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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41화 (241/371)

〈 241화 〉 빼돌리기

* * *

"뭐?"

당연한 말이지만, 박우찬에게는 간단히 웃어넘길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여하간, 그가 어울리지도 않는 교직에 발을 들인 건 전적으로 자하연 때문이었으니까.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하연이 지닌 몬스터를 유혹하는 능력.

소위 말하는 미끼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단순한 미끼 능력 탓에 발생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요컨대, 자하연 옆에 있다 보면 고랭크 몬스터를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

헌데, 그런 하연이를 중간에 가로채려 하다니.

박우찬으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주지승 본인에게도 위험하고.

주지승은 꽤나 괜찮은 수준의 중견 헌터다.

헌터 협회 기준으로 따지자면 B랭크.

측정 기준을 벗어난 S랭크나 도저히 개인의 무력이라 볼 수 없는 A랭크를 제하면, 실질적인 최고 등급.

헌터 아카데미의 교사진으로서는 합격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

다만.

상대는 신세계 질서.

고작해야 합격점, 고작해야 B랭크 따위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적어도 마신이 상대라면 B랭크 헌터가 상대니까 손대중을 해줄 리도 없고.

하물며, 신세계 질서 손에 하연이가 넘어가기라도 했다간…….

'지금 이상으로 참담한 상태가 되겠지.'

물론 개인적인 취향 문제도 있지만.

사방에 몬스터의 흔적이 도사린 이 미친 세계에서, 몬스터를 죽여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건 지금 뿐.

그조차 고랭크 몬스터는 신세계 질서를 상대하는 게 고작이다.

때문에.

본래는 단순한 잡담 삼아 입을 열었던 자하연은 예상 이상으로 적극적인 반응에 직면했다.

식사 중이었다.

자하연으로서는 단순히 오늘 있었던 일을 보고하려 했을 뿐이겠지만, 박우찬으로서는 그럴 수도 없었으니까.

단지, 화가 나는 점과는 별개로 수단 자체는 특필할 게 없었다.

제자 가로채기.

스승으로서의 실력 차이를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생각해 보면 비교적 흔한 방식이다.

여하간, 동서고금 비슷한 사례도 몇이나 있었고.

"……그럼 그 사람, 정말로 교사였던 건가요?"

"뭐, 그렇지."

주지승에 대한 설명 끝에, 자하연은 그런 감상을 토했다.

뭐, 그야 그렇겠지.

만약 그렇다면 아카데미의 정규 교사였던 사람이 어째서 그런 식으로 접촉한 건지.

나아가서는, 도대체 뭘 노리고 있는 건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야 자세한 사정 설명까지는 할 시간이 없었으니 어쩔 수 없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박우찬은 곧 턱밑을 긁적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하연이는 그런 주지승의 제안을 거절했다.

허면, 앞으로 주지승 쪽은 어떻게 나올까.

구태여 생각할 필요도 없다.

거절당한 건 저 쪽.

그렇다면, 앞으로 수를 짜내야 하는 쪽도 저 쪽이다.

뭐든지 알아서 수를 쓰려고 하겠지.

그가 해야 할 일은 그런 수를 기다리고, 대처하면 된다.

여하간, 박우찬과 주지승은 지나칠 정도로 체급이 다르니까.

가만히 있으면 압살당하는 건 주지승 쪽이기 때문이다.

박우찬은 냉정하게 그리 평가했다.

*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슬슬 학생들 사이에서도 이 기묘한 수업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즉, 체육 대회.

이런 수업은 어디까지나 체육 대회라는 이벤트를 대비하기 위한 수업이라는 식으로.

그 사실에 아카데미는 가볍게 들썩이고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들은 학생.

아카데미 또한 그들이 학생이라는 자각을 가질 수 있도록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때문에, 체육 대회라는 지나치게 흔한 이벤트만으로도 그들은 상당히 들뜬 상태였다.

문제는 헌터 아카데미와 체육 대회라는 단어가 영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겠지만…….

"자, 다들 집중. 공문 받았지?"

그것도 어떻게든 되었다.

교사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짜낸 체육대회 일정표.

그 상세가 각 반의 학생들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박우찬이 보기엔 그럭저럭 합격점이 아닐까 싶은 완성도.

이 정도라면 아카데미가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는 소식은 듣지 않아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박우찬은 슬쩍 공문을 훑었다.

체육대회라고 해도 본격적인 내용 자체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

여하간, 체육대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단순한 실력 향상 뿐만이 아니니까.

능력을 제한한 구기 등, 서로의 협동성을 강화하기 위한 종목 또한 여럿이 있었다.

다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각계에서 집중할 만한 건 그 이후에 있을 오후 스케줄.

다시 말해,대회쪽이겠지.

대회 자체에 변변찮은 이름은 없다.

여하간, 아카데미 측으로서도 첫 체육 대회이니 어쩔 수 없겠지.

그렇지만.

필시 언론 쪽에서 적당히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주리라고, 박우찬은 그리 짐작하고 있었다.

체육대회 안의 '대회'.

그 상세는 실로 간단하다.

요컨대 이번 교류 수업으로 어느 정도 예고되었던, 토너먼트 전.

달리 말해, 서로의 능력 제한을 해제한 대련이었다.

물론 세세한 분류는 있다.

정말로 맨 땅에서 시작하는 단순한 치고받기는 아니니까.

현재 아카데미에서 지원하고 있는 무기술 수업의 분야에 따라, 근접 분야와 원거리 분야.

그리고 보조 계통 분야까지 도합 셋.

크게 셋으로 나눈 종목에 더해, 추가로 세세하게 분야를 나눈다.

그리고 그렇게 신청한 인원들을 중심으로 열리는 토너먼트전.

그게 바로 대회의 본질이다.

당연히 그런 만큼 토너먼트전이라 해도 전원 치고받는 건 아니다.

적어도 회복이나 보조 등에 한해선 그럴 수도 없으니까.

모르긴 몰라도, 특정한 과제를 내고 그 과제를 빠르게 해결한 쪽이 승리…….

그런 구성이 되겠지.

어쩌면 사격 쪽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고.

다만, 한 가지.

달리 평가할 수 있을 만한 부분이 없는 쪽만큼은 역시 어쩔 수 없었다.

즉, 근접전 분야 무기술 부분.

혹은 맨손 격투 부분.

이 두 분야에 한해서는 정말로 야만적인 토너먼트 대련.

말 그대로 싸움이 된다.

바깥에서 보기엔 눈이 즐거울지 모르겠지만, 야만적이라는 생각을 거둘 수 없다.

무엇보다, 이번 체육대회는 딱히 학년 단위로 구분하지 않는다.

헌터 아카데미에서 배우는 기술을 생각하면 불합리한 부분도 없잖아 있지만, 이건 어쩔 수 없었다.

아니, 2학년만 모아서 체육대회를 열기엔 아무래도 인원이 부족하니까.

덕분에 1학년 학생들 중에선 2학년과 붙어야 할 처지인 학생들 또한 더러 있겠지.

다만, 꼭 나쁜 일은 아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학년을 넘어 자신의 이름을 퍼트릴 수도 있다는 거니까.

헌터가 곧 아이돌을 겸하게 된 이 시대.

썩 나쁜 조건은 아니다.

'이길 수 있다면 말이지.'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게 아니었다.

저번 회의 당시에 있었던 일을 상기하며, 박우찬은 공문에 적힌 한 줄에 시선을 두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토너먼트의 승자에게는 여러모로 이득이 있기 마련이다.

방금 전 말했듯이,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다는 점만 해도 그렇고.

다만.

이번 대회는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첫 체육 대회인데, 그렇게만 가면 재미가 없겠죠. 조금 크게 가 보면 어떻겠습니까?"

그런 의견이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른 각 분야에서도 우승자에게 주어질 우승 상품이 준비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보조 계통에게는 나쁘지 않은 성능의 영약이.

원거리 계통에게는 사격을 보조할 수 있는 도구 따위가 상품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근접전 분야, 무기술 계통.

다시 말해, 이번 체육 대회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분야의 우승 상품은 딱 하나.

교사진과의 경합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구성인 이상 밖에서 보기엔 시선이 가는 건 근접전 분야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근접전 분야의 상품을 단순한 물건 따위로 주고 넘어가기보다는 차라리 교사들의 실력을 과시하는 건 어떻냐는 제안이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기술 분야에서 우승자를 맞이하게 될 교사가 바로 주지승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은데.

단순한 무기술로 따져도 주지승 이상일 교사는 아카데미에도 여럿 있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정작 그런 신청은 모두 기각되었다.

"아니, 애들 잡을 일 있습니까?"

그런 이유에서였다.

박우찬 또한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주지승의 실력은 퍽 적당했다.

어느 정도 애들과 합을 겨룰 수 있되, 크게 밀리는 수준은 아니다.

즉, 교사진 중에서는 퍽 만만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도저히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주지승은 그런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뭐,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건지는 알겠지만.

무기술 분야에서 우승하는 건 십중팔구 정필연이다.

그러니 그 틈을 찔러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할 생각이겠지.

다만.

주지승의 그런 행동 덕분에, 박우찬 또한 나서기 쉬워진 점은 있었다.

이번에 나온 공문을 기점으로 생각을 굴린다.

어느 정도 썩 괜찮은 그림이 박우찬의 머릿속에서 추가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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