토벌했을 뿐인 몬스터와 달리 강력하기 짝이 없는 적수.
무엇보다, 일전의 던전 공략 당시와 달리 의지할 실력자들도 없다는 특수한 상황.
덕분에 그녀의 실력은 시시각각 성장하고 있었다.
죽음의 감각.
뒤에 있는 친구들을 지킬 수 있는 게 자신밖에 없다는 압박감 속.
황윤하는 스스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박우찬 또한 그 모습을 최대한 마지막까지 바라보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셋째.
눈 앞의 우두머리로부터 무언가 익숙한 기미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황윤하와 우두머리의 교전 속에서, 박우찬은 최근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었음을 떠올렸다.
'과연.'
생각해 보면, 이 게이트도 본디 그 길드의 산하에 있었던 기분이 든다.
박우찬의 두뇌가 눈 앞의 우두머리에게 있었던 일을 추론하기 시작했다.
전갈 비슷한 괴인.
동시에, 이 게이트 출신이 아닌 듯한 강함과 외견까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일찍이 신서아가 몸을 담고 있었던 길드에, 평소운 박사와 같이 우수한 연구자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즉.
일전에 보았던 개조 헌터를 완성하기까지, 몇 번이나 되는 실험이 있었으리라.
눈 앞의 우두머리는 필시 그 부산물 중 한 명이리라.
마찬가지로 변신 능력에 각성한 헌터를 개조한 건지, 전갈을 인간 형태로 개조한 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고작해야 일개 길드에 지나지 않는 녀석들이다.
처음부터 철저하게 연구 결과를 관리하지는 못했던 거겠지.
애시당초 그토록 철저했다면 서아에게 주먹구구식으로 협박이나 하고 있을 리도 없고.
요컨대, 눈 앞의 괴물은 언젠가 적절한 틈을 타 놈들의 손아귀에서 도주.
비슷한 종이 살고 있던 게이트 내부에 몰래 정착했으리라.
말 그대로, 길드가 남긴 잔재라고 할 수 있을까.
거 참, 기구한 인생이다.
동시에, 박우찬은 그렇게 생각했다.
'보안 수준 개판이구만.'
진심이었다.
이거, 내가 안 찔렀어도 언젠가 터질 일 아니냐?
무심코 투덜거림이 새어나오고 만다.
뭐, 어느 쪽이든.
제자가 인간이었을지도 모르는 종자의 피를 보지 않은 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박우찬은 슬쩍 손목을 털었다.
황윤하의 몸을 뒤에 있는 파티원들에게 맡길 때까지, 우두머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방금 전과 달리, 적당히 치고받으면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우두머리는 다른 무엇보다 경종을 울리는 본인의 본능을 통해 그러한 사실을 확신했다.
"알고 있겠지만, 너희 팀 시험은 여기서 종료야."
"네?"
실제로도 그랬다.
박우찬 또한 마찬가지였다.
눈 앞에 있는 전갈 괴인에 대해서는 아랑곳하는 바 없이, 후방에 있는 학생들을 향해 그리 말하고 있었으니까.
"전체적인 내용은 괜찮았는데, 아직 낯선 몬스터에 대한 대책이 조금 부족하네."
"……?"
"시험 성적에 반영되지는 않겠지만, 어떤 식으로 대처하는 게 좋았을지는 조금 시범을 보여줄게."
그렇게 말하며, 박우찬은 살짝 어깨를 움직였다.
후방에 있는 학생들은 이해할 수도 없는 고등 동작.
옷 밑으로 꿈틀거리는 근육의 움직임 등을 통해, 눈 앞의 괴인을 압박하는 기술이었다.
순간, 우두머리는 저 우악스러운 대검이 자신의 목을 날려버리는 환시를 보았다.
때문에.
"캬아아아악!!"
겁에 질린 듯, 눈 앞에 나타난 환상을 부정하기 위해 정면으로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그렇게 교재를 확보한 박우찬은, 창고를 조작해 자신의 애병을 꺼내들었다.
"그럼, 먼저 이 몬스터에 대한 이야기인데……. 자세한 정보는 너희들도 모를 거야. 그렇지?"
"네?"
"그럴 때는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점을 되짚어야 해."
당연한 이야기지만, 정말로 눈 앞의 전갈 괴인이 길드의 개조에 의해 탄생한 몬스터라면?
그야 정체를 분석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겠지.
다만.
"예를 들어, 동양의 전갈형 몬스터는 대개 오독五?이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단다."
대한민국 게이트에서 출몰한 전갈형 몬스터라면, 피할 수 없는 성질이 있다.
방금 전 말한 오독, 독을 품은 다섯 가지 생물이라는 카테고리와 같이.
뱀과 전갈, 두꺼비와 거미.
독을 품은 생물들과 한 쌍을 이루는 전갈의 독은, 그렇기에 상생하는 재료 등을 통해 쉽사리 해독할 수 있다.
만에 하나 그녀들이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면 훨씬 더 쉽게 결과를 낼 수 있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박우찬은 창고 내부에서 꺼낸 오독의 해독제를 전갈에게 던졌다.
푸쉬이이익!!
날아드는 꾸러미를 절단한 전갈의 집게발이, 마치 독에 당한 듯 짓물리기 시작한다.
오독이라는 개념 자체를 해주하는 물건은, 당연히 오독의 성질을 품고 있는 전갈의 갑각에도 유효하다.
만에 하나 마지막 윤하의 공격에 저 독이 있었다면 구태여 자신이 개입할 필요도 없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박우찬은 칼끝을 튕겼다.
"거기에, 갑각의 가장 큰 약점은 관절과 병행할 수 없다는 점이야."
당연한 이야기지만, 관절부까지 갑각으로 덮으면 몸을 구부릴 수가 없다.
즉, 갑각을 두른 몬스터가 몸을 구부리는 부분엔 반드시 빈틈이 있다.
마치 그런 점을 교습하듯, 박우찬은 칼 끝의 끌을 달려드는 우두머리의 관절부에 찔러넣었다.
우드득!!
"캬아아아악!!"
우두머리의 힘에 못이겨 제 풀에 뜯겨져나가는 갑각.
너무나도 손쉽게 드러난 속살을 보며, 학생들은 과연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마력을 퍼부어 억지로 육체를 재생하는 우두머리.
그 잠깐을 틈타, 이번엔 꼬리가 박우찬을 향해 날아든다.
"그리고 꼬리. 사실, 이게 제일 대처하기 쉬워."
결국 꼬리가 달린 부분은 사람으로 치면 치골에 가까운 부위다.
즉, 배후에 달린 꼬리로 정면에 있는 적을 공격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각도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
허면?
"튕겨내는 건 좋았는데, 다음부턴 튕겨내는 방향도 신경쓰는 게 좋겠더라."
튕겨내는 각도를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움직임을 휘두를 수 있다.
대검의 옆면으로 꼬리를 빗겨 흘린다.
그러자 방향을 잃고 날아간 꼬리가 우두머리의 반대쪽 어깨를 휘감았다.
추가적인 공격은커녕, 역으로 스스로의 발목을 붙잡은 꼴.
여기까지 상황이 나왔다면, 대세는 이미 정해진 셈이다.
"물론 기본은 철저한 훈련이지만."
퉁.
팔의 힘만으로 휘두르고 있던 칼끝을 찬다.
그렇게 회전.
한 순간.
정말로 찰나에 지나지 않는 우두머리의 빈틈을 비집으며, 강철이 회전한다.
그리고.
우두둑!!
단단하기 짝이 없는 갑각.
윤하를 비롯한 파티원들에게는 마치 산처럼 느껴졌던 우두머리의 목이, 일격에 하늘을 날았다.
"물론 너희들 수준에서 일격에 승부를 결정짓긴 힘들겠지만, 결국 원리는 똑같아."
상대의 빈틈을 활용해 한 수, 두 수 차이를 벌린다.
그렇게 겹쳐 쌓은 일격으로 상대의 목을 취한다.
말하자면 그런 일이다.
"사정은 내가 설명할 테니까, 슬슬 돌아가자."
쿵.
쓰러지는 우두머리의 시체로부터 몸을 돌리며, 박우찬은 그렇게 말했다.
다만.
방금 전부터 이어진 공방에, 다른 학생들은 그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음.'
멋쩍은 반응에, 박우찬은 머리를 긁적였다.
너무 어려운 이야기였나?
하긴, 상대의 수를 계산하고 싸움에 임하는 건 보통 고랭크 헌터들 사이에서나 가능한 일.
얼떨떨할 수도 있겠지 싶었다.
단지.
'어이가 없네.'
피식, 그 모습을 보며 황윤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방금 전 박우찬이 선보였던 시연이 쓸모가 없던 건 아니었다.
이해할 수 있다. 활용할 수도 있으리라.
다만.
짐작컨대 A랭크 이상의 몬스터.
그런 우두머리를 상대로 한 실전을 강의 교재로 활용하다니.
도대체 자신과 담임 사이엔 얼마나 되는 격차가 있는 걸까?
어느 정도 실력을 쌓은 탓일까.
오히려 그런 점을 한층 더 깊게 실감하며, 황윤하는 짤막하게 고개를 저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