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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47화 (247/371)

〈 247화 〉 대회

* * *

바야흐로 파죽지세였다.

쾌승. 쾌승. 쾌승.

안면을 강타한 풀 스윙. 턱 끝을 후려갈긴 백 스핀 블로우.

하연이의 승리가 정해질 때마다, 내 옆에 앉은 주지승의 얼굴이 시시각각 썩어들어가는 게 보였다.

물론 그럴 법도 했다.

작금의 이 상황은 주지승에게 있어서도 예상 밖의 일일 테니.

여하간, 하연이가 헌터가 된 건 고작해야 1년 전.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수업을 따라갈 수만 있어도 훌륭한 편이라 할 수 있겠지.

그리고 하연이는 작년 분량 커리큘럼을 별다른 문제 없이 소화했다.

주지승이 하연이에게 수작을 부린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일 테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처럼 줄줄이 연승을 거두는 건 예상 밖의 일이리라.

당장 1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헌터라는 사실 하나 몰랐던 계집애가 저렇게 활약할 줄이야.

'유망주 수준이 아니잖아,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그리고.

하연이의 저런 활약은 곧 내 안목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애초에 하연이는 필연이나 예은이처럼 입학 전부터 유명한 부류도 아니었고.

반대로 다른 교사들이 탐을 낼 만한 소문이 돌았던 것도 아니니, 자연스레 내가 주목받을 수밖에.

그런 상황이니, 주지승 또한 바보가 아니라면 깨달았겠지.

주지승 일파의 계획은 완전히 실패했다.

막말로, 지금 하연이가 주지승 쪽으로 갈아탈 이유가 있을까?

'설마.'

하연이와 나 사이에 별다른 관계가 없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여태까지 별다른 실적 하나 없는 신입 교사.

거기에 비해, 작년까지만 해도 일반인이나 다름없던 계집애를 고작해야 1년 사이 저렇게 키운 나.

주지승 쪽이 보기엔 거품이 끼었을지도 모르겠지만,대다수 학생들이 어느 쪽을 택할까 물으면 그야 후자겠지.

때문에.

나는 마음 놓고 느긋하게 시합이나 구경하기로 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 시점에서 주지승의 계획은 완전히 파탄 난 셈이었으니까.

하연이에겐 우승 운운하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지만, 그거야 방심하지 말라는 뜻이고.

실제로는 하연이가 이렇게 활약한 시점에서 주지승 일파를 털어내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다.

허면, 앞으로 주지승 일파는 어떻게 나올까.

저번처럼 헛소문을 퍼트리려 들지, 아니면 자중하는 척 고개를 숙일지.

'글쎄.'

내 예상은 후자인데 말이지.

짐짓 태연한 척 어깨를 좁힌다.

"거 참, 우리 하연이가 저렇게 씩씩해요. 그렇지 않습니까, 주지승 선생님?"

"예? 아, 그렇군요……."

다소 얼빠진 대답이었지만, 이해할 수는 있었다.

방해공작은커녕 당장 본인 체면부터 걱정해야 할 판국이니.

이번 결승전 직후, 하연이 아니면 필연이와 마주치게 될 주지승.

그 낯빛을 감상하며, 나는 다시 한 번 낄낄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뭐, 어느 쪽이든.

'그건 저 양반 사정이고.'

나로서는 여유롭게 구경이나 하면 될 일이다.

필연이도 하연이도, 내게 있어선 자랑스러운 제자일 뿐이니까.

물론 주지승 쪽에선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

솔직히 말하자면, 대회에 참가하기로 결정한 자하연을 괴롭힌 건 바로 체력 문제였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녀가 출전하는 건 무기술 분야.

다시 말해, 토너먼트전이다.

당연히 연전이 될 수밖에.

그리고 박우찬에게 연전의 경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박우찬은 결국 사냥꾼이니까.

전력을 기울여 사냥해야 할 몬스터를 상대로 연전을 시도하는 건 단순한 바보짓이니까.

거점을 마련하고 사냥에 착수한다.

한 마리를 사냥하고, 다시 거점에서 휴식을 취한다.

사냥이란 이와 같은 반복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연전을 대비해 체력을 온존하는 방법 따위, 알고 있을 리도 없다.

평소보더 빡세게 기초 체력 훈련을 하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

고작해야 한 달 사이 눈에 띄게 체력이 붙기는 힘들겠지.

때문에.

박우찬이 제시한 방법은 실로 담백했다.

"힘 좀 빼고 싸워."

"네?"

"괜찮아, 그래도 돼."

참으로 무책임한 발언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말로 괜찮았기 때문이다.

지난 1년.

박우찬의 계획에 어울리며 성장한 자하연의 실력은 이미 일취월장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수준이었다.

말 그대로, 어느 정도 힘을 빼고 싸워도 다른 학생들을 압도할 수 있을 만큼.

다만, 거기에도 한계는 있다.

예를 들면 이번 상대처럼.

……경기장 반대편.

얄밉기 그지없는 얼굴로 붕붕 칼을 휘두르고 있는 정필연의 모습이 보인다.

다른 학생들과 달리, 손에 쥔 건 단순한 보급품이 아니었다.

십중팔구 스스로의 능력으로 만들어낸 물건이겠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무장 구현 능력을 지닌 학생에게 보급품을 사용하라는 건 사실상 능력을 사용하지 말라는 뜻이니까.

때문에, 이 토너먼트 내에서도 무장 구현 능력을 보유한 학생들은 보급품 대신 자신만의 무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필연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무기의 성능을 앞세우는 일 없이 승리를 거두었다.

얼추 짐작하긴 했지만, 확실히 예상 이상의 실력이었다.

"자, 어느덧 무기술 분야도 결승전을 맞이했습니다!! 한 쪽은 우리 아카데미 내에서도 나름 유명한 정필연 학생!!"

결승전이었다.

단순한 우연인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교사들이 초보인 그녀를 배려하기라도 한 건지.

다행스럽게도 자하연은 여태까지 정필연과 마주치지 않고 결승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결승전까지 피할 수는 없을 노릇.

결승전에서 마주치는 건 십중팔구 정필연이다.

박우찬이 경고했듯,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그 사실에 무심코 쓴웃음을 짓기도 잠시.

자하연은 천천히 각오를 다졌다.

여태까지 박우찬이 예상했던 바 그대로 이루어졌다면, 그녀가 정필연에게 이길 방법 또한 없지는 않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필연은 별로 그녀를 경계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하연의 실력이나 솜씨 대신 술책 쪽을 보다 염려하고있는 느낌일까.

손끝. 발끝.

나아가서는 무기.

차례차례 그녀 쪽을 살피는 시선에선 은연중에 그런 감정이 드러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실력으로 패배하리라는 생각은 조금도 없다는 뜻이었다.

그 사실에 확 하고 머리가 뜨거워지기도 잠시.

자하연은 짧은 심호흡을 통해억지로 열기를 가라앉혔다.

……다소 느슨한 눈매와 태도 덕분에 눈치채기는 힘들지만, 자하연은 사실 퍽 격정적인 성격이다.

내심과 별개로 데면데면한 척 하는 데에 익숙할 뿐.

그리고 같은 교실에서 1년 이상 동문수학한 정필연 또한 그 정도는 익히 짐작하고 있었다.

때문에.

여기서 흥분했다간 정말로 꼴사납게 패배할지도 모른다.

다른 녀석들이 상대라면 또 모를까, 정필연을 상대로 그러는 건 정말로 사양이다.

일단 볼 때마다 놀리려 들 건 둘째치더라도.

무엇보다, 정필연은 중학교 시절 이예은을 상대로도 선두를 내준 적이 없다고 들었다.

만약 그런 정필연을 쓰러뜨릴 수 있다면, 스스로의 실력에도 자신을 가질 수 있겠지.

물론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

예를 들면, 자신이 정필연을 상대로 승리했다는 점을 무기로 삼아 이예은을 견제한다던가…….

"무슨 생각해?"

"알아서 뭐 하게?"

"아니, 물어볼 수도 있지……."

조금 억울한 태도로 그렇게 말하는 정필연의 얼굴이 퍽 처량했다.

물론 내색하지는 않았다.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지만.

고작해야 1년 전, 헌터 협회에 이름을 올린 자신이 여기까지 왔다는 건말마따나 충분하고도 남는 성과일 테지.

협회에 눈도장을 찍는 건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리라.

허나, 그 이상으로 자하연은 지고 싶지 않았다.

'사저로서의 명예를 위해!'

승부욕이라고 말하기엔 지나치게 우스운 이유였다.

뭐, 그거야 어쨌든.

내심 힘차게 다짐하는 자하연.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필연은 여전히 태연한 얼굴이었다.

방금 전, 은근슬쩍 던진 질문이 무시당한 일조차 더 이상 개의치 않는 듯한 태도였다.

확실히 이런 상황에 보다 익숙하다는 느낌이 없잖아 있다.

"거기에 비해, 반대쪽은 바로 작년 협회에 이름을 올렸다는 자하연 학생!!"

마지막으로 심호흡을 반복한다.

더 이상 잡다한 생각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과연 승자가 되는 건 둘 중 어느 쪽일까!! 무기술 종목 결승전, 지금 시작합니다!!"

방금 전부터 시끄럽게 떠들던 사회자의 말에 뒤이어,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울렸다.

도대체 어디서 구한 건지, 퍽 예스러운 링 벨 소리에 누군가 웃음을 터트리기도 전.

"어어?!"

관중석에서 흘러든 장탄식을 무시하고, 자하연은 곧게 질주했다.

여태까지 그녀가 취했던 수비적인 태도와는 정 반대.

말 그대로 정면 돌격이었다.

푸른 머리칼이 다시 한 번 물결치듯 휘날린다.

동시에.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는 관중들 사이에서, 일부 눈썰미 괜찮은 사람들은 곧이어 눈치챌 수 있었다.

빠르다.

바로 직전까지 자하연이 선보였던 활약도 부족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차고 넘치는 수준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자하연의 속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적어도우수한 학생이라는 말 한 마디로 어물쩡 넘어갈 수는 없을 정도로.

당연한 이야기였다.

여태까지 자하연은 어깨에 힘을 뺀 채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도 다른 학생들을 압도할 정도였으니.

단순한 수치로 셈하자면 C랭크.

아카데미의 여타 학생들에 비하면 한 단계 이상 우수한 수준이다.

다만.

여전히 정필연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자하연의 노림수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체력을 절약하기 위한 수단을, 일종의 위장처럼 사용할 수 있다면?

한 수.

정필연을 상대로도 한 수를 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내지른 공격은, 여태까지 정필연이 발휘한 실력을 기준으로 잡아도 전혀 뒤지지 않았다.

정필연의 반응 또한 마찬가지였다.

묘한 놀라움에 젖은 정필연의 표정.

'역시.'

정필연 또한 자하연이 실력을 숨기고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거겠지.

그러므로.

카앙!!

다음 순간.

수정과 맞부딪힌 칼날이 토한 금속음은, 퍽 예리하기 짝이 없었다.

……자하연의 판단은 정확했다.

틀림없이 정필연은 자하연의 실력을 잘못 어림하고 있었다.

다만.

자하연의 기습.

뒤늦게 반응한 정필연의 행동이 늦지 않게 자하연의 공세를 요격했다는 건…….

"큿!"

자하연의 공격을 보고 뒤늦게 반응해도 여유가 있다는 뜻.

즉, 실력을 숨긴 건 정필연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지금 정필연과 자하연 사이에는 그만한 실력차가 있다는 소리였다.

얼추 짐작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쉽게 승리를 손에 넣는 건 어려울 듯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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