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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38화 (238/371)

〈 238화 〉 밑준비

* * *

몇 번 이야기가 나왔듯이, 헌터 아카데미는 결국 조금 형태를 바꾼 사관학교에 가깝다.

비록 교육 대상이 헌터인 탓에 가급적 평범한 교육 또한 병행하곤 있지만.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루기 힘들 만큼 어마어마한 힘이 존재하는 탓에 어쩔 수 없었다.

실제로, 윤리관을 지니지 못한 헌터가 어떤 일을 벌일 수 있는지는 세계 각지에 수많은 선례가 남아 있었으니까.

다만.

그렇다 해도 그 본질은 결국 학생들의 무력을 기르는 일종의 훈련소.

툭 까놓고 말하자면, 소년병 양성소다.

때문에.

평범한 고등학교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의 시간표는 다소 어색한 점이 있다.

교사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면, 타 학교에 비하면 지나칠 정도로 많은 체육 시간.

동시에, 각 학년에 과목마다 한 명이나 있으면 다행인 각 과목 담당 교사들.

그에 비해, 체육 시간은 다르다.

여하간, 체육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하고 있을 뿐 실제로는 헌터로서의 교육을 위해 준비된 수업이었으니까.

하물며 지금은 제대로 된 헌터 교육 커리큘럼도 부족한 상황.

덕분에 현 아카데미 체육 교사진은 고등학교라고 부르기엔 지나칠 정도로 우스운 상황이었다.

사실상 담임 교사가 각 반의 체육 교사 또한 겸하고 있는 실정이니.

단순히 보아도 반 수만큼 존재하는 체육 교사에 더해, 이번으로 정식 임관한 무기술 교사진까지.

헌터 아카데미로서야 어쨌든, 고등학교라는 입장에서 보자면 지나칠 정도로 비대화되지 않았나 싶은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 감상이 바로 평범한 고등학교와 아카데미를 구분짓는 기준이기도 했다.

단순한 교육 시설인 고등학교.

어디까지나 군사 시설의 일환인 헌터 아카데미.

그 차이.

어떤 의미로는 현실적인 격차를 드러내는 과제라고나 해야 할까.

뭐, 그거야 어쨌든.

그런 상황 때문에, 아카데미의 체육 시간은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다.

체단실 등 특수한 시설만 해도 그렇지만, 단순히 모든 반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이 넉넉하질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나칠 정도로 촘촘하게 배치된 아카데미의 체육 시간 수업표를 돌아보면, 지금 눈 앞의 이 광경은 상당히 이상한 사례였다.

헌터 아카데미, 2년차.

그로부터 얼추 3월의 말미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 눈 앞의 광경에는 다른 두 반이 섞여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물론 저번 주 근처 즈음부터 내려온 합동 수업에 대한 공지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이게 무슨 생고생이람."

그런 말을 덧붙이며 투덜대는 늙은이는, 다른 반을 가르치는 교사.

다시 말해, 내 동기였다.

물론 동기라고 해도 연식이 있으니 반말 찍찍 갈길 수 있는 관계는 아니었지만, 나름 편안한 양반인 것도 사실이었다.

다른 게 아니라, 학생들을 가르치는 관점이나 태도가 내 쪽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이 양반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장 우선시해 가르치는 건 생존술.

말 그대로, 주변에 있는 무엇이든 활용해 일단 살아남는 걸 목표로 삼는 기술이다.

백 마리 마수와 공멸한 사냥꾼보다, 한 마리 마수를 백 한 번의 사냥에 걸쳐 사살한 사냥꾼 쪽이 더 우수한 법이다.

눈 앞의 노인 또한 그런 관점을 입에 붙일 듯 달고 다녔다.

필시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일일 테지.

자신의 사지를 희생하며 두 번의 대침공에서 살아남았다는 노장.

현역 시절까지만 해도 나 또한 이름을 알고 있던 헌터였으나, 더 이상 현역 시절처럼 싸울 수 없다는 의료진의 판결 하에 아카데미 교사가 된 양반이기도 했다.

뭐, 노장이라 해도 실제 나이는 얼추 40대 내지 50대.

사실 노인이라 할 만한 부류는 아니었지만, 특유의 노안 때문인지 아니면 너무 고생을 한 탓인지.

눈 앞의 노친네에게선 노인이라 부를 만한 기색이 선명하게 배어나오고 있었다.

"우리들 뿐만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저 젊은 것들이 무슨 생고생인지 모르겠어."

"에이,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하는 법이죠."

"염병. 누가 그래? 또 그딴 책이 유행하고 있나?"

"또라뇨?"

"아니, 내가 아직 대학생일 때에도 그딴 불쏘시개가 유행하곤 했거든."

"복고풍이네."

이 양반이 대학생 때라고 해도, 벌써 20년은 지난 예전 일이다.

대침공 이전 일이니까.

"어쨌든, 마음에 들진 않아."

한숨처럼 그리 말하는 태도 또한 퍽 익숙한 것이었다.

그야 그럴 법도 했다.

이번에 내려온 스케줄 때문에 이래저래 일정을 맞추거나 조정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당연히 거기서 이어진 혼란 따위는 이루 말할 필요도 없고.

그래도 일주일 정도 지나며 어느 정도 형태가 잡히긴 했지만, 그래도 불편한 건 매한가지였다.

더더욱 심각한 건, 이 공문이 해제되고 나면 다시 본래 형태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거고.

모르긴 몰라도, 거의 한 달은 다시 소란스러워지겠지.

어쩌면 반 년, 1학기 내내 어수선하게 지내야 할지도 모르고.

그 사실이 눈 앞의 노인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리라.

"게다가, 애새끼들 쌈박질을 가르쳐서 어따 써? 거 참, 헌터가 사냥꾼이지 주먹질하는 왈패라도 된다 이거야?"

"현장 모르는 양반들이 다 그렇죠 뭐."

그렇게 말하며,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피식 하고 웃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우리가 할 말은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해선 뭐든지 할 줄은 알아야 하니까 주먹질까지 가르치던 양반.

헌터로서 1인분을 하기 위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가르치는 나.

덕분에, 우리 두 반은 이번 공문 속에서도 나름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반이기도 했다.

지금 우리 두 반 사이에 합동 수업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거의 1년 가까이 체술 관련 수업도 병행한 우리 두 반과 다른 반 사이에 있었던 대련.

그 대련 사이에서 상당한 점수 격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교류 수업을 위한 시간표 일정 속에서도 우리 두 반은 마치 한 짝처럼 마주치게 되었다.

뭐, 그야 다른 반 입장에서 보자면 자기 반이 내리 패배하는 것도 보기 좋은 꼴은 아니겠지.

이해할 수는 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지."

탄식처럼, 노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여하간, 잔뼈 굵은 양반들은 대개 알고 있다.

이 합동 수업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러니 자연스레 한숨이 나올 법도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

헌터로서의 교육.

동시에, 그 힘을 제어하기 위한 인성 교육.

그런 걸 골자로 밀어붙이고 있는 아카데미 수업과는 영 형편에 맞질 않는 일이었다.

것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간을 상대로 할 줄 아는 헌터와 할 수 없는 헌터.

개인으로서야 어쨌든, 국가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더 안전한 건 후자니까.

말하자면, 이번 협동 수업은 상층부 입장에서 보자면 완전히 헛물을 켜고 있는 셈이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네 쪽 말이다."

"아, 들었습니까?"

"어떻게 안 듣냐? 그렇게 소문이 횡횡한데."

그렇게 말하니 확실히 심각한 게 느껴졌다.

그래도 이래저래 끄나풀이 있는 나와는 달리, 눈 앞의 늙은이는 정말로 노장이고 무골이다.

다시 말해, 그런 입담에 얽힐 여지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런 늙은이가 나와 관련된 소문을 들을 정도라면, 소문이 지나칠 정도로 무르익었다는 뜻이겠지.

……그 날.

예의 비서 양반에게 여러모로 부탁을 한 이후로도, 소문은 가라앉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딱히 소문을 가라앉히려고 한 적은 없으니까.

애초에 이런 부류의 소문은 억지로 누른다고 해서 사라질 만한 부류의 물건이 아니다.

도리어 점차 타오르겠지.

실력 없는 놈이 힘으로 소문을 잠재우려 한다는 식으로.

때문에, 처음부터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이 소문을 처음 퍼트린 녀석이 무얼 노리고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게 있어 해결책은 딱 하나, 정공법.

놈이 퍼트리는 소문을 정면에서 쳐부술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결론짓고 있었으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오히려 여태까지 별다른 입질이 없다는 거겠지.

단순히 녀석이 내게 시비를 걸려는 것 뿐이라면 진즉에 행동을 나섰을 거다.

보다 본격적으로 선동에 나서려 한다던가.

그렇지 않으면, 무언가 개인적인 접선이 있다던가.

그렇지만.

여태까지 상대 쪽에서는 어떠한 행동도 없었다.

나로서도 조금 김이 빠질 정도로.

허나.

당연한 이야기로, 나 또한 알고 있었다.

지금 이건 어디까지나 폭풍 전의 고요함이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 이 시점까지 별다른 접촉이 없었다는 건, 녀석의 목적 또한 어느 정도 좁힐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조심해라, 인마. 모르긴 몰라도, 소문 기세가 심상치를 않아."

"그래요?"

"그래. 너랑 뛰어본 놈, 그리고 2학년 양반들은 괜찮아. 그런데 1학년 선생들 사이에서는 네 이미지가 완전……."

무어라 말하기도 힘든 듯 입을 다무는 양반.

그 말에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거 참, 살아생전 한 번 본 적도 없는 양반들 사이에서 이게 무슨 꼴인지.

익숙하다면 익숙한 일이었지만, 언제 봐도 웃긴 이야기이기는 했다.

"어쩌면 다음 교무진 회의에서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르고."

"이야기요?"

"그래. 특히, 최근 행사도 가깝잖냐."

행사라.

그 말에 나는 턱밑을 쓰다듬었다.

"뭐,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너라면 걱정이 안 되게 생겼냐?"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아무리 그래도, 그 행사를 노리고 그 놈이 쿠사리를 거는 걸 기다리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는 노릇.

나로서는 그 말에 능청스레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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