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화 〉 불만의 마신
* * *
물론 마신 쪽도 박우찬의 개입은 익히 눈치채고 있었다.
뒷골목을 중심으로 늘어뜨린 능력 너머.
마치 낚싯줄처럼 매달린 인간들의 의식이 뚝뚝 끊기는 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처할 수는 없었다.
박우찬 측의 행동이 지나칠 정도로 신속했던 탓이다.
당장 마신이 직접 개입한 인간이 얼추 50명 가량.
그런 인간들을 경유해 간섭한 게 추가로 또 몇백 명이다.
말하자면, 현재 도시의 뒷골목을 주름잡고 있던 대다수 조직들의 핵심에 마신의 손길이 닿은 상황.
다시 말해, 이토록 급박한 속도로 연결 너머의 반응이 끊기고 있다는 건…….
'본격적으로 나선 모양이군.'
잘 해도 한 시간 사이에, 마신이 준비한 판의 6할 이상이 날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신의 얼굴에 동요는 없다.
당연한 일이지.
마신에게 있어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흥미 본위.
말하자면 단순한 장난이다.
때문에, 진지하게 화를 낼 필요도 없었다.
뭐, 장난을 치던 도중 갑자기 정색하고 들이닥친 박우찬의 행동에 어이가 없긴 했지만.
도리어 흥미가 솟은 것 또한 사실.
박우찬이라는 사냥꾼에 대한 이야기는 마신 또한 들은 적 있었다.
인간들이 만든 조직, 신세계 질서의 행동을 몇 번이나 방해했다는 헌터.
다시 말해, 마신의 발 밑에 엎드린 인간들의 적이었다.
단순한 진영 논리로 따지자면 마신의 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공교롭게도, 마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애시당초 마신은 신세계 질서를 향해 별다른 감상 하나 품지 않았던 탓이다.
거기에는 물론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예를 들면, 수족 노릇에 충실하기는커녕 서로 내전을 벌이고 있는 몰골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던가.
혹은, 보신을 위해 머리를 숙인 그 모습이 썩 우스꽝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마신에게 있어 신세계 질서는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소모품.
호흡할 때마다 산소에 감사하는 사람이 없듯이, 존중할 필요 따위는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거기에 비하면 박우찬의 행동은 차라리 시원스러운 부분이라도 있으니.
어느 쪽이 마음에 드느냐 묻는다면 그야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
그러므로.
마신은 조용히 스스로의 힘을 조작했다.
어째서 박우찬은 갑자기 이런 일을 벌인 건지.
도대체 그 목적은 무엇인지.
어느 쪽이든, 꽤나 흥미는 있었다.
*
비 인가 헌터, 장종운은 자신이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제 2차 대침공 당시, 눈 앞에서 열린 게이트 덕에 각성한 직후.
스스로가 거둔 수많은 성공을 생각하면 그리 여길 법도 했다.
물론 장종운이 거둔 성공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얼마 되지 않았다.
목숨을 대가로 내거는 대신 어마어마한 소득을 올리는 직업이 바로 헌터.
장종운이 헌터 협회를 상대로 떼먹은 돈 따위는 그야말로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장종운은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여하간, 그에게 있어 헌터의 힘은 몬스터와 싸우기 위해 있는 물건이 아니었으니까.
단순한 E랭크 헌터만 해도 제 능력을 다룰 수만 있다면 평범한 사람 이상으로 돈을 만지는 건 일도 아니다.
막말로, 단순한 막노동만 해도 먹고 살 수는 있겠지.
때문에.
장종운은 다른 헌터들처럼 부귀영화를 노리는 대신 얇고 긴 삶을 지향하기로 했다.
참으로 감미로운 인생이었다.
힘을 앞세워 윽박지르기만 해도 사람들은 지레 겁을 집어먹으며 돈이 될 만한 물건을 바치고는 했다.
그런 삶에 익숙해진 장종운이 보기에, 구태여 몬스터를 사냥하고자 목숨을 거는 건 실로 바보같은 행동이었다.
물론 장종운의 그런 관점이 눈 앞에서 열린 게이트를 보고 생긴 트라우마라는 건 스스로도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덕분에 장종운은 여태까지 그럭저럭 아늑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래.
몬스터를 상대로 일확천금을 노릴 필요는 없다.
헌터로서 지닌 힘만 있다면, 이 시대에서도 적당히 여유를 누릴 수 있는 법이니까.
허나, 목숨을 걸고 싸운 적이 없었던 탓일까?
장종운은 몰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사내가 여태까지 영화를 누릴 수 있었던 건 상대가 인간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보다 약한 자들만을 상대로 주먹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오늘 이 장소를 방문한 헌터들은 목숨 한 번 건 적 없는 그의 주먹 따위로 저항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뻐억!!
시원스레 휘두른 주먹이 장종운의 안면을 후려갈긴다.
그렇게 장종운의 의식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씨발."
다시 한 번 불량배들의 조직을 정리한 박우찬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푸욱 하고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정신적인 피로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작업 자체는 그렇게 어려울 건 없었지만, 문제가 되는 건 역시 그 숫자다.
벌써 30개 가까운 조직을 박살낸 지금, 박우찬은 익숙하지 않은 일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이었다.
문제는 그 밖에도 더 있었다.
묘한 초조감.
방금 전부터 박우찬의 목덜미를 간질이는 묘한 감각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방금 전 그가 쓰러뜨린 눈 앞의 하위 헌터.
혹은, 그 헌터에게 깃들어 있던 마력 탓이다.
얼마 전.
교실 한 가운데에서 돌발 행동을 벌였던 예은이와는 다르다.
마찬가지로, 이번 작업 초기에 박살을 냈던 마신의 끄나풀과도 달랐다.
'짙어졌군.'
마신의 기색이 짙어졌다.
명백할 정도로.
적어도 박우찬의 감각을 기준으로 하면 그랬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박우찬은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척들 중 유달리 눈에 띄는 놈들부터 박살내며 전진했다.
다시 말해, 가면 갈수록 감각이 죽으면 또 몰라도 강해질 이유는 없다는 뜻이었다.
하물며 손에 닿는 놈들은 모조리 박살내고 있는 지금은 더더욱.
즉.
'눈치챘나?'
마신 쪽에서도 박우찬의 행동을 눈치챘다.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숨길 생각도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때문에, 마신은박우찬 주변에 있는 불량배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기운을 조정하며 그를 유도하고 있었다.
마치 새를 유인하듯이.
거기까지는 상관 없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필연아, 어때? 마찬가지냐?"
그렇게 되묻는 박우찬의 물음을 듣고, 정필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얼굴 위로는 정말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알쏭달쏭한 기색이 묻어나고 있었다.
"네. 도대체 이건 또 무슨 일인지……."
그야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으리라.
솔직히 말하자면, 박우찬 또한 의식하지 못한 점이었다.
막말로, 박우찬이 몬스터의 생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놈들을 죽이기 위한 수단을 강구하기 위해.
불만의 마신이 자신의 휘하에 든 불량배들을 상대로 무슨 짓을 했는지.
나아가서는,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 간섭을 한 건지 등은 사실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 박우찬의 관심이 향하고 있는 건 마신이 자신을 유인하고 있다는 점 뿐.
때문에.
이번엔 박우찬 대신 정필연이 먼저 반응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정필연의 마력 감응 능력은 박우찬의 절반도 미치지 못한다.
만약 몬스터가 상대라면 높게 쳐도 1할은 되기 힘들겠지.
그런 만큼, 정필연이 박우찬도 눈치채지 못한 점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정필연이 박우찬을 상대로 유일하게 앞서는 경험 덕분이었다.
그래.
일찍이 정필연은 차세대 헌터의 일각이라 불렸던 유망주.
단순한 실력이야 어쨌든, 당장 1년 전까지만 해도 비 인가 헌터였던 박우찬보단 면식 있는 헌터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상한데요. 이 녀석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필연은 그렇게 판단했다.
박우찬이 꺼림칙한 기운이라 지칭한 마신의 마력을 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즉.
"……성좌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 30명을 넘는다니."
놀랄 만한 일이었다.
E랭크부터 A랭크까지, 수많은 헌터들과 두루 알고 지내는 정필연도 면식이 있는 성좌의 권속은 그야말로 한 줌.
채 열 명이 안 되는 판국이었으니까.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다.
어쩌면 이 주변에 일찍이 모습을 감추었던 악마가 나타났을지도 모르겠다는 박우찬의 말이 조금 다른 의미였나 싶을 정도로.
'성좌의 선택을 받은 헌터들을 우선해 세뇌하고 있었던 건가?'
정필연으로서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실로 상식적인 판단이었다.
무작정 불량배들을 들쑤시던 와중 자그마치 서른 명 가까운 성좌의 권속들을 만난 판국이었으니까.
동네 불량배들 중 서른 명이 성좌의 선택을 받았다거나, 성좌의 선택을 받았는데도 뒷골목에서 전전하고 있었다거나.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는 쪽보다야 훨씬 합리적인 판단이었으니까.
그러나.
박우찬은 알고 있었다.
여하간, 박우찬은 성좌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으니까.
도망친 악마.
어쩐지 부쩍 늘어난 성좌의 권속들.
정필연에게 있어선 완전히 개별적인 이야기였지만, 박우찬이 보기엔 이토록 밀접한 관련을 가진 사안도 달리 없었다.
여하간, 지금 이 뒷골목에 숨어든 건 단순한 악마가 아니었으니까.
먼 옛날, 이란 땅에서는 선신에 대응하는 악신이라는 이름으로 숭배를 받았던마신이다.
즉.
'썩어도 신이라 이거지.'
불만의 마신이 뒷골목을 통해 양성하고 있었던 군세는 단순한 일반인 병졸 따위가 아니었다.
마신이라는성좌의 선택을 받은 사냥꾼들의 군대.
쯧, 박우찬은 자신도 모르게 다시 한 번 혀를 차고 말았다.
차라리 조기에 발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지만.
'이 새끼, 제정신이냐?'
몬스터에게 있어, 사냥꾼은 가장 큰 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설임 없이 사냥꾼을 양성하는 그 행동.
악마 계통 몬스터가 대개 그렇지만, 역시 기분이 나빴다.
동시에,시선을 돌린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간질간질하던 감각이, 쭈삣 하고 곤두서는 게 느껴졌다.
애매하게 이어지던 마신의 마력이 한층 더 농밀하게 기세를 키운다.
비유하자면, 미끼를 들이미는 듯한 행동.
덕분에 박우찬은 완전히 눈이 돌아가기 직전이었다.
이제 와선 숨길 필요도 없다는 뜻이겠지.
……확실히 박우찬은 지금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유혹하듯 눈 앞에서 살랑거리던 마신의 마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의 마력의 숙주가 된 건 어디까지나 인간.
박우찬으로서는 그야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몬스터 따위가 자신을 상대로 장난을 치는 건 더더욱.
그렇지만.
공교롭게도, 박우찬은 저런 유혹을 거부할 수 있을 만한 인물도 아니었다.
때문에.
지금 이 상황을 정필연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예의 마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수많은 고민을 품으면서도, 박우찬은 그 쪽을 향해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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