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화 〉 악마
* * *
물론 마신은 바보가 아니었다.
박우찬을 꼬드길 생각이었던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교전의 가능성을 완전히 외면할 수 없는 상황.
당연히 사전에 전투 준비 쪽은 진즉부터 끝마친 상태였다.
비록 박우찬이 갑작스레 화를 내는 식으로 파투가 나긴 했지만, 설령 그렇다 쳐도 계획에 문제는 없다.
덕분에 다음 순간박우찬과 정필연은이 폐건물을둘러싸기 위해 다가오는 일련의 헌터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반 년 가까운 시간을 할애한 끝에, 불만의 마신이 장악한 중추급 헌터들은 얼추 50명 가량.
개중에서도 박우찬과 정필연이 쓰러뜨린 게 대략 서른 명이니, 밖에 모인 스무 명은 사실상 마신의 전 병력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둘 또한 바보는 아니었다.
설마 악마를 상대로 정말 대화만 하고 작파할 리가 있나.
아니, 설령 마신은 그럴 생각이었다 한들 박우찬은 그런 식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때문에.
"조심하고."
"네."
대책 또한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었다.
물론 실제로는 계획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었지만.
여하간, 단순한 역할 분담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교전이 발생한다면 악마를 격퇴하는 건 어디까지나 박우찬의 역할.
정필연은 악마의 부하들을 상대하는 데에 전력을 다하기로 했다.
나름 실적이 있다거나, 자경단 노릇에 익숙해졌다거나 하는 점을 고려해도 아직 학생인 몸.
아무리 그래도 마신을 상대하게 둘 수는 없었다.
물론, 어느 쪽이든 손쉬운 상대는 아니겠지.
저택 밖에 도사리고 있는 헌터들의 기척을 읽고서, 정필연은 그렇게 판단했다.
그러나.
자신보다는 역시 담임인 박우찬 쪽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저 뒤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마신의 마력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콰아아아앙!!
다음 순간.
허술하기 짝이 없는 판잣집의 지붕이 격렬한 마력의 폭발에 휘말려 날아갔을 때에도, 정필연은 당황하지 않았다.
*
만약 박우찬이 정필연의 걱정을 들었다면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일축했으리라.
물론 눈 앞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총량은 정말로 만만치 않았다.
과연 마신이라고 해야 할까.
자그마치 반 년에 걸쳐 긁어모은 감정을 통째로 변환한 마력.
바야흐로 불만의 마신 본체마저 능가하는 마력이었다.
거기에 당장 마신의 그릇으로 사용되고 있는 헌터 또한 마찬가지.
모르긴 몰라도, 마신이 반 년에 걸쳐 준비한 카드인 만큼 상당히 우수한 사냥꾼일 테지.
게다가 그런 그릇을 원거리에서 조작하고 있는 불만의 마신은 본디 정신 간섭에 특화된 악마.
악의의 마신보다는 덜하겠지만, 순수한 육체적 능력은 마신 중에서도 뒤떨어지는 편이겠지.
우수한 그릇. 본체 이상의 마력.
심지어 본체의 안전까지.
지금 이 상황이라면 단순한 전투 능력에 한해 불만의 마신 본체조차 능가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딱 거기까지.
고작해야 반 년.
나름 준비하긴 한 모양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S랭크에 미칠 수준은 아니었다.
이길 수 있다.
박우찬은 그렇게 판단했다.
물론 말처럼 간단한 건 아니었다.
상황은 오히려 불리한 편이겠지.
당장 눈 앞에 있는 상대만 해도 그랬다.
마신의 마력을 사용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마신이 성좌로서 내린 가호의 영향 또한 없잖아 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인간이다.
다시 말해, 박우찬이 느끼는 감흥은 어디까지나 혼혈 이하였다.
……뭐, 당연한 이야기.
고작해야 성좌의 가호 좀 받았다고 몬스터를 상대하듯 날뛸 수 있었다면 인류 최강의 이름은 박우찬에게 돌아갔을 테니.
즉, 지금 박우찬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은 눈 앞의 마신과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살짝 열세일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본체는 결국 인간이라는 게 문제다.
방금 전부터 줄곧 코끝을 간질이던마신의 마력 너머로,특유의 초조함이 피어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인간이라면 박우찬은 전력을 다할 수 없다.
무심코 죽여버릴 수도 있으니까.
최소한 충동에 몸을 맡기고 날뛰는 건 자제해야 한다.
조건은 최악.
다만.
언제나 최적의 상황 하에서 사냥을 나설 수는 없는 법.
사냥에 필요한 건 흐릿하더라도 확실한 승산과, 그런 승산을 움켜쥘 수 있는 방법 뿐.
그리고 박우찬은 그런 면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냥꾼이었다.
때문에.
콰아아아앙!!
다음 순간.
격렬하게 분출된 마력이 허술하기 짝이 없는 판잣집의 지붕을 날려버렸을 때에도 박우찬은 당황하지 않았다.
코트로 폭발하는 마력의 여파를 거두어 배후의 정필연을 보호하기도 잠시.
곧 박우찬은 눈 앞에 나타난 악마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마신의 그릇이 된 사냥꾼을 중심으로 밀집된 마력이 형체를 이룬다.
성좌로서 사냥꾼에게 내린 은혜를 중심으로 흘려보낸 마신의 마력이 악마의 형상을 그린다.
마치 땅으로부터 악마의 상반신이 돋아난 듯한 모습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가장 다루기 쉬운 형태를 취한 걸까.
짐승과 같은 얼굴.
마력으로 구성된 뿔과 이빨.
지나칠 정도로 전형적인 모습에 무심코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유감이오.]
물론 다음 순간 발생한 일은 전혀 우습지 않았지만.
콰아앙!!
악마의 어깨가 움직였다.
그렇게 생각한 찰나, 마신의 왼팔이 지면에 작렬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형상이기 때문일까.
생물학적인 전조, 근육의 움직임에 따른행동을 전혀 예측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므로.
[음?]
어떠한 징조 하나 없는 마신의 공격을 회피한 박우찬의 기예 또한 눈에 띄게 두드러질수밖에.
후우웅, 귓가를 스치는 바람이 아찔하다.
상공.
마력의 움직임을 읽고 타이밍에 맞춰 도약한 박우찬은, 곧 평가를 내렸다.
'생각보다 까다로운데.'
마신의 동작을 읽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른 사냥꾼이었다면 모를까, 박우찬 본인에게 있어선 더더욱.
애시당초 박우찬은 적의 움직임을 보고 즉석에서 간파하는 무술 고수 따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박우찬이 활용하는 건 보다 단순한 직감.
소위 말하는 제육감에 더해, 마력 감응 능력을 동원하는 수준이니.
몬스터에 대한 상세 정보가 없는 지금은 오히려 파악하기 쉬울 정도였다.
여하간, 눈 앞에 있는 건 단순한 마력 덩어리.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본질 자체는 어쩌다 보니 악마의 형태를 취하게 된 슬라임과 다르지 않다.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상대는 마신이 아닌 마신의 그림자.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신 본체를 상회하는 마력 그 자체다.
허면?
'어디를 노리지?!'
만일 마신이 상대였다면 박우찬 또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겠지.
손톱을 꺾는다.
발톱을 깎는다.
피부를 벗겨내고 뼈를 끊어, 근육을 짓뭉개고 내장을 바스라뜨린다.
그렇지만, 마력으로 이루어진 그림자에게 실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히 피륙이나 근골 따위도 없다.
평소처럼 해체하기는커녕 도대체 어떤 공격이 통용될지 알 수도 없는 상황.
'뭐, 적당히 해 볼까.'
하지만.
그 이상 자질구레하게 고민하는 대신, 박우찬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애시당초 그런 건 직접 부딪히면서 상대해볼 수밖에 없다.
안개와 같이 흐릿한 몬스터. 몸 전체가 액체로 된 몬스터.
그런 부류 또한 상대해 본 적은 있었지만, 순수하게 온 몸이 마력으로 이루어진 분신.
그런 존재를 상대로 해본 건 그야말로 처음이었으니까.
어차피 생각해 봤자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부딪힐 뿐.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박우찬은 발끝에 마력을 모았다.
축지와는 다른, 자신의 마력을 무작정 후방으로 방출할 뿐인 행동.
그 추력을 받아, 박우찬의 몸이 방금 전 공격 행동을 마친 마신의 왼팔로 작렬했다.
물론 마력으로 이루어진 몸은 실체와 다르다.
공격한 후의 반동 등을 고려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파파팟!!
그렇게 추락하는 박우찬을 향해, 마력이 마치 넘실대듯 파도처럼 작렬했다.
다만.
박우찬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물리적인 실체가 없다는 건,반대로 그런 만큼 물리적인 간섭 능력 또한 뒤떨어진다는 뜻.
한 마디로 말해서, 마력의 가시를 쏘아도 진짜배기 가시를 사출하는 것보단 당연히 데미지가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때문에.
박우찬은 그대로 자신의 코트를 앞세웠다.
그리고.
쏘아낸 마력의 가시가 코트 앞에서 무너지는 그 상황.
재빠르게 도구를 활용해 공간을 조작한 박우찬의 손끝이, 반 년 전 사용했던 물건을 쥐었다.
최승준의 초대로 인해 시작되었던 예의 파티 당시.
악의의 마신을 도살하기 위해 사용된 약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약초를 농축한 성스러운 힘 덩어리였다.
그대로 칼날에 조로아스터 교의 제법에 맞추어 정제한 약초 덩어리를 담아 적신다.
동시에.
코트를 거두는 것과 함께, 일섬.
작렬한 일격이, 마신의 팔을 떨어뜨린다──……!!
"애미."
그리고.
너무나도 시원스럽게, 박우찬의 몸이 땅으로 착지했다.
무언가를 베는 손맛도, 무언가를 베는 데에 느껴지는 저항도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
상대는 육체를 가진 실체가 아니다.
단순한 마력의 덩어리다.
단순한 공기를 베는 것 이상으로 실감이 없는 감각.
덕분에, 마력으로 이루어진 육체를 베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손맛은 꺼림칙하기 그지없었다.
결과 또한 마찬가지였다.
단면부에서 솟구친 검은 마력.
그것이 떨어진 마신의 육체를 그대로 빨아당기듯 기워 없앤다.
부상을 채운다. 회복한다.
그렇게 말하기보다는, 마력이 다시금 악마의 형태를 띄었다고 말해야 할 모습이었다.
그 사실에, 박우찬은 자신도 모르게 쯧 하고 혀를 찼다.
꽤나 기분 나쁜 싸움이 될 듯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