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24화 (224/371)

〈 224화 〉 불만의 마신

* * *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이예은이 처음부터 이상했던 건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중간에 휴식을 취하기 전까진 멀쩡했다고 해야 할까.

덕분에 정필연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휴식이 끝난 이후의 이야기였다.

콰아앙!!

작렬한 마력이 담장을 뒤흔들었다.

동시에, 벽 위로 쳐박힌 불량배의 몸이 후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지면으로 추락했다.

비명 하나 없는 몰골이 아무래도 의식을 잃은 듯했다.

"야, 미쳤어?!"

자신도 모르게 그 광경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던 정필연이 돌연 정신을 차리고 그리 외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 눈 앞에서 벌어진 일은 그만큼 예상 밖의 사태였기 때문이다.

물론 정필연 또한 목격하기는 했다.

예의 불량배가 보급품을 노리고 다른 난민들을 겁박하던 모습.

정필연 또한 나설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무방비한 일반인을 상대로 능력을 사용할 줄이야……!!

경악 어린 시선이 범인, 다시 말해 이예은을 향한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이예은은 썩 당당하기 짝이 없었다.

반짝이는 하늘색 눈동자가 역으로 정필연을 응시한다.

마치 따로 할 말이라도 있냐는 듯 빤히 바라보는 그 시선에, 정필연은 결국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너, 제정신이야?"

"그야 물론이지."

스륵 하고 흘러내린 금발을 귓가 너머로 쓸어넘기는 그 동작엔 머뭇거리는 기색 하나 없다.

방금 전, 이예은은 자신이 제정신이라 말했지만 정필연은 도저히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그야 그렇겠지.

상대는 이예은이다.

동시에, 정필연은 알고 있었다.

아카데미 입학 전까지 이예은이 그랬듯, 정필연 또한 그녀에 대한 소문을 들었던 적이 있었으니까.

가라사대, 영웅의 여동생.

가라사대, 차세대 헌터.

이예은 쪽과 달리, 모종의 열등감이나 목표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경스러운 점은 있었다.

……이예은은 엄격한 성품이다.

말하자면 전형적인 모범생 타입이라고 할 수 있겠지.

다만, 그건 그녀가 융통성 없는 성격으로 태어난 탓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 반대.

오빠 덕분에 어렸을 적부터 수많은 헌터들을 보고 자란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일반인들이 헌터라는 말을 듣고 으레 품는 환상과 달리, 헌터들 또한 그 속내는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당연한 이야기였다.

여하간, 대다수 헌터들은 남들보다 잘나거나 우월해서싸울 수 있는 힘을 손에 넣은 건 아니었으니까.

때문에, 이예은은 타인 이상으로 스스로에게 엄격하고자 노력했다.

어쩌다 보니 힘을 손에 넣었을 뿐인 일반인.

그런 설명은 그녀 또한 예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방종함을 경계하는 그 모습은, 주먹구구식으로 이 업계에 발을 들인 정필연이 보기에도 퍽 존경스러웠다.

실제로, 이 자경단 일을 시작할 당시.

이예은은 정필연에게 그리 말했다.

만약 불량배들을 발견해도 먼저 나서지 말라고.

정필연의 능력은 무장 형성.

개중에서도 검 쪽으로 특화되어 있다.

자칫 잘못하면 부상자가 생길 수 있다는 이예은의 말에 정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어느 정도 날을 죽일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이예은의 말에 설득력이 있었던 탓이다.

무엇보다, 이예은의 능력은 염동력.

단순한 일반인을 제압하는 데에 있어 염력 이상으로 유용한 힘도 없다.

즉, 불량배를 보자마자 능력을 행사해 담벼락 너머로 집어던진 지금 이예은의 행동은 평범한 경우가 아니었다.

흘끔, 주변을 살핀다.

이예은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예은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는 난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야 그렇겠지.

도와준 사람을 보고 겁을 먹는다니, 이상하지 않느냐 물어도 곤란할 따름이다.

여기는 문명국이니까.

자세한 사정을 듣기도 전에 대뜸 다른 사람의 안면 위로 염력을 쳐박는 헌터.

당연히 지레 겁먹을 수밖에 없다.

슬쩍 난민들을 가로막는 위치로 걸음을 옮기는 정필연.

동시에 입을 열어 힐난을 계속한다.

"제정신이라고? 그럼 방금 전 행동은 도대체 뭐야?"

"당연히 제압이지."

"제압? 저게?"

"저런 멍청이들은 안 당해보면 몰라."

흥, 가볍게 코웃음치는 이예은.

그 모습에 정필연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관자놀이를 짚고 말았다.

"그렇잖아? 우리가 자경단 노릇을 한 게 벌써 반 년이야, 반 년!"

"그래서?"

"그런데 지금까지 뭐가 달라졌어? 아니, 달라지긴 했나?"

물론 정필연 또한 이해할 수는 있었다.

자그마치 반 년. 고작해야 반 년.

어느 쪽이든, 두 명의 젊은 헌터가 자경단 노릇에 투신하고도 벌써 반 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민촌 상황은 여태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당연히 그들을 향해 노골적으로 혀를 차는 불량배들은 사라졌다.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필연과 이예은이 헌터였기 때문.

다시 말해, 단순한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대 앞에서 적당히 몸을 사리는 수준에 불과했다.

실질적으로 달라진 건 무엇 하나 없다는 소리다.

예를 들면, 방금 전처럼 그들의 시선을 피해 목을 빳빳하게 펴고 다니는 불량배들 또한 더러 있었으니까.

하필이면 운 나쁘게 걸린 녀석이 나왔을 뿐.

물론 그들 또한 알고 있었다.

고작해야 스무 살도 안 된 학생 헌터들을 보고 진심으로 마음을 다잡는 불량배들이 세상 천지 어디에 있겠나.

오늘은 재수도 없구만, 저 새끼들 또 왔다…….

당연히 그게 고작이겠지.

확실히 그런 사실에 무력함을 느낀 적도 있었다.

헌터가 되었다 해도,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고등학생.

이런 난민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소양도 없다.

그런 사실에불만을 느낀 적도 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스스로의 나약함이 싫었고, 그에 뒤따르는 무력함이 미웠다.

다만.

비록 그렇게 낙담한 적은 있었다 한들, 작금의 이예은처럼 말도 안 되는 폭언을 내뱉진 않았다.

"반 년이면 많이 봐주긴 했잖아? 이 쯤 되면 확실하게 못박고 갈 필요가 있어."

"확실하게?"

"그래. 이 녀석들은 몸에 직접 새겨주지 않으면 몰라."

마력이 스멀거린다.

심상찮은 상황에 분위기를 살피고 있던 난민들조차 기겁할 정도로 농밀한 마력의 움직임.

선명하기 짝이 없는 마력의 잔향이 방금 전 나자빠진 불량배를 향해 손을 뻗는다.

"전치 몇 주는 끊어야 조금 실감이 들겠지."

"진심이야?"

"안 그러면 어떻게 할 건데? 이대로 계속 자경단 노릇이나 할 거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도 정도가 있지!"

숫제 비아냥거리는 듯한 어조였다.

그야 소득 없는 일 아니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어느 쪽이든, 우리가 결정할 얘기는 아니잖아."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정필연은 그렇게 대답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들에겐 능력이 없다. 그들에겐 소양이 없다.

게다가 그 이상으로 그럴 권리조차 없었다.

여하간, 그런 건 진짜배기 경찰이나 정치가들이 고민할 일이었으니까.

어쩌다 보니 능력을 각성한 일개 고등학생.

나아가서는, 자칭 자경단이 멋대로 결정할 일은 아니다.

스윽.

정필연의 손에서 돌연히 나타난 칼날이 그녀의 능력을 베어 끊었다.

이예은의 능력은 족히 몇 년이나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방금 전 사용한 검은 그렇게 분석한 이예은의 마력을 베는 데에 특화된 구성의 물건이었다.

효과는 확실했다.

단순한 물리적 공격으로는 간섭할 수 없을 무형의 힘이, 칼날에 닿은 즉시 흩어지고 만다.

"……흥."

그 모습에 미간을 좁히던 이예은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정필연의 말에 어느 정도는 납득한 걸까.

결국 이예은 또한 그 이상 무력을 행사하려 들지는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정면 충돌은 피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내심 긴장하고 있던 정필연 또한 안도의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여태까진 몰랐지만, 설마 저 정도로불만이 쌓여 있을 줄이야.

정필연으로서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 자신이 말했던 점은 이예은 또한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다만, 공교롭게도 정필연의 고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이후 두 번이나 더 재수없게 걸린 양아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때마다 이예은은 망설임 없이 능력을 휘두르려고 했다.

두 번째는 아슬아슬하게 막아낼 수 있었지만, 세 번째는 눈 앞이 다 아찔할 지경이었다.

당연히 자경단 운운할 상황도 아니었고.

여하간, 정필연으로서도 퍽 난감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처음엔 단순히 불만이 폭발했다 생각할 수라도 있었지만.

설마 고작해야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두 번은 더 눈이 돌아갈 줄이야.

아무리 그래도 무언가 이상했다.

단순히 화가 났다 운운할 수준은 아니었으니까.

마치 머릿속에서 인내심이라는 단어가 증발한 듯한 난폭함.

정필연이 알고 있던 이예은의 성격을 고려하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격정적인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에서 본격적인 싸움까지 번지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이예은이 불합리하게 화를 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난민들에게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는 불량배들의 모습을 보고 화를 내는 이예은.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이해하지 못할 상황은 아니었다.

때문에.

바로 오늘까지만 해도 정필연은 담임인 박우찬에게 이예은의 상태를 하나하나 고자질할 생각까진 없었다.

여하간, 담임인 박우찬의 성격을 고려할 경우 오히려 자경단 행동 자체를 금지할 가능성이 높았던 탓이다.

단지.

"아무리 그래도 오늘 일은 조금……."

불량배들을 혼내주는 건 상관 없다.

좋은 일은 아니지만, 통쾌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다만.

여고생과 담임 교사의 키스?

아니, 그건 안 되지.

정필연은 알고 있었다.

사회적인 통념으로 볼 때, 스승과 제자.

하물며 현직 교사와 제자 사이의 입맞춤은 농담으로도 환영받는다고 말하기 힘들다.

심지어 스승 쪽이 남자고 제자 쪽이 여자라고?

십중팔구 모가지다.

정필연이 여기까지 걸음을 옮긴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정필연은 천천히 담임의 얼굴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이예은의 상태가 예상 이상으로 심각한 상황이었다는 사실 때문일까?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 입으로 오늘 일은 모가지감이었다는 말을 들은 탓일까.

한층 푸르죽죽해진 얼굴이 퍽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