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36화 (236/371)

〈 236화 〉 교류 수업

* * *

말이야 그렇게 하긴 했지만, 사실 우리 반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나쁜 흐름은 아니었다.

그야 내 수업의 모토는 무엇이든 두루두루 할 수 있는 헌터를 기르는 것.

다시 말해,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는 것이다.

맨손 격투. 무기 사용.

혹은, 특정 조건이나 상황 내에서의 전투법.

어느 쪽이든, 적당한 수준으로는 할 줄 알았으니까.

그리고 여기는 헌터 아카데미.

당연히 나같은 부류가 아니면 대인전 훈련 따위는 시키지도 않는다.

덕분에, 첫 교류 수업에서 우리 반은 최고점을 받았다.

나쁘지 않은 결과였고, 사실 속을 들여다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내 입장에서 봐도 마찬가지였다.

단순 지식. 기초 능력 단련. 게이트 및 던전 체험.

거기에 대인전 경험까지.

어느 쪽이든, 내 수업에 있어선 도움이 되면 되는 일이었지 나쁜 경험은 아니었으니까.

비록 그 시작이 지레 겁을 집어먹은 상층부의 의도였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뭐, 겁을 먹는 수준에서 끝나는 게 어디인가.

아카데미에 정치를 끌고 왔다.

본인들의 안위만 생각했다.

그렇게 말하면 실제로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학생들에겐 뼈가 되고 살이 될 경험이다.

여하간, 대침공이 발생할 경우 가장 먼저 적대하는 건 사람이기 마련이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었으니까.

게다가.

겁을 먹었다는 건, 적어도 대침공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뜻.

제 손으로 대침공을 불러 일으키려는 미친 놈들보다는 훨씬 나았다.

허나.

세상 일이라는 게 그토록 쉽게 흘러갈 수는 없는 법.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고생에게 손을 댔다는 식의 추문이 있었던 나.

그런 내게 바로 얼마 전부터 다른 소문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현재 아카데미 2학년 학생들 중 가장 실력 좋은 건 A반이라고 한다.

그러나, 거기서 두각을 드러내는 건 어디까지나 입학 전부터 실력이 좋았던 학생들 뿐.

다시 말해, 교사가 아닌 학생들이 잘났을 뿐이고 담임은 오히려 거기에 기생하고 있을 따름이라고…….

"죽여버린다!!"

"보, 본인한테 왜 그러느냐?! 본인은 그저 들은 말을 옮겼을 뿐이니라!!"

그런 내 분노를 듣고, 티아마트는 억울하다는 듯이 외쳤다.

하긴, 억울할 듯도 싶었다.

내가 티아마트를 죽여버리고 싶은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으니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딱히 이번 일이 없었더라도 티아마트는 언제든지 죽여버리고 싶었다.

교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동아리 부실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개학이 시작된 이후 동아리가 본격적으로 돌아가려면 아직 꽤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1학년들의 숫자에 맞추어 동아리를 분배한다.

거기에, 기초 세 동아리를 담당하고 있던 교생들의 수업 시간을 안배한다.

본격적으로 동아리가 돌아가기 시작하는 건 최소 한 달은 필요하리라.

덕분에, 현재 2학년 A반 담임 박우찬 이름으로 할애된 이 동아리실은 텅 비어 있었다.

본래라면 그 틈을 이용해 우리 꼬마들의 소일거리 장소로 활용되었을 테지만, 요 최근은 그럴 기미도 없었다.

당당하게 제 입장을 밝힌 예은이.

그 뒤통수를 갈긴 하연이.

그리고 예은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안이 벙벙할 지희와 윤하.

어느 쪽이든, 당장에 이 곳에서 노가리를 까기엔 다소 힘들 구성이었다.

덕분에 지금 이 장소는 나와 티아마트가 점거하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어제오늘 사이 나를 보고 쑥덕거리는 시선에 조금 의아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졸지에 때 아닌 첩자 노릇을 맡게 된 여신으로서는 당황스러울 따름이었으리라.

뭐, 정작 본인은 재밌었던 모양이지만.

이런 대우로 괜찮은 걸까?

아예 마스크를 쓰고 있는 내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그런 나조차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덕분에 티아마트가 모아온 정보를 기준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요즘 아카데미 내에서 내 입지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쉬는 시간 도중 여고생과 입을 맞춘 교사의 이미지가 좋다면 오히려 그 사회를 의심해봐야 할 지경일 테니.

그렇지만.

그 틈을 타 나에 대한 완전히 별도의 소문이 흐르는 건 별개였다.

가라사대, 박우찬은 능력 없는 교사다.

실제로는 제대로 된 경력 하나 없는 퇴역 헌터.

변변찮은 실력의 사냥꾼이 은퇴한 뒤 아카데미에 기생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거기까지는 별로 상관 없었다.

애초에 그런 일에 신경쓰기엔 본래 내가 가지고 있던 악명 쪽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아니, 여고생 운운하는 쪽 말고.

현역 시절 쪽.

그렇지만.

"아니, 걔들이 내 덕을 본 거야!!"

뭐?

현 2학년 A반에는 우등생들만 있다?

어디까지나 학생들 덕을 보고 있을 뿐, 교사로서의 실적은 별로?

단순히 교장인 최승준 쪽이 밀어주고 있을 뿐?

염병할, 우등생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 계집애들이 작년 내내 일으킨 소란 중 하나만 없었어도 내 평균 수명이 늘어났을 거다!!

"누, 누가 뭐라고 했느냐?"

"뭐라고 하긴 했지."

이 녀석이 한 건 아니지만.

억지로 화를 가라앉힌다.

하필이면 눈 앞에 정말로 화를 냈다간 사생결단을 내야 할 녀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정말로 억울한 부분이었다.

아니, 그래.

내가 평판에 완전히 초탈한 성격은 아니라 이거야.

하지만 내 말도 틀린 건 아니다.

내가 그 녀석들 덕을 봤다니?

그야 재능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

그래도 고작해야 D랭크, 제 분야에 한해 C랭크 수준이었던 녀석들이 아닌가.

무슨 웹소설 속 아카데미도 아니고, 그 정도 앞서나가는 건 제대로 된 지식 앞에선 별다른 도움도 되지 않는다.

애초에 나는 알고 있었다.

2학년 A반에 실력 괜찮은 녀석들이 모인 건 실력 순으로 뽑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최승준 그 개자식이 나한테 좆같은 사춘기 친구들을 일방적으로 짬때렸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 소문 속에서처럼 내가 평범하다 못해 무능하기 짝이 없는 사냥꾼이었다면?

대기업의 후계자. 재계의 귀공자. 엄동설한.

듣기만 해도 부끄러운 별명 한가득인 현직 S랭크 헌터, 최승준이 구태여 나를 밀어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만에 하나 놈이 나를 밀어주었다면 그 이유는 하나.

헌터 아카데미의 교장으로서 합당한 판단을 내렸을 때 뿐이다.

놈은 이런 일에 개인적인 사정을 두는 타입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말이야 그렇게 했어도, 나 또한 알고 있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

최승준 즈음이나 되는 놈이 일개 능력 없는 헌터에게 손을 내밀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소문이라는 건 세간의 정합성이나 합리적인 이유가 맞아떨어져 퍼지는 게 아니다.

재밌으니까 퍼지는 거다.

최승준이라는 거물이 고작해야 일개 헌터에게 그럴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그런 건 최승준과 결탁한 무능 헌터라는 설명이 가진 압도적인 흥미로움 앞에 불티가 되어 사라질 뿐이었다.

다른 사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저토록 실력 좋은 학생들이 한 반에 모여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건이 나이대 헌터 지망생들에게 헛바람이 들 만한 이유는딱 하나.

도토리 키재기 수준이라고는 해도 나름 실력 괜찮다는 소리를 듣고 산 경험 덕분에 어른들의 말이 귀에 들리질 않기 때문이다.

즉, 실력이 괜찮은 녀석들이 모인 게 아니다.

성격 꼬인 놈들을 모으니 대다수가 실력 좀 있다고 헛바람 좀 들어간 녀석들이었을 뿐이다.

덕분에 나 또한 녀석들의 귀를 여는 데에 정말 온갖 고생을 다 했다.

학생들 앞에서 원숭이처럼 대련을 해주질 않나.

네 신경줄 태워먹을 일 있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눈이 돌아가서 내기를 하게 되질 않나.

어찌저찌 잘 처리했다 싶었더니 이번엔 수업이 마음에 안 든다고 탈주를 하는 녀석이 있질 않나.

심지어 자기 조직과 아카데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맹랑한 꼬마도 있었다!

그런데 그걸 하나하나 다 해결해주고 있으니, 뭐?

내가 그 놈들 덕을 봤다고?

"끄와아아악!!"

"끄아아아악!!"

나도 모르게 교탁을 뒤집고 말았다.

붕 떠서 날아가는 탁자를 보며 비명을 지르는 티아마트.

동시에 적절하게 뻗은 손이 천장을 뚫고 옥상까지 날아가려는 교탁을 붙잡아 다시 내려놓는다.

"……화는 좀 풀렸느냐?"

"조금은."

정말로 조금이었다.

씨근거리는 머리를 쥐며, 나는 더운 한숨을 토했다.

대략적인 상황은 이해가 갔다.

아무래도 이번에 있었던 일이 꼬투리 잡기 퍽 좋게 느껴졌던 모양이지.

도대체 누가 범인인지는 몰라도, 그야 이런 말이 나올 법도 했다.

확실히 서류 상으로 보기에 나만큼 수상쩍은 녀석이 없으니.

어쩌면 때 아닌 정의로운 마음에 불타 저지른 일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당사자로서는 도저히 그렇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동시에 생각했다.

'씨발, 그러니까 진즉에 바꾸자니까.'

아카데미의 학급 분류법.

이번 프로젝트에 줄을 대고 있는 양반들의 요구대로, 학생들의 초기 실력이나 평판 위주 분류.

거기에 최승준이 담당하는 교사나 학생들의 사정을 보고 임의로 추가 조정한다.

이런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하는데 당연히 잡음이 안 나올 수가 있나.

애초에 지금은 제대로 된 교육법도 정립되지 않은 시점.

정말로 성적 순으로 학급을 나눈다 해도 그에 어울리는 고등 교육을 베풀 수도 없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떤 게 고등 교육인지도 알 수 없으니.

지금이라도 학생들의 전법에 따라 반을 분류하는 게 좋지 않을까.

여러 가지 사정. 정치적 필요성.

그런 건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우찬은 다시 한 번 그렇게 생각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