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4화 〉 냉혹의 마신
* * *
냉혹하게 얼어붙은 건물 안.
최승준의 발걸음을 가로막는 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밤의 어둠을 틈타 격리한 작전 구역.
개중에서도 중심에 존재하는 이 건물이야말로 그들의 목표였다.
마신들의 거점.
박우찬의 제자인 류지희와 얽힌 사건을 통해 알아낸 장소다.
겉으로 보기엔 허름한 건물처럼 보일 뿐이었지만…….
실상은 다르다.
일찍이 입수한 건물의 도면을 머릿속으로 상기하며, 최승준은 슬쩍 넥타이를 헐겁게 풀었다.
단순한 폐건물.
그렇게 보이는 건 어디까지나 겉모습 뿐.
실제로는 겉모습의 몇 배나 되는 광대한 영역이 건물 지하에 도사리고 있다.
마신이라는 존재에게 떠밀려 허겁지겁 확보한 건물인지, 그렇지 않으면 예전부터 준비한 은신처 중 하나인지.
어느 쪽이든,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단순하게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슬쩍, 주변에 감도는 냉기를 손가락 사이에 건다.
진입 직전.
최승준을 비롯한 이들이 내던진 마력 결정이 내뿜은 그의 능력은, 그런 건물의 내부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바깥에서는 그의 비서가 최승준의 마력을 제어하고 있겠지.
거기에 한 숟갈, 최승준도 힘을 보탠다.
그에게는 이 정도면 충분했다.
건물 지하를 가득 채우고 있던 압도적인 마력이, 한 순간 그의 제어 아래에 들어온다.
동시에.
내부에 퍼진 한기의 형태.
역으로 느껴지는 온기 따위를 통해, 최승준의 두뇌가 이 장소를 입체적으로 파악했다.
'역시.'
일찍이 예상했듯, 이 아지트 내에는 상당한 수의 인원이 모여있던 듯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족히 몇 달에 걸쳐, 평소보다 많은 인원이 들락날락거리는 때를 틈타 진행한 계획이니.
아무리 그래도, 작전을 진행했지만 하필이면 마신들이 자리를 비우고 있었습니다 하는 사태 따위는 용납할 수 없다.
그러므로.
최승준을 비롯한 일행들은 한창 이 거점의 방비가 두터울 때를 선택해 작전을 진행했다.
오가는 자들이 많다는 건 곧 출입이 있다는 뜻.
그리고.
마신들의 아지트에 출입이 늘어났다는 건, 당연히 그들이 섬기고 있는 마신들이 거점에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상관 없다.
오히려 노리던 바니.
단지.
지독할 정도로 냉혹하게 퍼진 냉기는, 삽시간에 건물 태반을 장악했다.
대다수 비 전투 요원은 이 시점에서 혼절.
전투가 가능한 이들이라 해도, 어중간한 수준이라면 움직일 수조차 없겠지.
최승준의 능력이란 그토록 강력했다.
때문에.
피이잉!
다음 순간, 최승준을 향해 날아든 공격에 가장 먼저 앞선 건 모종의 당혹이었다.
섬광.
망설임 없이 머리를 노리고 날아든 일격에, 최승준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젖힌다.
……애시당초 저 쪽 또한 단순한 견제 용도였던 건지.
처음 날아든 공격은 그대로 최승준의 뺨을 스치고 벽에 박히는 수준에서 그쳤다.
동시에.
최승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다소 의외인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방금 전, 최승준은 이 건물 내부 일대를 완전히 장악했다.
때문에.
지금 이 건물을 무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각종 싸움 또한 온전히 파악하고 있었다.
북쪽에서 침입하기로 한 박우찬.
서쪽에서 침입하기로 한 이준구.
마찬가지로, 남쪽에서 들이치기로 한 여신까지.
그 모든 사안을 최승준은 남김없이 파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의 앞에 누군가 나타날 때까지 눈치채지 못할 줄이야.
'무뎌졌나?'
한 순간,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물론 지나친 겸손이라 해야 하겠지.
지금도 최승준의 능력엔 별다른 하자가 없다.
매일 하루의 남는 시간마다 능력을 행사하고, 다시금 갈무리한다.
고작해야 그 정도.
다른 헌터들에 비하면 단순한 준비 운동도 안 되는 수준의 운용만 가지고도, 최승준의 능력은 날이 갈수록 예리함을 더하고 있었다.
적어도 실력이 열화되었을 리는 없다.
그런데도 눈 앞에 누군가 나타날 때까지 눈치채지 못할 줄이야.
만약 박우찬이 알았다면 마력 감지 연습도 신경을 쓰라는 식으로 핀잔을 주었겠지.
최승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방금 전.
그의 뇌리를 강타한 위화감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어지간한 비전투요원은 전부 혼절하고, 어중간한 전투 요원은 움직일 수조차 없는 한기 속.
아직까지 작동하고 있는 함정 따위는커녕, 먹통이 되지 않은 화기가 남아있기는 할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눈 앞의 존재는 멀쩡하게 그의 앞에 걸음하고 있었다.
그 사실에 놀란 건 아니다.
말마따나, 고작해야 이번 마력 결정으로 발을 묶을 수 있는 건 잡다한 인원들 뿐.
마신이나 주요 인물을 상대로 효력을 볼 수 있으리라고는 처음부터 생각하지도 않았다.
단지.
최승준이 흩뿌린 냉기 속에서 움직이려면, 필연적으로 거기에 필요한 무언가가 동반된다.
예를 들면, 추위 속에서도 움직일 수 있을 법한 모종의 장비.
혹은, 추위를 떨쳐낼 수 있는 열기까지.
그리고.
당연하게도, 최승준의 능력은 그런 미세한 움직임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포착할 수 있었다.
인류 최고봉의 재능.
박우찬이 그렇게 표현한 데에는 일체의 과장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눈 앞의 존재에 대해서만큼은, 최승준의 능력이 작동하질 않았다.
아니.
마치 눈 앞에 있는 광경이 통째로 멈춘 듯한 기분이었다.
능력을 통해 감지하면, 당장 눈 앞에 있는 건 고요한 복도.
최승준 자신의 마력 결정을 사용해 얼어붙은 건물의 내벽이 보일 뿐이다.
하지만.
최승준의 눈이 빈틈 없이 적을 포착한다.
두 발로 걷는 공작새.
최승준이 가장 먼저 떠올린 건 바로 그런 감상이었다.
아니, 공작새를 포함한 대다수 새들이 두 발로 걷는 건 매한가지겠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 마치 사람처럼 보행하는 듯한 무언가.
새와 비슷한 얼굴을 가지고,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부리를 부딪히는 존재.
어딜 어떻게 보아도 사람 아닌 마신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흠."
낮고 무겁게 깔리는 목소리.
묵직하기까지 한 존재감은, 최승준의 능력 이상으로 이 주변을 장악하는 듯한 기분도 든다.
전신을 뒤덮은 건 새의 깃털.
동시에, 그 위를 단단하게 감싸고 있는 흑색 정장은 마신들 사이의 유니폼이라도 되는 건가.
최승준은 그런 감상을 품었다.
"거 참, 요란하기도 하군."
솔직한 감상이었다.
물론 최승준을 비롯한 일행들의 목적은 당연히 눈 앞에 있는 존재.
다시 말해, 조로아스터 교의 일곱 마신이었다.
허나.
설마 저들 측에서 직접 걸음해 마중을 나올 줄이야.
"아니, 성실하다고 해야 할까? 설마 친절하게 맞이하러 나올 줄은 몰랐거든."
회사에 고용하고 싶을 성실함이다.
마치 핀잔을 주듯, 최승준은 그렇게 말했다.
동시에.
방금 전, 자신의 뺨을 스치고 지나간 물건을 확인한다.
그리고.
'쯧.'
내심 혀를 찬다.
방금 전, 그의 뺨을 스치고 벽을 꿰뚫은 물건은 단순한 깃털이었다.
거기에서 얻어낼 수 있는 정보는 수도 없이 많다.
아마도 박우찬이라면 단번에 놈의 정체까지 추론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몇 번 정도 말했듯이, 최승준은 순수한 헌터라기보다는 도리어 사업가에 가까웠다.
때문에.
빳빳하게 얼어붙어, 마치 단검처럼 벼려진 그 깃털을 보고 최승준은 순수하게 그런 감상만을 품었다.
아무래도 저 푹신푹신한 깃털로 자신의 냉기를 무마하고 있는 건 아닌 모양이라고.
허면, 어떻게?
저 마신은 어떻게 이토록 자욱한 한기 속에서도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는 걸까.
단순한 육체 능력.
소위 말하는 피지컬로 밀어붙였을 뿐인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허나.
그렇다 쳐도, 지금 이 상황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최승준은 조용히 미간을 좁혔다.
마력을 포착하고, 냉기를 제어하는 최승준의 시선이 눈 앞의 대상을 훑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건물 안에 빼곡히 가득한 한기는, 마치 눈 앞의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악마의 발걸음을 잡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한기를 견딘다. 냉기를 극복한다.
그렇다기보다는, 그의 마력이 눈 앞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듯한.
마치 아지랑이같은 기분이었다.
환각?
아니면, 다른 모종의 수법이 있는 것인가…….
그런 수를 생각하며, 최승준은 천천히 눈 앞의 마신을 훑었다.
설마 저 외견으로 마신이 아닌 변신 능력자라고 주장할 생각은 아니겠지.
넘실거리는 악마 특유의 불길한 마력도 그런 의심을 반증하고 있다.
"물론 보통 일이라면 이렇게 걸음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단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앞의 새 머리 마신은 조용히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아니, 깃털을 쓸어넘겼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까.
어쨌든.
출발 직전, 박우찬이 몇 번이나 경고했듯 퍽이나 친절한 말씨는 악마라는 이름과 단번에 연결할 수 없을 정도로 정중했다.
물론 정말로 정중할 뿐이었다면 방금 전 깃털을 던지진 않았겠지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죠."
"뭐지?"
"당신의 얼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 몸 담고 있는 아이들의 조직 측에서 넘겨받은 적이 있거든요."
"신세계 질서 말이지."
"그렇게도 부르죠."
으쓱.
짧게 어깨를 좁히는 마신.
동시에, 그 부리 너머에서 최승준에 대한 정보가 술술 새어나온다.
"최승준. 28세. 현재 대한민국 모 기업을 이끌고 있는 회장이며, 헌터 아카데미의 교장. 현직 S랭크 헌터이며, 능력은 마력을 한기로 변환하는 힘. 맞습니까?"
끄덕인다.
구태여 숨길 정보도 아니었으니까.
당장 인터넷에 접속할 시간만 있으면 1분 안에 알아낼 수 있는 이야기들 뿐이었다.
그러므로.
눈 앞의 마신이 구태여 최승준의 정보를 알고 있다는 사실까지 공표하며 부리를 연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리라.
"허면, 지금 이 참상을 일으킨 것도 당신입니까?"
"정확하게는 내 마력 결정이지만, 틀린 말도 아니군."
그렇게 답하자, 마신이 푸욱 하고 고개를 숙인다.
동시에.
삐죽 하고 새의 깃털이 곤두선다.
마치 순식간에 덩치가 몇 배로 불어나는 듯한 착시와 함께, 따악 하고 부딪히는 부리.
그 너머에서 마치 깊게 졸여낸 듯한 목소리가 지옥 밑바닥에서 울려퍼지듯 쿵쿵 발을 굴렀다.
"오오, 오오오오오……!! 이런, 이런 잔인한 짓을!! 어떻게, 어떻게 같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 선빵을 친 건 너희잖아.
만약 박우찬이 있다면 그렇게 말했겠지만, 최승준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입만 아플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 쪽도 이 쪽을 보내줄 생각은 없다.
거기까지 파악한 시점에서, 최승준이 할 행동은 정해져 있었다.
"용서할 수 없다. 나의 친구, 나의 벗들을 향해 칼을 들이민 그 잔인함!! 나, 냉혹의 마신이 자리에서 처단하리라!!"
최승준이 코트 주머니에서 손을 뽑아 마신을 겨눈다.
동시에.
한껏 분노한 목소리를 터트린 마신이, 그대로 최승준을 향해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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