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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32화 (232/371)

〈 232화 〉 연장전

* * *

정필연은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나 그를 기습한 이예은.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등장한 이준구.

하늘을 찢어가르는 우레와 함께 나타난 영웅의 모습은 본디 그녀를 단순한 동급생…….

솔직히 말하자면, 뒤통수를 맞은 이후부터는 정신 나간 계집애라 생각하고 있던 정필연에게도 인상적이었다.

생각해 보면 저 계집애는 이 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영웅의 여동생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다만.

'도대체 무슨 일이지?'

상황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했다.

어, 뭐지?

그래서 저 계집애는 왜 내 뒤통수를 때린 거지?

영웅 나리는 왜 여기에 있는 거고?

혹시 가족 싸움이라도 벌인 건가?

바보같은 이야기였지만, 돌연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필연의 오해 아닌 오해가 풀린 건 바로 그 다음 순간이었다.

담임 교사와 보호자, 그리고 학생.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는 트라이앵글 사이로 다른 한 사람이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림자가 그대로 두 발로 일어선 듯한 저 무언가를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면.

그리고.

두 발로 걷는 그림자.

사람의 형체를 어설프게 모방한 듯한, 질량 없는 찰흙 인형.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는 그 무언가는, 바로 악마였다.

설마 했던 사실.

허나, 확신했다.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 장소를 장악하고 있던 악마의 마력.

그와 흡사하면서도 한층 더 눅진한 무언가가 그 존재로부터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정필연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들은 이예은의 보호자인 이준구에게도 사정을 설명했다.

설명했다고 해도 단순한 문자 메세지에 지나지 않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무례하지 않나 싶긴 했지만, 담임인 박우찬은 부득불 그걸로 충분하다 우겼다.

어쨌든.

그렇게 시작된 토벌 끝에, 박우찬은 악마를 쓰러뜨렸다.

그리고.

이예은 저 계집애는 처음부터 악마에게 빙의당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래서 퇴치당한 악마가 그대로 이예은의 몸을 점거해 역습.

하필이면 자신의 뒤통수를 때린 상황에서 강습당한 게 지금 이 상황이었다.

……그야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지만.

지금 자신이 공격당한 건 차라리 다행이라 해야 하겠지.

담임이 무력화되는 쪽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생각할 수만은 없는 게 또 사람 마음인 법이다.

물론 정필연은 알지 못했다.

이예은의 몸을 점거한 마신이 구태여 정필연을 공격한 건 단순히 그릇인 이예은의 감정 때문.

다시 말해, 박우찬에 대한 감정 운운하기 이전에 자신 앞에서 매번 은근슬쩍 여자친구 자랑을 하던 정필연이 짜증났던 탓이라는 것을.

뭐, 어쨌든.

정필연이 그런 식으로 내심을 삭이는 사이, 어느덧 상황은 움직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했던 게 무색하게도, 갑자기 나타난 악마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명.

그 모습에 의아함을 느끼기도 잠시.

곧 정필연은 풀썩 하고 쓰러지는 이예은의 모습을 발견했다.

동시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 몸을 지배하고 있던 악마의 마력이 사라졌다는 것도.

……과연.

그제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방금까지 오가던 건 필시 협상이었으리라.

예의 악마로부터 이예은의 몸을 돌려받기 위한.

그야 어쩔 수 없었겠지.

어째서 몬스터를 앞에 두고 칼이 아닌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과연 저런 사정이 있다면 무어라 말할 수도 없으리라.

여하간, 정필연은 알고 있었다.

헌터들이 몬스터를 사냥하는 건 단순히 몬스터가 밉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그러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런 이유로 행동하는 사람들 또한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터가 몬스터를 상대로 검을 들어올리는 건 어디까지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정필연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때문에.

정필연은 저 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오히려 전적으로 공감한다고도 할 수 있겠지.

그러므로.

이예은의 몸을 돌려준 악마가 그대로 이 자리를 떠나려고 할 때.

"이준구!! 물어!!""멍!!!!"

망설임 없이 작렬한 영웅의 시그니처.

황금빛 벼락의 모습에, 정필연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아니, 저래도 되는 거야?

"씨발 뒈져어어엇!!"

그리고.

그 모습은 벼락에 맞아 추락한 악마의 머리통을 향해 박우찬이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한층 더 커졌다.

"아니, 그래도 되는 거에요?!"

자신도 모르게 그리 목소리가 나오고 말 정도로.

그제서야 정필연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사내들.

하지만 그 눈동자엔 일체의 망설임도 없었다.

아니, 없어 보였다.

"끼요오오옷!!"

왜 확신할 수 없었느냐 하면, 박우찬은 정필연을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힘차게 내려친 대검이 신명난 템포로 악마의 육체를 해부한다.

그 모습을 보며 얼떨떨한 얼굴을 한 정필연을 향해, 이 나라에서 누구나 이름을 알고 있는 영웅은 다가와 물었다.

"이야기는 들었다. 정필연 학생이라지?"

"아, 예."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준구라고 해. 동생인 예은이한텐 얘기 많이 들었어."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니, 거 참 겸손한 표현이었다.

그렇지만 당연히 이준구가 하려던 말은 그런 게 아니었다.

"학생이 보기엔 지금 저 모습이 어떻게 보이지?"

"어, 거래가 끝나자 마자 상대의 뒤통수에 총을 쏘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물론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 게 아니라 실제로도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준구는 참으로 담담한 태도였다.

"어떻게 보면 비겁한 행동인 것도 사실이야."

알긴 아시네요?

정필연은 목덜미 근처에서 간질거리는 목소리를 억지로 끌어내리는 데에 심력을 다했다.

"하지만, 우리들은 헌터야. 몬스터와 평화를 나누는 게 아니라, 몬스터를 사냥하는 사람들이지."

"앗, 네."

"저들이 이번 일로 화를 낼 수는 있겠지. 하지만 우리는 저들에게 이미 두 번이나 선제 공격을 당했어."

"앗, 네."

"그래. 두 번의 대침공이라는 재앙으로서, 말이지."

그야 정필연 또한 알고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진지하게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었고.

다만.

영웅과 담임 교사.

적어도 정필연이 알기에 가장 강력하고 가장 대단한 두 헌터가 약속이 끝나자마자 망설임 없이 뒤통수를 갈기는 모습에 웃음보가 터졌을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비겁한지 아닌지는 둘째치더라도 웃긴지 웃기지 않은지를 물으면 틀림없이 웃겼다.

"그렇다."

"아, 끝냈어?"

"대충. 하여튼, 꼬우면 쳐들어오질 말던가. 누가 들으면 제발 대침공 일으켜달라고 부탁이라도 한 줄 알겠네."

아니면 누가 목에 칼 들이밀고 대침공 안 일으키면 죽여버린다고 협박이라도 했던가.

농담처럼 그리 뇌까리며, 박우찬은 어깨를 으쓱였다.

"야, 필연아. 무슨 생각 하는 줄은 알겠지만, 좋은 헌터는 곧 무슨 헌터일 것 같냐?"

"어, 잘 싸우는 헌터요?"

"그래! 곧 몬스터를 쳐죽일 수 있는 게 좋은 헌터야. 그럼, 나쁜 헌터는?"

"……으음."

"실수. 연민. 혹은 달리 무언가 사정이 있어서. 어느 쪽이든, 몬스터를 죽이는 데에 실패한 헌터야."

진리였다.

뭐, 그렇게 말하면 틀림없는 사실이긴 했지만…….

"화는 풀렸나?"

역시 눈 앞에서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으면 흠칫할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어깨를 움츠리는 정필연.

그에 비해, 눈 앞에 있는 둘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

"안 죽었네, 저거."

"어쩐지. 손맛이 나쁘더라고."

태연한 어조로 잡담을 나누는 둘.

물론 정말로 태연한 건 아니었다.

……틀림없이 이준구의 시그니처는 강력하다.

회피 불가. 방어 불능.

그런 말이 붙어도 과언이 아닐, 인류 최강이 사용하는 최강의 시그니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최강이지만 무적은 아니요, 강력하지만 만능은 아니라고 해야 할까.

마찬가지였다.

이준구의 공격.

동시에, 그 뒤를 이어 확인사살을 위해 칼을 휘두른 박우찬의 공격.

그 모든 걸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로 허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스륵.

눈 앞의 그림자는 그대로 일어나, 꿀렁대는 형체를 억눌렀다.

사람으로 따지면 마치 지혈이라도 하는 듯한 동작이었다.

'부활의 전조는 없군.'

박우찬은 그렇게 판단했다.

눈 앞의 마신이 일어설 수 있었던 건 두 번째 목숨 따위가 아니었다.

허면?

모종의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면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는 무적성.

혹은, 특정한 방법으로만 끝을 맺을 수 있는 불사성.

둘 중 하나일까.

어느 쪽이든, 적어도 단순한 데미지로 돌파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이준구의 시그니처가 작렬했으니까.

그 사실에 박우찬은 쯧 하고 혀를 찼다.

물론 어느 쪽이든 그의 시그니처가 있다면 돌파할 수 있다.

상대는 진짜배기 마신.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을 테고.

다만.

불사성. 무적성.

다른 두 마신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특성이다.

그리고 그런 특성이 있는 만큼, 눈 앞의 마신이 특기로 삼는 건 하나.

생명력이겠지.

그렇다면.

방금 전.

둘의 공격을 완전히 무마한 저 방어 능력에 더해, 또 하나의 여벌 목숨 따위가 없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저 방어 능력을 돌파할 수 있는 조건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시그니처를 사용해 자신이 리타이어할 경우.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다.

잡을 수 있다면 그야 다행이겠지.

허나, 토벌에 실패한다면?

최소한 이준구가 지지는 않으리라.

그렇지만.

이준구의 능력은 강력하고, 빠르다.

다만.

다른 사람, 하물며 도시 따위를 보호하는 데엔 서투르다.

공교롭게도, 본인의 희망과는 달리 어디까지나 적을 쳐부수기 위한 스타일.

애시당초 여러 스타일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만한 여유도 없었던 게 바로 녀석이니까.

그러므로.

"어, 그래. 뒤통수가 달걀같아서 딱 때리기 좋게 생겼더라. 다음부턴 가리고 다녀라, 빡치니까."

"유의하지."

"뭐, 다음이 있다면 말이지만."

다음 순간.

다시 한 번 벼락이 날았다.

그래서?

여유가 없다, 그러니 지금은 보내는 게 최선이다?

설마.

그런 안일한 수 따위를 두겠나.

여하간,이 쪽이 각종 수단을 시험하는 것도 공짜는 아니다.

적어도 신세계 질서에게는 정보가 전해지고 있으며, 실제로 역으로 이 쪽의 수단을 간파하고 있는 경우도 더러 있었으니까.

허면?

그러니 나중에 따로 조사해 공략한다?

바보인가.

결국, 완전한 불사신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설령 목숨이 여러 개라 해도 부활에는 한도가 있고, 방어 능력 또한 약점이 있기 마련.

그렇지 않고서야, 신들에게 패배하여 지옥에 쳐박혔을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해결책은 간단하다.

일단 시그니처를 갈긴다.

그러고도 부활하려 든다면?

묶어두기만 하면 된다.

물론 A+랭크 이상의 몬스터를 상대로 계속해서 묶어둔다는 건 현실적이지 않겠지.

하지만.

대상의 목숨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면, 대상을 속박하는 방법은 밧줄 따위만 있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서해안에 수장시켜버린다던가.

당장 박우찬과 이준구가 선택한 수단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준구의 시그니처를 사용한 스트레이트.

그대로 놈을 단박에 서해안까지 데려가 바다 밑에 매장한다.

이후 박우찬의 기술을 사용해 참수.

만약 먹히지 않는다면, 놈이 심해의 압력에 짜부라지고 부활하길 반복하는 사이 공략법을 찾는다.

그걸로 충분하다……!!

투우우우웅!!

"애미."

때문에.

다음 순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본 박우찬은 무심코 욕지거리를 내뱉고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광경은 계획에 없었기 때문이다.

터무니없는 무적성.

혹은, 자신의 시그니처조차 파훼할 수 있을 불사성.

어느 쪽이든, 눈 앞의 마신이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은 짐작하고 있었다.

다만, 딱 거기까지.

아무리 그래도 지금처럼 이준구의시그니처를 정면에서 받아낼 줄은 역시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화가 풀릴 날은 요원한 듯하군."

"이 새끼……!!"

"어쩔 수 없지. 비례가 되지만, 지금은 먼저 떠나보도록 하지."

다리를 땅에 붙이고, 이준구의 스트레이트를 향해 마주 주먹을 내지른다.

그렇게 고착된 상황에서, 마신은 불현듯 그리 말했다.

물론 어느 쪽도 그런 틈새를 줄 생각은 없었다.

다만.

한 수.

이준구의 시그니처가 정면에서 가로막힌다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둘의 사고가 한 순간 경직한다.

그리고.

그들과 같은 영역에 있어, 그 한 순간은 차마 다른 무언가로도 만회할 수 없는 빈틈이 되어 다가온다.

……차라리 저 마신이 그대로 이준구나 박우찬을 역습하려 들었다면 차라리 다행일 테지.

한 명이 당한다 해도 다른 한 명이 발을 묶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참으로 열받게도, 눈 앞의 마신은 실로 적확하게 판단했다.

이 한 수로 결판을 내는 건 힘들다.

허면?

"다음에 보도록 할까."

뭐, 기회가 있다면 말이지만.

파아앗!!

그런 말을 마지막으로, 이준구와 마신의 주먹 사이에 검은 마력이 들끓기 시작했다.

한 순간.

둘의 동요로 인해 발생한 한 순간의 틈을, 눈 앞의 마신은 시야를 가리는 데에 사용했다.

바야흐로 시덥잖은 잔재주.

그렇지만.

박우찬이 시각이 아닌 감각을 사용해 주변을 훑으려 결정한 그 찰나 사이.

그 자리에 있던 마신은 이미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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