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2화 〉 관계
* * *
'바보 같아.'
신서아는 스스로의 태도에 대해 그리 자평했다.
미련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이래서야 거의 애들 수준 아닌가.
아니, 적어도 현명한 행동은 아니었으리라.
당장 사부인 박우찬마저 어색해하던 모습이 눈에 밟혔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차라리 살갑게 구는 게 좋았겠지.
단순히 부끄러운 쪽이든,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포기하지 못한 쪽이든.
'알고 있었는데…….'
푸욱, 한숨이 나왔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지금 이 기분을 토로할 상대가 없다는 사실이 더할 나위 없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애초에 신서아는 친구가 많을 타입도 아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친구를 만들 수 없는 성격이 되어버렸다.
당연히 털어놓을 상대 또한 없었다.
당사자인 박우찬에게 한탄할 수도 없는 노릇이요, 모친이 들으면 타박밖에 안 할 테니.
그나마 비슷한 처지라면 자신과 같은 교생 출신 교사, 티아마트가 있겠지만…….
'그건 아니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도저히 모를 사람이다.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하물며, 다른 학생들은 더더욱 그렇고.
슬쩍 시선을 앞으로 돌린다.
체육대회가 끝나, 아카데미 또한 정상적인 스케줄로 돌아왔다.
그에 따라, 신서아의 일 또한 한층 더 늘어나게 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작년 1학년들은 이젠 어느 정도 헌터로서의 기초를 다졌다.
허면,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건 일종의 심화 과정.
무기술이나 실제 게이트 탐사 등으로 대표되는 각종 연습이다.
아카데미의 사격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신서아 쪽에 부담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기도 했다.
지금은 학기 초.
개인별로 벽에 부딪힐 때라면 또 모를까, 어디까지나 단순한 기초 훈련에 가까운 지금.
그녀가 해야 할 일은 학생들에게 사격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정도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후가 된다면 또 나름대로 궁리해야 할 필요가 있겠지만…….
쿡, 그런 생각을 떠올리자 돌연 가슴이 아팠다.
본디 이런 문제로 그녀를 도와주던 박우찬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머릿속의 신서아는 퍽 태연한 얼굴이다.
어떤 의미로는 뻔뻔하게까지 느껴지는 얼굴로, 박우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허면 박우찬은 짐짓 못 이기겠다는 듯한 태도로 그녀의 상담을 들어주는 모습이 눈 앞에 선했다.
단순한 망상, 은 아니었다.
만약 저렇게 행동할 수만 있다면, 실제로도 비슷하게 흘러가겠지.
다만.
아직까진 신서아가 그럴 수 없었을 뿐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아직 애라느니 뭐라느니 해도, 신서아 또한 비슷한 처지인 건 마찬가지다.
고작해야 스물 다섯.
하물며, 고등학교 졸업 직후 업계 최전선에 뛰쳐든 그녀가 실연의 충격을 추스르는 방법 따위를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오히려 그런 부분에 있어선 서로 상담이라는 이름 하에 견제라도 할 수 있는 학생들 쪽이 더 유리한 면도 있었다.
그런 고민은 수업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체단실 밖.
방금 전까지만 해도 군에서 사용할 법한 과녁판이 나열되어 있던 산을 넘으니, 운동장 바깥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건 퍽 낯선 광경이었다.
언제나 생각한 점이지만, 이 아카데미의 시설은 퍽 훌륭한 편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한민국 3대 길드라느니 뭐라느니 거들먹거리던 전 직장보다 더 훌륭할 지경이다.
예전에 처음 아카데미에 취직했을 당시엔 그 사실에 흥분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기미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익숙해졌다고 해야 할까.
아니.
그런 스스로의 말에, 신서아는 부정을 달았다.
그런 게 아니다.
애시당초 그녀가 헌터가 된 이유는 무엇이었던가.
아버지의 복수.
처음에는 분명히 그랬다.
하지만.
애초에, 그녀에게는 자신의 가족을 파탄낸 몬스터에게 복수할 수단이 없었다.
힘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다.
그 날.
자신의 눈 앞에서 아버지를 잡아먹은 그 괴물은, 뒤늦게 나타난 박우찬 손에 도살당했으니까.
물론 그런 경험이 그녀가 헌터가 되는 데에 일조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몬스터가 밉다.
아버지를 죽이고 가정을 파탄낸 몬스터가 밉고, 그런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고 다니는 몬스터 자체가 싫다.
허나, 사람은 그토록 애매모호한 감정 하나만 믿고 인생을 내던질 수는 없는 법이다.
다시 말해, 신서아가 정식으로 헌터 노릇을 하게 된 데에는 틀림없이 다른 이유 또한 있었다.
예를 들면, 박우찬에게 칭찬받는 게 좋았다던가 하는.
'바보 같네.'
다시 한 번 더, 신서아는 스스로를 그렇게 평했다.
칭찬받는 게 좋아서 헌터가 됐다니.
지나치게 축약한 점은 있지만, 그렇게 듣고 보니 자신의 처지가 참으로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바야흐로 어린애같은 이유가 아닌가.
그렇지만.
박우찬이랑 얼굴을 맞대기도 애매해진 지금.
별다른 의욕 하나 샘솟지 않는 스스로의 모습에, 신서아는 누구보다도 스스로의 민낯을 직시하는 기분에 잠기고 말았다.
"하아."
더더욱 애석한 건, 여기서 신서아가 달리 할 수 있는 행동 따위는 없었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시덥잖은 핑계를 대서라도 옛날 친구들을 찾아갔겠지.
어쩌면 새로 묵은 감정을 토로할 상대를 찾아 헤맸을지도 모르고.
물론 좋은 행동은 아니리라.
말이야 어쨌든, 요컨대 감정 쓰레기통을 찾아다닌다는 소리니까.
문제는 정작 당사자인 신서아가 그런 행동 하나 불가능한 사람이라는 점에 있었다.
신서아에게 있어, 속내를 드러낼 수 있는 대상은 가족과 박우찬 뿐.
그 외에는 필요하다는 생각도 만들어야겠다는 기분도 들지 않았다.
때문에.
신서아는 더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박우찬은 자신의 요구에 대답을 건넸다.
아마도 그녀 자신이 마음을 정리할 수만 있다면 여태까지와 다를 바 없이 대해주리라.
즉.
지금 이 상황은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그녀의 문제.
달리 말하자면, 그녀의 기분이 빚은 문제였다.
허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박우찬이 말했듯, 이 감정 또한 언젠가 지나가리라 생각하고 정리해야 할까?
그게 옳은 행동, 현명한 행동인 걸까?
신서아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나지막이 한숨을 토한다.
무겁기 짝이 없는 한탄.
푹 하고 땅이 꺼지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무거운 한숨에, 덩달아 어깨까지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응?"
덕분에.
그녀 또한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다른 담임 교사들보다는 상당히 이른 퇴근 시간.
무겁게 땅을 향한 그녀의 시선 너머에, 그녀 외의 다른 그림자가 하나 드리우고 있었다.
거기까지만 보면 딱히 특별할 건 없었다.
비록 사람 오가는 게 적은 시간이라고는 해도, 사람 한 명 없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러므로.
그녀가 위화감을 느낀 부분은 도합 셋.
첫째, 분명히 사람 하나 없을 시간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근처에 그녀와 저 앞의 그림자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
둘째, 그 그림자의 주인이 어째서인지 태양을 등지고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
마지막으로 셋째.
피부가 따끔따끔할 정도로 농밀한 살기.
구분 없는 적의가, 그녀의 피부를 찌른다.
두텁게 눌러쓴 후드. 역광에 진 그림자.
그조차도 완전히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뚜렷한 적의는, 그녀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물건이었다.
다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향해 이만큼 농밀한 감정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무언가 낯설게 느껴졌다.
아니, 몬스터가 상대라면 본 적 있지만.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 사람 생각하고 있었고.
단지.
그만한 감정이 어째서 자신을 향하고 있는 건지, 신서아는 알지 못했다.
때문에.
"신서아 헌터?"
"네? 아, 네. 맞는데요."
묘하게 가래가 끓는 듯한, 기묘한 목소리.
그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을 읊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동떨어진 반응을 보내고 말았다.
아니, 신서아의 성격을 고려하면 설령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어도 비슷한 태도였을지도 모르지.
다만.
아무래도 상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웃음.
제대로 된 웃음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았지만, 신서아는 어째서인지 그렇게 생각했다.
눈 앞의 그림자가 문득 입꼬리를 끌어올린 것 같다고.
스스로의 마음에 샘솟은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단순한 경계심 때문이었을까.
마력을 끌어올린 신서아가 조용히 자신의 능력을 가동하며 그리 물었다.
"무슨 일이죠?"
당연히, 친절한 대답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다음 순간.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신서아 본인조차 완전히 반응하지 못한 그 찰나.
능력을 가동한 탓일까?
자신도 모르게 전투 태세에 돌입한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에 하나 무심코 두어 걸음 물러서지 않았다면, 완전히 다른 결말이 났을지도 모르지.
다른 무엇보다도 빠르게, 신서아는 스스로의 육감을 통해 그리 확신했다.
쩌어억!!
대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뒤늦게 따라붙는다.
상위 헌터.
개중에서도, 단순한 신체 능력만으로 음속을 능가하는 일부 괴물들 사이에서나 볼 수 있을 현상.
온 몸의 핏기가 사악 하고 빠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신서아의 눈이 방금 전 자신의 목덜미를 훑고 지나간 단검을 포착했다……!!
"아니, 그냥."
네 사망 증명서에 지장 찍어주려고.
짐짓 유쾌한 어조로, 습격자는 그리 말했다.
박우찬이 교주로부터 들었던 전언을 전달한 이후, 실로 일주일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