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2화 〉 잔재
* * *
쿠웅!!
묵직한 충격이 방패를 달린다.
그 힘에 저항하는 대신,황윤하는 역으로 기세를 더해 핑그르 한 바퀴 돌았다.
쩌엉!!
그렇게 반회전.
휘두른 방패가 우두머리의 뒤통수에 작렬한다.
전갈형 몬스터 특유의 갑각으로도 온전히 받아넘길 수 없는 충격.
우두머리조차 제 몸을 온전히 가누지 못한 채 비틀거리고 만다.
허나.
"크학?!"
다음 순간, 비명을 토한 건 오히려 황윤하 쪽이었다.
그녀의 반격과 동시에 번뜩인 우두머리의 집게발이 마치 철퇴처럼 옆구리를 후려갈긴 탓이었다.
빠득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어금니를 악문다.
동시에, 작렬하는 꼬리.
그 앞을 모래로 이루어진 칼날이 받아내 빗겨 흘린다.
오로지 꼬리의 움직임에 대처하고자 정신을 곤두세우고 있던 후방의 파티원들 덕분이었다.
마찬가지로, 환부를 감싸는 마력과 함께 다음 순간 삐걱이던 옆구리의 통증이 씻은 듯 가셨다.
고작해야 아카데미 교복 수준으로 견딜 수 있을 리 만무한 공세다.
황윤하가 여기까지 눈 앞의 우두머리에게 달라붙을 수 있는 건 바로 그런 지원 덕분이었다.
스스로의 능력으로 중상만 피하고, 곧바로 회복해 달려든다.
다른 파티원들을 후방에 모아, 우두머리의 동선을 제약한다.
꼬리의 독침에 대한 대처는 후열 쪽에서 전담한다.
그렇게 간신히 이룩한 균형 속.
황윤하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말았다.
언뜻 보면 비등비등한 전세는, 그러나 시시각각 우두머리 쪽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이대로 수싸움을 벌인들 불리해지는 건 그녀들 쪽이다.
때문에, 그녀들은 도박수를 두면서라도 타개책을 찾으려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도박수를 두기 위한 자원은 당연히 황윤하 본인의 몸뚱이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과감하게 공세를 시도한다.
몸에 누적된 피해는 회복 능력으로 억누르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다.
비록 단박에 성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도는 있었다.
닿는다.
닿는다.
아주 조금씩.
정말로 조금씩이지만, 황윤하의 창날이 우두머리를 향해 접근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렇게 황윤하의 창날이 우두머리의 목을 꿰뚫는 게 먼저인가?
아니면 그녀들의 마력이 닳는 게 먼저인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슬아슬하게, 정말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던 저울.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저울이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는지는 점차 명백해지고 있었다.
'염병!!'
내심 욕지거리를 내뱉어도 바뀌는 건 없다.
약탈.
이 게이트 내에서 작용하고 있는 법칙이, 예상 이상으로 무겁게 그녀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매 순간마다 마력이 빨려들어가는 감각.
허나 당장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바쁜 황윤하로서는 집게의 날 쪽을 피하는 게 최선이었다.
무엇보다.
"씹!!"
우두머리 또한 바보는 아니다.
처음엔 당황했을지언정, 몇 번 정도 합을 나누며 황윤하의 능력을 파악한 덕분일까.
황윤하의 공격 중에서 갑각을 정면으로 관통할 수 있는 건 창 쪽.
개중에서도 찌르기 뿐이라는 사실을 눈치챈 거겠지.
우두머리는 그녀의 찌르기를 철저하게 봉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비틀거리는 사이 내지른 일격.
그러나 우두머리는 여태까지 아껴두었던 반대쪽 집게발을 펼쳐 창날의 목 부분을 억지로 쥐어 비틀었다.
마치 맹수의 턱처럼 창날을 물어뜯은 집게발이 그대로 그녀의 공격을 억눌렀다.
물론 그조차 한 순간이었다.
다음 순간.
황윤하의 시야가 핑그르 돌았다.
"뭔, 씹?!"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머리를 바닥으로, 발을 하늘로.
온 몸이 180도 회전한 직후, 황윤하는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닥친 건지 깨달을 수 있었다.
방금 전, 모래의 칼날에 튕겨져나간 꼬리.
우두머리는 그 꼬리를 곧바로 회수해 황윤하의 발목을 건 것이었다.
몬스터의 근력에 비하면, 헌터의 체중은 깃털이나 다름없다.
하물며 본인이 절대로 60kg 대는 아니라 주장하는 황윤하 정도야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발목을 걸고, 잡아당긴다.
동시에 창을 물고 있던 집게발을 밀어붙인다.
마치 씨름의 한 동작과 같이, 황윤하의 머리를 바닥에 쳐박으려는 우두머리.
그 너머로 섬뜩한 빛깔과 함께 집게발이 내려찍혔다.
방금 전 그녀의 옆구리를 갈긴 파성추가, 이번에는 흉곽을 노리고 내려찍힌다.
"이 새끼!!"
발판 하나 없는 공중.
피하기 여의치 않은 몸통을 향한 공격.
만에 하나 허용하기라도 하면 판세가 결정될 일격.
한 호흡에 자신의 갈비뼈를 내려앉히고 심장을 짓뭉겔 일격 앞에서, 황윤하의 신경이 곤두선다.
어쩌면 그 덕분일까?
다음 순간, 황윤하가 취한 동작은 본인에게 물어도 두 번 하라면 고개를 내저을 부류였다.
자신의 창대를 물어뜯은 팔에 역으로 매달린다.
삼각 조르기.
혹은, 거기에 가까운 동작이었다.
그리고.
콰득!!
굳히기 대신, 그 여세를 살려 관자놀이에 쳐박은 무릎이 우두머리의 머리통을 강타했다.
갑각이 주저앉을 정도의 충격.
무엇보다, 갑작스레 변한 자세 탓에 조준도 빗나가고 만다.
결과적으로, 힘차게 내려친 집게발은 그녀의 어깨를 내려치는 수준에서 끝났다.
물론 평범한 인간이라면 즉사요, 헌터라 해도 팔이 날아갈 위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윤하는 자신의 능력을 믿고 그 공격을 받아내, 간신히 어깨가 빠지는 수준에서 끝낼 수 있었다.
동시에.
다시 한 번 회복.
어깨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황윤하는 마저 발등을 놈의 어깨에 걸었다.
그대로 반전.
팔의 흔들림과 등의 반동을 이용해, 온 몸을 뒤집는다!
말도 안 되는 운동 능력과 바디 밸런스가 이루어낸 기적이었다.
다음 순간.
허공을 자빠지던 상태에서 우두머리의 팔에 매달렸던 황윤하가, 이번에는 그 어깨를 한 발로 밟고 섰다.
그대로 도약.
말이 도약이지, 어깨를 짓밟아 내려앉히는 듯한 동작과 함께 비상한다.
그리고.
별빛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새하얀 사막의 밤하늘 아래에, 창날이 벽력처럼 작렬했다.
다만.
'애미!'
시원스러운 욕지거리와 같이, 내지른 창은 허공을 치고 말았다.
비교적 최근 손에 익힌 무기였던 탓일까.
아니면 지금 이 상황에서 일발 역전을 노린다면 머리밖에 없었던 탓일까.
요사스러운 전갈 인간은, 그대로 고개를 흔들어 그녀의 찌르기를 피해낸 것이다.
물론 피해가 없지는 않았다.
스쳤음에도 불구하고, 어깨 근처의 갑각이 벗겨졌을 정도니.
다만.
황윤하가 노렸던 결과보다는 훨씬 못한 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는 우두머리 또한 알고 있었다.
자르륵, 섬뜩한 소리와 함께 움직인 꼬리가 다시 한 번 그녀의 창을 붙잡는다.
"이, 게!!"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제 때에 간섭할 수 있었다.
파도치듯 일어난 흰 모래가 자연스레 움직이던 꼬리를 쳐낸다.
그 사실에 감사하며, 황윤하는 손가락 사이로 창대를 굴렸다.
파지법을 변경.
찌르기에서 휘두르기로.
비록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을 만한 기술은 없었지만, 지금 이런 상황이라면 화려한 기술도 필요 없다.
우두둑!!
놈의 어깨에 대고 있던 창대를 강하게 압박.
그대로 팔을 내려앉히며, 그 반동으로 거리를 벌린다.
비틀거리는 표적.
거기에 앞서, 사지를 땅에 붙이듯 짐승처럼 착지한 황윤하가 으르렁거리는 포효를 터트렸다.
허나, 다음 순간 들린 벽력과 같은 소리에 그녀의 포효는 파묻혀 들리지도 않았다.
쐐애애애액!!
소리의 벽을 찢어가르며 작렬한 투창 때문이었다.
한 순간, 우두머리의 몸이 경직한다.
너무나도 예상 외의 수단이었기 때문이겠지.
지금 이 시점, 황윤하가 우두머리의 목을 취할 수 있는 수단은 단 하나.
저 창에 의한 찌르기 뿐이다.
그걸 제 손으로 포기하는 듯한 우행.
동시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누가 무어라고 할 필요도 없이 한 순간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은 깨달을 수 있었다.
황윤하가 승부수를 걸었다고.
어째서인가?
초조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서, 도박수 외엔 더 이상 답이 없다 판단했기 때문일까?
물론 그 또한 있었다.
허나, 황윤하 본인에게 물으면 조금 다른 답이 나왔겠지.
'지금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
사냥꾼으로서 황윤하가 지닌 직감이 그리 고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들이 눈 앞의 우두머리와 길항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적절한 파티 구성에 힘입어 놈을 압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조차 한계가 뚜렷히 보이던 상황.
거기에 방금 전 놈이 선보인 공격은 황윤하의 발등에 불을 떨어뜨리기 퍽 적합한 계기였다.
결정적일 때를 노려 사용하던 독침.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꼬리를 놈이 사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야 그렇겠지.
꼬리는 결정적인 순간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확실한 결과를 내기 위해서.
그렇게 추론한 건 어디까지나 황윤하의 짐작에 지나지 않는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겠지.
실제로, 그녀들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바로 그 덕분이었으니까.
다만.
우두머리 입장에서, 확실하게 승부수를 두기 위해 필요한 공격 수단은 꼬리가 아니다.
꼬리 끝에 달린 독침이지.
때문에.
방금 전, 우두머리는 황윤하를 끝장내기 위해 독침을 쏘는 대신 순수하게 꼬리를 활용했다.
그리고.
안 그래도 아슬아슬했던 마력이다.
'못 버텨!!'
독침을 내지르는 게 아니라, 꼬리로 휘감고 때린다.
거기까지 파티원들에게 대처를 맡겼다간, 마력 쪽이 먼저 동나버린다.
도저히 버틸 수 없다는 계산이 선 것이다.
그렇기에.
방금 전의 우두머리와 같이, 황윤하 또한 여기서 승부수를 걸었다.
내지르는 섬광.
말 그대로, 벼락처럼 날아든 투창이 우두머리를 향해 빨려든다.
그리고.
콰자자자작!!
여태까지 있었던 싸움 중에서도 가장 성대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전신의 갑각을 굳히고 앞으로.
우두머리로서는 머리와 가슴, 두 급소를 보호하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리고.
황윤하가 노린 건 흉곽, 가슴 쪽이었다.
내지른 투창이 작렬한다.
다만, 그 창날은 우두머리의 심장을 꿰뚫지는 못했다.
대신, 우두머리 또한 멀쩡한 건 아니었다.
심장을 보호하고자 앞으로 내밀었던 집게발에 훤하니 구멍이 뚫린 탓이다.
그 시점.
황윤하는 이미 지척에 있었다.
투창과 동시에 앞으로.
모든 여력을 끌어모아 전진한 황윤하가 한층 더 깊게 걸음을 딛는다.
아찔한 감각.
죽음의 환시가 우두머리의 뇌리를 들쑤신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머리를 보호하고 있던 집게발이, 그녀의 머리통을 내려찍는다.
물론 황윤하는 움직이지 않았다.
애시당초 그럴 여유도 없었거니와, 지금은 그 정도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떠어엉!!
머리 위.
다시 한 번 솟구친 모래의 장벽이 그 집게발을 쳐낸다.
그리고.
"흐으으으읍!!"
황윤하의 온 힘을 담은 주먹이, 전갈의 흉곽을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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