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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57화 (257/371)

〈 257화 〉 역습

* * *

내부에서 이변을 깨달은 건 방금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헌터가 폭음과 함께 나가떨어졌을 때였다.

보초 제압으로부터 5분.

충분한 시야를 확보하고, 먼저 노려야 할 대상을 선별한다.

그 결과.

"히이익!!"

신서아가 행동에 돌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게이트 안은 완전히 제압당하고 말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신서아는 당시 길드에 있어서도 손꼽힐 만큼 우수한 헌터였으니까.

차세대 헌터 필두라는 이름은 허명이 아니다.

습격 당시 그녀에게 우위를 점했던 강서훈 또한 마찬가지였다.

백병전 특유의 이점. 기습이라는 어드밴티지.

거기에 독 따위를 더해도 간신히 호각이었던 게 현실이니.

역으로 그녀가 저격 등을 통해 주도권을 잡으면 그야 이렇게 될 수밖에.

덕분에 신서아는 곧바로 사내의 신병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름은 모른다.

애시당초 다른 사람 얼굴 사정에 해박한 타입도 아니니까.

단지.

하필이면 그녀가 눈 앞의 사내를 나포한 이유는 단 하나.

아무리 봐도 전투 요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박사.

눈 앞의 사내에 대한 첫인상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그렇게 설명할 수 있겠지.

여하간, 게이트 내부에서 백의 휘날리는 양반들을 무어라 달리 표현하기도 힘들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신서아 또한 이런 장소에서 연구직을 만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암살에 필요한 인재는 아니었으니까.

거기에.

"의외인데."

"뭐?"

"내가 연구직한테 원한을 살 일이 있었나 싶어서."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애초에얽힐 까닭도 없었다.

신서아 또한 박우찬의 제자인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정교한 마법 이론에 관심이 있는 타입도 아니었고.

그렇게 말하자, 눈 앞의 연구자는 부르르 하고 턱끝을 떨었다.

묘한 반응에 신서아가 의문을 삼키기도 잠시.

"씨발년아!!"

"응?"

"나라고 해서 이러고 싶은 줄 아냐?! 씨발, 그 새끼가 분명 나는 따로 빼준다고 했었는데!!"

뜻 모를 소리였다.

만약 지금 이 자리에 그녀 대신 박우찬이 있었다 한들 마찬가지였겠지.

길드 해체 당시, 박우찬이 증언 확보를 위해 공수표를 남발하고 다녔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감언이설을 흘린 적은 있어도 섣불리 무죄 방면 운운하는 소리를 한 적은 없었으니까.

아니, 애초에 박우찬의 성격을 고려하면 기억도 못 하겠지만.

"씨발, 너희 같은 얼간이들 때문에 얼마나 되는 손실이 발생했는지 알기나 해?!"

물론 알 리가 없었다.

그런 태도가 겉으로 드러난 걸까?

속이 터져 죽겠다는 듯 쾅쾅 가슴팍을 치는 연구자.

세상 억울한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도대체 이게 뭐 하는 건지.

신서아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은 바로 그 순간.

콰아아아앙!!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고요하던 게이트 안이 폭음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뭐, 야?!"

다음 순간.

신서아는 자신의 시야를 가득 뒤덮는 손바닥을 목격하게 되었다.

실로 예상 밖의 광경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힐난하는 건 아무리 그래도 너무 가혹한 일이겠지.

요컨대, 신서아가 한 가지 오판을 내렸다고 할 법한 부분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도 여러 부류가 있었다.

예를 들면, 단순히 자신의 처사가 억울한 부류.

혹은 길드의 붕괴에 정말로 모종의 음모가 존재했다 생각하고 있는 부류.

마지막으로, 자신의 악행은 범죄가 아니라 인류를 발전시키기 위한 초석이었노라 굳게 믿고 있는 부류.

눈 앞의 연구자는 개중에서도 세 번째 경우였다.

스스로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방금 전 신서아가 맞고 날아간 덕택에 그녀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된 연구자는 이윽고 홍소를 터트렸다.

"하, 하하!! 하하하하하!! 그래, 이게 인류의 진보다. 이게 바로 인류가 나아갈 방향이야!!"

그야 신서아도 몰랐겠지.

설마 그런 이유로 신세계 질서의 손을 잡은 연구자가 있을 줄이야.

덕분에.

하필이면 그들이 게이트 안에 자리를 잡았어야 했던 이유.

그 뿔, 황소와 같고.

그 팔, 벌레와 같고.

그 피부, 용과 같고.

그 날개, 맹금과 같고.

그 꼬리, 악마와 같고.

그 발톱과 이빨, 맹수와 같은.

흉측하기 짝이 없는 합성수는 하늘에 대고 널리 포효했다.

*

……몬스터의 사육.

안정적인 몬스터 소재의 공급을 통해, 인류는 한층 더 발전한 사회를 맞이할 수 있다.

일찍이 그녀가 길드에 몸담고 있을 적.

신서아를 회유하려 들었던 길드 상층부가 했던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신서아는 그 말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진심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솔직히 말하자면, 상층부 쪽도 진심으로 회유할 생각은 아니었으리라.

못 먹는 감 찔러나 봤을 뿐.

당장 헌터들 중 그런 망발에 동의할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오히려 진심으로 동의하는 쪽이 드물 테지.

그러니 상층부 또한 신서아를 설득하기 위해 별도의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준비했다는 듯 곧바로 협박에 나섰을 뿐.

허나.

'어쩌면 그 양반들도 나름 진심이었을지 모르겠네.'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서아는 문득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눈 앞에 있는 광경을 보면 자연스레 그리 여길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

폭음과 함께 그녀 앞에 나타난 괴물은 부족하나마 상층부 쪽에서 말하던 망상을 현실에 구현한 듯한 모습이었다.

몬스터를 사육하겠다는 망언이 마침내 결실을 맺은 건지, 그렇지 않으면 가축을 몬스터로 진화시키는 데에 성공한 건지.

어느 쪽이든, 박사의 호령과 함께 강림한 괴물은 몬스터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풍채를 자랑하고 있었다.

물론 겉만 번드르르한 물건일 확률도 있겠지.

오히려 가능성은 그 쪽이 높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티티티티팅!!

쏘아지는 화살비.

신서아의 손끝에서 작렬한 강철색 벼락이 맥없이 꺾이고 만다.

몬스터의 피부 위로 돋아난 청동색 비늘 때문이었다.

'용의 비늘이라니……!!'

일찍이 그녀가 상대한 적 있던 진짜배기 용종.

신화 속 드래곤들에게 뒤지지 않는 내구성을 자랑하는 비늘의 모습을 보며, 신서아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입 안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쇠맛이 혀끝을 자극했다.

……그래.

눈 앞의 괴물이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바로 그 강력함이었다.

처음 그녀를 공격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다가와 그녀의 머리통을 움켜쥐려던 속도.

손아귀에서 느껴지던 악력.

거기에, 저 방어력까지.

눈 앞의 괴물은 틀림없이 신서아와 필적하는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반응해서 다행이지, 만약 그러지 못했으면 초격에 결판이 났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추정컨대 A+랭크.

그 사실에 숨을 삼키며, 신서아는 다리를 움직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괴물의 출처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당장에 알아낼 수 있는 점도 아니었거니와, 설령 알아낸다 하더라도 당장 변하는 건 없었기 때문이다.

세세한 뒷사정은 나중에 조사해도 되는 법.

정말로 몬스터를 사육하는 데에 성공했든, 그렇지 않으면 직접 제작하기라도 했든.

문제가 되는 건 오히려 정 반대.

이만한 괴물이 상대로 나왔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지금 이 상황은 신서아에게 퍽 불리한 법이었다.

분명히 천리안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들이닥쳤음에도 불구하고, 예상 밖의 기습.

거기에 그 스펙은 사실상 신서아를 상회할 정도라니.

이토록 불리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보호색이라도 있었던 거야 뭐야?!'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건 지금 이 거리다.

방금 전, 신서아에게 반격을 당해 튕겨져나간 직후.

몬스터는 그대로 이탈하는 신서아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몬스터를 데리고 게이트 밖으로 빠져나갈 수는 없다.

아니, 설령 빠져나간다고 해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허면?

'축지를 쓸까?'

그 외에는당장에 거리를 벌릴 방법이 없다.

겉으로 보기에, 저 몬스터는 근접전 타입.

거리를 벌린다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허나.

그조차 확실하지는 않다.

막말로, 날개나 가속 능력 따위가 있을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사부인 박우찬과 달리, 그녀의 축지는 잘 해야 한 번.

때문에 확실함을 기해야만 한다.

만에 하나 무작정 질렀다가 실패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정말로 뒤가 없으니까.

저격 도중 상대에게 포착당했을 시 거리를 벌리기 위해 사용한다는 철칙은 바로 그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단순한 견제는 먹히지도 않고.

머리를 굴린다. 타개책을 생각한다.

그렇지만.

습격자가 완전히 안심한 상황에서 발해진 역습.

이 순간, 사냥감과 사냥꾼의 위치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축지를 사용하기 위해선 신중을 기해야 한다.

확실히, 신서아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상황을 생각하면 차라리 한 번 써보는 게 나을 법했다.

왜냐하면 그 이후엔 사용할 기회 한 번 없었으니까.

무한히 뻗은 듯한 초원을 신서아와 몬스터가 달린다.

중간중간 쏟아지는 화살을 몬스터가 튕겨낸다.

그리고.

그 균형의 추가, 다음 순간 확 하고 기울었다.

쩌어엉!!

"크흑?!"

신서아의 정강이에 충격이 달렸다.

주변에 널린 조약돌인지, 그렇지 않으면 붙잡은 화살 중 하나인지.

어느 쪽이든, 몬스터가 던진 무언가가 신서아의 다리를 붙잡은 것이다.

그리고.

몬스터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한 순간에 가속.

사수에게는 치명적인 영거리를 점한다.

동시에.

왼팔을 휘두른다.신서아가 쥐고 있던 활이 저 멀리 날아간다.

오른팔을 뻗는다.활을 쥐고 있던 신서아의 왼팔을 붙잡는다.

신서아가 다리를 휘두른다. 세 번째 팔을 꺼낸 괴물이 그대로 받아낸다.

즉각 몸을 날려 반대편 다리로 괴물의 머리를 노린다. 마찬가지로 네 번째 팔을 꺼내 받아넘긴다.

반격의 싹이 될지도 모르는 신서아의 오른팔을 마저 구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레의 다리는 여섯 개.

여섯 번째 팔이 신서아의 텅 빈 복부를 가격했다.

"컥……!!"

내장이 경련하는 게 갑옷 너머로 느껴질 정도의 충격.

만약 갑옷을 입지 않고 있었다면 이 시점에서 승부는 갈렸겠지.

그렇게 확신할 수밖에 없는 충격이었다.

왈칵 하고 피를 토하는 신서아.

동시에.

붙잡힌 팔을 손목만 비틀어 휘두른다.

"캬아아아악?!"

퍼엉!

한 순간, 자욱한 연기가 괴물의 얼굴을 덮친다.

'역시.'

쓸데없이 우수한 부분이 눈에 띄더라니.

오감 쪽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그야 괴롭겠지, 특제 연막탄이니까.

실실 웃음을 흘리기도 잠시.

거의 발작적으로 팔을 휘두른 괴물이 신서아의 몸을 저 멀리 내던졌다.

터덩!!

마치 텅 빈 금속 통조림같은 소리를 내며, 신서아의 육체가 바닥을 구른다.

동시에, 그 충격을 살려 구르듯 일어서는 신서아.

다행스럽게도, 눈 앞의 괴물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그 틈을 타 초원에 널린 나무 어귀에 몸을 숨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틈을 타 전력을 쥐어짠 사격.

그런 도박을 벌이기엔 몸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염병."

푸후, 숨을 토하며 고개를 뒤에 기댄다.

방금 전 얻어맞은 몸통이야 둘째치더라도, 팔다리가 문제다.

얼마나 세게 움켜쥔 건지, 아직까지 얼얼할 정도니.

못해도 멍은 들었을 테고, 어쩌면 뼈가 부러졌을지도 모른다.

그 잠깐 사이에 이런 꼴이 났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악력이었다.

피식, 헛웃음이 나온다.

설마 난데없이 저런 비밀 병기랑 싸우게 될 줄이야.

"어이가 없네, 진짜."

"그러게. 뭐냐, 저 새끼?"

그리고.

흠칫 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크게 어깨를 떤 신서아가 시선을 위로 돌렸다.

거기에는.

"그리고 서아야, 염병이 뭐니 염병이?"

뻔뻔한 언변. 시덥잖은 태도.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사부인 박우찬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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