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4화 〉 암살
* * *
당연한 이야기지만, 하숙집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먼저 아주머니.
딸내미가 집 앞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거의 혼절할 듯 놀라신 탓일까.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안타까울 정도로 덜덜 떨리고 있는 게 느껴졌다.
어쩌면 일전의 트라우마 때문이실지도 모르지.
애초에 서아가 헌터 노릇 하겠다는 데에도 끝까지 반대하셨던 분이니.
아니, 부모 마음이야 어디든 마찬가지겠지.
하물며 눈 앞에서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다행스럽게도, 힘이 필요할 상황도 있을 거라는 서아의 말에 납득하셨던 모양이지만…….
'이래서야 원.'
나지막이 한숨을 토한다.
어쩔 수 없었다.
당사자 앞에서 말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쌓았던 신뢰도 날아갈 판국이었으니.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목숨에 지장이 갈 법한 상황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서아가 기절했던 건 아무래도 희석한 독 때문이었던 모양이니.
상대가 일반인이었다면 또 모를까, 헌터의 신체 능력을 고려하면 머잖아 털고 일어날 수 있겠지.
하물며 내가 해독제를 먹인 지금은 더더욱 그렇고.
때문에.
"잘 한다, 아주."
밤이 찾아와 서아가 눈을 떴을 때, 나는 당황하지 않고 그렇게 말해줄 수 있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애써 태연한 척 할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뻐끔뻐끔 눈을 깜빡이는 서아.
그런 서아를 내려다보며 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나.
둘의 시선이 어색하게 교차한다.
물론 나도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별다른 부상은 없다. 심각한 상처도 아니다. 해독제도 먹였다.
단지.
그러니 괜찮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느냐 물으면, 역시 회의적일 수밖에.
환자가 눈 앞에 있으면 불안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오는 법이다.
"사부?"
"그래. 사부님이시다."
이렇게 눈을 뜬 건 그야 다행이지만, 잠자코 반기기엔 떨떠름한 면도 없잖아 있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 걸까.
슬쩍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서아.
그 너머에는 휘황하게 핀 달이 멀뚱멀뚱 걸려 있었다.
"엄마는?"
"방금 전까지 네 수발 들다 주무신다. 내일 말씀드려."
"응."
며칠 사이 있었던 어색한 거리감 따위를 운운할 때가 아니었다.
그런 감상은 서아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잠자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다시 한 번 한숨을 토하며 목을 축인다.
방금 전까지 골통을 꽉 채우고 있던 걱정을 한데 모아 내뱉으며, 나는 천천히 말을 골랐다.
"그래서? 누가 그런 거냐?"
솔직히 말하자면, 상황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피부에 남은 잔상처.
쓰러진 서아 근처에 활은 없었고, 갑옷 사이사이에 남은 잔상처가 눈에 띈다.
그 모습으로 보건대, 상대는 십중팔구 근접전 전문가였겠지.
무기는 단검.
흠집이 새겨진 방향과 깊이로 추측하자면 속도전 중심일까.
갑옷 위에 남은 발자국으로 어림하자면 키는 서아랑 엇비슷한 수준일 테고.
투척 단검의 형태나 그 날에 묻은 독을 보고 추측해 보면…….
'처음부터 서아를 정면에서 쓰러뜨릴 생각은 없었겠네.'
특기로 삼는 전법은 기습.
아마도 철저하게 준비한 뒤 서아가 본래 전법을 사용할 수 없도록 압박하려 들었겠지.
뭐, 서아도 나름 잘 싸운 모양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밀리진 않았을 테니.
애초에 서아는 단순한 원거리 공격수 따위가 아니다.
활은 어디까지나 수단 중 하나.
서아의 특기인 함정과 병행해 사용하기 위한 보조 무장에 지나지 않는다.
즉, 승부가 갈린 부분은 전법의 차이가 아니라십중팔구 독 때문이었겠지.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아가 독을 눈치채지 못한 시점에서 저울이 기울었다고 평할 수 있을까.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서아의 전술을 숙지하고 있는 듯한 대응법.
동시에, 서아의 주무기가 활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되 자세한 사정은 모르고 있었던 듯한 모양새까지.
상대가 이런 식으로 나왔다는 건, 적어도 서아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서아가 나름 유명한 건 사실이지만, 그 정도가 아니겠지.
애초에 헌터 협회의 요청을 받아 촬영한 홍보 영상 속 서아는 거궁을 사용하는 일격필살형 저격수.
본래 스타일이라고는 농담으로도 말할 수 없다.
뭐, 홍보 영상이니까 화려한 전법을 선보인 게 아닐까 싶긴 한데.
어느 쪽이든, 덕분에 추론하는 입장에선 그럭저럭 편했다.
즉, 상대는 단순히 동영상만 보고 공부한 타입은 아니다.
만약 그 정도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면 역으로 서아가 빈틈을 노리고 달려들었겠지.
승리한 건 당연히 서아가 되었을 테고.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무승부에 가까운 결과라는 건…….
서아의 전법에 대해선 알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가깝진 않은 누군가.
요컨대.
"옛날 직장 동료들?"
적어도 내 추론은 그랬다.
서아의 실력은 알고 있지만, 반대로서아가 활을 사용하는 전법에 익숙할 양반들.
다시 말해, 서아와 직접 파티를 맺고 원거리 저격수 역할을 맡긴 당사자들 외에는 짐작이 가질 않는다.
일찍이 서아가 몸을 담고 있던 대한민국 3대 길드 소속.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중 한 명이겠지.
아니, 한 명이라고 잘라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의심 아닌 확신 담긴 내 발언에, 서아 또한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본인 또한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던 탓이겠지.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일찍이 서아가 소속되어 있던 길드는 진즉 망해버렸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실로 안타까운 사정이 있는데…….
간략하게 말하자면 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금 이 상황은 내게도 퍽 예상 밖의 일이었다.
물론 얼마 전부터 습격 운운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건 사실이지만.
내가 예상한 건 이런 흐름이 아니었는데 말이지.
막말로, 놈들을 무너뜨린 건 서아가 아니라 나.
허면, 놈들은 나를 노려야 할 게 아닌가.
서아가 아니라.
내가 무서워서?
뭐, 그럴 수야 있겠지.
그러나.
'애초에 서아를 공격한 이유가 뭐지?'
단순히 나를 두려워한 탓에 저지른 일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서아를 습격한 시점에서 내가 화를 내는 건 거의 확정 사항이니까.
허면?
처음부터 내가 아니라 서아를 의심하고 있다던가?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퍽 회의적이다.
물론 정황 증거야 있겠지.
서아가 내 제자를 자칭했다는 사실이 기사로 나올 정도였으니.
무엇보다, 당시 서아는 길드 내에서 의심 어린 시선을 사고 있었다.
여하간, 따로 감시가 붙었을 정도니까.
그런 서아가 휴가를 낸 직후 길드가 무너졌으니, 사정을 아는 양반들이야 의심할 법도 했다.
실제로 경찰 쪽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고.
다만.
딱 거기까지.
실제로 서아와 내 행동 사이에 관계를 찾는 건 불가능할 테지.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정말로 별다른 연관이 없었으니까.
서아는 딱히 내게 도와달라 말한 적도 없었다.
사정을 설명한 것도 아니고.
대충 때려 맞추고 보니 오히려 내가 열이 뻗친 탓에 멋대로 나섰을 뿐.
그러니, 이제 와서 뒤를 캔다 한들 마찬가지일 터.
거기까지 생각했다가, 나는 조용히 눈두덩을 비볐다.
어쩌면 반대일 수도 있지 않을까?
요컨대, 내가 한 행동과 마찬가지다.
나도 자세한 사정 하나 모르는 채로 놈들을 들쑤셨으니까.
물론 길드가 수상쩍은 일을 벌이고 있었던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내가 행동에 나섰던 이유는 단 하나.
어디까지나 정황 증거 때문이었으니.
어쩌면 놈들 또한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
일단 의심스러우니 신서아부터 족치고 보자.
그렇게 생각하는 놈들도 없잖아 있겠지.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은 생각보다 단순한 법이니까.
그야 나 또한 어느 정도는 염려했던 사실이다.
물론 나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해도 같은 선택을 했겠지.
다만.
다른 길드원들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
수많은 노고 끝에 간신히 대한민국 3대 길드라는 간판을 손에 넣은 헌터.
헌데, 어느 날 갑자기 길드에 대한 악의 어린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억울해 죽겠는데, 주변에서는 범죄자 길드 출신이라며 쑥덕거리고.
심지어 뉴스에서는 인류의 배신자 운운하는 소리까지.
다른 점이야 어쨌든, 당시 길드의 만행과 관련 없던 헌터들은 억울할 수밖에 없겠지.
물론 나야 그런 사정을 감수하더라도 벌였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단지.
'당사자들이 그렇게 생각할 리 있나.'
너희가 만들던 우유에서 방사능이 검출됐다. 이 공장은 문을 닫아야 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잘잘못과 별개로 일단 반발하는 게 또 사람 심리인 법이다.
그러니.
하루아침에 직장이 공중분해당한 울분을 이런 식으로 분출하려 드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해할 수는 있다.
심지어 신세계 질서의 간섭까지 의심되는 판국이니.
아니, 용납할 수는 없겠지만.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만약 이번 일이 정말로 서아의 전 직장 동료들이 저지른 일이라면?
꾹 하고 입을 다문 서아의 모습을 보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당시 서아를 협박하던 길드 상층부는, 같은 파티원과 이 하숙집 등을 인질로 잡았다.
덕분에 나 또한 졸지에 맨발로 뛰어야 했으니.
허면?
이번에는 어떨까.
대낮 한복판에 서아를 습격한 미치광이들이, 그 가족이나 인질에 대해선 멍하니 손을 놓고 있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최후의 일선은 넘지 않겠다. 이건 어디까지나 헌터들 사이의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헌터들이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다만.
나나 서아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느냐 묻는다면, 역시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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