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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39화 (239/371)

〈 239화 〉 밑준비

* * *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역시 입질이 있었다.

교직원 회의.

예의 협동 수업이 끝을 맺은 직후, 나와 영감은 회의실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마침 담임들 사이에 회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회의의 주제는 지금 이 상황과도 결부되어 있었다.

즉, 이번 공문이 은연중에 암시하던 바.

이번 학기 내에 준비된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

다시 말해,체육대회때문이었다.

체육대회!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터질 지경이었다.

뭐, 다른 고등학교처럼 정말로 서로의 지덕체를 겨루려는 목표는 아니겠지만.

작년에 있었던 시험 중계와 마찬가지다.

본질적으로는 아카데미의 성과를 외부에 과시하기 위한 행사겠지.

당연한 이야기다.

아카데미 출신이라 해도 결국은 학생.

제대로 된 경험이나 충분한 자제력이 있다고는 도저히 농담으로도 말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정말로 서로의 실력을 전력으로 내보내 겨룬다?

미쳤냐?

말이 좋아 대련이지, 총기 사고 유도에 지나지 않는 일.

아카데미 측 입장에서 보자면 도저히 허락할 수 없다.

문제는 당장 거기에 있었다.

바로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발단 말이다.

애초에 헌터 아카데미 프로젝트는 만민의 환대를 받아 시작된 게 아니다.

때문에, 아카데미는 주기적으로 자신들의 성과를 외부에 과시할 수밖에 없다.

과시하지 않으면 정치적인 압박이 들어오니까.

작년 일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말이야 저렇게 하긴 했지만, 반대로 대련 외에 마땅한 수단이 있는 건 아니다.

아니, 대련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지만 아무리 그래도 게이트 공략을 시연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만에 하나 사고라도 일어나면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다.

물론 실제 총기 사고 쪽도 위험은 크겠지.

크겠지만, 적어도 붙잡았던 간첩을 풀어준 뒤 훈련 용도로 사용하는 쪽보다는 낫다.

그러니.

비록 다소 비효율적이고, 그 이상으로 억지에 가까운 방법이었다 한들 이번 공문의 결과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체육대회는 대인전으로 실시한다.

그 자체는 현실적인 대안이었으니까.

아니었다면 최승준 선에서 어떻게든 주물럭댔을 테고.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소 걱정스러운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예?"

회의실 내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을 때, 대다수 교사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야 그렇겠지.

사실 이번 회의는 그렇게 중요한 물건이 아니다.

까놓고 말해, 위에서 공문이 내려왔으니 체육 대회 내용을 생각해 보자는 취지에서 열린 거니까.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은 격이긴 해도, 이번 공문 자체에 합리성이 있다는 건 사실.

때문에 정상적인 흐름이라면 불평 몇 마디 하고 체육대회라는 이름의 이벤트를 준비하는 데에서 그쳤으리라.

윗선에서는 자신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

현장에서는 그나마 그게 현실적인 대처니까.

단순히 시험을 치르는 장면만 보여주고 어필할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작년 내내 사용한 수단이기도 하거니와, 초대형 게이트가 출몰한 지금.

무언가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이번 회의에서 차질이 생길 이유는 거의 없다는 뜻이었다.

허나.

눈 앞의 발언을 일삼은 1학년 담임 교사 중 한 명은 아무래도 다른 듯했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이번 체육대회가 다소 정치적인 의미가 있다는 건 알고 계실 겁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니군."

"헌데, 요 최근 불온한 소문이 돌고 있지 않습니까?"

오, 저격 보소.

내심 속으로 감탄하며 흘끔 비서 양반 쪽의 시선을 살핀다.

'저 새끼냐?'

말로 하자면 이런 의미가 되겠지.

그런 나를 바라보며, 비서 양반은 고개를 저었다.

'끄나풀입니다.'

마찬가지로, 설명하자면 그런 뜻이리라.

뭐, 그렇겠지.

이런 자리에서 총대를 매고 일어서는 건,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미지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적어도 2학년 교사들 중에서는.

아니, 1학년 교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저 친구가 총대를 대신 매준 양반들을 제외하면 대다수가 그리 생각하겠지.

그런 건 지금 이 계획을 짜낸 누군가가 감수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즉, 저 친구는 정말로 단순한 끄나풀.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착한 대신 머리 회전이 조금 느린 부류일 가능성이 높았다.

추측컨대, 헌터 출신이 아니라 처음부터 교육자를 노렸던 타입.

나에 대해 돌고 있던 악소문을 듣고 정의감에 불타 누군가의 바람잡이에 이용당하고 있는 쪽이 아닐까.

'귀엽구만.'

뭐, 그 정도라면 괜찮다.

오히려 호인상이야.

머릿속으로 저 친구의 이름을 기입하며 상황을 살핀다.

그러자 저 친구 또한 기세등등하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물론 단순한 헛소문일 거라고는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나 참. 그러니까, 지금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 도는 중이니 그걸 의식해서라도 조용히 있자 뭐 그런 뜻인가?"

"숨기지 않고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뭐?"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소문의 당사자가 된 선생님께도 악재가 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 말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한껏 비아냥거리던 노친네도 앓는 소리와 함께 뒤로 발을 뺄 수밖에 없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니까.

여하간, 이런 시대고.

만약 매스컴에 날조된 소문 하나 들어가면 이미지 망가지는 건 문제도 아니다.

저 친구가 보내고 있는 시선 또한 마찬가지겠지.

만에 하나, 지금 나와 관련된 일련의 소문들이 거짓말이라면?

적어도 매스컴에 노출되는 건 피하는 게 좋다.

만약 잘못된 소문이 퍼지게 되면 피해를 입는 건 나니까.

그 밑바탕에 깔린 건 어디까지나 나에 대한 의심이겠지만.

말 자체만 들으면 틀린 건 아니라는 뜻이다.

명분이라고 해야 할까.

귀찮지만, 입씨름에서는 저런 게 중요한 법이다.

결국 나중에 책잡히고 끝나지 않으려면 저런 식으로 적절한 명분을 방패 삼는 게 중요한 법이니까.

지금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속내는 내가 못미덥다 한들, 나를 걱정한다는 명분을 대 내게 우호적인 교사들도 쉬이 나서지 못하고 있으니.

"그래서 뭐 어쩌자는 겁니까?"

"……예?"

"거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거 아니오. 그래서? 뭐 언제까지 그러자고? 평생?"

"아, 아뇨. 그런 뜻은 아닙니다. 물론 적절하게 소문을 가라앉힐 수 있다면 좋겠지요."

"나쁘지 않네. 그럼 뭐 어떻게 할까? 뭐, 일기토라도 뜰까?"

"네?"

"아니면, 1학년 교사들 전부 오실 거요? 나는 상관 없는데."

너희들 전원이 덤벼도 이길 자신 있다.

한 마디로 그런 이야기였다.

당연히 그 직후 다른 1학년 교사들의 안색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총대를 매고 앞으로 나선 양반 또한 마찬가지였다.

"거, 쉽게 갑시다. 애초부터 그런 말 하려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뭐, 명분론 좋지.

그러나 나는 원래 비 합법 헌터 출신이다.

그런 고상한 회의 작법같은 건 모르겠고.

내가 알고 있는 건 딱 한 가지.

겉만 번드르르한 명분론은, 결국 누가 가면 벗고 대놓고 면전에서 까기 시작하면 붕괴한다는 뜻이다.

개싸움에선 방패가 쓸모 없는 법이니까.

아니, 1학년 교사들한테는 조금 미안한 점도 있지만.

그 양반들 입장에서 보자면 갑자기 내가 똥을 뿌린 걸로 보일 테니까.

물론 내가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씨발, 소문이 어디 맨입으로 퍼지나?

모르긴 몰라도, 아카데미 내부에 저런 소문이 퍼졌다는 건 최소한 그 소문의 시발점이 되었을 1학년.

다시 말해, 1학년 교사진들도 저런 일에 입방아를 찧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야 적극적으로 나서서 소문을 퍼트리진 않았겠지.

그런데, 나는 오늘까지 1학년 교사들 중에서 내게 그런 말을 전달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즉, 잘 해도 방조 수준이라는 뜻인데…….

때문에.

내가 1학년 교사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딱 조금 미안한 정도가 전부였다.

거, 선빵 쳐서 미안하게 됐습니다?

근데 그 쪽들도 내가 몰랐을 뿐 뒤에서 뒷담 깠으면 오히려 선빵은 내가 맞은 거 아닌가?

"흠흠. 그런 이야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하물며, 헌터로서의 실력이 교사로서의 실력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고요."

"그럼 뭐 어쩌려고 했습니까? 나보고 밑도 끝도 없이 기다리라고?"

다른 교사 중 한 명이 중재를 하러 들어왔지만, 나는 그렇게 비아냥거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은근슬쩍 주어를 돌려 말하던 일조차 내가 직접 나서니 애매모호해진 상황.

결국 내게 비아냥을 들은 교사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슬쩍, 다시 한 번 시선을 흘린다.

그러자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는 듯 한숨을 쉬던 비서 양반이, 곧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저 새끼다.'

방금 전.

내 앞으로 난입해 대화를 유야무야 끝내려 한 새끼.

그 새끼가 이번 헛소문 놀음의 주역이었다.

뭐, 그야 그렇겠지.

총대를 매고 앞으로 나선 누군가가 역공받는 지금 이 상황.

집단에 속한 이들에게 자연스레 자제하라는 말을 전할 수 있는 건 우두머리밖에 없으니까.

아니, 이해는 한다.

어째서 이 놈들이 이렇게 허둥지둥대고 있는 건지.

여하간, 놈들도 바보는 아니다.

최소한 내게 시비를 걸려면 내가 어떤 헌터인지 뒷조사 정도는 했겠지.

모르긴 몰라도, 헌터 협회에서 내 기록을 열람하기는 했을 거다.

대놓고 공표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시점에서, 내 헌터 랭크는 이미 S랭크 수준.

당연히 단순한 무력으로 따지면 놈들은 전혀 상대가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친구들이 활동에 나설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요 최근 내 활동 빈도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대중에 공개된 점만 해도 마찬가지.

같은 S랭크를 1년 내에 도대체 몇 번이나 맞닥뜨린 건지.

어느 쪽이든, 설령 S랭크 헌터라 해도 도저히 멀쩡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거기에, 내가 아카데미 교사라는 사실이 더해지면?

놈들 또한 착각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현직 S랭크 헌터가 어째서 아카데미에 몸을 담는단 말인가.

그 시점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생각할 거다.

무언가 부상이 있거나 은퇴를 생각하는 등, 어느 쪽이든 현역으로 나서긴 힘든 사정이 있으리라고.

물론 나는 아카데미에 몸을 담은 이후로도 S랭크 헌터를 최소 세 마리는 썰어죽였다.

허면?

사람들 눈에는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아, 현역 S랭크가 심심해서 아카데미에 눌러앉았다고 여길까?

설마.

비교적 최근에 협회 문을 두드린 내 기록.

그에 따라, 텅 비어있는 전적.

거기에 상당히 맛이 간 최근 실적까지.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내 기록을 보면 이렇게 생각한다.

한계까지 무리하며 뒷세계에서 활약하던 비 인가 헌터.

결국 현실적인 한계를 느끼고 은퇴를 결심한다.

그런 그의 실력을 살리기 위해 협회는 아카데미 교사 자리로 낙점.

이후 얼마 남지 않은 불꽃을 불태워 교사 자리에 앉아 S랭크 몬스터를 처리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비서 양반에게 들은 이야기니 확실하겠지.

허면, 대다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리라.

안 그래도 부상이 쌓여 은퇴를 앞두고 있던 S랭크 헌터.

헌데, 거기서 추가로 심상치 않은 빈도로 고랭크 몬스터를 사냥한다?

'남은 여력을 모조리 쏟아내고 있다.'

그렇게 판단하는 게 현실적이다.

그러니 저렇게 나댈 수 있는 거고.

말하자면, 총대를 맨 양반의 생각을 몇 줄로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확실히 대단한 양반이긴 한데, 이 정도면 진이 빠졌을 때 아닌가?

어떻게 잘 하면 내가 저 입장을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한 가지 유감스러운 점이 있다면, 나는 놈들이 생각하는 평범한 S랭크가 아니었다는 점이고.

더더욱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이런 자리에서 체면 차릴 만큼 나는 아카데미 교사 자리에 연연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아니, 즐겁긴 한데.

반대로 다른 직장인들처럼 여기서 짤리면 뭘로 먹고 사나 하는 걱정 따위는 없으니까.

빡치면 들이받는 것도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지.

제자들이야 뭐 내가 따로 찾아가서 봐주면 되고.

"거, 입 좀 조심들 합시다. 남 이야기라고 가볍게 여기는 모양인데, 나한테는 평생 직장이에요 여기."

"……죄송합니다."

물론 내가 그걸 내 입으로 말할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명분 방패, 남이 쓰면 좆같지만 내가 쓰면 사랑스럽다 이거야.

자연스레 직장이라는 방패를 들이밀며, 놈들을 직장 생활에 상도덕도 없는 일파로 몰아넣는 건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그렇게.

오늘 있었던 체육대회 관련 회의는 흐지부지한 상태로 끝났다.

내게 있어선 최선의 결과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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