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3화 〉 특훈
* * *
"끄엑."
그리고.
자하연은 고작해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자신의 결심을 후회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자하연의 실력은 썩 나쁘지 않았다.
순수한 무기술 솜씨야 둘째치더라도, 진심으로 싸운다면 대다수 학생들에게 승리를 거둘 수 있겠지.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박우찬의 확실한 기초 트레이닝.
그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는 아카데미 커리큘럼.
자하연 자신에게 걸맞는 전법의 확립.
지나칠 정도로 다망했던 경험.
하물며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능력 쪽도 멋대로 성장하는 판국이니.
미심쩍은 부분 또한 없잖아 있고, 무작정 좋다고 반겨선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이미 손에 들어온 힘을 수상하답시고 방치하는 일 또한 박우찬의 기풍은 아니었다.
덕분에 자하연은 이미 중견 헌터에 상응하는 솜씨를 발휘하고 있었다.
고작해야 1년.
헌터 업계에 발을 들인 게 당장 작년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성취였다.
그러므로, 자하연이 대비해야 할 건 고작해야 둘 뿐이었다.
정필연과 주지승.
개중에서도, 우선순위가 높은 건 당연히 정필연 쪽이었다.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자하연 본인도 타도 정필연 쪽에 보다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박우찬과 자하연 중 어느 쪽도 주지승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단순한 실력 문제도 있다.
현실적으로, 정필연을 잡아야 주지승과 붙고 말고 할 수 있다는 점도 있다.
허나, 그 이상 가는 문제도 있었다.
즉.
정필연은 마력을 벨 줄 알았다.
물론 정필연이 때 아닌 실력으로 소위 말하는 심검의 경지에 올랐다는 뜻은 아니었다.
순수한 기술로 마력에 간섭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게이트의 도움 없이 스스로 각성할 만한 소양이 필요한 법.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정필연은 소질이야 있었을지언정 당장 그만한 경지에 올랐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다만.
마찬가지로 무협지 비슷한 예시를 들어 비유하자면, 불을 붙이는 데에 꼭 삼매진화를 익혀야 할 필요는 없다.
라이터 한 개 있으면 충분한 일이었으니까.
정필연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필연의 능력은 무장 형성.
개중에서도 자신에게 익숙한 무기인 검에 특화되어 있다.
다시 말해, 정필연은 자신의 무기가 지닌 특성을 어느 정도변화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가 바로 저번 자경단 노릇 당시 있었던 마력 베기.
이예은의 염동력을 베어 방어한 모습이었다.
칼날의 조성을 이예은의 염동력을 베는 데에 특화된 구조로 바꾸어 일으킨 기예.
바야흐로 정필연의 솜씨가 집약된 비기라 할 법했다.
물론 거기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었다.
예를 들면, 시간.
혹은 이해.
즉, 정필연이 상대방의 능력 구조를 파악하는 데에 필요한 여건이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하연과 정필연은 족히 반 년 이상 두 선생 아래에서 동문수학한 사이였다.
심지어 대련이라는 이름으로 심심찮게 합을 나누기도 했으니.
정필연 또한 자하연의 능력은 진즉에 간파하고 있으리라.
하물며, 자하연의 능력은 저주.
이예은 등의 능력과 달리,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달리 말하자면, 즉효성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만약 방어에 실패하면 적잖은 데미지가 남을 수밖에 없는 염동력.
거기에 비해, 만에 하나 실수했다 한들 곧바로베어 끊으면 무용지물이 되기 마련인 저주.
다른 학생들 입장이야 어쨌든,정필연 입장에서 보자면 자하연의 능력만큼 제압하기 쉬운 상대도 없었다.
도대체 어쩌다가 저런 기술에 눈을 뜬 건지.
본인의 시그니처가 영향을 주었다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못할 박우찬으로서는 그저 혀를 찰 따름이었다.
덕분에 자하연은 때 아닌 특훈에 매진하게 되었다.
그 결과.
"하연아, 괜찮니?!"
"괜찮아 보이세요……?"
호되게 옆구리를 갈긴 박우찬의 주먹에 맞아 배를 움켜쥐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박우찬은 대련 상대로서 퍽 우수한 편이었다.
기본적으로 대검을 다루거니와, 다른 무기 또한 사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물론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기기묘묘한 애병을 다루기 위한 고육지책.
말인즉슨 퍽 조악한 수준에 지나지 않았으나, 학생을 상대로 하는 대련이라면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단순 격투.
톱 다루는 기술을 바탕으로 한 한손검.
끌 쑤시는 기술을 바탕으로 한 단창술.
거기에 대검이나 방패까지.
수많은 기술에 당해 나동그라지는 자하연의 모습을 보며, 박우찬은 결론을 내렸다.
"역시 체력 단련 위주로 하자."
"네?!"
당장 며칠동안 고생한 게 허사가 된다 들으니 과연 자하연이라 해도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박우찬 또한 공연히 하는 말은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체육 대회까지 남은 시간은 어느덧 고작해야 2주 남짓.
그 사이 실질적인 실력 향상을 노리는 건 아무리 그래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몸에 익힌 기술이란 본디 그러한 법.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당장 자하연만 해도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그녀의 실력 향상은 놀라운 기세였다.
하지만.
고작해야 2주 남짓한 시간 사이 그녀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묻는다면, 역시 고개를 갸우뚱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비록 자하연 수준의 성장세를 지니고 있다 해도, 최소 1년은 봐야 하는 게 실력이요 성장이다.
고작해야 2주 사이 눈에 띄는 변화를 바란다는 건 아무래도 힘든 일이었다.
때문에, 처음부터 박우찬이 주목했던 건 단순한 대처법 쪽이었다.
실력은 부지불식간에 향상시킬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렇지만.
특정 무기를 상대로 어떤 방법이 유효하냐 하는 점은 가볍게 익혀두기만 해도 도움이 될 때가 분명히 있었다.
방금 전, 박우찬이 방침 전환을 고한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단순한 공격 수단에 대한 대처법 정도는 하연이 또한 몸에 익은 게 눈에 보였던 탓이다.
요컨대, 하연이의 옆구리를 갈긴 일격은 박우찬 자신이 의도한 게 아니었다.
자하연의 대처에 스스로도 모르게 손이 나갔을 뿐.
그 정도 했으면 즉흥적인 특훈 치고는 꽤나 성과를 보았다고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거야 원.'
수에 당할 때마다 얼굴을 찌푸리고 아픔을 억누르는 하연이의 얼굴을 보는 일 또한 나름의 고역이었다.
나름 조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자하연에게 박우찬도 모르던 무재가 잠들어 있을지도 모르지.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고작해야 2주 사이에 그 무재라는 녀석이 눈을 뜨겠냐마는, 세상사 또 모를 일이다.
다만.
만약 그렇다 한들, 순수한 무기술에서 정필연이 자하연 위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막말로 정말 자하연에게 재능이 있다 한들 그 사이 정필연은 더 앞까지 나아가리라는 소리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번에 자하연이 노리고 있는 건 무기술 종목이다.
그리고 예로부터 무기란 곧 수족의 연장이니.
무기술이라 해도 급박할 때 손발이 나오는 건 실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때문에 박우찬 또한 격투 쪽에 대책을 마련하도록 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본질적으로 이번 종목은 무기술 쪽.
그야 능력 사용을 금지하지도 않겠고, 손발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겠지.
단지.
아무리 그래도 지팡이 하나 꼬나쥐고 불길 날리는 데에 좋은 시선 향할 사람이 있을 리도 없었다.
애시당초 어지간히 실력 차이가 나는 게 아니라면 마력을 운용하는 쪽보단 칼질 한 번이 빠를 수밖에 없기도 하다만.
즉, 자하연이 출사표를 던진 이상 정필연과 무기술로 붙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기술에 있어 자하연이 단시간에 정필연을 능가하는 건 힘들다.
허면?
기책을 부릴 수밖에 없다.
거기까지 결론이 나왔다면, 이후 일은 간단했다.
다른 학생들의 무기에 대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령을 주입한다.
그리고 기책을 준비한다.
딱히 치밀한 기술일 필요는 없다.
딱 한 순간.
이번에 한 번 정필연에게 솜씨를 볼 수 있는 잔수작만 부릴 수 있다면 충분한 셈이었다.
그리고 박우찬은 그런 기책을 꺼리는 타입은 아니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정적인 조건 하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기예를 중심으로 삼는 건 싫어한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는 기술 위에 비책을 준비하는 건 오히려 좋아하는 쪽이었다.
한 번만 먹히는 수단이라 해도 상관 없다.
몬스터가 상대라면 죽여버리면 그만이니까.
물론 이번 상대인 정필연은 딱히 몬스터가 아니었지만, 그렇다 해서 적도 아니지 않은가.
이번만 먹히는 수를 준비한다 해도 나쁠 건 없었다.
그렇게 준비된 수가 두 개.
하나는 박우찬 측에서 나온 수단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하연 쪽이 준비한 수단이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되니, 자하연 또한기초적인 체력 단련에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실에, 자하연은 자신도 모르게 내심 한숨을 돌리고 말았다.
여하간, 자신이 이번 박우찬의 제안에 동의를 표한 건 다름이 아니었다.
요즘 건방지게 수제자를 자칭하는 정필연을 찍어누른다.
그리고 하는 김에 할 수 있다면 요 근래 부쩍 들이대는 경우가 많은 친구들을 견제하기 위함이었으니까.
교사 노릇을 하고 있는 티아마트나 신서아는 당연히 체육대회에 출전할 수 없다.
이예은은 원거리 분야 능력 종목에 자원했고, 류지희는 근거리 분야 맨손 격투 종목에 신청을 넣었다.
황윤하는 단순한 방어 능력이야 어쨌든 무기술이라면 이제 막 익혔을 뿐이라며 출전을 고사했고.
덕분에 요 최근 그녀는 박우찬의 시간을 독점할 수 있었지만…….
설마 진짜로 주구장창 훈련만 하게 될 줄이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질끈 하고 머리를 올려 묶는 그 모습 때문에 박우찬이 성실하게 훈련에 매진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어느 쪽이든, 자하연으로서는 기껏 체력 훈련이나 한 뒤에 땀 냄새나 나지 않으면 다행이리라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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