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1화 〉 잔재
* * *
황윤하의 입장에서 보자면, 말 그대로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낮고 깊게 울려퍼지는 소음. 뒤이은 지진.
마치 세상이 뒤집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물론 실제로는 달랐다.
만약 누군가 지금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면 한층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었겠지.
즉.
포효하며, 도약했다.
그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쭈삣 하고 온 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게 느껴진다.
자신도 모르게 방패를 들어올린 황윤하.
거의 반사적인 그 행동이 결과적으로 황윤하의 목숨을 구했다.
콰아앙!!
"크, 학?!"
파성추를 직접 몸으로 받아내면 이러할까 싶은 충격이 방패 너머로 작렬했다.
부웅 하고 황윤하의 발이 대지를 떠난다.
언뜻 보기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밀려난 듯한 모습.
허나, 실제로는 정 반대였다.
날아간 게 아니라, 스스로 몸을 뒤로 날려 피해를 줄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병……!!'
자신도 모르게 비명이 새고 말았을 정도로 만만찮은 위력.
내장까지 울리는 묵직함에 왈칵 하고 핏물이 샌다.
그 시점에서, 황윤하는 눈 앞의 몬스터를 그럭저럭 우수한 우두머리 따위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비록 기습이었다지만, 이토록 강렬한 일격.
고작해야 C랭크 게이트의 터줏대감, C+ 내지 B랭크 몬스터 따위가 아니다.
최소 B+랭크 이상.
어쩌면 A랭크를 점쳐야 할지도 모른다.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그런 의문은 아무래도 좋았다.
의혹을 품을 수야 있겠지만, 눈 앞에 있는 건 현실이다.
세세한 이론 따위는 나중에 덧붙이면 그만이었다.
무엇보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
자신조차 이 정도니, 만에 하나 다른 학생들이 방금 전 공격에 노출되었다면?
구태여 상상할 필요도 없었다.
최악의 결말이 나왔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자신이 제일 앞에 서 있었던 점이 요행이리라.
어쩌면 동굴 안에서 기습할 요량이었던 게 황윤하가 걸음 멈추는 모습을 보고서 이를 드러냈을지도 모르지.
어느 쪽이든, 그녀들로서는 다행인 일이리라.
황윤하의 머리 한구석이 냉정하게 그런 해답을 내렸다.
당장 정면에서 들이받기만 해도 이 정도다.
만약 놈의 안마당으로 보이는 동굴 안에서 교전이 일어났다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휘릭 하고 황윤하의 몸이 반전한다.
동시에, 착지.
그대로 꾸욱 하고 발끝을 밀어붙인다.
마치 방금 전 몬스터를 사냥할 때 사용했던 폭약이 재발하기라도 한 듯했다.
솟구치는 흙먼지.
새하얀 모래를 밟으며, 저 멀리 날아갔던 황윤하가 다시금 본래 자리로 되돌아온다……!!
"어?"
콰드드드득!!
덕분에 강철 씹히는 소리가 들렸을지언정, 다른 학생들의 모가지가 하늘을 춤추는 일은 없었다.
그 사실에 황윤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토했다.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한 다른 파티원들의 모습을 보면 온갖 참사가 눈에 선했다.
정면 기습으로부터 2초.
친구들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거리 벌려!!"
그렇게 외치며 황윤하는 눈 앞의 몬스터를 걷어찼다.
육체 강화 능력을 지닌 황윤하의 일격이다.
당연히 눈 앞의 괴물 또한 맨몸으로 받아낼 수는 없었다.
투웅 하는 무거운 파공성과 함께, 대지를 할퀴며 괴물이 밀려난다.
동시에, 황윤하는 그제서야 자신들을 급습한 괴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뭐여.'
그리고.
절망적이게도, 눈 앞의 괴물에 대한 정보가 자신에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두 발로 걷는 꽃게 인간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전갈 인간 따위에 대한 전설은 모르는데.
자신도 모르게 황윤하는 그리 생각했다.
물론 황윤하가 이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전갈 인간 전설을 모조리 섭렵하고 있었다 한들 마찬가지였으리라.
왜냐하면 눈 앞의 몬스터는 어딜 봐도 이 게이트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변 환경과 전혀 다른 고동색 빛깔의 갑각.
여타 전갈형 몬스터들과 엇비슷한 집게발.
방금 전, 황윤하를 강타한 독침 달린 꼬리.
거기에 그 밑으로 삐져나온 두 다리.
직립 보행하는 전갈 인간.
그리 설명할 수밖에 없는 외견이었다.
도저히 짐작이 가는 게 없다.
그러니 다음으로는 자연스레 눈 앞의 생물 본인에 대해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공격 수단.
꼬리로 내지르는 일격. 집게발을 통한 공격.
어느 쪽이든, 방패로 받아낼 수 있다.
독은?
없지는 않겠지.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없고.
다른 공격 또한 마찬가지.
직접 몸으로 받아내는 건 너무 위험한 도박이다.
즉, 이 시점에서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단 하나.
"원호해!!"
적당히 구르면서 시험할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굳이 먼저 나설 필요는 없었다.
불쾌한 듯 전신의 갑각을 움직인 몬스터가 곧바로 돌진했기 때문이다.
'공격 수단은 셋!'
뇌리로 다시금 되새기며, 황윤하는 전신을 긴장시켰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오로지 눈 앞의 몬스터를 상대로 집중하기만 하면 된다는 점이었다.
여하간, 저 놈도 바보는 아니겠지.
방금 전.
한 번의 교환을 통해 충분히 파악했으리라.
자신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는 건 단 한 명, 황윤하 뿐이라는 점을.
때문에.
자연스레 놈이 노리는 건 황윤하가 아닌 그 뒤의 학생들이 될 수밖에 없다.
황윤하로서는 오히려 간단한 일이었다.
물론 눈 앞의 몬스터와 싸우며 다른 사람까지 지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
다만.
그게 본디 이 파티에서 그녀가 맡고 있는 역할.
방패, 탱커의 일이다.
황윤하를 제치고 후방을 향해 달려들던 몬스터는, 그 덕에 실로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방금 전 그녀를 날려버렸을 때와 마찬가지.
분명히 떨쳐냈던 그녀가 다시 한 번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몬스터의 행동을 예측하고 있던 그녀가 곧바로 그 동선을 가로막은 일에 지나지 않는다.
허나,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리 생각하기도 힘든 노릇.
결국 몬스터는 노리기 쉬운 후열이 아닌 황윤하 쪽을 떨쳐내기 위해 힘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쿠웅!!
집게발과 방패가 충돌한다.
다른 학생들의 목을 노리고 집게발을 까딱거리던 방금 전과 달리, 꽉 닫힌 집게발이 날아드는 모습은 마치 주먹처럼 보였다.
물론 황윤하의 대처는 정해져 있었다.
방패로 받는다.
동시에, 몬스터는 다시 한 번 의아함을 느꼈다.
방금 전 내려친 집게발의 위력이 별다른 반향 하나 없이 무산된 탓이었다.
당연히 거기에는 황윤하의 솜씨가 개입되어 있었다.
전신을 하나의 용수철처럼 웅크리는 이미지.
방패 너머로 전해지는 충격을, 전신을 활용해 대지로 흘린다.
박우찬이 가르쳐 준 방식대로 전신을 감싼 능력은, 더 이상 단순한 외피 수준으로 머무르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과 연동해, 방금 전 가해진 충격을 전신으로 분산시킨다.
말 그대로 능력 자체가 공격을 받아내기 위한 형태로 거듭난 것이다.
반대쪽 팔 또한 마찬가지였다.
"흡!"
내지르는 일격.
한 손으로 거대한 방패를 다루고 있는 이상, 황윤하가 취할 수 있는 동작은 필연적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근력 문제가 아니라, 방패와 창의 동선이 겹치기 때문이다.
즉, 황윤하의 창술은 필연적으로 찌르기에 특화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황윤하 또한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때문에.
오로지 찌르기.
단순한 찌르기만을 연습한 창술은, 비록 한 동작 뿐이었지만 어느덧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거듭났다.
맞물리려는 집게 사이를 비집은 창날이, 그대로 집게발을 얽어 묶는다.
동시에.
핑그르!
양 손에 든 무기로 괴물의 양 팔을 봉쇄한 황윤하가, 그대로 몸을 날렸다.
섬머솔트 킥.
손가락을 굴리며 온 몸을 회전시킨 황윤하의 발끝이 괴물의 턱끝을 포착했다.
투웅!!
갑각 내부로 울려퍼지는 충격은,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결코 가볍지 않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지.
자신의 전신을 감싸는 힘.
다른 학생이 부여한 활력을 느끼며, 황윤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이런 전법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황윤하의 팔은 두 개였고, 눈 앞의 괴물이 지닌 공격 수단은 세 개라는 사실.
쐐애액!!
대기를 찢으며, 괴물의 꼬리가 마치 심판처럼 내려찍었다.
윤하가 제대로 착지하기도 전, 그 정수리를 꿰뚫기 위해 내지르는 일격.
거기에.
카가가가각!!
기묘한 금속음과 함께, 모래로 이루어진 칼날이 맞부딪혔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남은 한 명의 학생이 내지른 공격이었다.
'좋아!'
나쁘지 않은 흐름이다.
빠르게 호흡을 고르며, 황윤하는 그렇게 판단했다.
집게발 쪽은 자신이 대처할 수 있다.
놈의 결정타는 십중팔구 독침이 달린 꼬리.
다만, 그런 만큼 섣불리 사용할 수는 없겠지.
여타 전갈형 몬스터들과 마찬가지다.
독침은 결국 피부를 꿰뚫고 침입할 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자연스레 방금 전처럼 확실한 승부수를 던질 수 있을 때 꼬리를 쓰려 하리라.
다른 학생이 A랭크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이었다.
저 한 번의 일격을 막기 위해 마력을 끌어모으고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설령 체급의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그녀가 앞에서 버티고 있으면 몇 번 정도는 쳐낼 수 있다.
'문제는 그 뒤.'
자신이 집게발을 방어하고, 다른 학생들이 꼬리를 쳐낸다.
이 정도라면 어떻게든 길항은 유지할 수 있겠지.
반대로 말하자면, 딱 거기까지.
이 쪽도 치고 나갈 승부수가 없다.
물론 그 수단을 생각하기 위한 시간 끌기지만…….
이렇게 되니 이 게이트의 별 거 아닌 법칙이 뼈아팠다.
약탈.
도대체 언제까지 이 길항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치며, 황윤하는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