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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46화 (246/371)

〈 246화 〉 대회

* * *

후우, 호흡을 가다듬는다.

심호흡과 함께 온 몸을 도는 마력의 흐름이 그토록 믿음직스러울 수가 없었다.

동시에, 서로의 무장을 살핀다.

방어구는 아카데미 교복. 무기는 아카데미 지급품.

어느 쪽이든, 별달리 특필할 정도는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대다수 학생들은 따로 장비를 마련할 형편도 아닐 테니까.

무엇보다, 외부의 이목이 한데 집중된 지금 이 시점.

아카데미 측도 장비의 성능 때문에 결과가 갈리는 모습 따위를 보여주고 싶지는 않겠지.

때문에, 현재 참가자들의 장비는 다들 얼추 비슷한 수준이었다.

즉.

지금 이 시점, 승부의 행방을 가릴 수 있는 건 서로의 순수한 실력 뿐.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자하연 또한 슬쩍 눈매를 좁힐 수밖에 없었다.

고작해야 점심시간 사이 준비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 만큼 널찍한 무대.

운동장 한 가운데에 솟은 링 위에서 자하연은 조용히 상황을 점검했다.

손에 쥔 지팡이의 무게는 평소에 비하면 퍽 묵직했다.

끝에 매단 수정 때문이리라.

누가 보아도 쿼터스태프보단 마력 보조용 지팡이에 가까운 외견.

물론 박우찬은 언젠가 그렇게 말했다.

단순한 마력 보조용 지팡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한 뒤 내지르는 공격이 바로 이 전법의 요체라고.

말하자면, 지금 지팡이 끝에 달린 마력 결정은 일종의 방심을 부르기 위한 도구인 셈이었다.

아직 손에 익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익숙해질 필요가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자세를 잡는 자하연의 모습에, 그녀의 상대 되는 학생은 쯧 하고 혀를 찼다.

퍽 화려하기 그지없는 자하연의 지팡이에 비해, 그의 손에 들린 건 한 자루 장창이었다.

언뜻 보기엔 썩 어색한 장면이었다.

무기술을 겨루는 장소에 마치 동화 속 마법사처럼 지팡이를 들고 있는 자하연.

그리고 그런 자하연을 향해 창끝을 겨누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란 더더욱.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그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곤란한데.'

말해두겠지만, 그의 실력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우수한 편이라 해도 좋겠지.

그러나 이번엔 바로 그 점이 문제가 되었다.

조용히 장창을 겨누고 있는 그 모습에 긴장이 달린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엔 방심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당장 무기술 동아리에서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으니까.

하물며 상대의 무기는 쿼터스태프.

간격에 따른 이점은 자신에게 있었다.

허면, 상대는 이 간격 차이를 어떻게 만회하려 들까?

조금 고약한 심정으로 그렇게 생각하길 잠시.

뒤이어 계속된 흐름은 그에게도 영 달갑지 않았다.

이어지는 대치.

운동장 외곽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관중들 사이로 의문이 알음알음 번지는 게 느껴졌다.

'뭐 하는 거지?'

그럴 법도 했다.

시합 개시로부터 30초.

눈 앞의 소녀는 물론이요, 창을 든 학생 또한 공세로 나서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퍽 화려하게 창대를 흔드는 모습과 달리 영 실속 없는 전개였다.

물론 그가 공연히 춤이나 추고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정 반대.

눈 앞에 있는 계집애를 견제하기 위해선 창을 휘두르고 있을 수밖에 없다 표현하는 쪽이 정확하겠지.

사실대로 말하자면, 자하연의 노림수 또한 바로 거기에 있었다.

보폭. 호흡.

그리고 팔이나 시선의 움직임 등을 통해 당장 치고 들어갈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허면?

상대는 장창 특유의 이점을 살리기 위해 사거리 바깥에서 자하연을 견제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작 자하연이 실제로 움직이지는 않았단 점이다.

시합이 시작된 이래 줄곧 한 쪽은 창을 휘두르고 반대쪽은 멍하니 서 있는 듯한 지금 이 광경은 바로 그 탓이었다.

자하연은 치고 들어갈 기회를 살피며 허와 실을 섞는다.

상대는 그 전조를 눈치채고 견제를 반복한다.

허나.

어느덧 그런 대치에도 끝이 다가왔다.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건, 다름 아닌 자하연 쪽.

짐짓 위협하는 게 별다른 소용이 없다 여긴 탓일까?

그렇지 않으면 조바심을 이기지 못한 걸까.

어느 쪽이든, 상대가 알아야 할 일은 아니었다.

지팡이를 앞세워 창의 간격 안으로 파고드는 소녀.

그 뒤로 푸른 머리칼이 마치 물결치듯 휘날렸다.

'잡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창을 휘두르기도 잠시.

투웅!!

묵직한 충격이 손목에 달렸다.

자하연이 상대의 창에 맞서 지팡이를 휘두른 탓이었다.

어리석은 행동이다.

상대는 내심 코웃음을 쳤다.

그의 능력은 신체 강화.

개중에서도 근력을 강화하는 데에 치중되어 있다.

당연히 눈 앞의 계집애를 상대로 힘싸움에서 밀릴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물론 자하연 또한 그 정도는 익히 알고 있었다.

때문에.

다음 순간, 상대는 자신의 팔이 이상할 정도로 무겁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야?!"

잇새로 샌 당황은 과연 무엇 때문인가.

아니, 당장 관중석에서 이변을 눈치챈 사람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런 사실에 마음 두는 일 없이, 자하연은 다시 한 번 크게 걸음을 내딛었다.

다시 한 번 그녀를 향해 날아드는 장창.

당연히 자하연 또한 지팡이를 휘둘러 받아넘긴다.

물론 자하연의 신체 능력은 그렇게 강한 편이 아니었다.

눈에 띄게 부족한 정도는 아니지만, 반대로 신체 강화 능력을 지닌 헌터에게 우세를 점할 수준은 못 되겠지.

그러므로.

손쉽게 날아드는 창끝을 거두는 그녀의 모습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아니, 따지자면 처음부터 그랬다.

예를 들면 시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그들이 나누었던 공방은 헛된 게 아니었다.

왜냐하면 자하연은 지금까지 자신의 능력으로 무대를 뒤덮는 데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능력은 근력 강화.

저주에 의한 약화를 깃들인다 한들 정면에서 합을 나눌 수는 없다.

그런 만큼, 능력을 집중한 건 전신이 아닌 상대의 전완부.

개중에서도 근지구력 쪽이었다.

강화된 근력으로 휘두르는 창의 무게를, 힘이 빠진 전완부로 어디까지 지탱할 수 있을까?

자하연이 때 아닌 견제로 소일했던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상대방의 반응을 보며 상황을 가늠하기도 잠시.

문득 창끝이 느려졌다 싶은 순간, 자하연은 처음으로 몸을 던졌다.

그 결과가 바로 눈 앞에 있었다.

거리감을 유지하는 게 관건인 창의 간격 안으로, 고작해야 두 합만에 들이닥친 자하연.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며, 상대는 핑그르 하고 손아귀 안에서 창을 회전시켰다.

'염병.'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짧게 읊조리는 욕설.

동시에.

후우우우웅!!

무대가 들썩일 정도로 맹렬한 폭풍이 불어닥쳤다.

강화된 근력으로 발하는 찌르기.

창술의 수많은 동작 중에서도 가장 빠른 일격이 번뜩이며 이를 드러낸다.

다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현명한 수는 아니었다.

애초에 대다수 창술은 어디까지나 그 사거리를 살려 휘두르는 동작을 상책으로 친다.

전력을 다해 내지르는 찌르기 따위,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일 뿐.

어째서일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지나칠 정도로 강한 위력 때문이다.

창을 다루는 당사자도 쉽게 제어할 수 없을 만큼.

위력은 강하지만 타점이 한정된다.

속도는 빠르지만 회수하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때문에, 방패 등과 병행하지 않은 찌르기는 가급적 지양해야 할 동작 취급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양손을 사용한 찌르기라면 더더욱.

"칫!!"

무엇보다, 지금처럼 뻔한 상황이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

생각처럼 거리를 유지할 수 없다는 초조함.

고작해야 두 합 사이 간격을 장악한 자하연의 모습.

무엇보다, 어쩐지 무겁게 느껴지는 팔까지.

별다른 경험이 없다면 그야 초조할 수밖에 없으리라.

허면?

그 다음으로 선택할 수단 또한 불을 보듯 뻔했다.

이미 창의 간격 안으로 들어온 상대를 대처하기 위한 봉술.

혹은, 창을 내버린 격투전.

다만.

거기에 추가로상대가 학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십중팔구 거리를 벌리기에 급급할 테지.

즉, 당장 상대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

동시에, 무시하기 힘들 만한 위력.

찌르기가 될 수밖에 없다.

거기까지 읽었다면 대처 또한 간단했다.

슬쩍 피한 옆구리 사이로 스치듯 빗나가는 일격.

그 사실에 상대가 당황하기도 잠시.

흘려보낸 일격 너머로 핑그르 회전하는 자하연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쩌어억!!

"크악?!"

눈 앞에 펼쳐진 하늘빛 머리카락 너머로, 때 아닌 별빛이 반짝였다.

백 스핀 블로우.

한 순간 시야가 백열하는 듯한 착각과 함께, 맹렬한 고통이 코끝을 불태웠다.

무심코 손을 옮겨 코를 보호하는 상대.

그 모습을 보며, 자하연은 망설임 없이 다음 동작으로 들어갔다.

간격은 잡았다. 공격은 봉쇄했다.

허면, 결과 또한 자명한 일이었다.

뻐억!!

상대가 고통을 삼키는 그 잠깐 사이.

깔끔하게 휘두른 풀 스윙이 상대방의 관자놀이를 후려갈겼다.

시원스러운 타격감.

따로 지급된 방어용 부적 따위가 아니었다면 최소한 혼절하지 않았을까 싶은 일격이었다.

그리고.

이번 시합 내 최소한의 안전장치.

소유자가 반응할 수 없는 공격에 작동하는 부적이효과를 발휘했다는 건…….

"승자, 자하연!!"

이번 시합의 결과가 갈렸다는 뜻이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박우찬의 평가는 틀리지 않았다.

자하연의 염려는 말 그대로 사서 한 걱정이었을 뿐.

시합 개시로부터 1분 내외.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고 나서 10초 남짓.

자하연은 승리를 거머쥐는 데에 성공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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