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8화 〉 분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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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숫제 내키는 듯한 태도로 활보하던 티아마트 또한 자신을 향해 접근하는 마력을 눈치챌 수 있었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구태여 그런 표현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를 향해 똑바로 다가오고 있는 마력의 주인은 무엇 하나 숨길 생각이 없는 듯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다음 순간, 복도 끝에서 그녀를 찌르듯 노려보는 시선을 앞두고도 티아마트는 별달리 당황하지 않았다.
"거 참, 정열적인 구애로구나."
"누구에게나 걸맞는 태도라는 게 존재하는 법이지."
퍽 점잖은 어투로 화답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의 모습을 터럭조차 찾아볼 수 없는 존재였다.
여태까지 티아마트는 여신으로서 수많은 몬스터들을 보았다.
이 시대에 도착한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단순한 지식만 따지자면 대침공 이후 강림한 이 땅에서 얻은 게 더 크겠지.
메소포타미아 신화 속에 갇혀 있던 일전과 달리, 수많은 정보가 헌터 협회를 통해 그녀에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눈 앞의 마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박우찬은 말했다.
마치 짐승과 같았던 악의의 마신.
전형적인 악마와 비슷한 형상을 이루던 불만의 마신.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그녀로서는 알 수 없겠지만, 공작새 비슷한 냉혹의 마신까지.
아직까지 그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그림자 괴인까지 포함하면 얼추 반.
조로아스터 교에 전해지는 일곱 대악마들 중 자그마치 절반 가까운 마신들을 목격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녀의 눈 앞에 있는 존재가 발산하고 있는 기묘한 기척은 도저히 익숙해질 수 있을 만한 게 아니었다.
물론 다른 마신들의 외견 또한 평범하진 않았다.
하지만.
다른 마신들의 겉모습이 바야흐로 악마와 같다면, 눈 앞의 존재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마치 누군가 어설프게 악마를 모방해 만들어낸 오브제처럼 보였다.
조악하기 짝이 없는 완성도.
본디 사람 아닌 무언가를 억지로 인체라는 규격 내에 욱여넣은 듯한 느낌?
퍽 억척스러운 표현이었지만,티아마트는 자신의 말이 눈 앞의 악마를 묘사하는 데에 가장 적절한 문장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럴 법도 했다.
말끔한 정장 위.
방긋 하고 해바라기가 웃고 있었다.
다른 팔다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식물의 뿌리가 다리를 이루고, 식물의 줄기가 몸을 지탱한다.
당연히 손 대신 자리를 잡은 건 파릇파릇한 잎사귀였으니.
문자 그대로, 식물 인간이 저 멀리 서 있었다.
반인반수를 뒤잇는, 사람의 형태를 한 식물.
그게 바로 이번에 그녀 앞을 가로막은 마신의 정체였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여신이여."
흠칫.
자신도 모르게 티아마트는 어깨를 좁히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건 티아마트의 본체가 아닌 분신.
동시에, 그 힘을 고르고 골라 정제한 고급 분신이기도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마신들 앞에서 여신의 권능을 행사할 수도 없는 법.
비록 지금은 괴물 취급이라 해도, 일찍이 신이라는 이름으로 추앙받던 대악마들이다.
눈 앞에서 권능을 보기라도 하는 날엔 십중팔구 그 정체를 깨닫고 말겠지.
그리고.
티아마트가 보살피는 아이들에게 그건 별로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때문에.
지금 여기에 있는 분신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까지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특제.
여신의 분신이 아니라 차라리 A+랭크 회복역에 가까운 힘만 눌러 담은 특주품이었다.
물론 박우찬은 면전에서 코웃음을 치긴 했지만, 그거야 그 놈이 이상한 거고.
적어도 외부에서 보기에 여신이라고 눈치챌 만한 여지는 없다.
티아마트는 그렇게 확신했고, 때문에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설마 정말로 허술했던 건가?
아니면 정보가 샜다던가?
첩자?
온갖 가능성이 여신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친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해바라기는 가볍게 씨앗을 떨었다.
인간으로 따지자면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듯한 동작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진 알겠지만, 공교롭게도 그런 건 아닐세."
"……."
"쌀쌀맞군. 허나 윤허하지. 그대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을 테니."
더더욱 알쏭달쏭한 말이었다.
물론 누차 말했듯이, 몬스터의 언어란 대개 지리멸렬한 법이다.
애시당초 말을 할 수 있는 몬스터의 존재 따위는 지극히 희소.
거기에, 그런 고위 몬스터들이 인간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더더욱 희귀했다.
비록 지금은 신세계 질서라는 괴악한 집단과 맞서 싸우느라 그 희소성이 떨어진 듯한 느낌은 들지만…….
본디 말하는 몬스터란 최고 랭크의 용종, 혹은 악마나 도플갱어 등과 같이 인간으로 위장할 필요가 있는 종에게 허락된 힘.
개중에서도, 용은 인간을 상대로 먼저 입을 열지 않는다.
인간과 자신이 대등한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도플갱어를 포함한 악마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려고 한다.
다만, 그 근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파멸시키기 위한 본능에 있으니.
자연스레 튀어나오는 대화는 어딘가 지리멸렬하고 조잡하기 짝이 없다.
적어도 앞뒤가 맞고 논리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
언뜻 듣기에 퍽 그럴싸한 소리라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허면, 눈 앞의 악마는 어떤 부류인가?
티아마트는 그걸 쉬이 확신할 수 없었다.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몸에 익은 기품이란 쉬이 사라지는 게 아니지."
여신의 반응과는 별개로, 마신은 여전히 태연자약한 태도로 그렇게 말했다.
태도.
즉, 단순한 행동을 보고 짐작했을 뿐이라고.
터무니없는 허세.
평소라면 그렇게 말했을 테지만, 그 말에 티아마트 또한 불현듯 짐작이 가는 게 있었다.
대다수 몬스터들이 그렇듯이, 마신들 또한 스스로의 본질에 귀속된다.
아니, 그 본질을 인간의 악덕에 두고 있다는 그 특성 상 눈 앞의 대악마는 더더욱 그런 면이 강할 터였다.
여태까지 모든 마신들이 그러했듯이.
단순한 행동 양식부터 스스로 다루는 권능까지.
조로아스터 교의 일곱 마신들은 모두 스스로가 담당하는 영역에 귀속되어 있었다.
즉.
"억압의 마신, 인가?"
"거기에 명석하기까지."
농담인지 진담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태도로, 마신은 유쾌하다는 듯 그렇게 덧붙였다.
억압의 마신.
말했듯이, 조로아스터 교에 전해지는 일곱 대악마 중 한 마리.
상징하는 건 압제.
정당한 지배, 올바른 신앙에 의한 자연스러운 복종과 달리 굴복을 강요하는 악마.
즉, 암군의 폭정이 구현화되었다 일컬어지는 마신이었다.
권위에 관련된 마신이니만큼 신분 따위에 민감하다는 뜻인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허술하기 짝이 없는 트릭이라고 티아마트는 생각했다.
애시당초 그런 속사정을 낱낱이 밝힐 이유도 없었으니까.
요컨대, 생각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첫째는 단순한 허세나 위장일 경우.
그리고 둘째.
"아쉽군, 아쉬워. 만약 이 곳이 전장만 아니었다면 당장 청혼했을 텐데."
"흠. 공교롭게도, 본인에게는 이미 부군이 있어서 말이다. 설령 전장이 아니었더라도 받아줄 순 없었겠구나."
"유감스럽군.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좋은 여자에게는 언제나 짝이 있는 법이니까."
단순히 그런 말장난을 거듭해도 상관 없을 만한 여유가 있던가.
안타깝게도, 티아마트의 인생에 있어 대다수 경우는 후자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허면 죽일까."
다음 순간, 복도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원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거무죽죽한 마신의 마력이 천장과 바닥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진득하기 짝이 없는 마신의 마력.
그 모습을 보며, 티아마트는 각오를 다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애초에 티아마트는 이번 작전에서 승리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승리할 수 없다고 해야 할까.
당연한 이야기였다.
물론 티아마트는 이번 작전에 참여할 만한 실력자였다.
인류 최강의 영웅.
사상 최고봉의 재능.
거기에, 최흉의 사냥꾼까지.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최고 여신이라는 직함은 어디에 두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지금 이 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건 그녀의 본체가 아닌 분신 뿐.
당연히 그 실력은 상대적으로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실질적으로 그녀가 맡을 수 있는 역할은 단 하나.
여타 협력자들에 비해 죽음의 리스크가 존재하지 않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물론 이길 수 있다면 좋겠지.
그러나.
상대는 마신.
단순한 권능을 제외해도 이미 그녀의 최고 분신과 비슷한 힘을 발휘하는 존재다.
단독으로 맞닥뜨려 승리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겠지.
그러므로.
기대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몸으로 구르며 정보를 알아내, 확실히 처리한다.
말하자면, 그녀는 그런 일을 위한 역할이요 발판이었다.
……그 자체는 상관 없다.
아니, 역시 너무 홀대당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은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아마트는 무심코 떨리는 손을 감추기 위해 꽉 하고 주먹을 쥐었다.
'아프겠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초라하게도 그런 것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여하간, 여신이니 뭐니 해도 티아마트는 어디까지나 그 이름을 계승한 후계자일 뿐.
애초에 죽어본 적 따위도 없거니와, 진짜배기 여신 티아마트도 죽음에서 부활하지는 못했다.
물론 분신이 죽는다고 그녀에게 위해가 가지는 않겠지.
다만.
분신을 조종하는 건 어디까지나 그녀의 의사.
다시 말해, 그녀는 분신의 죽음을 추체험할 수밖에 없다.
솜씨 좋게 적절히 분신을 해제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급박한 전투 중 그런 게 가능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회의적일 수밖에.
때문에.
티아마트는 튀어나오려는 한숨을 억누르며 전투를 준비했다.
……그래.
비록 무서운 건 사실이다.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녀석들이 죽도록 내버려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단순한 임사체험 비슷한 경험 한 번.
달리 되돌릴 방법 하나 없는 누군가의 목숨 하나.
어느 쪽이 더 무겁느냐 물으면 당연히 후자였다.
그렇기에, 티아마트는 도망치지 않는다.
앞으로 얼마 후.
자신의 분신에게 들이닥칠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티아마트는 천천히 상황을 살폈다.
"……응?"
그리고.
서걱!!
예리한 소리와 함께,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여유있는 모습으로 서 있던 마신.
해바라기의 머리가 툭 하고 떨어지며, 그 뒤에 있던 박우찬이 모습을 드러낸 건 바로 그 다음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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