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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25화 (225/371)

〈 225화 〉 불만의 마신

* * *

예의 초대형 게이트 발생 직후, 이 도시의 뒷골목에는 온갖 불량배들이 우후죽순 몰려들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무너진 사회 규범. 자연스레 형성된 난민촌.

나아가서는, 반 년이 지나서도 아직까지 달라진 점 하나 없는 현실.

어느 쪽이든, 힘을 제일로 삼기에 딱 좋은 시대였다.

물론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어쩔 수 없다는 건 몇 번이나 말했듯 사실이다.

시간적인 문제. 여건 상의 문제.

막말로, 집이라는 게 명령 한 번 내린다고 생기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언제나 합리적으로 움직이는 물건이 아니다.

시간이 없으니까. 달리 우선해야 할 장소가 있으니까.

그런 사정을 들어도 내심 불만을 품는 사람은 얼마든지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결집한 불만은 대개 건설적으로 작용하지 않는 법이다.

사회의 기틀이 무너져, 맨 파워가 곧 힘이 되고 발언권이 되는 지금 이 시점.

대다수 사람들은 온건한 정치 활동에 투신하는 대신 스스로의 권위에 취하는 경우가 다반수였다.

중남미 등의 마피아들이 으레 그랬듯이.

마찬가지다.

만약 그대로 방치했다간 먼 훗날 한국계 폭력 조직 부활의 신호탄을 알리기 딱 좋을 토양.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그 점을 놓치지 않았다.

비 인가 헌터. 힘깨나 쓴다는 어깨.

혹은, 해외를 포함해 이런 뒷세계 시장에 관심 좀 많을 친구들.

그런 작자들은 모조리 이 뒷골목에 손을 뻗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선행 투자라고 할 수 있겠다.

5년 후. 10년 후.

즉, 언젠가 찾아올지도 모르는 대한민국 사회의 붕괴 이후.

가장 유용할 자리를 미리 맡아두기 위해서였다.

말하자면, 필연이나 예은이를 비롯한 자경단들도 모르던 계략이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니까, 바로 어제까지는.

"으아아아악!!"

허면, 나로서는 그리 말할 수밖에 없겠다.

장사는 끝났소. 집으로 돌아가시오.

아니면 뒈지시던가.

대충 열 개 째.

뒤가 구린 일에 손을 대고 있던 어깨들이 무력하게 나동그라진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선행 투자니 뭐니 해도 아직은 결국 먼미래의 이야기.

고작해야 선발대 수준에 지나지 않는 놈들이 현역 S랭크 헌터 앞에서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통상적으로 A랭크 이상 헌터는 국가적 무력으로 취급받기 마련이니까.

나름 힘 좀 쓴다는 어깨들 수준으로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덕분에 나는 별다른 문제 없이 놈들을 박살낼 수 있었다.

"허어."

그 모습을 보며, 필연이는 떡 하고 입을 열었다.

내게 이 동네의 생태를 알려주었던 당사자 치고는 참 순박한 반응이었다.

"아니, 그야 제가 알려드린 건 자경단 활동 정도였잖아요."

정작 필연이는 그렇게 답할 뿐이었지만.

뭐, 틀린 말도 아니다.

바로 어제, 자경단 활동 중 있었던 일에 대한 설명을 들은 이후.

나는 필연이에게 부탁해 당시 두 명이 휴식을 취했던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직후부터, 주변에 있는폭력 조직이란 조직은 모조리 긁어 박살내고 있는 중이었다.

다만.

필연이의 기대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 내가 불량배들을 솎아내는 데에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다.

그야 필연이가 보기엔 놀라울 뿐이겠지.

고작해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안내를 부탁했던 내가 불법 조직들의 거점을 속속들이 색출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내 입장에선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실제로는 단순한 찍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아니, 사냥꾼이 폭력 조직 상대할 일이 세상 천지 어디에 있다고?

하물며 여기는 대한민국.

조폭이라는 단어가 사멸하고도 어언 반세기가 지난 나라였다.

당연히 나 또한 폭력 조직들을 추적하는 기술 따위는 배운 적 없었다.

즉.

지금 내가 폭력 조직을 소탕하고 있는 건어디까지나 목적이 아닌 결과.

혹은 단순한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이 녀석들을 들볶고 있는 건 갑자기 샘솟은 정의감 탓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재 이 뒷골목에는 슬럼가가 형성되기 직전이다.

그에 따라, 힘 좀 쓴다는 어깨나 비 인가 헌터들이 몰려들고 있는 점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허면?

사회의 최저변이 붕괴한 지금 이 상황.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불만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지금 이 뒷골목은 마신에게 어떤 식으로 보일까.

모르긴 몰라도, 최소한 감미로운 사냥터는 되었으리라.

사람의 마음에 잠든 악의를 건드려, 악인으로 전락시키는 악의의 마신.

이와 달리, 불만의 마신이 증폭시키는 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 속에 품고 있기 마련인 불만 그 자체.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대한 미움이다.

개인을 타락시키는 데에 특화된 악의의 마신과 달리, 사회를 붕괴시키는 데에 특화된 마신.

그게 바로 불만의 마신이라 할 수 있겠지.

때문에.

나라의 온갖 불만이 모이고 있는 지금, 이 장소는 불만의 마신이 눈독을 들이기에 실로 적합한 장소였다.

이번에 예은이한테 수작을 부린 일 또한 마찬가지다.

만약 불만의 마신이 예은이에게 손을 댄 게 틀림없다면?

건달. 난민. 자경단.

온갖 불만이 한데 집결하고 있는 지금 이 장소를, 불만의 마신이 넘어갈 수 있을까?

아니, 그럴 리 없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을 리 없지.

오히려 마신이 예은이를 발견할 수 있었던 이유가 하필이면 이 근처였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으리라.

때문에.

내가 취한 행동은 실로 간단했다.

필연이에게 안내받은 장소 위에 서서, 한층 더 날카롭게 감각을 가다듬는다.

그 시점에서, 불만의 마신이 사전 준비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한들 내 감각을 피할 수는 없다.

그렇게 걸리는 마신의 흔적들을 모조리 때려 부수면 그만.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폭력 조직들은 하필이면 거기에 연루당했을 뿐이다.

마신의 잔향이 짙게 남은 장소.

다시 말해, 지금 이 뒷골목에서 가장 많은 불만을 품고 있는 건달들의 아지트.

나로서는 자연스레 그런 장소를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별다른 기대는 할 수 없었지만.

모르긴 몰라도, 이 근처에 마신 본인이 직접 머무른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일전 우리가 류인형을 통해 추론했던 마신의 거점 지역과도 상당히 거리가 있고.

적어도 내 감각엔 마신의 기척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내 감각에 걸리지 않았다는 건 마신이 이 근처에 없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애초에, 불만을 부추기는 건 실로 간단한 일.

구태여 마신의 권능으로 불량배 전원을 장악할 필요도 없다.

적당히 핵심이 될 만한 인물.

혹은, 단순한 바람잡이 따위를 뿌리기만 해도 불평은 멋대로 자라기 마련이니까.

하물며, 만약 마신이 머무르고 있다 해도 마찬가지.

설령 마신을 죽인다 해도 나락으로 가버린 내 평가는 딱히 되돌아오지 않는다.

굳이 따지면 예은이가 정신을 차릴 가능성은 있겠지만…….

때문에.

내가 지금 여기서 때 아닌 폭력 조직 박멸에 힘을 쓰고 있는 건 다름이 아니었다.

아니, 빡치잖아?

씨발, 누구는 사회적 평판이 완전히 나락으로 가버린 판국에 정작 당사자는 이 근처에서 꿀이나 빨고 있다고?

말하자면, 내게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단순한 화풀이.

별다른 이득이나 철저한 계산 하에 벌인 행동이 아니었다.

마신이 깔아둔 판을 내키는 대로 뒤엎을 뿐.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런데, 뭔가 엄청 많네요."

필연이가 내 감상을 대변하듯 그렇게 말했다.

……그래.

처음에는 분명 그런 이유로 시작했던 일이다.

빡치니까.

마신 그 새끼 얼굴에 똥오줌을 갈기고 싶으니까.

헌데.

"크아아아악!!"

"씨발. 안 닥쳐, 이 새끼야?"

"끄아아아악!!"

우직!!

불현듯 달려드는 깡패의 코뼈를 향해 노크하자, 곧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얼굴이 내려앉는다.

내가 보기에도 참으로 절묘한 힘 조절이었다.

이처럼, 어깨 친구들을 제압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

비록 상대가 몬스터는 아니라 할지언정, 먼지도 안 나올 때까지 두들겨 팰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 필연아. 이게 열 여섯 번째냐, 열 여덟 번째냐?"

"스물 두 번째인데요."

"개쩌네."

아니, 진짜로?

스물 두 번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지 않냐?

물론 필연이에게도 나름 설명하긴 했다.

어쩌면 예은이의 급격한 변화는 누군가의 정신 간섭 능력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침 저번 초대형 게이트 발생 당시 우리들이 놓쳤던 악마들 중에 비슷한 능력을 가진 녀석이 있었다.

뭐, 그런 식으로.

그렇지만.

'지나치게 많아.'

예은이의 사례로 보건대, 이 주변에는 악마가 숨어 있다…….

그런 식으로 넘어갈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다.

아니, 그 이전에.

단순한 악마가 아닌 마신을 기준으로 생각해도 지나칠 정도였다.

나라고 해도 의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야 불만이 발휘하는 능력에 대해선 알고 있다.

말했다시피, 악의의 마신과 달리 개인이 아닌 다수.

다시 말해,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정신 간섭 능력.

그러니, 만에 하나 불만의 마신이 이런 일을 벌였다면 그 목적 또한 쉬이 짐작할 수 있다.

군대.

마신의 수족이 되기 위한 방패이자 병력을 양성하기 위해서겠지.

처음엔 단순히 불만을 토로하기 위해 모인 자들이라 해도, 마신의 권능 앞에선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적당히 끄나풀을 심어둔 다음 나중에 수확을 시작하면, 마신은 엄청난 양의 인간 병력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리고.

상대가 인간이라면, 나나 이준구는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다.

최승준은 얼리면 되겠지만 말이지.

효율적이라면 효율적이라고 평할 수 있을까.

때문에, 만약 그 뿐이었더라면 나 또한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으리라.

다만.

'뭐지?'

그렇다면 구태여 예은이를 건드릴 필요가 있을까?

적어도 지금처럼 내가 달려들 가능성을 모르진 않았을 텐데.

그런데도 굳이 예은이를 건드리다니.

단순히 어떻게 되어도 상관 없었다?

아니, 그렇다기엔 지나칠 정도로 준비가 촘촘하다.

반대로, 준비가 많답시고 치밀한 계획이라기엔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 지금 이 상황.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나로서는 조금 감을 잡기 힘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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