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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78화 (278/371)

〈 278화 〉 관문

* * *

일반적으로 던전의 공략 난이도를 책정할 때 사용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다.

출몰하는 몬스터의 종류. 던전의 범위. 내부에서 서식하고 있는 몬스터의 숫자 등.

허면, 게이트는 어떨까?

일반적으로 게이트의 공략 난이도, 랭크를 측정하는 기준은 단 하나.

게이트를 점거하고 있는 우두머리의 랭크를 기준으로 셈한다.

어째서일까?

던전이 형성되는 건 게이트 내의 영역 다툼에서 밀려난 몬스터들이 주변에 둥지를 차리는 것.

혹은, 스탬피드 따위의 영향을 받아 밖으로 나온 몬스터들이 외부에서 정착한 게 발전한 경우 등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터 협회는 게이트보다 던전 쪽을 보다 엄중하게 측정하고 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예를 들어, 어느 정도 외부에서 변화를 관측할 수 있는 게이트.

반대로, 다른 세계가 아닌 지금 이 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던전.

객관적인 위험성과 별개로, 헌터 협회 측에서 대처하는 데에는 아무래도 후자가 우선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게이트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차 그 크기를 늘리기 마련이다.

내부에서 불어닥치는 마력 따위를 통해 제 몸을 불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게이트 내의 위험성을 직관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단 하나.

게이트가 직접 마력을 주고 양성한 위병.

즉, 우두머리의 강함을 측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편의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겉보기일 뿐.

까놓고 말해, 게이트 내부의 몬스터 분포나 우두머리의 강함 따위는 게이트 공략에 있어선 3순위 밖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몬스터의 강함 따위는 어디까지나 칼을 맞대고 싸울 수 있을 때의 이야기.

대다수 게이트들은 애시당초 몬스터와 칼을 맞대 싸울 기회 따위는 제공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게이트 내부의 환경.

혹은, 게이트가 자체적으로 지니고 있는 룰.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진다. 사과를 던지면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런 당연한 물리법칙에 더해, 게이트는 추가적인 본인만의 법칙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다반수였다.

때문에.

게이트 공략에 있어 가장 우선시되는 건 다른 무엇보다 선행 정찰.

즉, 게이트 내부에 대한 정보다.

게이트 내부에 작용하고 있는 법칙은 무엇인가?

어떤 법칙으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 현상에 대처할 수 있는가?

먼저 그런 식의 관찰과 시험이 동반되지 않고서야, 게이트 공략은 꿈 속의 꿈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게이트의 난이도는 우두머리를 기준으로 책정된다.

애초에 제대로 내부 정찰이 선행되지 않은 상황에선 난이도나 헌터의 강함 이전에 게이트를 공략할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지금 윤하를 비롯한 팀원들이 진입한 게이트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게이트였다.

아니, 그런 게이트가 아니라면 진즉에 문이 닫혔을 테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퍽 비현실적이었다.

소금 사막.

그렇게 말하는 게 좋을까?

정말로 소금일지 아닐지는 모른다.

단지, 지구에 있는 풍경을 가지고 비유하자면 가장 먼저 그런 단어가 떠올랐다.

새하얗게 질린 모래 비슷한 무언가가 바닥을 뒤덮고 있으며, 하늘은 끝없는 밤이 찾아오기라도 한 듯 거리감 하나 느껴지지 않는다.

별은 없고, 달 또한 없으니.

성경 속 소돔과 고모라에 내려친 심판이 끝나면 이런 풍경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삭막한 광경이 눈에 익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황윤하는 이번에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번 게이트는 C랭크 상당 수준의 게이트다.

출몰하는 몬스터는 전갈 등, 바야흐로 사막이라는 느낌이라고 평할 수 있을까.

몬스터 자체는 눈에 띌 정도로 강하진 않지만, 갑각이 튼튼하고 독을 내포하고 있는 게 성가시다.

개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점은 하나.

이 게이트를 지배하고 있는 법칙이다.

고갈 혹은 약탈.

누군가 그렇게 명명한 이 힘은, 보통 별다른 영향을 발휘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법칙이 힘을 발휘하는 건 바로 누군가 다쳤을 때.

즉, 상처가 생겼을 때다.

피. 살. 가죽. 피부.

혹은 기타 등등.

체내에서 외부로 흘러나온 모든 걸, 이 공간은 무자비하게 약탈한다.

피는 흘러나오자 마자 사라지고, 마력 또한 평소의 배 이상 가까운 속도로 고갈되니.

자연스레 상처가 나기라도 하면 치료하기는 어려워지고, 독이 돌기라도 하면 방혈 따위를 시도하기도 어렵다.

말 그대로, 사냥꾼으로서의 실력을 평가하는 전장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런 사실을 떠올리며, 황윤하는 머리를 긁었다.

일단 처음부터 경계할 필요는 없는 시점에서 합격선일까.

적어도 체내의 공기를 약탈하겠다며 빨아들이지 않는 시점에서 양심적인 축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렇게 지금까지 남아 자원 공급에 사용되고 있었던 거겠지만.

일반적으로 게이트를 공략하는 방법은 두 개.

하나는 모종의 마법 따위로 게이트 자체를 봉합하는 고등 기술.

다른 하나는 게이트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우두머리를 처리하는 것이다.

그 경우, 우두머리에게 공급되던 게이트 내부의 마력이 백파이어를 일으켜 역류.

게이트를 지지하고 확장하던 마력이 무너져 역으로 게이트가 축소되고 만다.

이러한 행동을 반복하는 것으로 별다른 기술 하나 없는 헌터도 게이트를 닫을 수 있다.

때문에.

게이트는 랭크가 낮으면 낮을수록 닫기는 힘들고, 랭크가 높다면 공략 난이도는 어려울지언정 닫기는 쉽다.

고작해야 E랭크 몬스터에게 공급하던 마력이 역류하는 일과 A랭크 몬스터에게 흐르던 마력이 역류하는 일.

당연히 후자 쪽이 더 심각한 사태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번 게이트는 전자에 속하는 부류겠지.

아카데미 지하에 있는 게이트와 마찬가지다.

특정 도구 따위를 사용해 억지로 게이트를 붙들어놓는 식으로, 우두머리의 죽음과 별개로 게이트를 유지한다.

그 경우, 게이트 또한 어느 정도 마력을 머금으면 다시 그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다.

그렇게 다시금 나타난 몬스터들을 도륙해 소재로 삼는다.

몬스터를 제외한 모두가 행복한 윈윈 체제다.

문제는 지금 이 게이트를 둘러싼 상황이다.

게이트에 진입하기 전, 담임 교사들이 하던 말을 떠올린다.

"익히 들어 알고 있겠지만, 이 게이트는 고작해야 C랭크 수준이다."

물론 C랭크 수준이라 해도 학생들에겐 난이도가 높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교사들은 거기에 몇 가지 말을 더 보탰다.

그렇지만 이 게이트는 요 최근 관리를 받지 못했다.

즉, 평범한 C랭크 게이트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내부에는 평소보다 많은 몬스터들이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몬스터의 숫자가 많다는 건, 몬스터들의 힘 또한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백 명 중에서 한 마리와 천 명 중에서 한 마리를 뽑는다면 그야 후자 쪽이 더 강할 테니까.

게다가, 몬스터는 서로를 먹어 마력을 불리기도 한다.

당연히 몬스터가 많다면 비축되는 마력의 양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는 법.

어쩌면 우두머리를 잡아먹고 힘을 불려 새로운 우두머리가 된 녀석도 있을지 모른다.

이 경우, 단순한 난이도는 C랭크 수준을 넘어선다…….

수련회에 갈 때마다 학생들을 윽박지르는 조교와 비슷한 패턴이다.

다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눈에 띄게 위험한 수준은 아닐 테지만, 반대로 방심해도 좋을 장소는 아니다.

그렇기에 교사들 또한 학생들이 긴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양념을 더 친 거겠지.

"이거, 괜찮나 몰라……."

"이동해야 하는 거 아니야?"

효과 또한 나쁘지 않았다.

슬쩍, 윤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와 한 팀이 된 학생들은 포지션적으론 후열.

D랭크 회복역이 한 명, C랭크 방출형이 한 명이다.

썩 나쁘지 않은 조합이지만, 문제는 오히려 반응 쪽이다.

회복역은 짐짓 불안해하고 있다.

방금 전 교사들이 언급한 사실에 지나칠 정도로 겁을 먹은 느낌.

반대로, 화력 담당.

방출형 능력을 보유한 학생은 애써 침착한 척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는 거라면 좋겠지만, 공교롭게도 그건 아닌 듯했다.

억지로 침착한 척 한다.

혹은, 지금 상황에 중압감을 느낀 탓에 자연스레 위축된 태도가 보이는 쪽에 가까웠다.

뭐, 그렇겠지.

방금 전 말은 반신반의하는 듯했지만, 지금 이 구성을 보면 바보라도 알 수 있다.

방패를 든 전위 한 명. 자신보다 약한 회복역 한 명.

즉, 파티의 공격력을 담당할 건 그녀 한 명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자연스레 어깨에 짐을 진 기분이 들겠지.

과하게 힘이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물론 괜한 걱정이다.

황윤하의 능력은 육체 강화 계통 능력이었으니까.

비록 방어력에 특화되어 있다고는 하나, 단순한 근력이나 속도도 뒤지지는 않는다.

다만, 황윤하는 섣불리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내가 있으니 괜찮을 거라는 식으로 말하면, 보통 동급생들이 보일 만한 반응은 두 개.

하나는 자신이 겁에 질린 적은 없다며 잡아떼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나를 무시하는 거냐며 화를 내는 일이다.

딱히 눈 앞의 그녀가 편협한 성격이라는 뜻이 아니라, 저렇게 위축된 상황이라면 자연스레 그리 나올 수밖에 없다.

마치 가시를 돋구는 고슴도치처럼.

때문에, 황윤하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싸우게 되면 알 수 있을 테니까.

이번 기말고사의 목적은 게이트 내부의 답파.

즉, 우두머리를 쓰러뜨리는 일 따위가 아니다.

평범하게 일정 영역을 답파하고, 그 내부에서 마주친 몬스터와 싸워 격파한다.

평가 기준은 모르겠지만, 아마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

어쩌면 몬스터를 피해 우회하는 기술 따위도 채점 기준에 있을지 모르고.

어느 쪽이든, 과하게 긴장할 필요는 없다.

정말로 운 없게 우두머리 따위와 마주치지 않으면.

'우두머리라.'

만약 우두머리를 잡을 수 있다면 담임은 어떻게 반응할까.

칭찬해 줄까? 아니면, 너무 위험한 짓은 하지 말라고 걱정해 줄까?

음, 어느 쪽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거기까지 생각하다, 황윤하는 피식 하고 웃었다.

'남말할 처지가 아니구만.'

교사들의 으름장.

혹은, 게이트라는 낯선 환경.

다른 학생들과 달리, 그녀는 저런 이유로 위축당하지는 않았다.

단지.

넋이 나가 있는 건 자신 또한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며, 황윤하는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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