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9화 〉 억압의 마신
* * *
박우찬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목격한 건마신으로 추측되는 무언가와 티아마트가 대치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여태까지 상대한 마신들 중에서도 수위를 다툴 정도로 기괴하게 생긴 괴물.
몬스터만 보면 멋대로 발작하기 시작하는 박우찬은커녕, 평범한 사냥꾼이라 해도 기겁할 외견의 몬스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우찬이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째는 티아마트를 조력하기 위해 따로 지참한 방독면.
두 번째는 바로 어떤 의미로는 평등하기 짝이 없는 박우찬의 행동 양식 때문이었다.
박우찬이 몬스터를 평가하는 기준은 단 하나.
몬스터의 기척 뿐이다.
그 외의 기준은 모두 부가적인 이야기일 뿐.
대다수 사람들은 십중팔구 찬탄할 만큼 아름다운 몽마의 여왕도, 징그럽기 짝이 없는 마신도.
박우찬이 보기엔 그게 그거였다.
때문에.
호흡조차 멈추고, 박우찬은 기회를 살폈다.
그리고.
머잖아 마신이 티아마트를 향해 마력을 휘두르기 시작할 즈음.
박우찬이 나타난 건 바로 그 때였다.
서걱.
너무나도 허망한 소리와 함께, 대검의 톱날이 마신의 머리를 참수한다.
완전히 기척을 죽인 상황에서, 적절한 때를 잡아 일격.
배후에서 작렬한 공격은 설령 마신이라 해도 대처할 수 없을 정도로 정적이었고, 또한 깔끔했다.
마치 해바라기처럼 만개한 꽃봉오리가 땅을 향해 추락한다.
이윽고 무너지기 시작하는 마신의 육체.
다리를 구성하고 있던 뿌리가, 몸통을 유지하고 있던 줄기가.
나아가서는 손아귀를 유지하고 있던 나뭇잎이 말라 비틀어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살피며, 박우찬은 슬쩍 복도 건너편에 있던 티아마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리벙벙한 표정이 퍽 일품이었다.
"무, 무어냐?! 어째서 네가 여기에?"
도도도도, 하고 달려와 그렇게 묻는 티아마트.
마치 시궁쥐같은 모습에 박우찬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물론 티아마트의 질문 또한 이상한 건 아니었다.
여하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다른 쪽을 조력하는 계획 따위 존재하지도 않았으니까.
다만.
"호, 혹시 본인을 도우러 온 게냐?"
"어? 뭐, 그렇지?"
문제는 티아마트가 그런 사정까지는 알 수가 없다는 점이겠지.
설마 긍정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대답에 티아마트의 얼굴이 한층 더 어리벙벙해진다.
그 모습에 멋쩍은 듯 코를 울리던 박우찬이 능청스레 어깨를 좁힌다.
박우찬의 그런 태도에 한층 눈매를 좁히는 티아마트.
"허, 헌데 언제부터 여기에 와 있었던 게냐? 혹여 본인이 하는 말을 듣기라도 했느냐?"
"응? 아니?"
"정말로? 시치미 떼는 건 아니겠지?"
물론 거짓말은 아니었다.
애초에 마신을 기습할 생각으로 잠복했던 박우찬은 마신과 여신 사이의 대화 따위는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모든 집중력을 마신의 빈틈에 집중하던 찰나.
이제 와서 티아마트가 박우찬 없는 자리에서 부군 운운했던 걸 눈치챌 수 있을 리 없었다.
다만.
평소라면 그런 티아마트의 태도에 짜증을 내거나 살의를 진정시키느라 노력했을 박우찬은 곧 차분하게 고개를 저었다.
왜냐하면,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잘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응?"
"이 새끼, 안 뒤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마신의 유해가 폭발했다.
*
손맛이 없었다.
당시 박우찬에게 스스로가 처한 상황을 눈치챌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십중팔구 그리 대답하리라.
이처럼, 박우찬의 감각이란 논리가 아닌 철저히 직감 위주로 이루어진 무언가였다.
놈의 반응을 보건대 죽었을 리는 없다. 마신의 전설을 고려할 때 고작해야 이 정도로 죽을 리 없다.
그런 사고 끝에 내려진 결론이 아니다.
때문에.
억압의 마신이 죽음을 가장하며 박우찬을 노린 기습까지 실패로 돌아간 건 마신이 부주의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방금 전 공격으로 마신은 죽지 않았다.
박우찬이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신의 시체라고 말해야 할 물건에서 솟구친 건 다름 아닌 거대한 나무줄기였다.
그리고.
잘은 모르겠지만, 마신이 죽지 않았다.
다시 말해, 마신이 무언가를 획책하고 있다 짐작한 박우찬은 고작해야 나무줄기 기습 따위에 당하지 않았다.
어영부영 자신의 옆에 있던 티아마트를 데리고, 크게 뒤로 도약.
동시에 대검을 앞세워 방패로 삼는다.
문제는.
"니미."
마신의 기습이 만만찮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우찬이 알고 있는 기습은 대개 조용하고 효과적인 법이다.
예를 들면, 급소를 찌르는 일격.
혹은 독 따위를 통해 상대를 조용히 사살하는 것.
그게 바로 기습의 묘리다.
백의 힘을 지닌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백 이상의 힘을 부딪힐 필요는 없다.
단 1%의 힘으로 심장을 찔러 죽여버리면 그만.
박우찬은 언제나 그런 지론에 따라 행동하고 있었다.
때문에.
박우찬 자신의 근력으로도 막아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대검 너머에서 느껴졌을 때.
아무리 박우찬이라 해도 욕지거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콰아앙!!
"크아아아악!!"
"뭐, 뭐냐?! 다친 게냐?! 기다리거라!! 곧 회복시켜주마!!"
"씨발 가만히 있어!!"
물론 데미지는 크지 않았다.
적절하게 낙법을 취한 덕분일까.
단지, 등 뒤로 느껴지는 최승준의 냉기.
그리고 티아마트를 보호하며 옷 너머로 접촉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박우찬으로 하여금 비명을 지르게 하기 충분했다.
마신의 공격에 당했다기보다는 차라리 티아마트와 최승준의 협공이 매서웠다 평하는 게 더 적절할 상황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갑작스러운 비명에 박우찬을 도우려다 졸지에 욕을 얻어먹은 티아마트는 죽상을 지을 뿐이었지만.
반대로, 상황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구르릉.
건물 채로 뒤흔들리는 지하.
거기에, 방금 전 박우찬 자신을 날려버린 일격까지.
퍽 익숙한 감각이었다.
단순한 근력 이전의 문제다.
설령 육체 강화 계통 헌터라 해도, 몬스터를 상대로 힘싸움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
대등한 근력을 가지고 있다 한들, 몬스터가 헌터를 훨씬 더 용이하게 제압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까닭이 있다.
즉, 크기와 질량이다.
헌터는 그 신체 능력에 비해 질량은 평범한 사람과 그닥 다르지 않다.
당연히 헌터나 몬스터의 근력을 고려하면 쉽게 들어 내던질 수 있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크기 또한 마찬가지.
신체를 변형하는 계통의 능력에 각성한 게 아니라면, 헌터의 신장이나 팔 길이 등은 어디까지나 보통 사람 수준.
즉, 몬스터는 설령 힘싸움에서 헌터에게 밀린다 하더라도 헌터의 몸을 저 멀리 내던져버리면 그만이다.
여타 헌터들에 비해 몬스터의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내야 하는 방어 계통 능력자의 기량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다.
단순한 근력 뿐만이 아니라, 크기와 질량을 앞세운 상대의 공세를 기술로 무마해야 하니까.
방금 전 일격 또한 마찬가지였다.
단순한 근력이라면 박우찬도 뒤지지는 않겠지.
그렇기에, 나무줄기는 그대로 박우찬을 붙잡아 내던져버렸다.
당연히 타격은 크지 않지만, 강제로 거리를 벌리게 된 게 문제다.
마신의 유해에서 시작된 변화.
거기에 별다른 제동 하나 걸지 못하고 허용해버렸으니까.
그러므로.
거기까지 상황을 복기한 박우찬은, 당장 눈 앞에 들어온 거대한 나무 줄기에도 당혹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어쩌면 처음부터 예상했어야 할지도 모르지.
분명히 그들은 이 건물로 진입할 때 최승준의 마력 결정을 사용했다.
당장 박우찬이 사전에 확인하고 돌아온 건물 최심부까지 한파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한 지금.
어떻게 그 마신은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었을까?
그 해답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들이 사용한 마력 결정은 이 건물 내부를 제압할 수 있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애초에 그 정도가 아니라면 최승준의 비서에게 제어를 맡기는 일도 불가능했을 테지.
허면, 자칫 잘못했다간 그들 또한 최승준의 능력에 노출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게 대답이었다.
"잭과 콩나무냐?"
박우찬은 자신도 모르게 그리 중얼거리고 말아싿.
허나, 마치 농담같은 어조와는 별개로 지금 그의 눈 앞에 있는 모습을 묘사하는 데에 그보다 더 적절한 표현도 없었다.
하늘을 찌를 기세로 끊임없이 성장하는 나무 뿌리.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얼음에 뒤덮인 복도 내무를 질주하고 있는 덩쿨.
삐죽이며 돋아난 가시. 위협스러운 형상의 잎사귀.
마지막으로, 기괴한 비명을 지르는 꽃이나 열매까지.
아마존 정글 하면 떠오르는 오지의 식물들을 모조리 때려넣은 듯한 합성수?成?.
그게 바로 마신의 정체였다.
당연히 최승준의 능력도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수밖에.
아무리 강력한 능력이라 해도, 손가락 하나 얼어붙은 수준으로 발이 멈추는 사람은 없다.
눈 앞의 마신에게 있어, 이 건물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한기는 고작해야 그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드래곤의 폴리모프를 생각하면 쉬울까.
방금 전, 박우찬에게 목이 따인 인간 크기의 육체 또한 마찬가지겠지.
말하자면 티아마트의 분신과 같다.
마신 전체로 따지자면 잎사귀 하나, 열매 하나.
고작해야 그 정도로 죽음을 맞이하는 식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물며, 목을 딴다고 죽는 식물 따위가 있을 리도 없지.
녹색으로 파도치듯 꿈틀거리는 거대한 나무.
지금 눈 앞에 보이는 건 고작해야 이 지하를 가득 채우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박우찬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바깥.
지금 이 건물의 외부, 지표 너머에는 누구나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울창한 나무가 그 몸을 뻗고 있으리라고.
그렇게.
억압, 압제.
폭군에 의한 통치를 의미한다 일컬어지는 대악마는, 전혀 억압할 수도 압제당하지도 않은 듯한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며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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