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화 〉 악마
* * *
그리고.
박우찬과 정필연은 마지막 건물을 향해 발을 들였다.
여태까지 지지부진하게 마신의 뒤를 쫓아야 했던 데에 비하면 참으로 깔끔한 행동이었다.
도주. 함정.
어느 쪽이든,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박우찬의 감각은 확실하게 고하고 있었으니까.
이 앞에 마신의 노림수가 있다.
징그러울 정도로 밀집된 마신의 마력이 그러한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때문에.
[흠, 그 쪽이 박우찬 군이오? 거 참, 생각보다젊군 그래.]
뒷골목 너머.
컨테이너 박스라는 이름도 아까운, 다 쓰러지기 직전인판잣집 안.
그 너머로부터 악마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박우찬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아니,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야 했지만.
[어느 쪽이든, 반갑소. 어디 보자, 이제 와서 자기 소개를 할 필요가 있을런지?]
"……불만의 마신Nanghait."
[그래. 그게 내 이름이지.]
어깨를 좁히며 그렇게 말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악마가 아닌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박우찬은커녕 상대적으로 감지에 서투른 정필연 또한 알 수 있었다.
구태여 물을 필요도 없었다.
어깨 너머로 메아리치고 있는 마력.
진득하기 짝이 없는 존재감이 그 너머에 도사리고 있었다.
……정신 간섭에 특화된 마신이 성좌 노릇을 자처하면 저런 기예도 부릴 수 있는 건가.
그런 감상밖에 나오지 않았다.
바야흐로 빙의라 칭해야 할 현상이었다.
계약을 통해 자신의 마력을 내리고, 정신 간섭을 통해 자신의 정신을 투사한다.
덕분에, 눈 앞의 헌터는 그 입으로 마신의 뜻을 옮기고 있었다.
다만.
"의외군."
[흠?]
마신 본인이 없다는 건 예상했다.
허나, 저토록 태연하게 말을 걸 줄이야.
십중팔구 기습이 있으리라 예측했던 게 무안할 지경이었다.
동시에, 묘한 느낌이기도 했다.
만약 눈 앞에 있는 게 마신의 본체였다면 박우찬은 망설임 없이 그 목을 베어 끊었겠지.
무언가 달리 용무가 있었다 해도 마찬가지.
필요하니까. 사정이 있으니까.
고작해야 그런 이유로 멈출 수 있을 만큼 박우찬의 본능은 야트막한 물건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그만큼 다루기 쉬운 물건이었다면 티아마트를 볼 때마다 살의를 억누르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었으리라.
하지만.
눈 앞에 있는 마신의 권속은 달랐다.
느껴지는 마력과 존재감.
어느 쪽도 마신이라는 이름에 부족함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성좌로서 마신이 선택한 권속일 뿐.
단순한 체감으로 따지면 혼혈의 절반 가량에 지나지 않았다.
때문에.
박우찬은 실로 낯선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설마 몬스터를 눈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게 될 줄이야.
미묘한 기분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는 상황이니까.
당연히 별다른 화두 따위를 준비했을 리도 없다.
그러므로.
"언제부터 그렇게 친절한 친구가 된 거지?"
지금 이 대화 자체가 의외라고 말하는 대신, 박우찬은 구태여 다른 의문을 입에 올렸다.
그 모습을 보며, 마신은 자신의 의식이 깃든 육체를 가볍게 떨었다.
인간으로 따지자면 헛웃음을 터트리는 듯한 행동이었다.
……무슨 뜻인지 따로 물을 필요는 없겠지.
박우찬 또한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여하간, 지금 눈 앞에 있는 건 불만의 마신이었으니까.
그리고.
조로아스터 교에서 말하길, 인간 세상은 선과 악의 싸움이 반복되는 각축장일 따름이니.
악신과 그 권속 된 마신들은, 사람의 마음을 악으로 물들이면 물들일수록 그 힘을 크게 늘린다고 한다.
마치 선신과 그 권속 된 성신들이 지상에 정의를 퍼트릴 때마다 그 명성을 널리 떨치듯이.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 감정이 곧 신들의 힘으로 바뀌는 셈이다.
예를 들어, 눈 앞의 마신이라면불만.
사람의 마음에서 샘솟은 불만이 곧 놈의 힘이 되고 마력이 되겠지.
때문에.
만에 하나 눈 앞의 마신이 그저 사람들에게 불만의 씨앗을 뿌렸을 뿐이라면 박우찬 또한 납득할 수 있었으리라.
본인의 힘을 키우기 위한 공작이었겠지, 하는 식으로.
그렇지만.
눈 앞의 마신은 달랐다.
지금까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최소 30명 가까이.
어쩌면 그 이상 되는 사람들을 마신은 성좌로서 이끌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몬스터라는 입장을 고려하면 마신의 이번 행동은 말도 안 되는 자충수에 지나지 않는다.
바야흐로 악마이기에 가능한 행동.
인간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광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악마 또한 생물.
별다른 이유 하나 없이 미래의 적을 늘리는 일에 투자를 하진 않겠지.
다시 말해, 눈 앞의 마신에게는 악마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비록 인간의 관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망발뿐일지라도.
박우찬은 그 이유가 궁금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당장 생각나는 질문이 그 정도밖에 없었다.
그리고.
[흠.]
그런 박우찬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마신은 다시 한 번 콧소리를 냈다.
거기에는 다소 미묘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즉.
[그토록 의외인고?]
"뭐?"
[내가 벌인 행동이 그토록 의외인 일이었나 물었소만.]
그야 그렇지.
그렇게 답하는 대신, 박우찬은 조금 머쓱한 기분으로 콧잔등을 긁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하는 마신의 말에는 묘한낙담이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알고 있겠지만, 나는 사람 사이의 불만을 관장하는 존재요.]
"그래서?"
[물론 박우찬 군 입장에서 보자면 불만은 내게 힘을 주는 사악한 감정일 뿐이겠지.]
다만.
한 호흡.
마신은 그렇게 말하며 양 팔을 좌우로 던졌다.
[실제로는 어떠할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현대 심리학으로 치자면, 스트레스라는 개념이 있잖소?]
신화 속 괴물들이 다시금 되살아나는 이 시대에, 마신의 입에서 스트레스라는 단어를 들을 줄이야.
박우찬으로서는 다소 미묘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야 지나칠 정도로 강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곤란할 따름이겠지. 허면, 스트레스는 정말로 도움이 되지 않는 감정일까?]
공교롭게도 그렇지 않았다.
적절한 스트레스가 업무 효율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니까.
[마찬가지요.]
그리고.
불만의 마신은 자신이 관장하는 감정 또한 그런 부류라고 주장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불만의 마신이라는 이름도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오만.]
"거 참,불만한 번 많네."
[바로 그거요! 나 참, 앞으로는 자기 계발 욕구의 악마라고 자칭해야겠군.]
물론 박우찬은 눈 앞의 마신을 그렇게 부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다만.
흘끔, 바로 옆에 선 정필연의 얼굴을 살핀다.
다소 어리벙벙한 표정이 눈에 띄었다.
그야 그렇겠지.
마신. 악마.
사람을 타락으로 유도하는 괴물.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면 놈들의 이런 모습엔 당황할 수밖에 없으니까.
하물며, 대다수 의심 많은 사냥꾼들의 생각과 달리 악마들은 거짓말을 내뱉고 있는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진심.
사람의 마음과 접하기 위해선 진솔한 기분으로 다가가는 게 보다 도움이 되니까.
그렇기에, 대다수 악마들은 뒤틀린 의도를 지니고 접근하는 대신 진정으로 사람을 걱정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악마 또한 생물.
사람을 속이는 게 그들의 본성이라면,되먹지도 않은 초월자 노릇보다는 이 쪽이 차라리더 효과적일 테니까.
틀린 말도 아니었다.
적어도 인간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렇지만.
결국 악마 또한 생물이라고 한다면, 본질적으로 사람을 기만하는 존재라는 건 바뀌지 않는다.
보다 적합한 표현으로는본능이란 단어가 있겠지.
요컨대, 눈 앞의 악마 또한 겉만 번드르르한 개자식이라는 소리다.
박우찬은 그러한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불만이 곧 자기 자신에 대한 성장으로 이어진다, 라는 건가?"
[그렇소! 아주 잘 알고 있구려.]
"그래서?"
[흠?]
"여기 있던 놈들은 도대체 무슨 성장을 거쳤다는 거지?"
그 말에 정필연은 불현듯 깨달았다.
방금 전, 눈 앞의 악마는 그렇게 말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은 곧 스스로의 성장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라고.
어쩌면 그 말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당장 정필연이 듣기에도 꽤나 그럴싸한 이야기였으니까.
다만.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의 앞을 가로막던 불량배들에게 무언가 성장의 여지가 있었느냐 묻는다면…….
반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자경단 노릇에 매진했던 정필연으로서는 역시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다.
[뭐,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소만.]
물론마신이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단지.
마신과 사람.
악마와 헌터 사이의 관점 차이는 고작해야 이런 잡담으로 만회할 수 있는 수준이아니었을 뿐.
"들려주십시오."
[좋소. 예를 들면, 어떤 헌터는 게이트가 열렸을 당시 눈 앞에서 가족들이 잡아먹히는 몰골을 보게 되었지.]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애처롭게도, 스스로의 윤리관에 갇혀 제대로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더군.]
"예?"
마신이 말하고자 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썩 불길한 어조였다.
적어도 정필연에게 있어 애처롭다는 표현은 윤리관이라는 단어와 함께 사용될 만한 물건이 아니었으니까.
실제로도 그러했다.
때문에.
정필연의 기대와 달리, 망설이는 헌터 앞에 모습을 드러낸 불만의 마신은 오히려 그 등을 살짝 떠밀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스스로의 무력함. 가족들에 대한 사랑.
온갖 감정 속에서 번민하고 있던 헌터는 이윽고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헌터는 살아남는 데에 성공했다.
하필이면 몬스터한테 붙잡힌 가족들에 대한불만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피붙이조차 외면할 수 있는 비정함을 손에 넣은 덕분이었다.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누군가.
오로지 자신의 이득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할 수 있을지 선택의 기로에 선 사냥꾼.
[나는 그런 자들의 등을 밀어주었을 뿐이오.]
불만의 마신은 당당하게 그리 말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정필연을 설득하기에 좋은 대사는 아니었다.
물론 박우찬이 보기엔 실로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야 그렇겠지.
불만의 마신이 찾아다니는 건 한층 거대한 불만.
허면?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은 불만을 품는 대상.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선을 넘길 망설이는 존재를 과연 무엇이라 하는가?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
법이다.
다시 말해, 눈 앞의 마신이 저지른 행동은 겉만 번지르르할 뿐 실제로는 단순한 범법자 양성에 지나지 않았다.
누차 진화를 거듭했다 한들, 악마의 본질에 변화는 없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있어 한층 더 크게 두드러지는 관점 차이.
그게 바로 악마와 사람 사이를 가르는 결정적인 경계선이었다.
……꾸욱.
정필연의 시선에 힘이 들어간다.
그 모습을 확인한 뒤, 박우찬은 다시금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물론 마신 또한 바보는 아니다.
비록 이해하지는 못했다 한들, 정필연의 감정이 자신에 대한불만으로 뒤바뀌는 건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다.
때문에.
다음 순간 마신은 푸욱 하고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이해할 수가 없군. 어째서 내게 적의를 품는 거요?]
"걱정 마. 필연이도 그렇게 생각할걸."
능청스레 그리 말하며 대검을 쥐는 박우찬.
아무래도 정필연 또한 악마라는 몬스터가 얼마나 추악한 존재인지 깨달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허면, 더 이상 망설일 필요도 없겠지.
그런 그의 모습을 향해 마신은 다시 한 번 한숨을 토했다.
[그렇다 쳐도, 박우찬 군은 내게 은혜를 입지 않으셨소?]
"어, 일단 그 호칭부터 어떻게 좀 하지. 죽여버리고 싶은데."
[좋소. 허면, 다시 묻도록 하지. 귀공은 내게 은혜를 입지 않으셨소?]
참으로 신속한 대응이었다.
과연 불만의 마신이라고 해야 할까.
그 모습에 조금 어처구니없는 기분을 느끼면서도, 박우찬은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은혜?"
[그렇소. 만일 내가 없었다면 그 여아가 그토록 과감하게 행동을 나설 수 있었겠소?]
"뭐?"
턱 하고 말문이 막힌다.
아니, 그야 처음에는 예은이가 돌발 행동을 벌였던 탓에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알고 계실 거요. 그 여아는 정말로 요령 없는 성품이지.]
"어,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허면? 만에 하나, 내가 없었을 경우어찌 되었을 것 같소? 평생이 가도록 무언가 진전이 있기는 했을까?]
"응?"
[설마! 그럴 리 없지. 여하간, 헌터 노릇에 치중하느라 남자친구 한 번 없던 계집애였으니까.]
"으, 으음."
[보나마나 30세가 될 때까지 누구 하나 데려가지 않는 상폐녀가 되었을 거요!]
"어, 그건 조금 심하지 않나……?"
[심하긴! 심한 건 중학생도 아닌데 아직까지 자신을 백마 탄 왕자님이 데리러 올 거라믿고 있는 그 계집애 쪽이오.]
참으로 신랄한 반응이었다.
예은이를 마치 색노망 든 계집애처럼 묘사하는 마신.
동급생인 정필연으로서는 퍽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예은의 이미지가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떨어졌을 정도로.
물론 불만의 마신은 그런 사정에 연연하지 않았다.
[만약 그 계집애가 제 머릿속에서 담임이라는 작자를 몇 번이나 자빠뜨리고 있었는지 듣기만 해도 놀라울 거요.]
"아니, 잠깐."
[하긴,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 할 수도 있겠군.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고 있는 계집애 앞에 나타나 멋들어지게 앞날을 제시한 담임 교사라니!]
불만의 마신은 자못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정필연의 시선을 받고 있는 박우찬으로서는 차라리 죽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야 초조하긴 했겠지. 다른 친구들이 앞서나가는 사이 자신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꼴이니. 나는 그저 그녀를 응원하고 싶었을 뿐이외다!]
"씨발년아!!"
결국 박우찬은 참다 못해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런 사냥꾼의 모습에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는 마신.
[그래. 내가 귀공에게 얼마나 많은 은혜를 베풀었는지 이제 조금 실감이 가시오?]
동시에, 정필연은 그리 생각했다.
과연.
만약 저게 보편적인 악마들의 관점이라 한다면, 그야 화합하지 못할 법도 하다고.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숫제 남의 일이라는 듯한 태도였다.
남의 일이긴 했지만.
"너를 죽이겠다."
[……이해할 수 없군!]
세상 억울하다는 어조로 그렇게 외치는 불만의 마신.
그 모습에, 정필연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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