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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53화 (253/371)

〈 253화 〉 암살

* * *

솔직히 말하자면, 퍽 어려운 상황이었다.

일단 거리를 준 게 뼈아프다.

신서아의 주된 전법은 활을 사용한 저격.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함정을 사용해 발을 묶고 그 위에 화살을 퍼붓는 식이다.

그러나.

지금은 습격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고, 당연히 그런 만큼 함정을 준비할 시간도 없었다.

거기에, 상대는 추정 근접전 전문가.

심지어 무기를 고려하면 경장을 앞세운 고속 전투가 특기일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흠……!!"

마찬가지로승리를 확신하며 자신만만하게 달려들었던 상대는, 곧 침음성을 낼 수밖에 없었다.

나이프를 찌른다. 손가락을 굴려 회전시키고, 그대로 붙잡아 내리긋는다.

화려하기 짝이 없는 연속 공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터터터텅!!

신서아의 중갑에는 제대로 된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특수한 광물을 실처럼 풀어 직조한 박우찬의 정장 등과 달리, 진짜배기 철갑.

당연히 빈틈 따위를 노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상대 또한 그녀가 갑옷으로 갈아입는 틈 따위를 주고 싶진 않았겠지만…….

'생각 이상이군.'

솔직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창고.

마력 결정에 공간 조작 능력을 담아 가공한 물건으로, 소위 인벤토리라고 불리는 도구다.

가격 탓에 주로 고랭크 헌터들이 사용하는 게 대부분이며,당연히 전투에서 사용할 수 있을 만한 물건은 아니다.

애초에 무기 따위를 보관하기 위한 용도였으니까.

실제로, 그녀의 사부인 박우찬 또한 인벤토리를 활용하는 건 딱 창고 수준이기도 했다.

다만.

순수하게 창고를 다루는 솜씨라면, 신서아의 실력은 이미 자신의 사부 된 박우찬을 능가하고 있었다.

창고 내부에 비치되어 있던 갑옷을, 인벤토리의 공간 조작 능력을 통해 곧바로 자신의 몸 위에 덧씌운다.

그렇게 순식간에 갑옷을 장비한 그녀의 방비는 고작해야 단검 하나로 돌파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부웅!!

짧게 끊는 로우 킥.

매서운 일격이 발목을 노린다.

'체술도 만만치 않나.'

내심 혀를 차며 거리를 벌린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애초에 신서아가 활을 선택한 건 함정에 발이 묶인 적을 일방적으로 공격하기 위해서.

다시 말해, 함정과 병행하기 좋아 선택한 무기였을 뿐이니까.

당연히 박우찬 밑에서 배운 건 활이나 함정이 전부는 아니었다.

개중에서도, 신서아가 특기로 삼는 건 발차기.

정확히는 발차기를 중심으로 한 견제다.

아직 초보였을 당시, 양 손으로 활을 다루며 사용할 수 있을 만한 근접전 수단을 궁리한 결과물이다.

물론 겉보기와 달리 활이란 다른 무기술 이상으로 발디딤을 중요시하는 종목.

활과 발차기를 병행할 기회 따위는 없었지만, 이런 상황에선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카가가가각!!

갑옷 위를 할퀴며 지나가는 단검을 다시 한 번 흘려넘긴다.

물론 상대 또한 헌터.

철갑을 상대로 무작정 단검을 들이미는 걸 보면, 최소한 비장의 수단은 있다는 거겠지.

대책 없는 승부에 발을 들일 정도로 멍청하진 않을 테니까.

즉, 직격은 피해야 한다.

허면?

'직격만 피하면 돼!'

참으로 심플한 결론이었다.

갑옷을 들이밀어 빗겨 흘린다. 회피한다. 밀어붙인다.

우악스레 거리를 좁히는 신서아.

역으로 거리를 좁히는 궁수의 모습에, 상대가 자신도 모르게 멈칫하는 사이.

툭.

신서아가 그대로 상대의 어깨를 밀었다.

동시에, 다리 걸기.

무게중심을 뒤집는다.

엇, 하는 소리와 함께 넘어지는 상대.

그런 상대의 안면을 향해 내지르는 일권!

콰아앙!!

선명한 소음과 함께, 신서아의 주먹이 대지를 강타했다.

"칫!"

즉, 상대방의 머리를 으깨버리는 데에 실패했다는 뜻이었다.

넘어지는 와중 그녀의 공격을 포착한 상대가 재빨리 고개를 흔든 탓이었다.

'역시.'

학생들 싸움처럼 쉽게 흘러가진 않나.

신서아는 새삼스레 그런 사실을 확인했다.

동시에.

"큭?!"

신서아의 가슴팍에 작렬하는 일격.

마치 물구나무를 서듯 거꾸로 선 상대의 발차기였다.

물론 단순한 데미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상대도 그 정도는 알고 있겠지.

때문에.

터어엉!!

다음 순간.

흉갑을 뒤흔드는 충격과 함께, 신서아는 뒤로 크게 밀려나고 말았다.

발로 걷어찼다기보다는 차라리 발을 대고 밀었다는 표현이 더 가까울 동작이었다.

그리고.

우악스레 벌린 거리 너머.

다시금 자세를 정비한 상대가 화려하게 손목을 털었다.

피피핑!!

날아드는 단검.

단순한 투검술.

말 그대로,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만큼 뻔한 타이밍이었다.

다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햇빛의 그림자. 소매의 음영. 손목의 궤적. 신체의 움직임.

모든 요소를 활용해, 자신이 던진 단검의 궤적을 은폐하는 상대.

천리안 능력을 지닌 신서아라 해도 당장 눈 앞의 모든 투검을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윽?!"

콰득!

갑주의 틈새.

갑옷 사이로 단검이 맞물린다.

기묘한 형태의 단검.

아마도 투척을 위해 만들어진 오더 메이드겠지.

지면과 수직으로 내던졌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의 흐름을 타고 낭창낭창 물결치듯 날아드는 투검.

바야흐로 이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흉측한 강철이 그대로 갑옷의 틈새를 물어뜯었다.

물론 상처는 없었다.

단검의 잇새가 갑옷의 관절에 걸렸기 때문이다.

다만.

반대로 말하자면, 단검 한 자루에 갑옷의 움직임을 봉쇄당했다는 뜻.

이윽고 그 사실을 눈치챈 상대 또한 곧바로 신서아를 향해 쇄도했다.

바야흐로 신속.

소매 사이에서 뽑아든 비수를 쥐고 다시 한 번 내지른다.

그리고.

"쯧!"

신서아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말았다.

움직임이 둔하다.

갑옷 때문은 아니었다.

물론 가벼운 무게는 아니지만, 전신에 하중을 분배해 비교적 운신이 자유로운 절품이다.

당연히 신서아의 움직임 또한 그런 갑옷에 맞추어 조정한 바 있으니.

때문에.

갑작스레 느껴지는 어색함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방금 전, 갑옷의 틈새를 노린 단검.

처음부터 노린 건지, 아니면 단순한 우연의 산물인지.

참으로 적절한 장소에 꽂힌 단검은 신서아의 움직임을 절묘하게 제약하고 있었다.

때문에.

행동에 지장이 생긴다. 방어에 지연이 생긴다.

그 틈새를 찌르듯 들이닥치는 연속 공격.

당연히 신서아 또한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해.

"큭?!"

핑, 하고 시야가 돌았다.

오한. 현기증.

거기에 기타 등등.

구태여 점검할 필요도 없었다.

독.

손발의 감각. 희미한 반응.

십중팔구 마비독이리라.

언제?

그렇게 묻는 일만큼 바보 같은 행동도 달리 없겠지.

기회는 충분히 있었으니까.

예를 들면 첫 기습 당시.

혹은 방금 전 투검.

아니, 그 이상으로.

단검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미약한 독이 효과를 발휘한 거겠지.

물론 치명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당장 전투에도 별다른 지장 하나 없을 정도.

하지만.

완전히 효과가 없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 정도면 지금 이 전투의 행방을 기울이기엔 충분할 정도였다.

핏, 핏, 핏!

갑주 위를 훑던 단검이 점차 그녀의 몸에 생채기를 새긴다.

그럴 때마다 신서아는 자신의 몸이 무뎌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시에.

'뭐지?'

의혹이 샘솟는다.

만약 상대가 치사성 맹독 따위를 사용했다면?

그야 단순한 위험성은 지금에 비할 바가 아니었겠지.

다만, 딱 거기까지다.

애초에 그토록 위험한 독이었다면 신서아 또한 진즉에 눈치챘을 테니까.

박우찬 밑에서 힘을 기르며 손에 넣은 감각은 고작해야 몇 달 쉬었다고 무뎌질 만큼 녹록한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저번 초대형 게이트 당시 고생했던 경험도 있고.

덕분에 지금 신서아를 독으로 사냥하는 건 실로 어려운 일이었다.

말마따나 독기를 다루는 능력에 개안한 헌터 따위가 아니라면.

틈새를 만드는 일도 간단하다.

갑옷의 방어력을 앞세우면 해독제를 삼키는 시간 정도는 손쉽게 벌 수 있을 테니.

그렇기에 더더욱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독을 이용해 그녀를 제압할 생각이었다면 차라리 이해할 수 있다.

허나.

마치 그녀에게 독을 주입했다는 사실이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듯한 전법.

맹독 대신 지효성 마비독 따위를 사용하다니.

'비효율적이야.'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거, 처음부터 나를 노리고 준비한 전법이잖아……?!'

근접전이라는 어드밴티지.

만에 하나, 그녀가 근접전에 대응할 수 있다 해도 충분히 우세를 점할 수 있을 법한 전술.

어느 쪽이든, 신서아 개인을 공략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가정하면 퍽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처음부터 강렬한 맹독 따위를 사용해 경계심을 사는 일 없도록.

어쩌면 구태여 마비독 따위를 선택한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일지도 모르지.

……그 사실에 오한이 돋는다.

'누구지?'

지금 이건 단순한 습격이 아니다.

신세계 질서의 사주를 받은 비 인가 헌터 따위도 아니다.

평소 그녀의 전법을 잘 알고 있는 누군가가 그녀를 죽이기 위해 준비한 함정이었다.

그리고.

덜컥, 신서아의 무릎이 꺾였다.

전신을 잠식하던 독이 마침내 그 이빨을 드러낸 걸까?

짐짓 여유로운 웃음과 함께, 상대는 천천히 손목을 굴렸다.

동시에.

마치 벽력처럼 단검을 내지르는 상대.

깔끔하게 목젖을 노리는 찌르기였다.

피식.

그 사실에 신서아가 헛웃음을 터트린다.

……위화감이 피어오른다.

함정.

단검을 내지르는 찰나, 신서아의 웃음을 포착한 상대는 문득 그런 단어를 떠올렸다.

부웅!

그렇게.

찌르기가 허공을 갈랐다.

만약 함정이 있더라도 상관 없다.

잔재주 채로 꿰어 죽이리라.

방금 전, 습격자가 내심 각오한 대로였다.

무릎이 꺾인 건 단순한 연기.

실제로는 신서아 또한 나름 여유가 남아 있었다.

물론 그렇다 한들 멀쩡하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신서아가 공격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너무 뻔해."

죽이고 싶으니까 목?

거기까지 읽었다면, 피하는 건 정말로 손쉽다.

몸을 뒤로 눕히듯 드러누운 신서아.

물론 단순한 임기응변에 지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지금은 그 정도면 충분했지만.

신서아의 다리가 그대로 상대방의 가슴팍을 딛는다.

마치 방금 전 상대가 그랬듯이.

그리고.

마찬가지였다.

발로 찬다기보다는 힘을 주어 밀어내는 듯한 동작 끝에.

퍼어어어엉!!

다음 순간.

말도 안 되는 소음과 함께, 양자의 몸이 반대쪽을 향해 튕겨져나갔다.

"뭐?!"

그 사실에 당황한 듯 목소리를 높이는 상대.

당연한 일이었다.

설령 상대가 신서아의 전법 대다수를 파악하고 있다 한들, 이 기술만큼은 어찌할 수 없으리라.

축지.

접근전을 허락한 사수, 신서아가 갖추고 있는 비장의 수.

동시에, 현역 시절 팀을 이루고 있었을 땐 사용할 일 하나 없었던 묘책이었다.

애초에 저격수가 축지를 사용할 만한 상황에 몰렸다는 사실 자체가 수렵 실패를 의미하는 법이니까.

물론 사부인 박우찬처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안정적인 포인트를 점거한 상황에서, 능력을 사용해 용맥의 흐름을 꾸준히 관측할 경우.

그조차도 한 번이 한계다.

다만.

한 번이라고 해도, 접근을 허락한 사수에게 이만한 비장의 수가 있다는 건 가볍게 볼 일이 아니었다.

상대 또한 마찬가지였다.

용맥에 흐름에 휘말려, 신서아와 정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는 상대.

어느 쪽이든, 데미지 자체는 크지 않다.

축지는 결국 이동용 기술에 불과하니까.

그런 만큼, 성능 또한 확실했다.

멀리, 멀리.

바야흐로 수 km 가까운 거리를 순식간에 답파하며 멀어지는 모습.

동시에.

"제기랄!!"

마찬가지로, 그 움직임에 휘말린 상대가 노호성을 내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멀리 아득하게 멀어지고 있는 신서아를 붙잡을 수 있는 방법 따위, 이 습격자에게도 존재하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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