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3화 〉 강습 작전
* * *
'으음.'
작전은 밤의 어둠을 틈탄 침묵 속에서 막을 올렸다.
도시가 잠든 새벽.
최승준의 연락을 받고 밤하늘 아래에서 움직이던 그림자들이 신호를 보낸 직후.
티아마트를 포함한 돌입반은 사방으로 나뉘어 진입했다.
아니, 돌입반이라고 한들 고작해야 네 명이었지만.
작전 구역을 사방에서 포위해 제압한다.
실로 심플한 계획이었다.
물론 아직도 문제는 산적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이 앞에서 그녀의 발목을 붙잡을 잡졸들에 대한 이야기.
여하간, 지금 이 앞에 있을 마신들은 신세계 질서의 핵심.
비록 이 인간 세상에 내려온 건 비교적 최근 일이겠지만, 조직의 중심인 마왕의 직속 부하라고 할 수 있다.
말이야 좋지, 신세계 질서 입장에서는 정말로 덩그러니 내버려둘 수도 없는 노릇이리라.
틀림없이 교주는 그렇게 말했다.
마신들은 신세계 질서의 내분에 관심이 없다고.
다만, 신세계 질서 입장에서 보자면 그럴 수도 없다는 이야기.
티아마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여하간, 자신 또한 그런 일에 대해선 다소 경험이 있었으니까.
때문에.
박우찬을 포함한 대다수는 이번 작전에 신세계 질서 측의 끄나풀들이 앞길을 가로막을 가능성 또한 고려하고 있었다.
허면, 문제가 되는 건 바로 거기에 있다.
단순한 전력비로 따지자면 물론 그들이 우위에 있겠지.
하지만.
지금 작전 구역으로 진입하고 있는 건 고작해야 네 명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한 숫자로 밀어붙인다면 그들 또한 고역을 피할 수 없으리라.
무엇보다, 마신이라는 거물급 몬스터가 상대라는 점이 거슬렸다.
만에 하나 그런 주요 타겟이 없었다면, 최승준이나 이준구가 아낌없이 힘을 사용해 적진을 동시에 진압할 수 있었겠지.
허나.
단순한 원격 공격으로는 쉽사리 제압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거물급 몬스터가 여럿.
만에 하나 원거리 공격을 퍼붓던 도중 상대가 도망치기라도 하면 낭패도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다.
때문에, 그들은 사방에서 작전 구역을 포위하는 식으로 진입하고자 결정했다.
당연히 외부에서의 포격 작전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여기는 적진.
만에 하나 마력 제어를 방해하는 결계라도 전개되어 있다간, 역으로 그들이 피해를 입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선택한 수단은 실로 간단했다.
쩌어엉!!
섬뜩한 소리와 함께, 그들이 포위하고 있던 건물이 섬뜩한 한기로 가득찼다.
진입 직전, 그들이 투하한 최승준의 마력 결정이 발휘한 힘이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척탄인 셈이었다.
능력 사용을 방해하는 결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애시당초 이런 데에 힘을 뺐다간 정작 진입했을 당시 진이 빠질지도 모른다.
무한에 가까운 마력을 지닌 최승준이라 할지라도, 정말 무한한 마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러므로.
최승준이 선택한 방법은 실로 심플했다.
동시에, 박우찬의 평가에 의하면 사냥꾼이 아닌 기업가의 방식이었다.
현찰 박치기.
최고 품질의 마력 수정을 구비해, 자신의 남는 마력을 저장한다.
그렇게 쌓인 마력 결정이 어느덧 열 개 남짓.
이번 작전동안, 최승준은 이렇게 제작한 마력 결정을 아낌없이 소비하기로 했다.
먼저 그들이 작전 구역에서 아지트로 진입하기 전, 마력 결정을 투하한다.
최소한 입구 근처에서 기습당할 걱정은 덜 수 있겠지.
거기에 더해, 냉기의 제어는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
아무리 최승준이라 해도 전투와 이동, 탐색과 제어를 병행하다간 결계 따위에 걸려 실수할지도 모르는 법이니까.
"오랜만이로군요."
그리고 그 역할은 최승준의 비서가 맡게 되었다.
전직 A+랭크 헌터.
능력은 대기 조작.
개중에서도, 그녀가 특화된 분야는 타인 보조.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최승준의 보조 요원으로서 그 냉기를 조력하는 데에 특화된 사냥꾼이었다.
애초에 진입반도 아닌 그녀라면, 후방에서 냉기 제어에 집중할 수 있다.
적어도 최승준이 무작정 부담을 떠맡는 방식보단 훨씬 안정적이었다.
전력을 동원해 건물 내를 가득 채운 냉기를 조종하는 A+랭크 헌터.
그 보조를 받으며 진입하는 발걸음은, 퍽 당황스러울 정도로 거칠 게 하나 없었다.
이래서야 박우찬이 사냥꾼의 방식이 아니라 한 것도 납득할 수밖에 없다.
인류 최고봉의 마력을 아낌없이 동원해, 현직 A+랭크 헌터를 순수한 보조 요원으로 활용한다.
말 그대로, 최승준이기에 취할 수 있는 전법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벽 너머에서는 저토록 가혹한 냉기에 떠밀려 얼어붙은 신세계 질서의 조직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애초에 그런 건 티아마트가 신경을 쓸 바는 아니었다.
작전에 따르면, 신경을 써서도 안 되고.
때문에.
티아마트는 그렇게 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보다 개인적인 의문을 떠올렸다.
즉.
'본인 너무 편할 대로 써먹히고 있지 않나……?'
정말로 뒤늦은 생각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티아마트와의 협력이 본격화된 이후.
박우찬은 티아마트의 협력을 받는 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거기에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다.
예를 들면, 몬스터 운운하기 이전에 박우찬이 다른 사람의 협력을 받는 데에 주저하는 성격도 아니라는 점.
비록 몬스터라는 점이 내키지는 않지만, 그 힘이 필요한 국면은 틀림없이 있었다는 점.
마지막으로, 몬스터인 만큼 어느 순간 티아마트가 본색을 드러내면 처분해야 하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 아닌 기대를 아직까지 품고 있다는 점.
다만.
박우찬 또한 최소한의 상식은 있었고, 그렇기에 마지막 목적에 대해서는 구태여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말하지 않아도 옆에서 보자면 지나칠 정도로 뻔했기도 하고.
"으음. 이래서야, 완전히 기둥서방 노릇에 눈을 뜬 모양이로구나……."
단지.
만에 하나 지금 이 말을 들었다면 아무리 박우찬이라 해도 당황을 금치 못했겠지.
여신 티아마트의 발언은 그토록 과격한 면이 있었다.
기둥서방!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기서는 박우찬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그리고.
박우찬에게는 공교롭게도, 그건 여신의 무지함에 의한 단어 선정 실수 따위가 아니었다.
티아마트는 냉정하게 자신의 현 상황을 평가한 결과 기둥서방이라는 단어를 골라 사용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박우찬으로서는 억울할 지경이리라.
아니, 왜?
안 그래도 요 최근 여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박우찬이다.
난데없이 거기에 티아마트가 추가된다고 하면 과연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겠지.
하물며 상대는 몬스터.
외모나 성격 이전에, 박우찬에게는 생리적으로 버거울 수밖에 없는 대상이었다.
무엇보다, 박우찬과 티아마트 사이에 그런 분위기가 오간 적도 없었고.
적어도 박우찬은 그렇게 생각하리라.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티아마트가 고대 신화 속에 등장하는 여신님이었다는 점이다.
비록 진짜배기 여신 티아마트가 아닌 그 계승자라고는 하나, 그 사고방식은 현대인보단 차라리 고대인에 가깝다.
고작해야 20년.
그 정도로 가치관이 뒤바뀔 정도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고대 시절에 있어, 사내가 짝 없는 여인을 보고 자신이 지켜주겠다 말하는 건 곧 청혼이나 다름없는 이야기였다.
즉.
정말로 유감스럽지만, 티아마트가 장차 자신을 두고 벌어질 싸움을 염려해 이 도시를 떠나려 했을 무렵.
박우찬과 나눈 대화 끝에, 티아마트는 다시금 이 도시로 돌아왔다.
물론 그 전까지만 해도 티아마트는 박우찬에게 연심을 느낀 적이 없었다.
노골적일 정도로 박우찬을 편애한 이유 또한 마찬가지.
오히려 박우찬이 자신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이었으니.
허나 어찌하리오.
그녀는 여신.
말 그대로, 고대 설화 속에서 툭 튀어나온 존재다.
그녀에게 있어서 남녀 사이의 관계란 연심을 품으면 곧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이요, 서로에 대한 애정이란 가정을 만들고 나서도 충분히 쌓을 수 있는 것이었다.
만약 박우찬에게 마음을 털어놓은 계집애들이 들었다면 뒷목을 잡고 쓰러졌을 이론이었다.
그러나.
당사자인 티아마트는 매우 진지했다.
"게다가, 본인이 있는데도 다른 여아들에게 눈독을 들이다니. 아니, 처첩을 두는 건 영웅의 그릇이겠다마는……."
애초에 박우찬을 영웅이라 칭해도 좋을까.
티아마트는 내심 그런 의문을 품은 채 고개를 갸웃였고, 이후 그런 의문을 포함해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어느 쪽이든, 첩을 들이려면 본처에게 말을 여쭙는 게 예의이거늘."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본처란 곧 여신 자신을 뜻했다.
당사자인 박우찬이 들었으면 펄쩍 뛸 이야기였겠지만, 애석하게도 티아마트는 진심이었다.
애초에 그렇지 않고서야 요 근래 그토록 협력적이었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물론 박우찬이 협조 요청이라는 이름 하에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는 걸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품성인 건 사실이다.
다만.
박우찬이 티아마트에게 품은 심정이야 어쨌든, 티아마트가 박우찬의 요청을 그토록 적극적으로 들어주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 날 밤.
도시 위에 초대형 게이트가 열렸던 날 이후, 티아마트가 여신이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박우찬의 시시콜콜한 부탁에 망설임 한 번 없이 응했던 이유는 단 하나.
그게 그녀 나름의 내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여신.
고대 시절의 현모양처라고 해야 할지.
다른 사람의 사정에 무심한 박우찬과, 애초에 지아비의 말에 순순히 따르는 걸 미덕이라 생각하는 고대의 여신.
둘 사이의 오해는 그렇게 풀 수 없을 정도로 쌓여만 가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