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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51화 (251/371)

〈 251화 〉 관계

* * *

결론만 말하자면, 교주를 상대로 드잡이질을 벌일 필요는 없었다.

당사자인 교주가 우리 쪽에 적극적으로 협력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방금 전 언급된 마신의 죽음에 대해서.

일전에 있었던 자경단 활동 당시, 나와 이준구 앞을 가로막았던 두 마리 마신.

교주의 말에 의하면, 아무래도 놈들 사이에 그 일로 내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지나칠 정도로 조기에 드러난 권능을 고려하면 그럴 법도 했다.

문제는 그 결과 불만의 마신이 숙청당했다는 점이겠지.

숙청을 집행한 건 당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그림자 괴물.

추정 또 다른 마신이다.

내가 교주의 말을 섣불리 믿지 못하는 이유 또한 바로 거기에 있었다.

조로아스터 교의 일곱 마신이라 하면 어디까지나 수평적인 관계일 터.

헌데, 한 쪽이 다른 쪽을 저토록 일방적으로 숙청할 수 있다니?

저래서야 완전히 상하 관계가 아닌가.

나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아니, 그게 가능한 일이라고? 막말로, 다른 마신들도 저항할 거 아냐?"

"글쎄요, 그렇게 물으셔도 곤란할 따름이로군요. 저는 페르시아 신화 같은 건 잘 몰라서."

"뭐? 야, 최승준. 이 새끼 수상하지 않냐?"

"유감스럽지만, 이상한 건 네 쪽이다."

뭐, 어쨌든.

나로서는 조금 더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정작 교주 쪽이 어정쩡한 태도였던 탓에 별다른 성과는 얻지 못했다.

오히려 마신의 권능 따위를 캐묻는 내게 떨떠름한 시선을 던질 뿐.

때문에 나 또한 지금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미심쩍은 건 여전히 매한가지였지만.

대신, 한 가지 긍정적인 점은 있었다.

"마신들은 내분에 별다른 관심이 없습니다."

마신들은 신세계 질서의 내전에 개입하지 않는다.

교주는 그렇게 확언했다.

다시 말해, 마신의 힘을 앞세운 누군가가 신세계 질서를 조기 통합하는 일 같은 건 없으리라는 이야기겠지.

불행 중 다행인 소리였다.

아니, 그야 몬스터니까 그럴 법도 한데.

만약 누군가 마신의 이름을 앞세워 몬스터 입맛에 걸맞도록 조직을 재편했다면 꽤나 귀찮은 일이 되었을 테고.

악마는 본능적으로 인간 사회에 분란을 일으키는 존재.

조직의 단합력이야 쓰레기가 되었겠지만, 애초에 그런 걸 신경이나 쓸 족속들도 아니다.

반대로, 그런 점조직들을 투포환 던지듯 소비해 이 쪽의 전력을깎으려 들 수도 있으니.

당연히 우리 쪽에겐 두말할 필요도 없을 만큼 귀찮은 일이 되었겠지.

죽음조차 불사하고 악마를 위해 헌신하는 대기업 따위, 상대하고 싶지도 않다.

하여튼.

현재 대다수 마신들은 신세계 질서의 힘을 이용해 마련한 거점 주변을 적당히 싸돌아다니고 있다던가.

당장 우리가 조사했던 마신의 영역 또한 바로 그런 부류였던 모양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불만의 마신이 맞이한 지금도 다른 마신들이 이용하고 있다는 듯하니.

머잖아 진행할 습격 계획에 수정을 가할 필요는 없겠지.

다만.

"신세계 질서 측도 바보는 아닙니다. 서로 협력할 마음이 없을 뿐이죠."

교주는 그렇게 경고했다.

물론 당장은 내분을 벌이고 있느라 여유가 없는 게 사실이다.

허나.

눈 앞의 교주와 달리, 대다수 신세계 질서 인원들은 결국 우리들과 적대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제 와서 손 털고 떠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니까.

그런 만큼, 당연히 이 쪽을 견제하기 위한 계획 또한 없잖아 있겠지.

조직의 힘을 앞세울 여력은 없다.

하지만, 내분이 길어질수록우리가 힘을 키울 시간도 늘어난다는 걸 모를 양반들은 아니다.

때문에.

교주는 신세계 질서 측에서 머잖아 행동에 들어갈 거라고 예상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끄나풀을 움직인다고 해야 할까?

조직 자체가 나설 수는 없어도, 우리와 적대 관계에 있는 이들을 움직일 수는 있겠지.

"저처럼 말이죠."

"푸하핫!"

스스로를 단순한 끄나풀이라 지칭하는 교주의 농담을 마지막으로, 대략적인 정보 교환은 막을 내렸다.

이후에 있을 교주의 처우 문제에 대해선 내가 끼어들 일도 아니었고.

나는 그대로 교장실을 떠났다.

속으로는 교주에게 들었던 말을 되새기면서.

……뭐, 놈들이 정말로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짧았던 여유도 여기까지인가.

뻐근한 목을 풀며 그런 감상을 삼킨다.

단지.

'원한이라.'

솔직히 말하자면, 실감이 들지는 않았다.

애초에 우리 애들 대다수는 아직 학생이니까.

신세계 질서가 원한 운운해도 판을 움직일 만한 요인이 없다.

티아마트는 더더욱 그럴 테고.

나?

나야 뭐, 평생 남 보기에 부끄러울 일 없이 살았으니.

'이거 최승준이나 이준구 그 새끼 문제 아니야?'

불현듯 그런 의심이 들었다.

씨발, 내가 이 나이 먹고 그 놈들 똥이나 닦아주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또 다른 생각해?"

"아, 아닌데?"

"흐응. 그래?"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떨리는 턱끝을 보며, 서아는 뾰루퉁하게 그리 말했다.

담담한 듯, 부루퉁한 듯.

지금 내 모습이 영 내키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였다.

하숙집.

당면한 체육대회가 끝나고, 마치 칭찬해달라는 듯 귓가를 쫑긋거리던 하연이에게 칭찬의 말을 돌린 뒤.

나는 먼저 퇴근할 수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체육대회 우승 기념으로 하연이와 애들이 따로 놀러가기로 한 탓이었다.

물론 하연이의 상황을 생각하면 쉬이 내버려둘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내가 따라가기도 무엇한 일.

때문에 지금은 내 촉각을 곤두세우는 걸로 대신하고자 했다.

설령 S랭크 헌터가 상대라 하더라도 곧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김 뭐시기와 싸운 끝에 얻은 교훈이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 쪽에는 서아가 있다.

서아의 능력은 천리안.

이런 상황에선 더할나위 없이 도움이 되는 능력이다.

문제는 정작 지금 서아의 기분이 최악이라는 거고.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요 근래 계속 그랬다는 표현 쪽이 보다 정확하겠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다른 애들과 마찬가지로 서아의 고백을 거절한 이후.

서아와 내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감돌고 있었다.

뭐, 당연한 이야기지.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다른 애들의 경우는 아직까진 고등학생.

당장 실연이라는 말이 그렇게 어색한 건 아니다.

하물며 저 나잇대에 교사들을 대상으로 환상을 품는 게 드문 일도 아니고.

그러나.

서아는 다르다.

단순한 열병.

사춘기 특유의 마음이라고 확 잘라 말할 수 없는 나이.

때문에, 서아의 마음을 거절한 이후로는 나 또한 어느 정도 사양하는 분위기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다른 애들의 마음을 가볍게 여기는 건 아니지만, 나로서는 서아에 대한 태도 쪽을 더 삼갈 수밖에 없었던 탓이다.

서아 쪽도 마찬가지였다.

서아가 언제부터 내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진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적어도 가벼운 마음은 아니었으리라.

때문에, 이 쪽을 의식하지 않으려는 듯 억지로 가장하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런 행동은 오히려 더욱 눈에 잘 띌 뿐이었다.

게다가.

더더욱 문제가 된 건 당장 우리들의 직업 쪽이었다.

아카데미 교사.

한 마디로,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매일같이 얼굴을 맞댈 수밖에 없었다.

어색함도 장난이 아니다.

아니, 서아를 추천할 때까지만 해도 내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런 만큼, 평소와 다른 어색함이 한층 더 눈에 띈다.

본디 함께 등교하던 걸 거부하자니 유달리 의식하는 것 같고, 반대로 평소처럼 함께 가자니 오가는 대화가 없어 더 신경쓰이고.

점심 시간이나 회의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교사들이 눈치챌 정도니, 나나 서아의 속내야 오죽할까.

그렇기에 역으로 서아를 피한 게 문제가 되었다.

체육대회.

나아가서는, 하연이의 특훈이라는 적절한 핑계가 있었던 덕분이다.

그래서 요 근래 하연이와 특훈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이래저래 서아의 시선을 피하기도 며칠.

학교에서는 하연이와 상담할 게 있다는 핑계로, 하숙집에서는 더더욱 같은 이유로.

그렇게 서아를 피하다 보니정작 체육대회가 끝나고 나니 서아 쪽이 부루퉁한 태도를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그야 그렇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긴 했지만……!!

나로서는 그럴 거였으면 처음부터 자연스레 대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물론 말로 할 수는 없었다.

이런 문제에서 그런 식으로 의견 제시를 하면 쓰레기가 되는 건 나라는 사실을 수많은 경험 끝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역전의 싸움꾼 박우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참으로 섬세한 아가씨 마음이라고 해야 할지.

어쨌든.

그 덕분에, 우리 사이에는 여전히 어색한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신세계 질서가 활약을 시작했다던가, 너도 조심하라던가.

그런 말을 해도 별다른 반향 하나 없었으니.

솔직히 말하자면, 쏘아붙이지 않은 시점에서 내심 안심하고 있는 나도 나지만.

까놓고 '찬 주제에 걱정되긴 하나봐?' 같은 말을 들었으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했을지.

무심코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그런 속내를 삼키며, 무심코 한숨을 토한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눈꼬리를 튕기는 서아.

절로 흠칫 하는 소리와 함께 입단속을 신경쓸 수밖에 없었다.

다만.

서아로서는 오히려 그러는 내 모습이 눈에 밟히는 건지, 아니면 뭔지.

자신 또한 짧게 한숨을 토하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시선.

생각 이상으로 벌어진 우리 둘 사이의 거리.

무엇보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 하나 알 수 없는 지금 이 모습이, 나와 서아 사이의 현주소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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