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80화 (280/371)

〈 280화 〉 사막

* * *

이번 기말고사는 게이트를 탐사할 예정이다.

처음 그 사실을 발표했을 때, 일부 학생들은 입을 비죽 내밀고 그리 투덜거린 바 있었다.

게이트 탐사라니?

아니, 그게 뭐야?

당연한 반응이었다.

말이 좋아 게이트 탐사지, 같은 게이트 탐사라 해도 세세한 사정은 목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으니까.

예를 들어, 가장 단순한 자원 채취.

혹은 헌터의 본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몬스터 토벌.

나아가서는 게이트 내부의 환경에 대한 정찰이나 분석, 공략까지.

때문에 대다수 학생들은 보다 정확한 채점 기준을 알려달라 말하고는 했다.

그러나 교사들은 학생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박우찬 또한 마찬가지였다.

물론 단순히 어깃장을 놓으려는 건 아니었다.

단지, 교사들이 보기에 그만큼 적절한 표현도 달리 없었던 탓이다.

이번 기말고사의 평가 기준은 말 그대로 게이트 탐사였다.

그리고.

학생들의 말마따나, 게이트 탐사는 그 목적에 따라 상세한 사항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주제이기도 했다.

다만.

한 가지 학생들이 고려하지 못한 점이 있다면, 환상과 현실 사이의 격차였다.

여하간, 게이트 탐사라는 말을 들으면 대다수 학생들은 십중팔구 몬스터 퇴치 쪽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보고 자랐으니까.

하지만 그런 건 어디까지나 화려한 매스컴 속 이야기일 뿐.

실제로 게이트 공략에 필요한 건 단순한 사냥 솜씨가 아닌 주변 환경에 대처하는 능력 쪽이다.

게다가, 매스컴 속 화려한 게이트 공략 따위는 어디까지나 연출일 뿐.

만약 학생들이 졸업 후 업계 최전선에서 게이트 공략에 참여한다면?

대다수 시간은 진흙탕에 얼굴을 파묻고 있겠지.

아카데미의 교사들은 그런 사실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일부 학생들이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다 불평한 기말고사 내용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그 애매모호함이야말로 이번 시험의 본질이었기 때문이다.

도저히 넉넉하다고는 못 할 3인 1조 구성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정된 자원과 정보.

이런 제약 속에서, 학생들은 게이트 탐사라는 목적 하에 어떤 행동을 취할까?

기말고사의 목적은 바로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조는 정보 분석을 중심으로 삼을지도 모르지.

어떤 조는 몬스터 퇴치를 중심으로 삼을지도 모르고.

그런 식으로, 각 조가 설정한 목적에 따라 이번 시험의 성적과 결과는 달라지리라.

자신이 속한 조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거기에 따른 목적을 설정한다.

게이트 탐사라는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문장과 전력을 가지고 학생들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그런 판단력이야말로 아카데미의 2학년 교사들이 이번 시험에서 기대하는 덕목이었다.

물론 한 가지 문제는 있었다.

이토록 애매모호한 기준인 만큼, 성적 채점이 빡세다는 점.

'땜빵으로 준비한 시험이 다 그렇지, 뭐.'

덕분에 게이트 내부에는 여러 교사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만약을 대비한 세이프 하우스 역할을 맡은 교사.

혹은, 게이트 내에서 길을 잃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교사 등.

거기에는 물론 박우찬처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준비하고 있는 교사들 또한 여럿이 있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정해진 시간 내에 어떤 목적을 세우고 얼마나 되는 전공을 달성할 수 있는가.

바로 그게 이번 시험의 본질이다.

당연히 설정했던 목적이 어려울수록 리스크도 커지지만, 리턴도 크다.

무작정 몬스터를 토벌한다고 좋은 일도 아니요, 오히려 지나치게 몬스터에게 들이받으면 감점이 있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정찰을 핑계로 삼아 무작정 몬스터를 피할 경우 또한.

헌터에게는 부득불 몬스터와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기 마련이니까.

예를 들면, 뒤에 마을이 있다거나.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뭐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견실하게 몬스터를 사냥하며 나아가고 있던 윤하의 파티가, 돌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탓이었다.

기척을 죽이고 나아가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몬스터의 흔적을 추적하고 있다.

물론 주변에 분포하고 있는 몬스터를 확인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

허나.

박우찬은 직감했다.

평범한 몬스터의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감도는 묘한 아쉬움.

틀림없다.

현재 윤하의 파티는 우두머리를 추적하고 있었다.

물론 별다른 문제는 없다.

만약 그녀들이 우두머리의 토벌을 파티의 목적으로 삼았다면 박우찬이 끼어들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설령 그녀들의 점수가 깎이고, 만약 위험할 때를 대비해 박우찬 또한 난입을 고려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모습을 드러내 그녀들을 만류할 수는 없었다.

막말로, 정말 성공하기라도 하면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건 틀림없으니까.

여기서 괜히 만류했다간 오히려 교사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살 수도 있겠지.

때문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안정적으로 시험을 진행하고 있던 윤하 쪽에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 건지.

박우찬은 의혹을 품으면서도 기척을 숨기고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

공교롭게도, 박우찬의 예상과 달리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단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황윤하의 현 상황이었다.

본디 황윤하는 그렇게 열정적인 성격이 아니다.

내심 스스로 속물적이라 생각하는 바와 같이, 적어도 이런 일에 먼저 나서서 적극적으로 사태를 주도하진 않는다.

던전 공략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으니 그 역할 내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

적극적으로 새로운 목적을 설정해 추진하는 타입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굳이 문제가 있었다고 하면, 운이 없었다고 평해야 하리라.

예를 들어, 이번 시험의 주제.

게이트 탐사라는 애매모호한 목적이 문제였다.

물론 황윤하는 바보가 아니다.

오히려 동년배 학생들 중에서는 이 시험의 본질에 가장 가깝게 다가섰다 말할 수 있으리라.

아이러니하게도, 박우찬의 제자들 중에서 박우찬과 가장 관점이 비슷한 건 그녀일 테니까.

그렇지만.

황윤하는 아직 어리다.

고작해야 열 여덟 살.

스스로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찰 나이는 아니었다.

때문에, 황윤하 또한 이번 시험의 목적을 짐작하면서도 거기에 대해 확신할 수는 없었다.

박우찬의 오산, 개중에서도 첫 번째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미 한 번 황윤하가 파티를 이끄는 모습을 보았던 박우찬은 윤하라면 언제나 매사 침착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그런 확신을 가지기는 힘든 법이다.

비유하자면, 별다른 족보 하나 없이 다른 교사들의 마음을 분석해 시험 범위를 한정하라는 소리였으니까.

그런 식으로 공부하는 학생 따위는 전국 팔도를 뒤져도 없으리라.

거기에 두 번째.

아카데미의 교사들이 지나치게 우수했기 때문이다.

물론 최승준이 선출한 교사들이니 무능할 리는 없겠지.

허나, 이번 시험을 위해 교사들이 선보인 능력은 그 이상이었다.

게이트의 대출부터 시험 분야의 선정까지.

급조한 시험이었던 만큼 대다수 분야는 교사들 개인의 능력으로 채울 수밖에 없었던 탓도 있겠지.

문제는 덕분에 평균적인 시험보다 이번 기말고사의 완성도가 높아지고 말았다는 점이다.

쓸데없을 정도로 완벽한 파티 밸런스.

지나칠 정도로 위태위태한 건 사실이지만, 반대로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비상한 효율을 보이는 파티.

거기에, 학생들의 기초적인 능력까지.

몇 번 정도 이 게이트 내부에서 사냥을 거듭한 결과, 그녀들은 생각보다 호흡이 잘 맞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정도면 우두머리도 잡을 수 있는 거 아니야?"

자연스레 그녀들 사이에서는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물경, 거기서 세 번째 문제가 터졌다.

즉, 현재 황윤하는 평소처럼 냉정한 상태라고 말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유달리 마음이 들뜨는 날이 1년에 하루 즈음은 있는 법이다.

지금 또한 마찬가지였다.

평소와 달리 복잡한 심경.

거기에, 평소 이상으로 잘 맞아떨어지는 사냥 결과.

누구 한 명 의식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우두머리도 사냥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농담까지.

만약 시험이 단순한 게이트 탐험이었다면 황윤하 또한 불필요한 리스크를 감수하진 않았겠지.

다만, 황윤하에게는 그런 확신이 없었다.

그러니.

장차 미래를 위해 좋은 성적을 거두어야 한다는 부담감.

평소보다 침착함을 유지하기 힘든 요 근래의 일.

거기에 걸맞는 성과까지.

살짝, 아주 살짝이지만 황윤하의 마음에 실린 저울이 흔들리기엔 충분한 자극이었다.

어쩌면 정말로 몬스터 퇴치가 이번 시험의 평가 기준일지도 모르잖아?

만약 거들먹거리면서 말했다가 사실 시험 기준이 몬스터 퇴치라 고만고만한 성적만 거두면 어떻게 할 건데?

나야 그렇다 치더라도, 얘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은 자신보단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는 명분이 있을 때 더욱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같은 팀원들의 말을 들은 황윤하가 주변으로부터 대형 몬스터의 흔적을 추적하기 시작한 건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조금 들떴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단순히 요 근래 복잡했던 마음이 더 이상 자세한 생각을 거부했던 걸까.

어쩌면 오랜만에 나선 사냥의 흥분이 뇌리를 마비시킨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대다수 헌터들의 사인은 그런 한 순간의 실수.

방심조차 못 될 여유에서 나오는 법이다.

사막의 모래가 흐르는 방향으로부터 찾아낸 흔적을 쫓아 걸음을 옮겼던 황윤하는, 불현듯 그런 사실을 깨달았다.

방금 전까지 그녀가 추적하던 흔적은 눈 앞의 동굴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 사실에, 그녀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본디 야생에서 알비노로 대표되는 새하얀 몸 따위는 사냥에 방해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 이 환경처럼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오히려 눈에 띌 뿐이기 때문이다.

헌데, 이런 환경에서 우두머리가 된 몬스터가 주변의 사막도 아닌 동굴에서 서식하고 있다고?

왜?

혹시 저 동굴도 모종의 성분 때문에 새하얗게 질리기라도 한 걸까?

황윤하에게 그런 사실을 파악할 전문적인 지질학 지식은 없다.

때문에.

어쩌면 헛짚었을 뿐일지도 모른다는 의혹 속에서도, 황윤하는 슬쩍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그 망설임이 황윤하의 목숨을 살렸다.

다음 순간.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가 주변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어, 뭐야?"

"응?"

그리고.

그 소리가 동굴 안에서부터 들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 깨달은 순간.

동굴을 중심으로 새하얀 사막이 통째로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