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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73화 (273/371)

〈 273화 〉 작전 결과 보고

* * *

하늘을 가르는 섬광과 함께, 이번 작전도 끝이 났다.

순식간에 사그라드는 거목.

인간으로 따지자면 심장을 잃은 셈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물며, 뇌라고 할 수 있을 단말 또한 마찬가지.

티아마트의 마력을 남김없이 때려박은일격이 작렬한 직후.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멈춘 마신의 모가지를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재생에 마력을 소비하자니 마력의 근간인 본체 또한 멀쩡하지 않은 상황.

결국 억압의 마신으로서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죽기 직전 저주 비슷한 말을 시끄럽게 떠들긴 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차피 흘려들었고.

애시당초 몬스터의 사정 따위는 아무래도 좋을 일.

구구절절 기억할 필요도 없었다.

마침 녀석의 육체가 소멸하자 온 몸에 활기가 도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묘하게 손맛에 남던 위화감 또한 마신의 작품이었던 모양이다.

마신들 특유의 권능일까.

뭐, 어느 쪽이든.

쳐죽인 시점에서 구태여 염두에 둘 필요는 없겠지.

빈 손을 쥐락펴락하며 시선을 돌린다.

그러자 완전히 탄화되어 무너지는 나무의 모습이 형형하게 보였다.

지나칠 정도로 말라 비틀어진 탓에 마치 바스라지는 듯한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헌데, 정말로 괜찮겠느냐?"

"엉?"

"저만한 나무가 무너지면 주변에 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그 정도는 이준구 그 새끼가 하겠지."

애초에 우리들 중 제일 강한 주제에 혼자 꿀만 빨고 있던 새끼니까.

시민들 대피는 진즉에 끝났고, 만에 하나 나무가 무너진다 한들 충분히 받아낼 수 있겠지.

여기서 우리들이 할 일은 끝났다.

설령 신세계 질서 측에서 뒤늦게 개입하려 한들 마찬가지.

아직 시그니처를 사용하지 않은 나와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은 이준구가 있는 지금.

추가 전력을 증원한들 단순한 축차 투입이 될 가능성이 컸다.

즉, 우리들로서는 경계할 게 아니라 역으로 반길 만한 상황이란 뜻이고.

그렇기에.

전신을 완전히 이완시킨 상태로, 나는 현장을 살피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대대적인 작전을 벌였으니, 협회 쪽에 입을 닦고 넘어가긴 힘들겠지.

물론 내가 담당할 일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이번처럼 대대적으로 일을 벌인 건 처음이라 조금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허어. 매번 생각하지만, 네 감상도 보통은 아니구나."

"뒈질래?"

"어, 어찌 그리 말을 하느냐……. 단순한 감상이니라."

"무슨 의미인데."

"보통 전사들은 자신의 전공을 과시하려 들지 않느냐?"

그런데도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뒷처리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아니, 나아가서는 그런 점을 완전히 다른 녀석들에게 맡긴다.

아무래도 이 년은 그런 게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물론 나로서는 멋쩍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내가 이 업계에 투신한 이유는 단 하나.

자기만족 때문이었으니까.

돈도 충분히 벌었고.

명성에 관심이 있었으면 애시당초 비 인가 헌터로 살지 않았겠지.

음, 아니.

별명 정도는 바뀌었음 하긴 하는데…….

잠시 생각하다 이윽고 고개를 저었다.

관두자.

다름이 아니라, 이번 일로 별명이 바뀐다면 보나 마나 바뀐 별명도 비슷한 수준일 게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도축업자에서 나무꾼이 되는 수준일까.

어느 쪽도 내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새삼 생각했지만, 네 녀석은 도저히 영웅은 못 될 상이로구나."

"그런 건 이준구 그 새끼나 하라고 해."

당연한 이야기.

애시당초 나는 멋들어진 영웅 같은 게 아니라, 단순한 사냥꾼이다.

아무리 헌터 사회 운운하는 시절이 됐어도, 예능에 몬스터 한 마리 잡으려고 한 달간 늪지에 몸 숙이고 있는 놈이 나와서야 곤란할 뿐이겠지.

다큐멘터리라면 또 모를까.

"이번 일도 마찬가지겠구나."

녀석의 말에 나 또한 어깨를 좁혔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이번 마신을 토벌하는 데엔 몬스터인 녀석의 힘을 빌린 셈이었으니까.

평소 나라면 생각조차 안 할 수단이었다.

다만.

내가 몬스터를 싫어하는 건 모종의 신념 따위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단순히 기분이 나쁘니까 그런 거지.

달리 말하자면, 효율적인 수단을 내 기분 하나 나쁘다고 쓰지 않을 이유도 없다.

실제로 내게 주목이 끌린 틈을 타 방출한 녀석의 공격은 마신의 숨통을 끊어버렸고.

훌륭한 전과다.

애초에, 바보도 아니고.

대침공 따위를 일으키며 선빵을 갈긴 건 몬스터 새끼들이다.

설마 정정당당하게 1대 1 따위를 요구하지는 않겠지.

뭐, 설령 그런다 해도 무시할 거지만.

단지.

"미안하게 됐다."

"응?"

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려 녀석의 몸을 살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녀석…… 티아마트의 몸상태 또한 멀쩡하지는 않았다.

만에 하나 마신이 공격을 견디면 위험했을 테니까.

즉, A+랭크 몬스터인 마신의 목숨을 끊기 위해선 그에 필적하는 티아마트의 모든 마력을 사용해야 했다.

말 그대로, 분신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마력까지 전부.

당장 내가 이런 식으로 티아마트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고갈된 마력에 따라 녀석의 존재감도 한층 흐릿해졌기 때문이다.

아니, 결국 분신이니까 딱히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만.

내가 멋쩍은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건 다른 데에 있었다.

"나 때문에 오히려 정체를 들켜버렸잖냐."

한창 마신을 앞두고 있었을 땐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본말전도도 이만한 게 따로 없었다.

일전에 녀석과 했던 약속 때문에 조력하러 온 거였는데 말이지.

정작 신세계 질서 측에 녀석의 정체가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건 별로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만약 평소 상태였다면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았겠지만.

하필이면 티아마트가 마력을 전소한 지금.

몬스터를 상대로 날뛰는 감각도 한층 잠잠해져, 나는 때 아닌 양심의 가책 따위를 느끼고 있었다.

아니, 그 때는 나름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이런 일은 내 성질에 맞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마음을 담아 푸욱 하고 한숨을 내쉬자, 곧 녀석은 동그랗게 뜬 눈으로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핫!! 뭐, 뭐냐. 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냐?!"

"아니, 씹. 건드리지 마."

그렇게 말하며 등을 팡팡 내려치려는 건 제지할 수밖에 없었지만.

만약 티아마트가 내 몸을 섣불리 건드려 나도 모르게 죽여버리면 어지간히 웃긴 그림도 아닐 테지.

멋쩍은 속내에 뺨을 긁적이고 있자니, 곧 녀석은 흐뭇한 듯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너무 염려하지 말거라. 이미 늦었으니까."

"응?"

"억압의 마신이라고 하지 않았더냐? 그 녀석은 네가 그런 말을 하기 전부터 본인의 정체를 간파하고 있더구나."

본인의 기품 때문이 아니겠느냐? 마치 장난처럼 그리 말하는 녀석으로부터 시선을 뗀다.

확실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마신들 사이에 모종의 연락 수단이 있다면 이미 그 정체는 신세계 질서 측에 넘어갔겠지.

무엇보다.

초대형 게이트 발생 당시, 그 너머에서 느껴지던 마력을 생각하면…….

거의 확실하지 않을까.

세계를 넘어 이 쪽에 간섭할 수 있는 괴물이 뒷배에 있다.

설마 텔레파시 하나 불가능하지는 않겠지.

다만,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이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요컨대, 이번 작전에 참여한 탓에 티아마트의 정체가 드러났다는 뜻 아닌가.

물론 티아마트의 정체가 드러났다고 해서 무슨 변화가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신세계 질서가 티아마트의 정체를 어떻게 이용하리라는 확신 또한 없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불편한 마음을 감추기 힘들었다.

"너무 신경쓰지 말래도. 게다가, 본인으로서는 오히려 마음에 드는구나."

"엉?"

"보기 힘든 모습을 보고 있지 않더냐."

아니, 그건 네가 몬스터라 그런 거고.

내심 말을 삼키자, 녀석은 곧 그 붉은 머리칼을 꽃잎처럼 휘날리며 웃었다.

"섬세한 녀석 같으니라고."

"시끄러."

"허면, 다음에 따로 데이트 신청이라도 하거라. 생각해 보면, 딱히 부부다운 행동을 하진 못했던 듯하구나."

"뭐?"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방금 전 내 귓가에 닿은 목소리는 쉽게 무시하기 힘들었다.

득달같이 고개를 들어올린다.

허나.

"아니, 씨발!!"

마침 딱 시간이 다 되었던 건지.

아니면 나를 놀릴 생각으로 분신이 소멸하기 직전에 그런 말을 한 건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눈 앞에 있던 티아마트의 모습은 어느덧 사라진지 오래였다.

*

"흐아아아악!!"

의식을 본체로 되돌린 직후, 티아마트는 협회 최상층에 안치된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부드러운 실크 드레스가 티아마트의 몸을 감싸며 다시금 본체로 돌아왔다는 실감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지금 티아마트의 머릿속엔 그런 감촉을 즐기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부부라니, 부부라니!'

말했다!!

말해버렸다!!

밤하늘 아래!!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 찾아왔다는 박우찬!!

무언가 그럭저럭 애틋한 분위기!!

그 덕분일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군 운운하는 소리조차 부끄러워 섣불리 입 밖에 내지 못했던 티아마트로서는 참으로 과감하게 그런 말을 내뱉을 수 있었다.

물론 부끄러움은 오로지 그녀의 몫이었다.

여하간, 그녀는 고대 설화 속에서 튀어나온 여신이다.

당연히 여자 쪽에서 그런 말을 하는 데에는 거부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엄청나게 부끄럽다.

그러나.

상대는 박우찬.

애시당초 그런 이야기를 할 만한 인간도 아니었거니와, 자신 또한 어느 정도는 이 세상에 적응할 각오를 다져야 할 상황.

심지어 인간 부군을 맞이하였으니 언제까지고 신화 속 여신처럼 고고하게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다.

때문에, 나름의 각오를 다지고 던진 말이었지만…….

"부끄러워……!!"

후회는 없지만, 부끄럽다.

그게 바로 티아마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홧홧하게 불타오르는 귓가가 뜨거울 정도였다.

음, 뭐.

어느 쪽이든, 있을 수 없는 말은 아니고?

그런 관계고?

거기에, 요 최근 박우찬이 보이던 태도 또한 있었으리라.

요 근래 박우찬의 태도는 도저히 여신의 부군이라 부르기에 힘들 정도였으니까.

오죽하면 티아마트조차 좋을대로 이용당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을 정도니.

그렇지만, 바로 오늘.

박우찬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연전을 감수하고 마신을 죽이기 위해 그녀 앞으로 뛰어들었다.

물론 사실대로 말하자면 박우찬의 앞을 가로막은 적이 없었을 뿐이지만, 티아마트로서는 그렇게 생각하기 힘들었다.

때문에.

충만한 만족감과 함께, 티아마트는 자신이라도 그런 말을 해야겠다는 의무감에 떠밀려 그런 행동을 한 것이었다.

모종의 만족감. 은밀한 풍족함.

당연한 이야기지만, 말이 더 이상 그렇게 살 수 없다지 티아마트의 사고는 여전히 판에 박힌 고대 시절 그 자체다.

사냥꾼이 자신의 업적을 과시할 생각 하나 없이, 자신을 돕기 위해 달려왔다는 사실은 그녀의 착각을 심화시키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티아마트는 자신의 만족감을 표현하기 위해 침대 위를 끊임없이 구르고 굴렀다.

거의 하루 내내.

바로 그 뒤에 청소하기 위해 들어왔던 청소부가 난생 처음 보는 모습을 보고 경직하고 말았을 정도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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