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9화 〉 악마
* * *
[흠……!!]
마신의 노호성과 함께 마력이 작렬했다.
처음엔 악마와 비슷한 형상을 이루고 있던 마력도 지금은 마치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고 있는 상황.
전투를 거듭하며 마신 또한 마력의 조작에 익숙해진 덕이었다.
실체를 가진 육체가 아닌 이상, 구태여 육체와 같은 움직임을 취할 필요도 없다.
방금 전 공격만 해도 마찬가지였다.
팔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팔을 구성하고 있는 마력만 송곳과 같은 형태로 변화시킨다.
안 그래도 실체가 없는 만큼 단순한 속도라면 평범한 육체를 상회할 수밖에 없는 마력 덩어리.
하물며 그걸 조작하고 있는 건 이런 식의 마력 조작에 특화된 악마.
개중에서도 한없이 정점에 가까운 조로아스터 교 일곱 마신 중 한 명이었다.
당연히 그 숙련도도 차원이 다를 수밖에.
……허면.
매 순간마다 발전하고 있는 마신의 마력 조작 능력이 바야흐로 마신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실력이라 한다면.
당장 눈 앞에 있는 이 사내는 도대체 무엇인가.
불만의 마신은 자신도 모르게 그리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대지에 박힌 송곳이 가시를 토한다.
하지만.
방금 전 작렬한 공격도 미리 읽어 피한 박우찬에게, 그 공격은 다소 성가신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화려하게 휘두른 코트가 밤하늘 아래를 수놓는다.
동시에, 작렬하는 바늘.
코트 너머로 충격이 전해지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결국 저 마력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건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다.
예를 들면, 지금 마신이 조작할 수 있는 마력의 총량이 500이라고 가정해 보자.
허면 팔 한 쪽의 마력은 대략 100이라 할 수 있겠지.
만약 그만한 마력이 그대로 공격이 되어 작렬하면 아무리 그래도 코트 한 장으로 거둘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마력을 흩뿌릴 땐 다르다.
결국 한 팔에 할애된 마력은 대략 100 가량.
그 팔을 변화시켜 백 개의 가시를 쏜다고 가정하면, 가시 한 발에 사용되는 마력은 고작해야 1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충분히 받아넘길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코트 너머로 흩어지는 마력의 가시를 느끼며, 박우찬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박우찬이 예의 마신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전투에 익숙해지고 있는 건 다름이 아니었다.
경험.
물론 박우찬이라고 해서 순수한 마력 덩어리로 이루어진 몬스터와 교전한 경험이 많은 건 아니었다.
하물며 이 정도 수준이라면 더욱 더.
허나, 박우찬에게는 수많은 몬스터를 상대한 경험이 있었다.
그런 경험을 살려 눈 앞의 상대와 유사한 사례를 중심으로 전법을 보충한다.
신체의 구성 성분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점은 슬라임과 유사하다.
실체가 흐릿하다는 점은 유령과 흡사하고.
마력을 통해 분신을 조작하는 모습은카발리스트나 인형술사에 가까운 수준.
거기에, 능력의 총량은 일전에 상대한 악의의 마신과 동등.
그런 식으로, 상상 속에서 기워맞춘 적과 눈 앞의 마신 사이의 간격을 보정한다……!!
[과연, 자신있을 만도 하오!]
태평하게 잡담을 지껄이며, 마신이 오른팔을 휘두른다.
동시에.
마치 폭발하듯 작렬하는 오른팔의 마력.
분출된 마력이 폭음과 함께 전신을 노리고 달려든다.
코트를 사용하면 막아낼 수는 있겠지.
그렇지만 박우찬은 알고 있었다.
'크라켄.'
멀리서 물을 튀기며 이 쪽을 견제하던 연체형 몬스터가 저랬지.
자신의 잔수작이 막힐 때마다 화를 내던 녀석이, 돌연 강렬한 공격을 날린다.
회피가 불가능할 정도로 신속한 일격.
몬스터의 노림수 또한 거기에 있다.
도저히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재빠른 공격에 의한 방어 유도.
그리고.
그렇게 수세로 나선 상대를, 크라켄은 그대로 붙잡아 바다로 내던진다.
마찬가지였다.
허면, 박우찬이 취할 행동 또한 간단했다.
놈들의 노림수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멋대로 회피 동작을 취하려는 육체에 제동을 넣는다.
다시 한 번 코트를 펄럭이고 싶은 욕망을 강제로 억누른다.
동시에,한 걸음 앞으로.
일정 부분 피해를 감수하고 앞으로 전진한다.
그게 정답이다.
콰드득!!
마력의 폭발이 육체를 강타한다.
정장의 방어력이 있어도 정면에서 그 충격을 완전히 무마하는 건 불가능.
어쩌면 어디 일부가 날아갔을지도 모르지.
상관 없다.
죽지만 않으면 되니까.
나중에 포션이라도 쓰면 된다.
아니, 설령 포션으로 회복할 수 없을 만한 상처라 해도 마찬가지.
몬스터 따위에게 뒈지는 것보단 훨씬 낫다……!!
[흠!]
탄식인지, 감탄인지.
마신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박우찬의 추측대로였다.
방금 전, 강제로 돌파한 마력의 폭발 너머.
올가미 형태로 변모하려던 마력의 잔향이 움찔 하고 전율한다.
그대로 박우찬의 몸을 붙잡아 던지려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음이다.
그리고.
마신의 품 안.
폭발한 오른팔. 방금 전 수복한 왼팔.
하물며 반사적으로 폭발한 오른팔의 잔향을 조작하려 들었던 지금.
박우찬은 확실하게 한 수를 벌었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박우찬에게 마신의 마력을 소진시킬 수단은 없다.
눈 앞의 마력 덩어리는 말 그대로 밀집한 마력 덩어리일 뿐.
베거나 쓰러뜨릴 수 없는 물건이다.
물론 마력을 꾸준히 소비시키면 언젠가 차도가 있긴 하겠지.
다만, 그러기에는 박우찬의 전법이나 무기 또한 상성이 좋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식으로 한 덩어리나 다름없는 몬스터를 상대할 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면적.
즉, 공격의 범위다.
검이나 창. 베기나 찌르기.
어느 쪽이든, 다량의 마력을 단번에 소실시킬 만한 수단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했다.
박우찬 또한 그 점은 알고 있었다.
무기에 바른 약초의 효력은 확실했다.
저 마력 덩어리를 베어낼 때마다 그 크기가 줄어가는 걸 실감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참격만으로 저 마력 덩어리를 다 날려버리기는 힘들었다.
비유하자면, 칼 한 자루만 가지고 슬라임을 대적해야 하는 상황이다.
만에 하나 칼날에 부식을 방지하는 마법이 주각되어 있다 해도 마찬가지.
단순한 칼질로 슬라임을 구성하고 있는 체액 전부를 날려버릴 수 있을까.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힘들겠지.
상대가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물론 그런 인내심 싸움도 나쁘지는 않다.
초조함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
한 번. 그리고 한 번.
확실한 일격을 먹이고 물러나 태세를 재정비한다.
그런 기본적인 전법으로도 대다수 몬스터는 사냥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안 돼.'
조건이 나빴다.
먼저 환경.
여기는 도시의 뒷골목.
다시 말해, 그런 식으로 시간을 끌다간 다른 난민들까지 피해를 볼 수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아슬아슬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신은 사람들의 안위에 관심이 없었으니까.
지금은 어떻게든 자신에게 공격을 유도하고 있지만,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모른다.
게다가 뒤에는 정필연까지 있는 상황.
부하들을 상대로 선전하곤 있는 모양이지만, 마신의 공격에 휩쓸리면 위험하다는 건 대동소이하다.
즉.
이 시점, 박우찬에게는 장기전을 선택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마신 또한 그건 알고 있었다.
때문에.
큰 수단으로 온다.
직감과 동시에, 마신은 방침을 굳혔다.
공격하기 위해 꺼낸 팔인가?
그렇지 않으면 다른 공격 수단을 꺼낼 수 있을 만한 부위인가.
신세계 질서를 통해 몇 번이고 들었던 수단인가?
그렇지 않으면 새로 준비한 수단인가.
박우찬이 어떤 방식으로 오던지 상관 없다.
이 쪽은 사용할 수 있는 마력을 조금이라도 남기면 그만.
그대로 공격 직후 카운터를 꽂아넣으면 그만이다.
자연스레 마신의 마력은 느슨하게 퍼졌다.
어딜 어떻게 공격하더라도 마력 전량을 남김없이 날려버릴 수는 없도록.
때문에.
서걱서걱서걱서걱서걱!!
다음 순간 작렬한 5연격.
대검의 두 손잡이를 쥔 박우찬의 연속 공격엔, 마신 또한 대처하지 못했다.
[흠?!]
튀어나온 건, 이번에야말로 경악.
장기전을 바라볼 수 없는 지금 이 상황에서, 설마 연격으로 나설 줄이야.
……아니.
'그래서인가?!'
'당연하지, 이 새끼야.'
생각이 교차한다.
어차피 일격으로 당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런 생각 끝에 마력을 넓게 퍼트린 마신.
마신의 그런 사고를 읽고, 망설임 없이 연격을 선택한 박우찬.
평소와 달리, 무기의 전 부분을 사용한…… '깔끔한' 공격은 아니었다.
못박을 수도 벗겨낼 수도 박피할 수도 없는 상대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공격을 위해 준비된 양 팔.
당장 박우찬에게 반격을 가할 수 있을 포인트 셋.
작렬한 연격이 마력을 흩어놓는다.
물론, 치명상은 아니다.
벌 수 있었던 건 정말로 잠깐의 틈.
그리고 그 사이 남은 마력 전부를 날려버릴 수 있는 일격은 박우찬에겐 없었다.
상관 없다.
사냥이란 언제나 스마트하게,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한의 효용을 봐야 하는 법.
바보같이 마력 전부를 날려버리며 승부를 볼 생각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
자연스레 열린 공간.
창고 너머, 손가락 끝에 걸리는 두 개의 병을 동시에 내던진다.
하나는 기름.
일찍이 초대형 게이트 발생 당시에도 사용했던 물건.
하나는 약초.
일찍이 그 직후 있었던 연회에서 사용했던 물건.
어느 쪽이든, 마신 또한 익히 알고 있는 물건이었다.
다만.
"조로아스터 교 출신인 걸 원망하도록."
따닥.
남자는 가벼운 태도로 손가락을 튕겼다.
즉석 연금술.
동시에.
화르르르륵!!
불길이 치솟았다.
그리고.
[크, 오오오오?!]
마신이 비명을 질렀다.
육체가 없다, 실체가 없다는 건 당연히 감각 또한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방금 전 박우찬이 선택한 공격 수단은 마신으로서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마력을 조작하고 있는 연결 너머.
마신의 존재감 자체를 타격하는 듯한 고통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
상대하는 건 조로아스터 교의 마신.
그렇다면, 조로아스터 교에 있어 신의 권위를 상징한다 여겨지는 불꽃.
거기에 신성한 약초를 불태운다.
마신으로서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바야흐로, 마력 너머에 있는 마신 본체마저 당황할 정도로.
때문에.
마신은 자연스레 마력을 움직였다.
방금 전, 내던진 불꽃을 피하는 형태로.
……실로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건 말 그대로 생물학적인 반응이다.
정전기가 일어나면 손을 떼는 사람과 같이.
불만의 마신이 방심했다던가 하는 게 아닌, 지극히 자연스러운 신체 반응.
그러므로.
박우찬 또한 마신이 그렇게 행동할 걸 알고 있었고, 마신 또한 그걸 짐작했지만 억누를 수 없었다.
그리고.
박우찬의 눈이 마신의 마력에 휘감긴 헌터의 모습을 포착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력의 중심에 있었다고 해야 하겠지.
마신의 마력.
이번 반 년 사이, 마신이 모았던 마력은 마신과 저 헌터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을 통해 분사되고 있었으니까.
때문에.
박우찬이 노렸던 건, 처음부터 마신이 아니라 저 사냥꾼이었다.
다음 순간.
어떠한 요란함도 없이, 박우찬의 일검이 허공을 가로로 그었다.
물론 조건은 여유롭지 않았다.
그렇지만.
여태까지 박우찬을 유혹하기 위해 수도 없이 흔적을 남긴 마신.
거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터를 인질로 잡아 제대로 분을 풀 수 없던 박우찬이 받은 스트레스.
그 모든 게 모여 만들어진 일격이었다.
예쁘게 베기.
박우찬의 시그니처가 작렬한 그 순간.
"허어."
불만의 마신의 의식은 본디 자신이 있던 장소에서 눈을 떴다.
작렬한 시그니처.
말 그대로, 마력을 이용해 무엇이든 베어버리는 일격이 마신과 헌터 사이의 연결을 베어 끊은 덕분이었다.
그리고 불만의 마신의 의식이 튕겨져나가고 만 그 현장.
"……후우."
박우찬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확신은 없었다.
아니,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아무래도 어떻게든 된 모양이다.
마치 실이 끊긴 듯, 풀썩 하고 쓰러지는 헌터.
동시에 그 헌터 너머로, 반분당한 마신의 마력이 기화되어 허공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