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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59화 (259/371)

〈 259화 〉 도살

* * *

압도적이었다.

그리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박우찬 또한 상황 자체는 신서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신서아 쪽보다는 유리했겠지.

하지만.

고작해야 그 정도 차이가 지금 눈 앞에 있는 결과를 설명할 수는 없으리라.

박우찬의 검이 호선을 그린다.

마치 초승달과 같은 궤적이 새겨질 때마다, 전장의 흐름이 일변한다.

여섯 개의 팔. 두 개의 뿔.

몬스터가 지닌 모든 무기가 한 순간에 무력화당한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몬스터가 팔다리를 내지를 때마다, 오히려 그 몸에 상처가 새겨진다.

현 헌터들 중에서는 손에 꼽히는 솜씨를 가진 신서아조차 이해할 수 없는 기술들의 향연이었다.

평소에 비하면 극히 일부.

아니, 오히려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기에 어설프게 알아볼 수 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까.

박우찬의 수렵 기술은 이미 그 정도 경지에 있었다.

동시에.

'……응?'

동경 반, 안타까움 반.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눈 앞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던 신서아가, 문득 의문을 품었다.

뭐지?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어떻게 그녀는 박우찬의 공세를 알아볼 수 있는 걸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신서아 또한 박우찬이 사냥하는 모습을 본 적은 있다.

가깝게는 바로 그 초대형 게이트 발생 당시.

멀게는 예전에 몇 번 시범을 보여주면서.

그리고.

그럴 때마다, 신서아는 자신과 박우찬 사이에 있는 거리를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박우찬은 참고 대상으로 삼기엔 지나칠 정도로 독특한 타입의 헌터였다.

여하간, 처음엔 헌터들은 전부 저런 식으로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는 건가 의기소침해질 정도였으니까.

물론 그런 감상이 착각이라는 걸 알게 되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근간이 되는 건 철저한 지식과 학습.

박우찬의 기술 중 극히 일부만 가지고도 현대 헌터 사회의 최상층에 설 수 있을 정도였으니.

문제는 지금 눈 앞의 광경이다.

그녀가 A+랭크라는 과분한 자리를 손에 넣게 된 이후로도, 박우찬과의 실력은 쉽사리 좁힐 수 없었다.

신서아와 일반인의 차이보다, 그녀와 박우찬 사이에 있는 차이가 더 클 지경이었으니.

때문에.

눈 앞에서 펼쳐지는 박우찬의 검무.

몬스터를 해체하는 기교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신서아는 다름 아닌 어색함을 느꼈다.

어째서일까?

박우찬의 실력이 떨어진 걸까?

아니면, 신서아가 성장한 걸까?

"아."

물론 어느 쪽도 아니었다.

문득 신서아는 깨달았다.

박우찬의 움직임 사이사이에 군더더기가 끼어 있다고.

만약 당사자인 박우찬이 들었다면 세상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너무하다 말했겠지만, 덕분에 신서아는 박우찬의 동작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덕분에 눈치챌 수 있었다.

신서아가 명명하길 군더더기.

다시 말해, 박우찬의 '검술'이 몬스터의 움직임과 합을 맞추고 있다고.

때문에.

신서아 또한 뒤늦게나마 자신의 사부와 같은 생각에 도달했다.

'인간.'

저 몬스터의 움직임은, 실로 인간을 닮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신서아가 취할 행동은 간단했다.

"기야아아악!!"

그게 바로 저 괴물을 풀어놓은 연구자가 다시 한 번 신서아에게 체포당한 경위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연구자라 해도 결국 평범한 인간.

헌터인 신서아에게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하물며, 눈 앞의 연구자가 풀어놓은 몬스터는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

당장 자신의 제작자로 추정되는 연구자도 신경을 쓰는 기색 하나 없었으니까.

당사자인 연구자야 마치 포켓몬 트레이너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뭐, 당연한 이야기지.

만에 하나 정말로 A+랭크 몬스터를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을 완성했다면?

적어도 눈 앞의 사내는 이런 일에 구애되지 않았으리라.

모르긴 몰라도, 그 기술만큼은 국가에서 상용화하려 했을 테지.

아니, 애초에 신서아를 습격하는 길에 몬스터를 대동했으리라.

허나, 그렇지 않았다는 건…….

"그, 그래!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다시 말해, 눈 앞의 연구자에게는 고랭크 몬스터를 통솔할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신서아가 보기에, 몬스터의 통제조차 불가능한 이들이 저런 고랭크 몬스터를 제작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즉, 도출할 수 있는 해답은 하나 뿐이었다.

"본인도 동의했어! 본인도 동의했다고!"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연구자 또한 그 의문에 대답을 고했다.

다시 말해, 눈 앞의 몬스터는 인간이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본래 인간이었다고 말하는 편이 좋겠지.

……셰이프시프팅.

마법으로 따지자면 테리안트로피Therianthropy라고 불리는 기술이 있다.

말 그대로, 자신을 짐승으로 변모시키는 기술 혹은 능력이다.

헌터들 중에서도 간혹 그런 능력을 지닌 자들이 있었다.

어떨 때는 늑대로. 어떨 때는 새로.

누군가는 강해질 때마다 변신할 수 있는 동물의 종류가 늘어났다.

누군가는 정해진 짐승으로밖에 변할 수 없는 대신, 그 강함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사부인 박우찬은 싫어했지만, 실로 유용한 능력인 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신서아는 알고 있다.

마치 신화 속 괴물들처럼 변모하는 변신 능력자들의 변신 형태가, 어째서 몬스터와 흡사한 건지.

수많은 매스컴에서 의혹을 가지고 떠드는 몬스터와 변신 능력자의 유사성은 어디에서 온 건지.

그건 언론에서 떠드는 바와 같이 마력이라는 신물질이 일으킨 공통의 변화, 수렴 진화 따위가 아니었다.

일찍이 신화가 역사였던 시절.

옛 반인반마들과 같이, 헌터들 중 일부는 몬스터의 모습을 모방할 수 있게 된 거겠지.

마찬가지였다.

눈 앞의 연구자는 말했다.

당사자의 동의를 받았다고.

저토록 노골적으로 사람과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몬스터가, 한때는 인간이었다고.

당연한 이야기였다.

만에 하나, 헌터들이 지닌 변신 능력이 몬스터를 모티브로 한 것이라면?

변신 능력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몬스터에 가까운 존재라고 할 수 있으리라.

"무한한 생명력을 나타내는 황소의 머리! 비행 능력을 갖추기 위한 비행형 몬스터의 날개!"

그러니 연구자는 저렇게 말하고 있는 거겠지.

일찍이 그녀가 한때 몸을 담았던 길드에도, 변신 능력자는 있었다.

그리고.

길드가 공중분해되면서, 그 사실에 분노를 품은 변신 능력자도 일부는 있다.

당연히, 눈 앞의 연구자와 손을 잡은 건 바로 그런 부류였으리라.

아니, 설마 본인도 저렇게 변할 줄 알았겠냐마는.

단지.

언젠가 사부인 박우찬이 은연중에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당시 길드가 저질렀던 일은 신세계 질서와 연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몬스터를 관리하고 사육하고 있던 길드의 행동은, 신세계 질서와 지나칠 정도로 비슷하다.

어쩌면 신세계 질서 측에서 기술 공여를 받거나, 혹은 따로 협력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눈 앞에서 목도한 기분이었다.

슬쩍, 그 시선이 자연스레 괴물에게 향한다.

바위에 쳐박힌 그 모습 너머로, 전신을 빼곡하게 뒤덮고 있는 용의 비늘이 보였다.

그렇다면.

"저게, 용인이라고……?"

"아니, 늑대인간이었는데?"

"이런 씹."

용인.

사람의 몸으로 용의 힘을 체현하는 존재.

용의 비늘과 같은 강건함과, 용의 심장과 같은 마력을 품은 존재.

신서아는 십중팔구 그런 존재이리라 예상하며 무겁게 입을 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늑대인간?

그제서야 신서아는 어색하게 눈을 굴렸고, 괴물의 주둥이에 돋은 이빨을 발견할 수 있었다.

"뭐? 저게?"

그런 반응은 박우찬 또한 마찬가지였다.

콰아아아앙!!

방금 전까지 바위에 쳐박혀 있던 괴물이 전신을 크게 휘둘렀다.

마치 근육이 폭발하는 듯한 굉음과 함께, 괴물의 육체를 고정하고 있던 바위가 터져나간다.

박우찬 또한 만약을 대비해 슬쩍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뒷걸음질 끝에, 그녀 근처로 후퇴한 박우찬은 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그럴 법도 했다.

용인에 늑대 이빨을 단 게 아니라, 늑대인간 위에 용의 비늘을 붙인 거라고?

마치 갑주처럼 빼곡하게 몬스터의 전신을 뒤덮고 있는 비늘.

모르긴 몰라도, 어느 쪽이 더 힘들까 물으면 그야 후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눈 앞의 이 연구자가 왜 몬스터 가축화라는 독특한 기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런 처지인지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럴 법도 하지.

그게 바로 두 명이 내린 평가였다.

"하, 하하! 그래?! 그래서 어쩔 거지?! 저건 우리 길드의 기술력이 집약된 괴물이야! 그 때처럼 감언이설로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 때? 너, 나 본 적 있냐?"

어이가 없다는 듯 툭 내뱉는 박우찬의 말에, 연구자의 얼굴이 울그락푸르락해졌다.

그러나.

박우찬은 그런 반응에 신경을 쓰는 대신, 천천히 대검을 내렸다.

어쩐지.

움직임이 사람 비슷하다 했더니, 그런 사정이 있었나.

그런 말을 속으로 되새기기도 잠시.

곧이어 박우찬은 다시 한 번 자신을 달려드는 몬스터에게 날을 세웠다.

그리고.

대검이 움직였다.

끌이 용의 비늘 밑에 쳐박혀, 그대로 비늘을 벗겨냈다.

대패가 황소의 뿔을 붙잡고, 그대로 분질렀다.

칼날이 벌레의 네 팔을 동강내, 그대로 땅에 떨궜다.

대못이 어색하게 기워 붙인 몬스터의 관절에 박혀, 그대로 고정했다.

마지막으로, 대검.

서걱!!

깔끔하게 휘두른 일격이, 몬스터의 육체를 상하로 양단했다.

그 동작 중 어디에서도 한때 사람이었던 것을 상대하는 망설임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임플란트밖에 안 남은 새끼를 어떻게 살리냐?"

예수 할애비가 와도 힘들지, 이건.

박우찬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만큼, 당연히 더 이상 손속에 여유를 둘 필요도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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