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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56화 (256/371)

〈 256화 〉 역습

* * *

"타겟을 하숙집 바깥으로 유도하는 건?"

"아무래도 비현실적이지요."

"역시 그런가."

박우찬이 예상했듯, 신세계 질서의 끄나풀들.

일찍이 대한민국 3대 길드 중 하나에 몸을 담고 있던 헌터들은 푸욱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참으로 막막한 기분이었다.

바로 얼마 전.

당장이라도 날아갈 듯했던 모습과는 퍽 상이한 광경이었다.

그럴 법도 했다.

애초에 이번 일이 시작된 건 비교적 최근 이야기.

다시 말해, 어디까지나 즉흥적인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본디 그들이 속했던 길드가 완전히 붕괴한 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그들은 마치 폐인처럼 지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3대 길드.

일찍이 그렇게 일컬어졌던 대형 길드인 만큼, 그 파장 또한 어마어마했으니까.

물론 대다수 헌터들은 진즉에 갈 길을 찾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급변한 상황을 보고도 적응한 사람들이 있다면, 반대로 그렇지 못한경우도 있기 마련.

단순히 억울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대한민국 3대 길드라는 간판에 대한 모종의 자부심이었던 건지.

개중에서도 일부는 음모론 따위를 진지하게 들먹이기도 했다.

본디 그들과 함께 대한민국 3대 길드라 불렸던 두 길드.

현재는 대한민국의 쌍두마차라 불리고 있는 길드에서 벌인 음모가 아니겠냐는 식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별다른 근거는 없었다.

오히려 근거가 있었다면 깜짝 놀랄 일이었겠지.

다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그들을 제치고 확고부동한 입지를 다진 두 길드.

저 모습이야말로 증거가 아니겠냐며 미친 듯이 떠들어대던 탓이다.

물론 대다수 길드원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허면,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길드에 누군가 침입해 온갖 악행의 증거를 심어놓고 갔다.

심지어 상층부도 모르게 길드 측에서 관리하고 있던 게이트 안에 몬스터 목장을 차렸단 말인가?

도저히 합리적인 이야기가 아니었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합리성이 아닌 합리화를 좇았던 탓이겠지.

당연히 협회도 바보는 아니다.

논리야 어쨌든, 일찍이 대한민국 3대 길드 중 하나에 발을 들인 그 실력은 거짓이 아니다.

때문에.

길드가 해체 수속을 밟기 시작한 이후, 협회는 저런 위험 분자들을 우선해 다른 일자리를 알선했다.

그러므로.

신문 기자나 리포터 따위로 위장한 신세계 질서의 끄나풀이 방문했을 때.

본래 자신이 속했던 길드 측에 의리를 지키고 있었던 건 정말로 한 줌밖에 되지 않았다.

일찍이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혔던 대형 길드가 이토록 빠르게 몰락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분명히 무슨 사정이 있으리라…….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이었지만, 그 말에 옳답시고 참가한 헌터들이 없지는 않았으니.

마침내 일부가 신서아를 습격해 성과를 올렸을 때는 바야흐로 광란의 도가니였다.

허나,딱 거기까지.

말이야 어쨌든, 결국 그들은 신서아를 끝장내는 데에 실패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천리안을 상대로 거점에 불을 지르거나 함정을 설치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별다른 진전 하나 없이 계속해서 이야기가 헛돌고 있는 상황.

투우웅!!

"크아아아악!!"

"뭐, 뭐야!"

"습격이다!!"

난데없이 화살이 날아든 건 바로 그 때였다.

벼락과 같이, 소리를 찢어발기며 작렬하는 일격.

명중이라기보다는 착탄.

화살이라기보다는 미사일에 가까운 공격과 함께, 말 그대로 대지가 뒤집혔다.

*

물론 신서아는 바보가 아니다.

별다른 말이야 없었지만, 뒤에서 박우찬이 움직이고 있다는 걸 짐작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허면, 구태여 이렇게 행동한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는 몇 가지 사정이 있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한 마디로 축약할 수 있으리라.

'내 문제니까.'

몇 번이나 말했듯이, 신서아는 빚을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다.

설령 상대가 사부인 박우찬이라 할지라도.

애초에, 이번 습격은 어디까지나 신서아 개인의 문제.

박우찬이 끼어들 만한 사안도 아니고.

물론 이렇게 말하면 박우찬은 반대로 대답하겠지.

아무리 그래도 제자가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 가만히 있는 스승이 세상 천지 어디에 있겠느냐고.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신서아는 박우찬의 행동을 꺼리는 게 아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신을 위해 사부가 나서준다는 사실은 그녀에게도 퍽 기쁜 일이었으니까.

때문에.

신서아는 이를 악물고 억지로 행동에 나섰다.

그야 그렇겠지?

당장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은 끝에꼴사나운 모습으로 거절당한 처지다.

안 그래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상황.

헌데, 이 이상 박우찬의 힘을 빌리겠다고?

신서아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단순한 고집.

한 마디로 그렇게 잘라 말하기는 힘들었다.

여하간, 틀린 건 아니었으니까.

사제지간이라는 핑계에도 한계는 있는 법.

그리고.

신서아가 보기에, 자신이 박우찬에게 진 빚은 단순한 사제지간이라기엔 지나칠 정도였다.

애시당초 진즉에 자립한 몸.

언제까지 제자라는 핑계로 도움만 받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첫 제자.

박우찬에게 있어, 신서아는 딱 그 정도 관계였으니까.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인정하기 싫었을 뿐.

그러니, 다른 관계를 바랐다.

옛 제자.

어디까지나 과거에 매달린 인연이 아니라, 새로운 이름으로 칭할 수 있는 무언가를.

그 끝에, 이런 꼴이다.

스스로의 몰골이 우스워, 신서아는 조용히 웃음을 씹었다.

즐겁지는 않았다.

단지.

만약 그녀가 박우찬과 단순한 사제 관계로 끝을 맺고 싶은 게 아니라면.

최소한 박우찬에게 일방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작금의 이 상황을 타파할 필요가 있었다.

예를 들면, 자기 사정에 말 없이 발을 들이민 박우찬이 멋대로 판을 뒤집기 시작할 때.

뒤에서 멍하니 구경만 하는 일 따위는 없도록.

후우, 하고 숨을 고른다.

알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여태까지 그녀가 운이 좋았을 뿐.

보통 사람들에겐 눈 앞에서 가족들을 씹어먹고 있는 몬스터를 대신 도살해 줄 사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물며, 제자를 핍박하는 길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박살을 내버릴 스승 따위는 언어도단이겠지.

때문에.

약간의 씁쓸함을 감추면서도, 신서아는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놈들을 추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박우찬이 도출한 결론.

거기까지 도달하는 건 손쉬운 일이었으니까.

다만.

만약 신서아와 박우찬 사이에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 신분이다.

신서아는 이번에 자신을 습격한 헌터들과 일찍이 같은 길드에 속한 적이 있었으니까.

바로 그 한 가지 사실이 둘 사이에 차이를 만들었다.

자신의 직함을 바탕으로, 예전 길드에 속해 있던 헌터들의 동향을 조사한다.

이후, 개중에서도 다른 장소에 취직하지 않은 이들의 이름을 따로 갈무리.

이렇게 갈무리한 헌터들의 주소지를 중심으로 그들이 한데 모일 수 있는 장소를 산출한다.

길드 해산 이후, 별다른 직장을 구하지 않았다는 건 곧 수입이 끊겼다는 뜻.

백주대낮에 대놓고 사람 목숨을 노린 주제에 계좌 따위를 이용한 게 아니라면…….

'놈들이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은 한정되어 있다.'

현대 사회는 곧 자본주의 사회니까.

때문에.

방금 전 산출한 범위에 더해 그들이 생활할 수 있을 법한 건물이나 생활 기반 따위를 추가로 입력한다.

해당하는 장소는 얼추 셋.

나머지는 몸으로 때우면 그만이다.

그리고.

신서아의 예상대로였다.

후보에 넣어두었던 장소 어귀에서 헌터들의 모임을 발견한 것이다.

나름 눈에 익은 장소였다.

일찍이 그녀가 몸을 담고 있던 길드에서 '목장' 용도로 선별한 게이트 근처.

그제서야 신서아의 뇌리에 이해가 달렸다.

길드 해산 이후,길드가 관리하고 있던 게이트는 다시금 협회의 손아귀로 돌아오게 되었다.

문제는 그 직후 초대형 게이트 사태가 발발했다는 점이다.

놈들이 파고든 건 바로 그 때였다.

일손이 부족한 협회로서는 어쩔 수 없었겠지.

내부를 소탕한 이후, 비교적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던 전 몬스터 사육장.

그들이 거점으로 삼고 있는 건 바로 그 내부였다.

일전에 그 게이트를 관리한 실적이 있으니까.

또한, 당시 길드 상층부와 협력하지 않았다는 정황 증거도 있었을 테지.

어쩌면 동업자들에 대한 동정심도 있었을 테고.

덕분에.

당시 이 근처를 관리하던 헌터는 현장 재량을 통해 하청 비슷한 형태로 게이트 관리를 위탁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주기적으로 게이트 내부의 몬스터를 솎아내는 일을 맡긴 거겠지.

당연히 그렇게 소탕된 게이트는 이후 그들의 아지트 역할을 했을 테고.

사람의 흔적 따위는 하나도 남지 않는 게이트 내부의 환경.

그야 작당모의하기는 안성맞춤이겠지.

덕분에 그녀의 일 또한 쉬워졌다.

신서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한 번 화살을 당겼다.

투우웅!!

게이트 내부를 향해 화살이 작렬한다.

죽일 생각은 없지만, 딱 거기까지.

먼저 이 쪽의 목숨을 노린 이상, 팔다리가 멀쩡하길 바라지는 않겠지.

때문에.

내려치는 화살에 자비는 없다.

심부.

게이트 내부 중에서도 한층 더 안쪽을 향해 화살로 벽을 세운다.

놈들로서는 당연히 후퇴할 수도 없는 상황.

그렇다고 해서 게이트 밖으로 뛰쳐나갈 수도 없다.

만에 하나 몬스터가 출몰할 경우를 대비해, 게이트 주변은 무엇 하나 존재하지 않는 개활지.

다시 말해, 저격수가 날뛸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다.

보초를 서고 있던 그들의 실력도 나쁜 건 아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 이 상황은 힘들다.

제대로 자리를 잡은 저격수를 정면 돌파하라니.

동등한 실력이라 가정할 경우, 100% 전멸 뿐.

심지어 신서아는 길드 내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였으니.

자연스레 사냥은 일종의 작업이 되었다.

상대는 헌터.

당연히 독을 탄 음식 따위로 유인할 수는 없겠지.

상관 없다.

함정이라는 건 그런 형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니까.

이런 상황이라면 구태여 상대할 필요도 없음.

이동할 수 있는 장소를 제한하고, 그대로 화살비를 퍼붓는다.

철저하게 유리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사격.

대다수 사냥이란 바로 이런 조건을 만들기 위한 기술인 바.

상대를 앞질러 우위를 선점한 지금 이 시점, 세세한 기술은 필요 없었다.

정면에서 밀고 들어가면 그만일 뿐.

그렇게.

신서아가 자리를 잡길 5분 내외.

일찍이 대한민국 3대 길드 중 하나에 발을 들였던 헌터 보초들이 전멸하는 데에는 그 정도로 충분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다음.'

천리안 능력도 만능은 아니다.

당장 각도 따위의 문제로 인해 게이트 심부까진 시선이 닿지를 않으니.

저 쪽에게 따로 대처할 시간을 주고 싶은 게 아니라면,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신서아는 이 이상 지지부진하게 일을 끌 생각이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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