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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79화 (279/371)

〈 279화 〉 사막

* * *

새하얗게 질린 사막의 모래들이 먼지를 일으키다 가라앉는다.

부산스럽게 불어닥치는 바람.

그 속에 모습을 숨긴 포식자는 조용히 주변을 살폈다.

마치 숙련된 암살자처럼 기척을 죽이고 경계하는 모습은 바야흐로 몬스터라는 이름에 걸맞는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새하얀 갑각. 인간의 몸조차 양단할 수 있을 거대한 집게.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주변을 훑고 있는 전갈의 모습은 오히려 겁에 질린 듯 보이기도 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지금 이 몬스터는 평소와 달리 포식자가 아닌 피식자.

사냥꾼이 아닌 사냥감이었으니까.

다음 순간, 전갈 주변의 모래가 솟구쳤다.

전갈의 반응은 빨랐다.

일격.

매정하게 휘두른 집게발이 대지를 강타한다.

쿠웅!!

주변 일대가 폭삭 주저앉을 정도로 강렬한 위력이었다.

하지만.

전갈의 뇌리에 위화감이 달린다.

지면을 후려친 집게발에 별다른 손맛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방금 전, 폭발을 일으킨 건 아카데미에서 지급한 소형 폭약이었으니까.

말하자면, 단순한 눈속임이다.

만약 이 몬스터가 조금만 더 경험이 풍부했다면 눈치챌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다만.

이제 와서 눈치채도 바뀌는 건 없었다.

섬뜩한 감각이 전갈의 눈 앞을 스친다.

동시에.

키이잉!!

작렬하는 금속음과 함께, 전갈은 꼬리 끝을 타고 오르는 저릿한 감각에 잘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배후에서 날아드는 기습을 쳐낸 탓이었다.

물론 옆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는 사냥꾼이 있었다면 혀를 차며 그리 핀잔을 넣었으리라.

쳐낸 게 아니다.

꼬리 쪽을 노리고 영격을 유도한 거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부웅, 하는 소리.

다음 순간, 전갈의 머리 위로 드리운 그림자로부터 사람이 낙하했다.

"으랏차!!"

팀의 메인 탱커, 황윤하였다.

들어올린 방패를 반대쪽 전갈의 집게발에 내려친다.

우드득!!

방패의 날에 짓눌려, 전갈의 갑각이 괴상한 소리를 냈다.

동시에, 황윤하의 머릿속으로 이전까지 박우찬에게 배웠던 이야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힘싸움으로 대다수 헌터는 몬스터를 당해내기 힘들다.'

동 랭크 몬스터와 순수하게 힘을 겨룰 수 있는 건 신체 강화 능력자들 뿐.

그조차도 질량이나 크기 따위를 고려하면 실제로는 밀리는 게 부지기수다.

때문에.

박우찬이 가르쳐준 방법은 실로 여러가지가 있었다.

예를 들면, 몬스터가 자신을 붙잡지 못하도록 포지션을 선점하는 방법.

혹은, 체중 분배 따위로 몬스터의 몸을 역으로 흘려버리는 방법.

개중에서도, 황윤하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방법은 역시 이 쪽이었다.

설령 몬스터가 눈치챈다 해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까지 몰아넣는 방법.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전갈의 시선이 보급품에 의한 폭발 쪽으로 쏠린 직후.

황윤하는 전갈의 꼬리를 향해 창을 내던지고 도약했다.

그리고.

전갈의 집게발이 대지를 강타한 직후.

황윤하의 창은 전갈의 꼬리에 적중했고, 곧바로 반대편 집게발을 찍어눌러 봉쇄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설령 전갈이 그녀의 공격을 알아챘다 한들 달리 대처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때문에.

전갈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다.

이토록 치명적인 빈틈.

어찌나 아둔한 사냥꾼이라 한들, 그대로 놓아두고 있을 리 없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우우웅, 모래가 진동했다.

동시에, 남은 마력을 아낌없이 때려넣은 일격이 작렬했다.

황윤하의 팀 내에서 공격수 역할을 맡고 있는 여학생의 능력은 대지 조작.

이름이야 요란하지만, C랭크 수준인 지금이라면 지형을 퍼올려 암석을 형성하거나 사출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시야의 시작부터 끝까지 닿는 모든 장소가 모래 비슷한 무언가로 가득한 지금.

그녀는 평소와 달리 소량의 힘으로도 충분한 공격 수단을 갖출 수 있었다.

그렇게 남은 마력은 당연히 여분의 공격력으로 치환되었고.

그 결과.

서걱!!

이렇게 되었다.

섬뜩한 소리와 함께, 마치 파도치듯 솟구쳤던 모래가 단두대처럼 작렬했다.

족히 10m 가까운 크기의 거대한 전갈이, 내려치는 모래의 단두대에 맞고 깔끔하게 두동강난다.

그 고통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마치 버지럭대듯 상반신을 경련하던 전갈의 육체가 뒤이어 축 하고 늘어졌다.

꼬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보급품이 효과를 발휘하고 나서 30초 내외.

안정적인 토벌이었다.

"이거 꽤 할만한데……?!"

후우, 하고 호흡을 고르는 황윤하의 뒤로 팀원들의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목소리에 어느 정도 흥분이 배어 있기는 했지만, 처음에 비하면 완연히 괜찮은 편이었다.

적어도 몸이 빳빳하게 굳어 있을 정도는 아닌 듯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이번 사냥까지 합쳐 총 세 번.

그녀들은 비슷한 몬스터의 토벌을 완료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썩 괜찮은 결과를 거두고 있는 게 윤하의 눈에도 보였다.

아니, 오히려 점차 나아지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든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자신의 팔을 살폈다.

처음에는 실수한 나머지 집게발을 봉쇄하는 데에 실패하거나, 혹은 독침에 당할 뻔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별다른 상처 하나 나지 않고 토벌하는 데에 성공했다.

환경이 좋은 점도 있다.

단순히 익숙해진 점도 있겠지.

다만, 그 이상으로 팀원들의 실력 또한 나쁘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물론 황윤하의 눈은 높은 편이었다.

여하간, 처음으로 함께 한 파티가 현직 A+랭크 헌터를 포함한 호화 사양이었으니 어쩔 수 있나.

실제로, 눈 앞의 학생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썩 괜찮은 실력이라는 말과 별개로, 그녀들의 행동 또한 황윤하가 보기엔 어느 정도 빈틈이 보였으니까.

예를 들어, 방금 전 일격도 이예은이라면 조금 더 세련된 형태로 시도할 수 있었으리라.

중력이라는 힘이 존재하고 있는 만큼, 조금만 어깨에 힘을 빼고 그 분량만큼 다른 조작에 힘을 쏟는 편이 보다 위력을 낼 수 있겠지.

회복 역할을 맡고 있는 학생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여유가 나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반대로 그건 손이 남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차라리 그 시점에서 달리 손이 부족한 부분을 찾아 보완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움직일 수도 있었을 텐데.

언제라도 부상자가 생기면 달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하고 있는 기미가 보였다.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황윤하 또한 그녀들과 호흡을 맞추며 실력을 측정한 바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실력에 비하면 퍽 훌륭한 대처와 반응이라는 건 황윤하 또한 숙지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황윤하 또한 구태여 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았다.

여하간, 그녀가 맡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임시 조장.

아카데미 측에서 임의로 분배한 팀 속, 교사들이 지정해 맡겼을 뿐인 역할이다.

말하자면 반장 수준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런 입장에서 구태여 나서서 네 능력이 어떻고 네 행동이 어쩌고 해 봐야 반발을 살 뿐이겠지.

오히려 선생들이 준 감투 하나 썼다고 왈가왈부하냐는 식으로 불만을 터트리는 게 대다수이리라.

때문에, 황윤하 또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무엇보다, 나름 재밌기도 했고.

여태까지 황윤하는 자신이 항상 파티의 짐이라는 인식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애시당초 아카데미 내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인 이예은.

어중간한 헌터 연기 대신 본 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한 류지희.

거기에, 매번 볼 때마다 이상할 정도로 일취월장하고 있는 자하연.

저 셋에 비하면 자신은 어디까지나 후발 주자.

신체 강화형 능력을 각성한 인원이 없어 방패 역할을 맡고 있을 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우찬이 고평가하고 있는 던전 공략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에도 윤하는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던 탓에 사령탑 역할을 맡았을 뿐.

오히려 실력은 그 중에서도 최하위였다.

물론 박우찬은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는 마음가짐 또한 실력의 일부라 말했지만, 당사자로서는 그리 생각하기도 힘든 법이다.

때문에.

여러모로 멋쩍은 기분을 느끼고 있던 황윤하는, 이번 사냥을 통해 꽤나 자신감이 붙고 있었다.

처음에 저 전갈을 마주쳤을 땐 이렇게 매끄럽게 사냥할 수 없었다.

실제로 독침에 찔리기까지 했으니.

아직도 허둥지둥하던 팀원들의 얼굴이 눈에 선할 정도였다.

그러므로, 두 번째부터는 사냥 방법을 바꿨다.

전갈의 독이 깃든 건 어디까지나 꼬리 부분.

게다가, 그조차 침으로 찔러 체내에 직접 주입하는 방식이다.

외부에서 독을 끼얹거나 방사하는 식의 공격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꼬리만 봉쇄하고 나면 전갈에게 남은 공격 수단은 물리 공격 뿐.

그리고 그 정도라면 그녀 또한 받아낼 수 있다.

그런 판단 하에 갈고닦은 전법은 한층 더 수월하게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게 해 주었고, 그런 방법은 전갈을 마주할 때마다 점차 날카롭게 갈고닦였다.

할 수 있다.

황윤하는 그런 감각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윤하 네 덕분인 것 같은데?"

"엉?"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면, 황윤하의 생각처럼 다른 반 학생들은 바보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그들은 이미 1년동안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을 완수한 사냥꾼들이었다.

비록 그녀에 비하면 경험이 부족하긴 했지만, 적어도 자신들의 능력 정도는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갑작스레 맞이한 실습에도 불구하고, 평소 이상으로 움직이기 쉽다는 점 또한.

물론 자세한 이유는 모른다.

황윤하의 포지셔닝. 몬스터를 추적하는 수단. 선수를 쥔 상황에서 기회를 활용하는 방법이나 움직임 등.

어느 쪽이든, 그녀들이 황윤하의 경험을 쫓아갈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입학 당시까지만 해도 오히려 경험에 있어선 불리한 쪽이었던 황윤하가 그녀들을 앞서고 있다는 아이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그런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다.

평소에 비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느껴질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수월한 사냥이라니.

이래서야, 지휘권을 쥐고 있는 황윤하 덕분이라는 걸 짐작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 정도면 이번 기말고사는 별다른 문제 없겠다, 야."

"그, 그러게.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데……."

말하자면, 그녀들 입장에서는 단순한 덕담.

혹은, 그런 황윤하의 고생에 대한 감사 인사였을 뿐이겠지.

여하간, 그녀들이 편해진 만큼 황윤하가 다른 부분…… 예를 들면 지휘 등에서 고생을 분담하고 있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을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그녀들의 말이, 지금 상황에서는 차라리 독과 같았다.

그리고 독이란 본디 당사자도 모르는 사이 스며들어 효과를 내는 법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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