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7화 〉 교류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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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나를 담가버리면 이득이 생기는 건 누구일까?
만약 누군가에게 그리 물으면 십중팔구는 그렇게 대답하리라.
동기라고.
다시 말해, 내게 있어선 같은 학년 담임 선생들이 되겠지.
다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뭐 남들보다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나서 자신할 수 있었던 건 아니고, 그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 직장 내에서 동기들이 서로 찧고 까부는 건 자리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
요컨대 동기가 곧 자신의 친구이자 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좁아터진 아카데미에선 그럴 일이 없었다.
여하간, 따로 승진할 만한 자리도 없고.
헌터 아카데미가 문을 열길 고작해야 1년.
벌써부터 교감 자리 운운할 만한 시점은 아니었다.
하물며, 교사 자리가 위태로울 만한 상황은 더더욱.
오히려 반대.
당장 2학년 학급 중에선 교사 자리가 비어버린 경우도 있지 않았던가.
예의 초대형 게이트가 모습을 드러낸 게 고작해야 반 년 전 이야기.
사람이 없으면 없을지언정 교사 자리가 부족할 상황은 아니었다.
애초에, 만약 드잡이질을 벌일 예정이었다면 이제 와서 그럴 이유가 세상 어디 있겠는가.
막말로, 나를 보내버릴 기회는 작년 쪽이 더 많았다.
혼인회부터 시작해 온갖 평지풍파가 다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럴 때마다 같은 처지에 있던 교사들은 오히려 내 처지를 동정했다.
힘내라는 식으로 어깨를 두들기던 양반들도 있었으니.
적어도 나로서는 그들을 의심하기 힘들었다.
헌터 아카데미 프로젝트.
개중에서도 아카데미의 존망이 달린 1기 교직원들은 최승준의 검수를 거친 진짜배기 사냥꾼들이었기에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일정하진 않은 법.
단순히 이번에 있었던 교류 수업 때문에 화가 난 교사 중 한 명이 손을 썼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런 가정에 가정을 덧대는 대신 차라리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이 일을 치렀다는 편이 더 그럴싸하지 않겠는가?
이유 또한 여럿은 생각할 수 있었다.
직장에서 서로 맞붙는 건 동기들 뿐만이 아니니까.
동기들 사이의 싸움 다음으로 직장 내의 내분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후배들로부터 시작되는 역습.
다시 말해 하극상이다.
이유는 물론 여럿이 있다.
가장 흔한 건 역시 동기들 사이의 싸움처럼 제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이겠지.
그렇지만.
헌터 아카데미에 더 높이 올라갈 만한 자리는 없다.
이제 막 교직에 들어선 1학년 교사들.
거기에 그조차 한 자리는 류인형의 빈틈을 메꾸기 위해 대충 뗌빵으로 처리했을 정도로 성의없는 게 1학년 교사진들이다.
당연히 벌써부터 교감 운운할 처지는 아니었다.
다만, 이유는 이해할 수 있었다.
자리라는 건 단순한 직책만 있는 게 아니니까.
직장이라는 하나의 커뮤니티 내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위상.
단순히 취미가 일치해 만나기 시작한 클럽에서도, 그런 의자 빼앗기는 일어나기 마련이다.
특히나 이번 기수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최승준은 류인형을 날려버린 내 행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금방 제 비서로 그 빈 자리를 떼웠다.
언뜻 보면 성의없기까지 한 일처리.
그렇지만 그런 행동의 근간에는 역시 현 1학년이 있었다.
초대형 게이트 발생으로 말미암아, 기묘할 정도로 늘어난 신입생.
그런 그들을 소화할 만한 역량은, 이 헌터 아카데미도 아직 갖추지 못했다.
다시 말하자면, 설령 최승준이라 해도 급격히 불어난 1학년 측 인선을 완전히 감당할 수는 없었단 뜻이다.
교직원 중에 류인형같은 뚜쟁이가 있고, 그런 뚜쟁이 하나를 갈아치우는 데에도 별다른 여유가 없었듯이.
당연한 일이었다.
집단의 덩치가 커지면 커질수록, 자연스레 쭉정이도 섞일 수밖에 없기 마련.
말하자면 이번 일은 딱 그 정도 사안이었다.
사실, 그럴 법도 했다.
단순히 아카데미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싶은 건지, 그렇지 않으면 청운의 꿈이라도 꾼 건지.
어느 쪽이든, 이런 식의 협잡질에서 나는 불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별다른 경력 하나 없이 제일 유명한 학생들을 슬하에 두고 있는 헌터.
심지어 요 최근 불온한 소문이 감돌고 있기까지 하는 담임 교사.
그야 곤란할 수밖에.
때 아닌 정의감으로 불타는 이상한 양반들이 있어도 이상하진 않다.
물론 별 근거 없는 선동으로 남을 몰아가려 한 이상 동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서 나를 찾아왔다구요?"
"응."
그런 이유로, 티아마트와 작파한 나는 이번 일에 더 도움이 될 만한 인간을 찾아왔다.
무엇을 숨기랴, 우리 헌터 아카데미 교장 최승준 선생의 직할 비서.
동시에 지금은 급하게 짤린 류인형 대신 1학년 교실 중 하나를 맡고 있는 양반이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현역 시절부터 자주 투닥거리긴 했는데, 딱 최승준 사이드킥 수준이라…….
물론 이런 말을 면전에서 할 수는 없었다.
비록 눈 앞의 계집애가 열정적인 최승준의 신도라는 건 알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 양심이라는 게 있지.
도와달라면서 사실 내 기억 속에 너는 최승준 보조 아이템이나 다름없었다는 말을 구태여 할 필요는 또 없으리라.
어쨌든, 나로서는 필요한 도움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1학년 쪽 사정까지 제대로 알 수는 없으니까.
당연한 이야기였다.
애초부터 나는 몬스터가 상대가 아니라면 딱히 정보전 따위에서 우위를 점한 적도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 관심도 없고.
막말로 내가 1학년 학생들이랑 접할 기회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동아리?
그조차 아직은 시작도 하지 않았고, 1학년 학생들이 2학년 담임 교사 동아리에 들어올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다.
어느 쪽이든, 비벼 볼 건덕지도 없다는 뜻이었다.
때문에.
만에 하나 이 소문이 내 눈을 피해 아카데미 내부로 퍼진 거라면, 그 시작은 1학년 측일 가능성이 높다.
"일단, 소문 자체는 돌고 있어요."
"아,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듯 토로하는 비서 양반.
그 말에서 나는 나름의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여하간, 내가 1학년 측과 접촉할 여지가 없다는 건 말했다시피.
그렇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1학년 측에서도 내게 접촉할 여지는 없다.
그런데도 1학년 측에 내 소문이 퍼지고 있다는 건 다소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경위다.
아니, 저번에 있었던 예은이 관련 사건이라면 말도 안 해요.
2학년 교류 수업 중에 어떤 반이 우세했다더라 하는 점을 1학년에서 왜 신경을 쓴단 말인가?
막말로 저런 일이 있었으면 1학년들이 신경 써야 할 건 이번에 두각을 드러낸 학생들.
다시 말해, 정필연같은 부류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류 수업 직후부터 아카데미 전체에 나와 관련된 일련의 악평이 퍼지고 있다?
누군가의 의도가 없다면 오히려 그게 더 놀라울 일이었다.
"어쩌다가 그런 소문이 돌게 된 건지."
"글쎄? 내가 옛날부터 적이 많긴 했지."
"아니, 그건 대부분 당신이 자처한 거잖아요."
"씨발년아."
"왜요, 제가 틀린 말 했나요?"
저 한 마디 말에 반박하기 위한 수백 가지 말을 끌어내는 대신, 나는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뭐, 도와준다면 이 쪽이야 편하긴 한데…….
물론 저 쪽으로서는 나에 대한 호의 따위가 아니라 최승준의 정원인 아카데미에 누군가 분탕칠을 치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거겠지만.
어쨌든 도움은 도움.
써먹을 수 있다면 써먹어야 한다.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즉, 어디까지 할 것인가?
다시 말해, 이번 일의 배후를 찾으면 어떻게 처리할 건지.
바로 그 부분이다.
당장 눈 앞의 이 여자가 상상 이상으로 손쉽게 도움을 약속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겠지.
여하간, 류인형 때와는 다르다.
그 때는 아카데미가 다시 문을 열기 직전이었으니까.
하물며, 대체할 인력도 드물다.
최승준의 비서까지 현장에서 뛰고 있어야 할 정도니.
여러모로 짜증난다는 이유만 들고서 이번 사건의 막후를 쫓아내는 건 꽤나 힘들겠지.
애초에 그러고 싶지도 않고.
당장 지금까지 한 일은 딱 귀여운 수준 아닌가.
비록 듣다 보면 빡치긴 했지만.
그러니, 눈 앞의 여자가 걱정하듯 내 마음에 안 드니까 당장 그 놈 쫓아내라고 강짜를 부릴 생각은 없었다.
일단은.
아니, 사람이 어떻게 미래 일을 확신할 수 있겠나.
갑자기 엄청 빡치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뭐.
거기까지 생각하자, 그제서야 생각이 미쳤다.
확실히 이번 일의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
어디까지 하느냐다.
다만.
정말로 중요한 건 내 쪽이 아니다.
상대가 어디까지 할 생각인가 하는 점이 중요한 이야기다.
일단 나만 해도 상대 교사를 직장에서 쫓아낼 생각은 안 하고 있고.
허면, 상대 쪽에서도 나를 아카데미에서 쫓아내겠다느니 하는 막장 생각까진 안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것보다, 그럴 만한 능력이나 연줄도 없을 테고.
그럼?
지금 이 사건을 어찌저찌 해결한다 해도, 그 놈과 나는 같은 직장에 다닐 공산이 컸다.
나야 뭐 일방적으로 얻어맞은 피해자 쪽이고, 잘 되면 따까리 하나 생긴다는 느낌으로 지나간다 치자.
단지.
상대 쪽은?
자기 직장 선배, 하물며 경쟁 관계도 아닌 양반을 들이받아서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
내 이직을 노려볼 수도 없고, 자기가 치고 올라갈 만한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아카데미라는 커뮤니티 내에서 입지를 다지려 한다 해도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만약 이번 사건이 정말로 1학년 쪽에서 시작된 일이라면?
'왜 굳이 나를?'
입지, 입장을 다질 거라면 당장 1학년 쪽 교사진부터 먼저 다지는 게 더 확실하지 않나?
막말로, 절대 불변할 입지를 가진 교장 애인도 같은 학년에서 교사 자리로 뛰고 있는 판국이니까.
그런데도 나를 건드렸다?
어, 왜?
어차피 앞으로 계속 얼굴 보고 살 처지인데?
분위기만 거북해질 뿐 아닌가, 이거?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이 자식, 목적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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