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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76화 (276/371)

〈 276화 〉 게이트 답사 시험

* * *

헌터 업계에 존재하는 온갖 역할군 중에서 가장 뛰어난 테크닉을 요구하는 포지션은 무엇인가?

만약 누군가 그렇게 질문을 던진다면, 자리에 있는 사람 머릿수만큼 다양한 대답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최전선에서 몬스터와 부대끼는 전위들은 십중팔구 본인들의 노고를 제일로 치겠지.

후열 또한 마찬가지다.

마법사들은 전장에서 침착함을 유지해야만 하는 어려움을 토로할 테지.

사수들은 전위들이 맞지 않도록 공격을 계산해야 할 테고.

허나,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대다수 헌터들은 방패 역할을 맡은 이들의 노고를 무시할 수 없으리라.

그래.

소위 말하는 탱커들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처음 이야기를 들으면 막연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당장 스스로를 탱커라 자칭하는 헌터들의 장비만 봐도 그렇다.

두텁기 짝이 없는 중장갑.

마찬가지로, 버클러 등과 달리 퍽 으리으리하기 짝이 없는 대방패까지.

대다수 사람들이 보기에, 방패 역할을 맡는 탱커들의 장비는 테크닉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만약 단순한 무기술을 이야기할 뿐이라면, 탱커 역할을 맡은 헌터들의 솜씨는 아래에서 세는 게 빠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헌터 업계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테크니션이라 불리는 건 다름이 아니다.

수렵에 필요한 기술이라는 건 단순한 무기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 몬스터들은 헌터보다 크고 무겁다.

비단 초대형 몬스터만 들어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몬스터 전체로 보면 그렇게 크지 않은 부류도 헌터보다는 거대한 경우가 수두룩했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이야기였다.

대형 맹수들 중에서 인간보다 피지컬이 약한 종은 정말로 얼마 되지 않는다.

그리고 몬스터들은 그런 맹수 이상의 포식자다.

마력에 의한 강화. 마력과 접촉해 각성한 능력.

기타 등등을 제외하고 보면, 순수한 크기나 질량에 있어선 헌터 측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력에 의해 평범한 인간은 물론 몬스터조차 뛰어넘는 힘을 손에 넣은 헌터들조차, 크기와 질량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예를 들어, C랭크 몬스터 예티 따위가 출몰했다고 해 보자.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라면 내가 예티에게 패배하는 일은 없겠지.

다만.

예티의 팔이 나보다 길다는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세세한 기량이나 기교.

보법 등을 섞어 예티의 팔 안까지 파고드는 건 어렵지 않겠지.

그렇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건 신장이라는 수치적 차이를 만회하기 위해 기교를 동원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마찬가지였다.

내 힘이 예티보다 강한 건 둘째치더라도, 예티가 나를 붙잡아 들어올릴 수 있는 점 또한 사실이다.

만에 하나, 예티가 내 몸을 붙들고 저 멀리 던져버린다면?

물론 저항할 수는 있겠지.

애시당초 예티가 나를 붙잡기도 어려울 테고.

만약 그렇게 내던졌다 한들 날아가던 도중 자세를 바로잡는 건 어렵지 않으리라.

상대는 결국 C랭크 몬스터니까.

다만.

나와 C랭크 몬스터 사이에는 개미와 코끼리 수준의 격차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미에 해당하는 예티가 코끼리에 해당하는 나를 일방적으로 던져버릴 수 있다는 사실.

내 힘과 예티 사이의 힘 차이라면 모를까, 예티의 힘으로 내 몸 내지는 몸무게를 지탱하는 게 어렵지 않다는 사실.

이러한 사실들은 대다수 헌터들에게 곤란함을 가져다주기 마련이다.

막말로, 수렵은 게임이 아니니까.

도발 스킬을 사용한다고 몬스터의 어그로가 자신에게 집중되는 게 아니다.

하물며, 방어력 따위로 물리법칙에 저항할 수도 없는 법이고.

즉.

대다수 전위 포지션은 랭크가 높아질수록 어쩔 수 없는 벽에 부딪히게 된다.

상대 몬스터가 자신을 노리도록 이목을 집중시키는 기술.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자신을 저 멀리 내던져버리는 일은 없도록 대처하는 기술.

만에 하나 그렇게 파티의 전열이 붕괴하고 후열까지 몬스터의 이빨이 들이닥친다면…….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

파티 붕괴의 징조다.

때문에.

단순한 무기술 따위가 아닌 순수한 테크닉.

몬스터의 시선을 유도하는 방법. 몬스터의 공격에도 발판을 잃지 않는 방법.

혹은, 자신 혼자만 살아남는 게 아닌 파티 전원을 살리기 위한 방법.

이런 소소한 재주에 있어, 가장 많은 노고를 들여야 하는 건 언제나 파티의 기둥인 방패들이었다.

"기술 좀 가르쳐주세요."

그러므로.

오랜만에 찾아온 동아리 시간.

내게 그렇게 말한 윤하의 퉁명스러운 어조를 듣고도,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 출범할 때만 해도 신세계 질서 대책 운운하며 자랑스레 출범한 동아리.

그러나.

지금에 와선 최승준이 기껏 동아리를 출범시킨 보람도 없이 영 쓸쓸한 기류만이 감돌고 있었다.

물론 이런 말을 내 입으로 직접 전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이 동아리가 갈가리 찢겨진 사정을 설명하면 최승준은 보나 마나 내 탓으로 돌릴 게 뻔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네 여자 관계 때문이라는 거군."

그런 식으로 말하면서.

나로서는 억울할 따름이었다.

아니, 그래.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나도 무책임한 어른은 아니다.

일부.

정말로 일부 정도는 내 책임을 인정할 수도 있다.

어, 대략 10%……?

그 정도 하지 않을까.

'막말로, 내 잘못은 아니잖아.'

목울대 근처까지 그런 말이 꿈틀거리는 기분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실제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재수 없는 새끼라는 평가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당장 나라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면 그렇게 답했겠지만.

어쨌든.

덕분에 이 동아리방도 꽤나 을씨년스럽게 방치된 와중이었다.

뭐, 그렇게 말해도 정말 누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방치되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정도면 자주 들리는 편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당장 나만 해도 그렇고.

학생들이나 서아, 나아가서는 티아마트도 심심할 때마다 들리곤 하니까.

다만.

지금 이 동아리에 발을 담은 계집애들이 한데 모여 수다를 떠는 장면만큼은 요 근래 더더욱 보기 힘들어졌다.

딱히 싸우거나 한 건 아니지만, 서로 떨떠름하게 여기는 기색이 없잖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중심에 있는 건 나였고.

훗.

'씨발.'

아무리 그래도 이런 상황이 되는 걸 바라진 않았는데.

아니, 그야 어색한 분위기가 되기는 하겠지 싶었지만.

문제는 사태가 내 예상보다도 더 심각했다는 점이다.

막말로, 내가 생각했던 건 나 한 사람이 경원시당하는 일이었으니까.

헌데, 지금 이 상황은 조금 달랐다.

예은이를 필두로, 내게 차이고도 포기하지 않은 쪽.

그리고 포기와는 별개로 한껏 우울해하기 시작한 쪽.

동아리 내의 분위기가 두 부류로 갈렸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동아리 내에서도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지금 이런 흐름은 누가 먼저 주도한 게 아니라 자연스레 발생한 흐름인 셈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윤하는 그런 흐름의 중심에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내게는 윤하가 후자에 속했다는 점부터 의외라고 할 수 있었다.

까놓고 윤하가 조신한 성격은 아니니까.

오히려 지나칠 만큼 사내대장부같다는 생각을 한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그렇기에, 고백에 대한 대답 이후 줄곧 나를 피하던 윤하의 모습은 나로서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얼추 형태가 잡힌 기말고사 시험 팀 내에서 윤하가 맡은 포지션이 탱커라는 점.

나아가서는, 멤버 구성을 보건대 사냥을 주도하기 힘든 포지션인 윤하가 팀을 이끌어야 하리라는 고충까지.

그런 상황에 등을 떠밀린 탓일까?

아니면 어느 정도 마음이 정리된 덕택일까.

나로서는 실로 오랜만에 듣는 윤하의 목소리였으니, 절로 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가 파티의 방패 역할 따위를 맡았던 적은 없다.

파티가 없었으니까!

내가 백날 천날 막고 있어도 직접 몬스터를 죽이지 못하면 지지부진한 천일수가 반복되는 게 바로 솔로 헌터다.

당연히 전문적인 탱커 역할 헌터들처럼 가르쳐줄 수는 없겠지.

다만.

전문가 수준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초기 하연이의 훈련을 내가 어느 정도 봐줄 수 있었듯이.

어지간한 무기는 충분히 손에 익을 만큼 다룬 적 있는 나니까.

최소한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정도라면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마법 쪽도 있고.'

윤하도 마법 쪽엔 상대적으로 문외한이니까.

물론 윤하의 전법 상 마법이 필요할 일은 드물겠지.

다만.

윤하의 능력은 신체 강화.

개중에서도, 방어력에 특화된 신체 경화다.

허면, 내가 익히고 있는 세 가지 마법 중에서도 참고할 수 있는 건 있겠지.

까놓고 말해, 평소운 박사의 연구 결과를 적용한 신체 강화 마법.

그 중에는 방어에 특화된 방식으로 신체를 강화하는 마법 또한 있었다.

단순한 출력이라면 이런 마법보단 윤하의 능력 쪽이 더 강력하겠지만, 그래도 마력 운용법 등에서 참조할 여지는 있지 않겠는가.

그런 식으로 알려줄 수 있는 사실들을 내심 정리하며, 윤하를 향해 묻는다.

"그래. 혹시 윤하 쪽에서 관심 있는 분야는 있니?"

"주목을 끌 수 있으면 좋겠는데요."

하긴.

이번 기말고사는 3인 1조.

개중에서도, 윤하 쪽 파티원들은 두 명 다 후열 요원이다.

파티 전체의 방어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겠지.

내심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몬스터의 주목을 끌기는커녕 먼저 쑤셔 죽이는 걸 으뜸으로 치는 내 전법 상 알려줄 수 있는 점은 많지 않았지만…….

"어디 보자, 몬스터의 주목을 끄는 방법이라면 여럿이 있지만……."

"몬스터인가요?"

"응?"

"저는 상관 없는데요."

헌터의 이목을 끄는 방법에도 관심이 있어서.

그렇게 말하며 피식 하고 웃는 윤하의 표정은, 마치 시덥잖은 농담을 던지기라도 하듯 담담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그런 표정을 마주보고 있는 내 얼굴이 어떤 상태일진 나로서도 예상하기 힘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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