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8화 〉 도살
* * *
실로 어색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사부가 어째서 여기에?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다행스럽게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왜 여기에 있냐니, 그토록 바보같은 질문도 달리 없겠지.
당연히 자신을 쫓아왔으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문득 욱 하는 기분이 솟았다.
쓰러뜨릴 수 있어.
그런 말이 목에 걸렸다.
허세는 아니었다.
오히려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할 수 있겠지.
방금 전까지 열세였던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은 나쁘지 않다.
적당히 거리를 벌리고 정비할 시간을 손에 넣은 지금.
충분한 노고를 들이면 사냥할 수 있다.
이길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 이상의 항의가 입 밖에 나오는 일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확실히, 승기가 있는 건 사실이다.
허나.
반대로, 그녀가 계속해서 싸움을 고집할 이유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전신에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당도한 지원군.
이 이상 싸움을 고집하는 건 단순한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 사실을 깨닫고, 신서아는 푹 고개를 떨궜다.
"뭐, 하고 싶은 말이야 여럿 있지만……."
짧은 한숨과 함께 박우찬은 그리 입을 열었다.
푸욱 내쉬는 한숨이 마치 칼날처럼 신서아의 마음을 푹 하고 후볐다.
"무사해서 다행이고, 나머지는 나중에 얘기하자."
그런 신서아의 내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툭툭, 가볍게 그녀의 어깨를 두드린 박우찬은 그대로 그녀 뒤의 괴물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홀로 뒤에 남겨지는 건, 퍽 비참한 기분이었다.
*
'아슬아슬했네.'
휴우, 하고 내심 안도의 한숨을 흘린다.
아니, 내 능력은 몬스터가 상대가 아니라면 영 허술한 부분이 있으니까 말이지.
당장 오늘 일만 해도 그렇다.
하숙집과 하연이.
양 쪽을 감시하다 정작 서아의 행동을 놓치고 말았으니.
퍽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전투가 있었던 듯 중간에 갑자기 서아의 마력이 느껴졌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서아를 포착하지 못할 뻔했고.
"그래서……."
문제는 지금 이 상황인데.
아니, 뭐야 이거?
서아랑 길드 관련 이야기 아니었나?
눈 앞에 늘어진 이상한 합성수.
몬스터의 모습을 보며 나는 관자놀이를 긁었다.
다소 어색한 기분이었다.
그 힘.
서아를 고전시킨 강함은 충분할 정도로 느껴진다.
다만.
'뭐지?'
감각 쪽이 이상하다.
눈 앞에 있는 건 분명히 몬스터.
자세한 정체는 모르겠지만, 필시 A+랭크에 해당할 놈이다.
만약 서아가 놈을 묶어두지 않았다면, 도시 바깥을 초토화할 수도 있었겠지.
헌데.
그런 괴물을 보는 것 치고는 어째 내 감각이 조용한 편이었다.
미친 듯이 날뛰거나 발작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분 좋을 정도로 조용하게 날이 선 듯한 느낌.
지나칠 정도로 고요해서 역으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뭐지?
아니, 뭐냐고 따지면 애초에 놈들이 아지트로 삼고 있던 게이트에 이만한 몬스터가 서식하고 있다는 일 자체가 수상쩍긴 한데.
뭐, 어느 쪽이든.
창고를 조작해 대검을 뽑아든다.
아무래도 여러모로 사정이 있는 모양인데…….
"세상 사람들 중에 사정 없는 게 과연 몇이나 되겠니."
"캬아아아악!!"
"응? 너도 동의한다고?"
물론 다음 순간 내게 날아온 건 동의가 아니었다.
방금 전, 서아가 던진 연막탄 때문일까.
거의 발광할 듯 미쳐 날뛰고 있던 키메라가 이를 드러낸다.
마치 무엇이든 상관 없다는 듯.
눈 앞에 있는 모든 걸 찢어죽이고 싶어하는 듯한 살의가 흉맹하게 포효했다.
퍽 난폭한 녀석이다.
하긴, 그럴 법도 하지.
얼핏 보기만 해도 그렇다.
마치 초등학생이 생각한 최강의 생물과 같은 모습.
저렇게 미쳐 날뛰기만 해도 대다수 몬스터들은 기가 죽을 수밖에 없겠지.
즉.
"이래서 짐승 새끼들은."
쳐맞질 않으면 말을 알아듣질 못해요.
투덜거리는 소리와 함께, 공격이 작렬했다.
여섯 개의 팔을 동시에 휘두르는 일격.
직격한다면 당장 나조차 무사할 수 없을 연격이었다.
그러니까, 직격한다면.
투두두두둥!!
검면을 앞세운 방어에, 여섯 개의 팔이 남김없이 요격당한다.
크륵, 그 사실에 당혹한 듯 괴이쩍은 소리를 내는 괴물.
하지만.
내가 보기엔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팔 수가 많다고 강해질 거였으면 헤카톤케이레스가 최강이겠지.
이족보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섯 개의 팔을 다루려면, 당연히 거기에 걸맞는 궁리가 필요하다.
팔의 궤적이 서로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배치하는 솜씨.
거기에, 적절한 각도로 팔다리를 운용하는 방법까지.
그런 기술이 갖춰지고 난 후에야 다수의 공격은 비로소 위협이 될 수 있는 법.
팔이 많다는 건 위협적인 장점이긴 해도, 단순히 그 뿐이라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막말로, 여섯 개라 해도 지네형 몬스터보다는 적은 숫자 아닌가.
설마 대다수 헌터들이 지네형 몬스터를 상대로는 손도 발도 못 내민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마찬가지다.
쏟아지는 연격.
당혹을 억누르고 토해내는 괴물의 연타가, 마치 호우처럼 쏟아져내렸다.
그런 놈의 공세를 앞두고, 나는 마찬가지로 대검을 미세하게 흔들었다.
첫 공격. 받아서 넘긴다.
두 번째 공격. 튕겨져나간 첫 번째 팔이 방해가 되어 우회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지연되는 사이 자세를 고치고 다음 수를 연산.
이윽고, 우회해 작렬한 두 번째 공격을 튕겨내고 나면 세 번째 공격 또한 받아낼 여유가 생긴다.
이런 수 싸움이라면 내가 밀릴 이유도 없다.
무엇보다.
드드드드득!!
"캬아아아악!!"
고통에 찬 몬스터의 비명이 하늘에 울린다.
방금 전, 대검의 옆면으로 놈의 공세를 흘리며 휘두른 대패.
뭉툭한 강철이 용의 비늘을 잡아먹고, 놈의 공격까지 역으로 이용해 그 살갗을 뜯어낸 것이다.
첫 번째 팔에 새겨진 부상은, 단순한 생채기 수준.
그러나.
강철과 주먹이 교차한다.
몬스터와 헌터 사이의 기술이 부딪힌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남김없이 비늘이 떨어져나가는 건 저 쪽이었다.
물론 위력 자체는 만만치 않았다.
단지.
나도 밀리는 수준까진 아니었다.
예를 들면, 작년 이맘때쯤 상대한 적 있던 남상원.
예를 들면, 움직이는 산봉우리나 다름없던 두두리.
즉, 거인 따위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니까.
그대로 놈의 공세를 정면에서 깎아 휘두른다.
동시에.
이 공방으로 인해 깨달을 수 있었던 점이 두 개.
첫째는, 여섯 개의 팔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운동 능력 차이다.
까놓고 말해, 제일 위에 있는 두 개의 팔.
보통 사람과 같은 위치에 존재하는 두 팔에 비해, 나머지 네 팔이 미세하게 느리고 약하다.
그리고 두 번째.
도대체 이 놈이 무슨 몬스터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존나 특이한 새끼일세."
이 새끼, 움직임이 인간의 그거다.
팔다리가 두 개씩 달린 직립 보행 생물.
나고 자라길 그렇게 산 듯한 움직임이다.
도저히 눈 앞의 괴물같은 육체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때문에.
점점 더 위축되어가는 괴물의 연타.
그 틈을 비집어,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다.
동시에.
슬쩍 기울인 대검의 옆면으로 공격을 방어하며, 그 여세를 살려 반 바퀴 회전.
자연스레 옆을 점한 뒤, 내려친다.
뚜둑!!
"캬아아아악!!"
"아니, 새끼야. 깜짝 놀랐잖아."
어쩐지.
도대체 머리에 달고 있는 저 뿔은 언제 쓰는 건지, 꼬리는 언제 쓸 건지.
준비하고 있다가 괜히 손해 본 기분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퍽 깔끔한 내려베기였다.
그대로 내려친 일검.
악마의 피륙으로 이루어진 꼬리를 그 자리에서 뜯어낸다.
동시에.
핑그르르르!
그 여세를 살리듯, 몸을 통째로 앞으로 날린다.
마치 허공에서 앞구르기를 하는 듯한 동작과 함께.
쿵!!
목 옆쪽에 발차기.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손맛이 달린다.
뭐, 용의 비늘이 지닌 방어력은 알고 있지만.
눈 앞의 이 놈 수준이라면 감각에 의존할 필요 없이 단순한 근력만으로도 돌파할 수 있다.
하물며 지금은 더더욱 그렇고.
마치 갑옷을 내려치듯, 비늘을 관통하는 충격이 놈의 모가지를 뒤흔든다.
이리저리 기워붙인 괴물의 육체가 뒤로 물러서고 말 정도로.
동시에, 착지.
그대로 대검을 고쳐쥔다.
방금 전이야 놈의 공격을 역으로 이용했지만, 대검은 어디까지나 회전을 실을 필요가 있는 무기.
때문에.
이번에 내가 발한 동작은 마치 창술과 같았다.
한 손으로는 손잡이를, 나머지 한 손으로는 대검의 보조 손잡이를.
마치 장창과 같이, 칼끝의 끌을 놈의 쇄골에 쳐박는다.
뚜두둑!!
방금 전, 내 발차기가 작렬한 반대편 쇄골이 내려앉는다.
그렇지만.
놈도 바보는 아니었다.
더 이상 비명만 지르고 있어도 곤란할 뿐이라는 걸 알아챈 거겠지.
그대로 여섯 개의 팔이 내 사방을 아우른다.
타격이 아닌 그래플링.
붙잡는 쪽으로 전환했나?
틀린 판단은 아니다.
아니, 나 몬스터 따위랑 뒹굴고 싶지 않으니까.
약점이라면 약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당연히 그런 만큼 순순히 당해주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다시금 손잡이를 쥐고 앞으로.
"흐으으으음!!"
그리고.
그 이상으로 힘을 불어넣어, 앞으로 전진한다.
마치 창에 꿴 적을 그대로 밀어붙이듯이.
단순한 각력으로 재현하는 랜스 차징.
그렇게 칭해야 할까.
놈이 위험함을 느낀 건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애물단지처럼 방치하던 날개를 펼쳤다.
이렇게 밀리는 시점에서 붙잡아 봐야, 별다른 효력이 없다는 걸 깨달은 덕이겠지.
물론 늦었다.
이미 가속은 붙었다.
한 손으로 돌진을 유지하면서, 다른 손은 품 안으로.
그렇게.
쩌적!!
내던진 두 개의 비수가 놈의 날개를 꿰뚫는다.
그리고.
그렇게 발생한 빈틈.
휘두른 대검이, 그대로 놈의 몸뚱이를 바위에 꿰어 고정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