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1화 〉 연장전
* * *
좆됐다.
따로 누군가 설명할 필요도 없이, 불만의 마신은 그런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마신은 바보가 아니었다.
박우찬의 조롱과 달리, 마신 또한 이예은이 이준구의 여동생이라는 사실 정도는 익히 알고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할 수 있을 만한 수가 없었을 뿐.
거기에 만약 모르고 있었다 해도 마찬가지였을 테지.
모를 수가 없다.
방금 전.
밤하늘을 찢어가르며 작렬한 벼락은, 빙의에 사용되고 있었던 마신의 마력 중 7할을 말 그대로 증발시켜버렸기 때문이다.
하물며, 거기엔 직접적인 적의조차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거리를 걷던 도중 행인과 어깨를 부딪힌 셈이다.
말 그대로, 그 정도 행동.
비유하자면 몸통 박치기.
스스로의 몸을 벼락으로 바꾸어 작렬한 이준구는, 스치기만 해도 마신을 증발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
시그니처, 뇌신.
박우찬은 내심 피카츄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절기는, 바야흐로 이름 그대로였다.
자신의 몸을 벼락으로 바꾸어 내지르는 공격은 단순한 몸통 박치기도 필살기나 다름 없는 위력으로 뒤바꾼다.
눈 앞에서 벼락을 보고 회피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
벼락의 속도로 내질러지는 공격을 방어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
회피 불가. 방어 불가.
이름이야 어쨌든, 박우찬이 알고 있는 시그니처 중에서도 한없이 정점에 가까운 물건이다.
저 공격에 대적하기 위해선, 벼락을 파훼할 수 있는 모종의 수단.
혹은 저만한 공격력을 정면에서 받아넘길 수 있는 무적성이나 불사성.
어느 쪽도 없을 경우, 이준구를 상대로 승패를 뒤집을 수는 없다.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을 경우 승리할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으며, 설령 갖춘다 해도 승산은 한없이 적은.
인류 최강의 이름은 허언이 아니다.
그리고.
불만의 마신에게 저 공세를 버틸 만한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불만의 마신이 이준구가 퇴근했을 시간에 여고생인 여동생의 몸을 장악해 멋대로 탈출한 지금 이 시점.
박우찬은 뒷수습 따위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남은 문제는 단 하나.
지금 이 자리에 남은 마신의 연결을 통해, 무엇을 손에 넣을 수 있을까 하는 점 뿐.
불만의 마신이 보기에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연결을 끊고 도망간다?
그것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박우찬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저토록 다채로운 수단을 장점으로 삼는 도축업자다.
그저 무방비하게 발을 빼려 했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불만의 마신으로서는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방금 전 전투에서 사용한 불꽃.
성스러운 약초를 태운 불길만 해도 연결 너머의 마신 본체에게 타격을 주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한 순간, 정적이 찾아든다.
박우찬은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이용하고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이준구는 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불만의 마신은 어떻게든 빈틈을 찾기 위해서…….
"곤란하군."
누가 먼저 움직이기도 애매한 침묵 속.
그런 만큼, 그렇게 말을 던진 존재의 목소리는 마치 물방울처럼 지금 이 장소에 깊게 스며드는 듯했다.
이질적인 음성.
마치 말하는 사이 중간중간에 노이즈가 낀 듯한 기묘한 음색이었다.
오래된 라디오가 으레 그렇듯이, 뚝뚝 하고 소리가 잘리는 듯한.
혹은, 멀쩡히 진행되던 동영상의 음소거 버튼을 연신 누르는 듯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할 정도로 귓가에 박히는 듯한 목소리.
방금 전까지만 해도 대치를 유지하고 있던 모습이 무색하게도, 당장 그 자리에 있던 셋은 모두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그리고 놀랐다.
그림자가 직립 보행하고 있었다.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는 외견이었다.
온 몸이 검은 색으로 도배된 사람이었다거나, 인식을 흐릿하게 만드는 능력이라거나.
그런 수준이 아니다.
말 그대로 그림자가 두 발로 걸어다니고 있는 듯한.
무게감이나 존재감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 기묘한 생김새는, 몬스터도 생물이라는 지론을 견지하고 있는 박우찬이 보기에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다만.
이준구나 박우찬과는 다르게, 불만의 마신이 놀란 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나, 나하이트."
나하이트?
낯선 단어에 박우찬의 머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기울어진다.
그러나.
곧 흠칫 하는 소리와 함께 어깨를 당겼다.
불만의 마신Nanghait.
방금 전, 눈 앞의 그림자가 입에 담은 건 마신의 이름이었다.
그렇다는 건…….
[오히려 내가 물어야 하지 않겠소? 설마 내 자네를 이런 장소에서 볼 줄은 몰랐소만.]
"나라고 해도 매번 칩거하고 있는 건 아니다."
역시.
지극히 익숙하다는 듯 대화를 나누는 불만의 마신.
이준구야 어쨌든, 박우찬은 확신할 수 있었다.
눈 앞에 나타난 그림자.
저건, 마신이다.
악의. 불만.
여태까지 그들이 만났던 두 마리 마신과 그 어깨를 나란히 하는, 조로아스터 교의 일곱 마신 중 하나.
수많은 만마의 정점에 군림하는 일곱 대악마 중 둘이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있었던 것이다.
"……꽤나 심상치 않은 상황이네."
여하간, 그 쯤 되자 이준구 또한 상황을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여동생인 이예은이 마신의 술책에 당했다는 이야기 정도는 진즉에 들었다.
그렇지만, 저렇게 태평하게 대화를 나누는 꼴을 보건대…….
별로 좋지 않은 추론이 머리를 스친다.
그리고.
"뭐, 이번엔 네 녀석을 데리러 온 거다만."
"뭐?"
그 시선이 박우찬에게 향하기도 전.
눈 앞의 그림자는 그런 말을 했다.
굉장히 뜬금없고, 그리고 그 이상으로 파격적인 발언이기도 했다.
[으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설쳤다, 나하이트. 다른 녀석들의 일이야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지나칠 정도로 패를 드러냈지 않나."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하네만…….]
"여흥을 즐기는 건 상관 없다. 다만, 처음부터 칠칠맞게 모든 패를 판 위에 던져서야. 그토록 품위가 없다면, 과연 우리들의 어버이라 해도 탄식할 수밖에 없겠지."
우리들의 어버이.
다시 말해, 악신.
선신과 대립하며 일곱 마신을 낳은 악신의 이름에, 사냥꾼들의 얼굴이 굳는다.
그렇지만.
눈 앞의 새로운 마신이 꺼내는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하는 제안이지만, 이 즈음에서 서로 발을 빼는 건 어떤가."
"……뭐?"
"이해할 수 없는 말은 아닐 텐데. 이 이상의 갈등은 서로에게 부득이한 손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틀린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확실히 지금 이 상황은 꽤 아슬아슬한 부분이었다.
상대가 불만의 마신 뿐이라면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겠지.
아니, 단순한 무력으로 따지자면 지금도 마찬가지다.
불만의 마신과 달리, 눈 앞의 마신은 진짜배기 본체.
다시 말해, 박우찬의 감각 또한 서서히 눈을 뜨고 있었다.
정면으로 싸우면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싸워도 되는 건가?
그렇게 물으면 역시 할 말이 없었다.
현재 이예은의 몸은 불만의 마신 손아귀 안에 있다.
하물며, 지금 이 장소는 뒷골목.
마신의 분신 한 마리를 상대할 때에도 비좁기 짝이 없던 장소다.
거기에, 이준구와 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 박우찬.
하물며 두 마리 마신이 정면으로 격돌한다?
도시까지 피해가 미치지 않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그 제안에 대해, 두 명은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이준구 쪽은 말 그대로 위화감.
지상의 모든 사악을 대리한다는 마신이 꺼내는 것 치고는 꽤나 온화한 발언이라는 생각이 하나.
그리고 박우찬 쪽은 보다 단순한 생각.
까놓고 말해…….
"아니, 선빵 친 건 너희인데 왜 우리한테 지랄이지?"
뭔가 아니꼽다는 말이었다.
물론 말이야 저렇게 했지만, 박우찬은 딱히 그들이 선빵을 치지 않았어도 같은 말을 했으리라.
허나.
"그건 미안하게 됐군."
도대체 몇 번이나 경악을 반복하는 건지.
그런 박우찬의 말에, 눈 앞의 그림자는 어깨를 좁히며 사과의 말을 건넸다.
"확실히, 나하이트가 이토록 무절제하게 날뛴 건 이 쪽의 잘못이다. 사과하도록 하지."
"이 새끼……."
"원한다면 너희들 쪽의 조건을 받아들여도 좋다. 이 여아의 몸 또한 곧바로 반납하도록 하지. 어떤가, 나하이트."
[음? 음. 뭐, 상관은 없소만.]
담담한 어투로 그리 말을 잇는 마신.
거기까지 가면 과연 그들 또한 달리 할 말은 없다.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박우찬과 이준구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다름이 아니라, 마신들의 손에 넘어간 이예은 쪽이 문제다.
정신 간섭 능력은 현실의 시간 흐름에 구애받지 않는다.
다시 말해, 자칫 잘못하면 말 그대로 불만을 품은 마신이 이예은의 머리를 죽탕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건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바라는 결말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싸움이 있기 전, 이예은을 돌려받을 수 있다면 좋을 따름.
덕분에 둘은 눈 앞의 마신이 건네는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마신이라기보다는 협상가 같았다.
누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 둘은 그런 감상을 품었다.
그 뒤는 실로 간단했다.
불만의 마신이 멋대로 조작하던 소녀의 육체가, 신호와 함께 풀썩 하고 쓰러진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를 감싸고 있던 마신의 마력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신으로부터 거리를 벌린 채, 쓰러지는 그녀의 몸을 받아 조용히 내려놓는 사냥꾼들.
그 모습을 보며, 마신은 짤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이지, 수고스러울 노릇이군."
"……."
"뭐, 어느 쪽이든. 서로 고생하게 됐구나. 젊은 사냥꾼들."
그렇게 말하며 마신은 어깨를 좁혔다.
마치 사람과 같은 반응이었다.
"언젠가 다시 만날 기회가 있으면 좋겠지만……. 글쎄, 어떨련지."
마지막까지 여유 있는 태도로 거리를 벌리는 마신.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그 말에 답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마신은 다시 한 번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마신의 육체가 하늘로 날아오른 바로 그 순간.
"이준구!! 물어!!"
"멍!!!!"
다음 순간.
작렬한 벼락이 마신의 뒤통수를 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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