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3화 〉 뒷수습
* * *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화풀이.
뒷골목에서 힘 좀 쓰던 불량배들이 단번에 쓸려나갔다거나, 난민들이 머무르던 장소에서 발생한 마력 폭발이라던가.
어느 쪽이든, 매스컴에서 크게 화제가 되지는 않았다.
설령 그 뒤에 두 마리나 되는 A+랭크 몬스터가 있었고 인류 최강이 나타났다 한들 마찬가지였다.
새벽녘에 잠든 도시가 서광 속에서 움트고 있는 사이, 대다수 사람들은언제나와 같은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야 어쨌든, 이준구는 현직 국회의원이고.
정필연까지 가면 애초에 미성년자다.
결국 우리들은 그대로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정필연은 다친 몸을 이끌고 귀가했고, 마지막까지 기다리던 이준구 또한 시간이 되어 떠난 지금.
"일어났냐?"
"……선생님?"
아침 여섯 시.
마침내 눈을 뜬 예은이를 맞이할 수 있었던 건 나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내게 집 열쇠를 맡기고 떠난 이준구.
덕분에 예은이는 본인의 침대 위에서 눈을 뜰 수 있었다.
나를 보고도 크게 당황하지 않은 건 바로 그 때문이겠지.
환경의 차이란 그토록 큰 법이다.
특히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정신을 지배하는 악마의 손아귀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다면 더더욱.
"그래서?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니?"
"네?"
아야야, 하는 소리를 내면서 이마에 손을 짚는 이예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마력이 깃들었던 탓이리라.
한 마디로 말해서, 불만의 마신이 깃들었던 반동이다.
그런 그녀를 향해, 나는 조용히 물음을 던졌다.
정신 지배에 당했던 만큼,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예은이의 몸에서 마력의 흔적이 느껴지진 않는다.
하지만.
마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사람을 조종할 수는 있다.
물론 류인형처럼 인격 성형까지 가기엔 아무래도 시간이 없었지만, 당장 예은이만 해도 그렇지 않았던가.
바로 어제.
반 한 가운데에서 일을 낸 예은이에게선 마신의 마력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신의 말에 의하면, 단순히 예은이 본인이 본래부터 품고 있던 불만을 증폭시켰을 뿐.
어디까지나 예은이의 선택이었다는 모양이지만…….
솔직히 믿기는 힘들다.
내 마음 속에서 예은이는 어디까지나 반듯한 모범생이었기 때문이다.
혹은, 그런 식으로 남아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왜냐하면.
"……기억?"
그런 식으로 중얼거리던 예은이의 얼굴이, 다음 순간 완전히 빨갛게 달아올랐던 탓이다.
짧은 침묵.
예은이와 내 시선이 마주친다.
맑디 맑은 하늘색 눈동자에, 마신이 깃들었을 당시와 같은 미혹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에 지진이 일어나면 이러할까 싶을 정도로 파르르 떨리는 동공.
결국 예은이는 내 시선을 피하며 제 얼굴을 양 손바닥에 묻었다.
진짜냐.
"설마, 다 기억하고 있는 거니?"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제발, 하느님.
그렇게 내심 기도하던 내가 무색하게도, 예은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푸욱 하고 무심코 한숨이 새고 말았다.
"씨발."
흠칫, 예은이가 놀라 어깨를 떨었다.
아니, 좋은 행동이 아닌 건 사실이지만.
나 또한 예은이처럼 이마에 손을 짚었다.
"……그래. 기억에 문제는 없다고?"
"네, 네. 그게, 어제 낮부터 지금까지."
"스톱."
어제 낮.
즉,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가장 돌발 행동에 가까웠던 그 부분까지 기억이 난다고 하면, 그야 다른 부분도 기억이 날 테지.
나로서도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어색한 분위기가 우리 둘 사이에 자리를 잡는다.
사태는 끝났다.
상황은 수습됐다.
문제는 없었고, 이번에 새로 모습을 드러낸 마신에 대해 상의하려면 오히려 당장 자리를 떠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일어나기 힘들었다.
더 이상 용무는 없는데도.
그런 상황이 있다.
이유는 여럿.
예를 들면, 무언가 멋쩍은 분위기가 되어서.
혹은, 이대로 떠나도 괜찮은 건지 알 수가 없어서.
그리고 이번처럼 무언가 상대 쪽에서 할 말이 남은 듯해서.
그럴 때마다, 사람들 사이엔 미묘한 침묵이 자리잡는 법이었다.
"묻진 않으세요?"
"뭘?"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예은이는 내게 간신히 그렇게 물었다.
물론 내가 할 말은 하나 뿐이었다.
그 모습에 비죽 하고 입을 내미는 예은이.
곧 폭포수처럼 말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쌓아둔 이야기가 많았던 건지, 아니면 단순히 무안한 걸 무마하기 위해서인지.
"저, 딱히 조종당한 게 아니에요."
"알아."
"그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렇다고 했었지."
"선생님!"
"예은아."
다만.
어느 쪽이든, 내가 돌려줄 수 있는 말은 동일했다.
"알고 있잖니."
내 한 마디에, 예은이는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뭐, 그렇지.
당시 예은이는 마신에게 조종당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다시 말해, 그 날 예은이의 행동엔 어느 정도 본심이 담겨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예은이 또한 알고 있었으리라.
최소한 짐작은 하고 있었겠지.
개학 직후.
지희를 포함한 친구들이 어째서 그토록 험악한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겠는가.
아니, 애초에.
불만의 마신이 건드린 건 어디까지나 사람의 마음에 잠든 미혹 뿐.
허면, 당시 예은이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서 불안을 품었는가.
어떤 불만을 품은 끝에, 그런 행동을 저지른 것인가.
단순한 투정인지, 그렇지 않으면 친구들의 반응을 보고 상황을 짐작한 끝에 내심 불안하기라도 했던 건지.
어느 쪽이든, 내가 알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다만.
예은이는 충분히 알고 있겠지.
그리고.
그런 만큼, 예은이가 그런 말을 한들 내 대답 또한 바뀌지 않으리라는 점 또한 능히 짐작하고 있으리라.
그러므로, 내가 달리 할 말은 없었다.
만일 예은이가 마신의 술책에 놀아나 정신이 나가버린 게 아니었다 한들, 내 대답은 마찬가지였으니까.
다시 한 번, 우리들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이 어색한 침묵.
벌써 몇 번이나 맛보고 있는 물건이었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를 않는다.
여기에 훌쩍거리는 소리까지 더해지면 정말 최악인데.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조금 너무하다 싶은 말이긴 했다.
"그런가요?"
때문에.
다음 순간, 예은이의 목소리에 알 듯 모를 듯한 활기가 돌아온 것을 듣고 나는 조금 당황했다.
응?
"과연. 혹시나 했지만, 역시 그렇게 된 거였네요. 더러운 배신자들 같으니라고."
"응? 예은아?"
"네?"
"어, 내 말 제대로 이해한 거 맞지?"
"그럼요."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예은이의 모습에 따라, 화사한 빛깔로 금발이 반짝였다.
내 입으로 말하기도 조금 그렇지만, 너도 찰 거라는 말을 들은 여고생다운 태도라고는 농담으로도 말할 수 없었다.
"이유도 대충 짐작이 가니까요."
"그, 그러니?"
"십중팔구 위험한 직업이니까, 자신은 그렇게 재주 좋은 사람이 아니니까. 뭐, 그런 이유일 테죠."
"어, 어어."
뭐지?
내가 그렇게 알기 쉬운 성격이던가?
십중팔구라는 말처럼, 정말로 80% 가량은 정답이었다.
"그런 사정이라면 저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어쩔 수 없죠."
"그럼?"
"그렇지만, 제가 좋아하는 건 상관 없잖아요?"
"응?"
어라?
그게 그렇게 되나?
너무나도 확신에 찬 어조로 그리 말하는 예은이의 말에 당사자인 나조차 조금 설득당할 뻔했다.
"아니, 예은아?"
"아아, 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이 뭐라고 말씀하셔도 안 들을 거거든요."
"그, 그래?"
"네. 아무리 선생님이라 하셔도 제 마음에 뭐라고 하실 권리는 없으시잖아요?"
"어, 그렇게 들으면 그렇긴 하네……."
할 말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어리벙벙한 표정을 짓고 만다.
그야 그렇긴 하지.
애초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 해 봐야, 이런 사정이 있으니 네 마음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말 정도.
그 외에는, 네 청춘을 그런 식으로 낭비하진 말라는 상식적인 조언 뿐이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예은이는 일언지하로 내의 의견을 잘라 부정했다.
"쓸데없는 말이에요."
"응?"
"어차피 네 시간이 아깝다, 다른 남자친구를 사귀다 보면 생각이 바뀔 거다. 뭐, 그런 말씀 하실 거잖아요."
"그렇긴 한데."
"상관 없어요, 그런 건. 어차피 전 여태까지 남자친구 한 명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짐짓 자랑스럽게 가슴을 앞으로 내미는 예은이.
내가 듣기로는 도저히 자랑스러울 행동이 아니긴 했지만, 아무튼 예은이는 그게 자랑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다른 남자친구를 만나보라고 말씀하셔도 곤란할 뿐이에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동시에.
문득 불만의 마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예은이의 본심을 알게 되면 까무라칠 거라고 했던가.
과연 면전에서 저런 말을 들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 그래.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내가 뭐라고 할 수는 없겠지. 응."
"다행이네요."
"그래도, 이제 그런 일은 하지 마. 선생님도 당황스럽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딱 그 정도였다.
아니,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아무리 그래도 다른 사람보고 나를 좋아해라 좋아하지 말라 하고 명령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본인이 저렇게 나오면 나로서도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로?"
"네. 저도 여자애니까요."
도저히 신용할 수 없는 발언.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며 제 머리카락 사이로 얼굴을 파묻는 예은이.
동시에, 그 너머로 작게 웅얼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음엔 직접 해주실 때까지 기다릴게요."
……그렇게 말하며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가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말이지.
무어라 강하게 권고하기는커녕, 나 자신도 그런 말을 할 마음이 사라져버리는 탓에 나로서는 시선을 돌리는 게 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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