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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23화 (223/371)

〈 223화 〉 추문

* * *

이준구는 꽤 느슨한 성격이다.

박우찬은 그렇게 평했고, 실제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완벽한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말마따나 다소 느슨한 성격이었던 탓일까?

그런 만큼 이준구는 더더욱 스스로에게 엄격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예은이 보기엔 정반대일 정도로.

이준구가 허술한 성격인 건 어디까지나 상대가 박우찬일 때 이야기.

대다수 사람들에게 있어, 이준구는 상당히 딱딱한 편이었다.

여동생인 그녀에게도 그러는 판국이니 오죽할까.

물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하간, 이준구는 바보가 아니었으니까.

이준구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지고 있는 영웅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만에 하나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팔아 다른 사람들을 겁박할 경우, 과연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십중팔구 별다른 반향 하나 없으리라.

두 번의 대침공을 겪은 끝에 살아남은 자들이 쌓아올린 지금 이 시대.

영웅이라는 이름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무조건적인 양보를 강요할 만한 힘.

어떠한 불합리와 부조리도 강제로 밀어붙일 수 있는 능력.

인류 최강이 자신들을 내버리게 두느니 차라리 그게 낫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닌 피해를 보는 당사자들조차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압도적인 권위.

작금의 이준구, 나아가서는 S랭크 헌터들에겐 그만한 실력이 있었다.

때문에.

이준구는 스스로에게 엄격했고, 그 이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악용하려 드는 자들에게 냉엄했다.

만에 하나 자신이 그런 상황을 눈 앞에 두게 될 경우.

소위 말하는 권력의 유혹을 떨쳐버릴 수 있을까 확신이 없었던 탓이다.

여동생의 교육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직 애니까.

애가 뭘 알겠어?

그런 주변의 만류에 따르는 대신 유난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이름을 남용하지 못하게 훈육한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덕분에 예은이는 충분히 책임감 강한 성격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응? 그냥."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거냐.

그렇게 힐난하는 자신의 오빠를 향해, 이예은은 그리 답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예은이 학교에서 저지른 일은 보호자인 이준구의 귀에도 들어왔다.

이준구가 정말로 오랜만에 해가 떨어지기도 전 귀가한 데에는 바로 그런 사정이 있었다.

하지만.

친구의 사회적 평판을 나락으로 보내버린 끝에, 친구와 동거하는 여고생에게 제압당했다는 예은이.

고작해야 반나절 사이 게슈탈트 붕괴가 일어날 듯한타이틀을 획득하게 된 여동생은참으로 당당하기 짝이 없는 표정이었다.

마치 사춘기라도 온 듯한 반응이다.

물론 이준구는 알고 있었다.

예은이가 친구에게 보내는 시선은 단순한 동경이나 호감 따위가 아니었다고.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만에 하나, 자신의 여동생이 그 녀석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 되겠지.

여하간, 그 친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제일 됨됨이가 괜찮은 녀석이었으니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오빠로서도 친구로서도 안심할 수 있으리라.

다만.

아무리 그래도 반 한가운데에서 대뜸 기습 키스를 박다니?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이준구는 오늘만큼 자신의 이름값에 감사한 적이 없었다.

만약 그런 일을 저지른 게 예은이가 아니었다면?

모르긴 몰라도, 녀석의 손에 최소 전치 4주는 끊었을 테지.

박우찬은 그런 녀석이었으니까.

"아니, 나를 신경도 안 쓰는 게 뭔가 짜증나서?"

단지.

그런 오빠의 고충도 모르는 양여동생이라는 계집애는 저렇게 떠들고 있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이준구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동시에 생각했다.

'여자를 때리고 싶다는 기분이 든 건 이번이 난생 처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준구는 나이 터울 있는 여동생을 상대로 여타 평범한 오빠들과 비슷한 감상을 품고 있었다.

물론 이준구는 잔뼈 굵은 전사였다.

덕분에 지금 여동생의 행동에서 묘한 위화감을 눈치채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마치 무의식 속 리미터가 사라진 듯한 느낌.

이건 해도 된다. 이건 해선 안 된다.

그런 판단을 내릴 만한 정신이 말 그대로 마비된 듯한…….

'마신의 습격일 가능성도 있다, 라.'

박우찬은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이준구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너무 적당한 핑계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식으로나마 동생을 두둔하려 하는 박우찬의 모습에 미안한 마음만 들었을 뿐.

그렇지만, 지금은 알 수 있었다.

사춘기. 천방지축.

고작해야 그런 단어로 설명하기엔 지금 예은이의 행동은 어딘가 이상했다.

동시에 깨달았다.

평소 예은이는 얼마나 착한 여동생이었던 건지.

"뭐, 다른 계집애들에 대한 경고는 됐겠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망발을 거듭하는 이예은.

그 모습을 보며, 이준구는 속으로 꿀밤을 때리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억눌렀다.

*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 수업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아니, 그야 나라고 해도 반 한가운데에서 여고생이랑 입을 맞춘 교사에게 수업을 맡기진 않을 테지만.

다행스럽게도, 오늘 수업은 이미 종료.

내가 더 이상 부담스러운 시선을 받아야 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결국 상황은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추정 마신의 습격 때문이다.

예의 불만의 마신이 어디선가 예은이와 접촉했던 모양이다.

거기까진 알겠지만…….

'그래서?'

설령 그렇다 해도 사태를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까놓고 말해, 불만의 마신을 쳐죽인다 해도 내 평판이 돌아오는 건 아니었으니까.

내일. 모레. 그리고 글피.

앞으로 있을 수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아.'

출근하기 싫다…….

물론 처음부터 출근하긴 싫었지만, 보다 확고하게 출근하고 싶지 않았다.

설마 이런 말을 진지하게 해야 하는 처지가 될 줄은 몰랐는데.

후, 짤막하게 한숨을 토한다.

그리고 결정했다.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때려칠까!"

"잠깐, 퇴직하시려고요?!"

"으아악!!"

기운차게 그리 외치는 내 목소리에 맞추어, 누군가 당황한 듯 기성을 올렸다.

물론 나로서는 역으로 그 목소리에 놀라고 말았지만.

여하간, 하연이는 이미 하교했으니까.

난생 처음 듣는 괄괄한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으며 예은이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하연이.

당연한 이야기지만, 평소처럼 내가 하연이를 배웅할 수는 없었다.

반나절 전까지만 해도 여고생이랑 키스하던 놈이 이번엔 다른 여고생을 데리고 하교한다고?

미친, 신고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

때문에 오늘은 호위 역할도 서아가 맡게 되었다.

뭐, 정작 호위인 서아는 오늘 반에서 있었던 일에 더 관심이 가는 모양이었지만.

흉흉한 기색을 갈무리하며 하연이를 데리고 하숙집을 향하던 서아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 앞에 선했다.

지희나 윤하도 마찬가지였고.

덕분에 홀로 남은 나를 찾아 교무실까지 걸음을 옮길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응? 필연아?"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나를 찾은 건 다른 여학생들이 아니라 정필연이었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잠시.

도대체 어쩌다가 계집애들 대신 남학생을 보고 안심해야 하는 처지가 된 건지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무슨 일이니?"

"아, 오늘 낮에 있었던 일 때문인데요."

"씨발."

"네?"

그러나.

정필연은 그런 내 얼마 되지 않는 마음 속 여유마저 단칼에 참살하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욕이 나오고 말 정도로.

아니, 그런 가십거리에 관심을 둘 성격도 아니면서.

솔직히 말하자면, 다소 억울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젠장, 마신의 공격 때문인가?

"아, 아뇨. 소문 때문에 온 건 아닙니다."

"소문? 소문이 돌고 있다고? 벌써?"

"으음, 네."

"쓰으읍."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아니, 그야 그렇겠지.

그럴 만한 사안이었으니까.

소문도 퍼질 수밖에.

다만, 면전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 건 역시 내게도 타격이 컸다.

'훗.'

그런가, 벌써부터 소문이 퍼져버렸나…….

조용히 사직서의 초안을 머릿속으로 작성하고 있는 나를 향해, 정필연은 떨떠름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거야 어쨌든.

결국 필연이는 무슨 용무일까?

방금 전, 정필연은 그렇게 말했다.

자신은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왔다고.

동시에, 지금 돌고 있는 소문과 별도의 용건이라고.

벌써부터 듣기 싫어지는 초입이었지만, 아직 교사 노릇을 맡고 있는 이상 그럴 수도 없었다.

때문에, 나는 억지로 기분을 가다듬으며 필연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 내 모습에 쓴웃음을 짓는 정필연.

곧 적당히 자리에 앉은 필언이는 내 얼굴을 마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번 초대형 게이트, 기억하시죠?"

대답을 기대한 질문은 아니었다.

아니, 그걸 기억 못하면 사람이냐?

"사실 저랑 예은이는 그 이후로 자경단 노릇을 하고 있었거든요."

천천히 본론을 털어놓는다.

요컨대, 예의 초대형 게이트 발생 직후.

필연이와 예은이는 도시의 참사에 팔을 걷어붙이고 자경단 역할을 자처했던 모양이다.

뭐, 초보 헌터들에겐 자주 있는 일이다.

자신이 막지 못한 참상에 연연해 현장을 기웃거리다가, 이윽고 피해 복구 현장에 투신한다.

모르긴 몰라도, 헌터로서의 힘을 생각하면 무엇이든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안일한 생각 덕분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헌터는 어디까지나 전문직.

실제로 다른 분야에서 도움이 되긴 힘들다고나 할까, 설령 도움이 된다 한들 그 사이 몬스터나 죽이라는 시선을 받는 게 현실이다.

결과적으로, 자신만만하게 나선 초보 헌터들이 직면하는 건 어쩌다 보니 초상적인 힘을 손에 넣었을 뿐 무력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모습이다.

말하자면초보 헌터들이 겪는스테레오타입이라 할 수 있겠지.

실제로 정필연에게선 그런 경험을 겪은 초보 헌터들 특유의 묘한 씁쓸함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허나.

지금 정필연이 내게 말하고자 하는 건 자신의 씁쓸한 경험 떠위가 아니었다.

"바로 어제도 마찬가지였어요. 딱 한 가지만 빼고."

"음?"

"어제부터 걔 반응이 조금 이상했거든요."

"이상했다고?"

"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경단 활동이 끝난 직후?"

그리고.

정필연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확실히 지금 내게 필요한 정보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상이었던 나도 무심코 허리를 기울이고 만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쓰게 웃음을 짓던 필연이는, 곧어제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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