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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66화 (266/371)

〈 266화 〉 냉혹의 마신

* * *

아슬아슬했다.

정말로 한 걸음 차이였다고, 냉혹의 마신은 그렇게 자평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상당히 섬뜩한 순간이었다.

영거리.

마법사에겐 치명적이기 그지없는 간격을 점한 시점에서, 냉혹의 마신은 승리를 확신했다.

설마 그 거리에서 반격을 날릴 줄이야.

물론 절묘한 기술은 아니었다.

압도적인 마력을 앞세운 일격.

다만, 막무가내로 내지른 주먹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본인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 연마된 체술.

덕분에 마신의 팔은 한 순간에 넝마짝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신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정보의 차이다.

요컨대, 최승준은 그리 추측했다.

냉혹의 마신이 지닌 힘은 간섭을 차단하는 능력이리라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단지, 정답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냉혹의 마신에게 간섭 저항 능력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애초에 마신들이 상징하는 건 곧 사람의 악의.

당연히 그 권능 또한 마신이 담당하고 있는 영역에 귀속되기 마련이다.

허면, 냉혹의 마신.

선을 믿고 정의를 관철하는 의지에 대응하는 메마른 마음의 대악마가 발휘하는 권능이란 무엇인가.

당연히 이와 같았다.

"……."

마신의 시선이 방금 전과 동일한 자세로 굳은 최승준의 모습을 살핀다.

최승준 본인의 생각과 달리, 그는 정신을 잃은 게 아니었다.

단지.

눈에 보이는 걸 바라보지 못하고.

코로 맡았던 걸 깨닫지 못하고.

입에 맞닿은 걸 맛볼 수 없고.

귀로 들었던 걸 경청할 수 없고.

피부에 닿는 걸 자각하지 못하니.

스스로의 상황과 별개로, 최승준은 자신의 오감이 포착하는 모든 광경에 어떠한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눈 앞에 마신의 얼굴이 있어도 마찬가지.

마신의 저항력 또한 바로 그 일환이었다.

냉혹의 마신이 지닌 건 타인의 마력에 저항하는 힘 따위가 아니다.

살의나 적의를 포함해, 모든 감상을 메마르게 하는 힘.

그게 바로 마신이 지닌 권능이었다.

말하자면, 방금 전 최승준이 특수한 방어 능력이리라 추측했던 저항력의 실체는 다름 아닌 최승준 본인이었던 셈이다.

마신을 향한 적대감조차 메말라버린 끝에, 무의식적으로 발동한 능력을 취소한 최승준.

스스로의 그런 행동이 마치 모종의 저항력처럼 느껴졌을 뿐.

하물며 그런 능력을 직접 쑤셔박았으니.

'팔 한 쪽을 희생할 가치가 있었다고 해야 할까.'

최승준의 능력이 마신의 팔을 헤집고 있었을 때, 마신의 권능은 역으로 최승준을 노렸다.

그 결과가 바로 눈 앞에 있었다.

마치 바위처럼 굳어버린 최승준.

정신을 잃은 건 아니라지만, 실제로는 별로 다를 게 없었다.

눈 앞에서 백만 명이 목숨을 잃어도 어떠한 감흥 하나 없고, 애초에 움직일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설령 그를 죽이려 들어도 마찬가지겠지.

죽음에 대한 공포조차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대로 바깥에 내버려 두면비바람에 풍화되어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지도 않을 테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습은 박우찬이 오역에 가깝다 평했던 마신의 이름과 얼추 비슷했다.

냉혹의 마신, 인다르.

마치 얼어붙은 듯 정지한 최승준의 모습은 평소 그에게 당한 몬스터들처럼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다음 순간, 마신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마력의 흐름을 눈치채지 못했다.

콰드드드득!!

"크, 아아아악?!"

마치 치즈처럼 구멍 숭숭 뚫린 마신의 팔 안쪽으로부터, 얼음 송곳이 자라났다.

물론 어디까지나 제 3자 입장에서 서술했을 때 이야기.

마신이 보기엔 갑자기 자신의 오른팔이 폭발한 듯 느껴졌을 뿐이었다.

방금 전, 최승준의 얼음 송곳이 팔뚝을 헤집으며 생긴 빈틈.

그 안에 발을 들인 냉기가 돌연 말뚝 모양으로 자라나며 마신의 육체를 꿰뚫었다.

결과적으로, 마신은 육체의 4할 가까운 양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실질적으로 우반신이 증발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피해였다.

쿵.

마신의 무릎이 바닥에 닿는다.

그리고.

부리 사이로 새는 신음 너머로, 최승준은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머리가 멍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냉혹의 마신이 사용한 권능은 아직도 그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허면, 최승준은 어떻게 움직일 수 있었는가.

"젠장, 하필이면 그런 타입이었나……!"

마신은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하간, 냉혹의 마신이 발휘하는 권능은 무적의 힘 따위가 아니다.

애시당초 당사자인 냉혹의 마신 스스로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마신의 권능은 자신의 본질에 귀속된다.

불만의 마신이 그랬고, 악의의 마신이 그랬듯이.

냉혹의 마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같은 동포들의 장례식을 진행하고 있던 냉혹의 마신.

그러나.

만약 다른 마신들에게 의견을 물었다면 다들 하나같이 코웃음만 쳤을 테지.

당연한 이야기였다.

냉혹의 마신은 무엇 하나 느끼지 못한다.

자신의 권능에 당한 이들과 같이.

친절하기 짝이 없는 태도나 말투 등은 어디까지나 악마로서 사람을 속이기 위한 본능의 발로일 뿐.

이번 전투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람을 해롭게 하는 존재인 악마로서, 침입자인 최승준을 쳐죽이러 왔을 뿐.

그게 전부다.

냉혹하다 못해 공허한 악마.

단순한 본능으로 행동할 뿐인 짐승.

눈 앞의 마신은 바로 그런 존재였다.

때문에.

'단순한 본능인가?! 아니면?!'

마신의 두뇌가 가능성을 추리기 시작한다.

다만.

공교롭게도, 최승준은 어느 쪽도 아니었다.

만약 박우찬이었다면 별다른 감흥 하나 없이 눈 앞의 마신을 회쳐버렸을 테지.

박우찬이 몬스터를 죽이려 드는 건 단순한호불호 문제가 아니니까.

설령 제대로 된 감상 하나 느끼지 못한다 해도 달라질 건 없으리라.

이준구 또한 마찬가지다.

거의 본능에 가까운 의무감.

인류 최강이라 불리는 영웅의 짐은 고작해야 권능 한 번으로 무마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허면, 최승준은 어떨까.

박우찬처럼 눈 앞에 몬스터가 있으면 무작정 죽이고 볼 정도로 맛이 간 부류는 아니다.

이준구처럼 모든 감상을 비우고 남은 자리에 책임감을 채울 수 있을 정도로 헌신적인 성격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승준이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헌터였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였다.

철저하게 학습된 공포.

만에 하나, 눈 앞에서 게이트가 열렸을 때를 대비한 행동 강령.

두 번의 대침공을 거친 끝에, 인류 사회는 그런 방향으로 발전했다.

마신의 권능이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비유하자면, 냉혹의 마신이 사용한 권능은 지나칠 정도로 강렬한 무기력증에 가깝다.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심장이 뛰는 게 거슬린다며 자의적으로 심장을 멈출 수야 없는 법이다.

마찬가지였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학습된 행동.

최승준이 의식하기도 전에 방출된 능력이 마신의 우반신을 날려버린 것이다.

덕분에 마신의 능력도 조금은 약해진 걸까?

비틀거리며 이마를 짚은 최승준은, 곧 피식 하고 억지 웃음을 터트렸다.

"과연, 이제야 조금 알겠군."

헌터 사회라는 이름과 달리, 지금 이 세상을 만들어낸 건 다름 아닌 몬스터들이다.

두 번의 대침공 끝에, 사람들은 괴물을 두려워하며 이런 세상을 쌓아올렸다.

정작 그 탓에 세 번째 대침공을 일으키려는 마왕의 심복이 스스로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다니.

실로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확신할 수 있다.

어지간한 초보가 아닌 이상, 현역 헌터들 중에서 이 능력에 당해 나자빠질 놈은 없다.

능력의 강약 이전에, 그런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최승준은 그렇게 말해줄 수 있었다.

"네 능력이 제일 약해빠졌다."

"……나를 모독하는가!!"

분노에 찬 마신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니, 분노를 연기하고 있다는 표현이 보다 정확할까.

어느 쪽이든, 최승준에겐 알 바가 아니었지만.

한 쪽 다리만 남은 몸으로 상반신을 일으키는 마신.

번뜩 하고 곤두선 깃털이, 우악스레 휘두른 왼팔이섬찟한 소리를 터트린다.

그런 마신을 앞두고, 최승준 또한 다시 한 번 마력을 내려쳤다.

다시 한 번 교차하는 주먹.

그리고.

쩌적.

얼어붙는 소리와 함께, 마신의 남은 왼팔이 얼음에 붙들린다.

마신의 팔을 직접 얼린 게 아니라, 마치 감싸듯 뒤덮은 얼음의 막이 이윽고 끔찍한 소리와 함께 뒤틀렸다.

퍼어엉!!

"끄아아아악!!"

섬뜩하기 짝이 없는 소리와 함께, 마신의 왼팔이 뒤틀린 얼음과 함께 박살난다.

마치 폭발하듯 터져나오는 아우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승준은 손속을 멈추지 않았다.

머리. 안구. 부리. 근육. 팔다리의 단면.

족히 백 개 이상.

허공에서 나타난얼음 송곳이 마신의 육체를 겨눈다.

이윽고.

두두두두두두두!!

완전히 너덜너덜해진 마신의 육체를 얼음 송곳이 꿰뚫었다.

비명. 고통. 분노. 절규. 욕설.

마신의 전신을 뒤덮은 깃털조차 더 이상 그 역할을 다할 수 없게 되고도 잠깐.

최승준의 호령에 따라 끊임없이 퍼붓던 얼음의 화살비가 천천히 잦아든다.

그리고.

정적.

뒤이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이번에야말로 마신의 육체가무너져내렸다.

"염병."

그 모습을 바라보며 욕지거리를 흘리던 최승준이, 마침내 털썩 하고 주저앉는다.

냉혹의 마신, 인다르.

일찍이 벼락을 다루는 군신이라 일컬어진 괴물을 단독으로 쓰러뜨렸다.

틀림없이 훌륭한 전과다.

다만.

마신을 쓰러뜨린 건 좋았어도, 아직까지 머리가 멍했다.

회복되는 기미는 없잖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발 하나 떼기도 힘들 만큼 버거웠다.

단순한 피로보다는 차라리 무력감에 가까운 무언가.

도저히 익숙해지기 힘든 감각이었다.

그 사실에 미간을 찌푸리며, 최승준은 슬쩍 한숨을 토했다.

헌터와 몬스터 사이의 싸움은 고작해야 한 수 차이로 갈리는 게 대부분.

그런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위험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동시에.

최승준의 의식이 다시 한 번 지독할 정도로 깊은무의식의 바다를 향해 추락하기 시작한다.

'남은 녀석들이 잘 해내길 바랄 수밖에.'

결국 최승준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해야 그 정도 뿐이었다.

여하간, 지금은 무엇 하나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머리가 무겁게 느껴졌으니까.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최승준의 몸이 복도의 벽에 닿는다.

그렇게.

이번 작전의 행방은 최승준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 넘어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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