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화 〉 추문
* * *
그리고 다음 날이 되었을 때, 나는 오늘 수업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끝을 맺으리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개최된 수업이었다.
예의 초대형 게이트 발생 직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거의 반강제로 문을 닫게 된 아카데미.
거의 반 년 만에 서는 교탁 앞에서, 나는 적당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저번 1년 사이, 우리 반 학생들은 철저하게 기초를 다졌다.
온갖 훈련을 거쳤고, 지식을 때려박았다.
능력을 다졌고, 활용하는 방법을 익혔다.
허면, 올해부터는 한층 더 심화된 과정을 거쳐야 하겠지.
뭐, 그렇다 쳐도.
오늘은 어디까지나 첫 수업.
가벼운 복습 위주로 진행하면 되겠지.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말을 고르는 쪽이 어려웠다.
예의 초대형 게이트 발생 당시, 가족을 잃은 학생도 있다.
다른 반에서 교사를 잃고 흘러들어온 학생도 있다.
눈 앞에서 구울에게 잡아먹히는 사람을 구하지 못한 학생도 있다.
어느 쪽이든, 오랜만에 만났답시고 가벼운 화제를 던지는 건 다소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뭐, 여러모로 할 말은 많지만 지금 여기 남아있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실력에 한계를 느꼈을 거다. 그렇지?"
"네."
"걱정하지 마라.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도 그런 너희를 도와주기 위한 거니까."
분명히 그런 식으로 시작된 수업이었다.
지식 중심의 환기.
구태여 말하자면, 하필 예은이를 따로 지목해 질문을 던졌던 게 문제였던 걸까?
물론 내게도 이유는 있었다.
일단 예은이는 모범생이고.
단순한 이론부터 실전까지, 어느 쪽도 빠지는 점 하나 없으니.
하물며 요 최근 다른 학생들을 지목하기도 껄끄러운 나로서는 더더욱.
수업은 그렇게 끝났다.
점수로 따지자면 10점 만점에 5점.
딱 평균인 느낌?
만족스럽진 않아도, 나쁘진 않다.
"선생님?"
"우왁?!"
그런 감상을 품으며 칠판을 지우고 있던 내게 그 목소리는 정말 예상 밖이었다.
훅, 하고 봄바람이 부는 듯한 느낌.
지극히 익숙한 목소리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음색으로 지저귀었다.
무심코 비명을 지르기도 잠시,화들짝 놀라 뒤로 돈 나는 곧 바로 뒤에 서있던 예은이와 눈이 마주쳤다.
하늘색 눈동자가 천천히 깜빡인다.
속눈썹의 움직임마저 뚜렷하게 보일 법한 거리.
덕분에 무심코 헛숨을 들이키기도 잠시, 나는 곧바로 한숨을 내쉬며 슬쩍 거리를 벌렸다.
'깜짝 놀랐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며, 쿡쿡 하고 장난스레 웃음을 터트리던 예은이.
곧 거리를 벌린 나를 향해 성큼 걸음을 내딛는다.
……응?
"어, 예은아? 무슨 일 있니?"
"선생님."
"그래."
"저, 섭섭해요."
"응?"
뭐가?
나도 모르게 그리 되물을 뻔했다.
어라?
섭섭해?
뭐, 뭐지?
그럴 만한 일이 있었던가?
"수업 때 계속 저만 지목하시구."
"으음."
확실히.
듣고 보니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네 싶었다.
여하간, 구태여 자신을 지목하는 교사에게 학생이 내심 불편함을 느끼는 건 만국 공통일 테니까.
"미안하게 됐다, 예은아."
"아뇨, 괜찮아요."
"응?"
"그만큼 받아 갈 테니까."
다소 머쓱한 태도로 그렇게 말하는 나를 향해, 예은이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휙.
예은이의 손가락이 내 넥타이를 붙잡았다.
……그 시점에서 내가 즉각 대처하지 못했던 이유는 단 하나.
설마 예은이가 그런 행동을 하겠냐는, 실로 상식적인 판단때문이었다.
"어?"
"응?"
"뭐야?"
당연한 이야기지만, 안일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덕분에 예은이는 별다른 문제 하나 없이 내 넥타이를 잡아당길 수 있었으니까.
마치 내 예상을 비웃듯, 과감하게 얼굴을 기울이는 예은이.
다음 순간.
교실이 때 아닌 정적에 잠겼다.
비유적인 표현이나 개인적인 감상이 아니었다.
정말로.
하긴, 나라도 그랬겠지.
칠판 앞에서 입을 맞추는 동급생과 담임 선생.
오히려 시끄럽게 떠들 수 있는 쪽이 강심장이다.
'아니, 뭐야.'
마치 남의 일처럼 생각하던 머리가 다시금 활력을 되찾는다.
그제서야 나는 간신히 예은이의 어깨를 붙잡고 밀어낼 수 있었다.
"잠깐, 예은아?!"
문제는 예은이의 어깨를 잡느라 정작 의식을 붙잡지는 못했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예은이는 한껏 당황하고 있는 내 넥타이를 다시 한 번 잡아당길 수 있었다.
두 번째 키스였다.
방금 전, 한 순간 의식이 날아갔을 때와는 달랐다.
어설프게 정신이 든 탓일까.
당장 내 뇌리 사이로 온갖 감각이 휘몰아쳤다.
입술에서 느껴지는 말랑말랑함.
봄내음을 닮은 향긋한 향기.
무거울 정도로 계속되는 정적.
마치 먹물처럼 번지기 시작하는 경악.
동시에, 자신의 속에서 샘솟는 당황까지.
설마 수업 때 계속 자기만 지목한다는 게 수업 때에만 자신을 찾는다는 뜻이었던 걸까.
온갖 생각이 한데 뒤섞여 휘몰아친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도합 1분 내외.
고작해야 몇십 초 사이에 완전히 넋이 나간 기분이었다.
"푸하!"
"잠깐, 예은아. 무슨 일인진 모르겠는데 진정하, 자?!"
예은이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시야가 뒤섞였다.
화사하게 흩뿌려지는 금발.
조용히 열에 들뜬 하늘색 눈동자.
발갛게 달아오른 뺨.
평소처럼 감출 생각 하나 없는 귓가.
그리고 이 쪽의 입 안을 간질이는 혀…….
'혀?!'
얘 지금 혀 넣었냐?!
씨발 무언가 본격적으로 잘못되기 시작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처음부터 그렇긴 했지만.
당황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팔다리를 허우적대기도 잠시.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 입 속을 탐닉하던 예은이가 다시 한 번 거리를 벌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쫄았다.
키스 사이의 여운을 즐길 틈 따위도 없었다.
그야 강제로 당한 판국에 여운은 또 어디 있겠냐마는…….
그런 문제 이전의 이야기였다.
나로서는 당장 눈 앞에 있는 예은이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미친 짓거리를 저지른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머리에서 상식이란 게 날아간 듯한 모습.
까놓고 말해, 입맞춤 사이사이에 둔 간격도 맹수가 호흡을 고르는 시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만약 예은이의 목뼈가 부러질지도 모른다는 걱정만 없었으면 곧바로 그녀를 밀쳤을 테지.
"씨발년아!!"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하연이의 난입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점이 있었다.
적어도 예은이의 목뼈를 부러뜨릴 걱정은 없었으니까.
뭐, 뒤통수가 찢어지긴 했지만.
뻐어억!!
시원스러운 소리와 함께 작렬한 쿼터스태프가 잠시 호흡을 고르고 있던 예은이의 뒤통수를 정확하게 후려갈겼다..
*
그게 바로 내가 교장실에 불린 이유였다.
"아니, 씨발!! 억울하다니까!!"
나는 피해자야!!
사방을 향해 그리 포효했지만, 내게 돌아오는 시선은 그리 곱지 못했다.
아니, 나라도 그랬겠지만.
학교의 모범생이자 영웅의 여동생이라 불리던 여고생이, 무경력 담임 교사한테 갑자기 교실 한복판에서 키스를 날린다?
씨발, 당장 나만 해도 최면 어플이라는 네 글자가 제일 먼저 떠오를 정도다.
허나, 그런 예시와 이번 사건 사이에는 아주 큰 격차가 있었다.
바로 내가 당사자였다는 점이다.
덕분에 나는 힐난하는 시선 속에서도 내 무고함을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나는 믿는다."
"진짜냐, 최승준?!"
"그래. 애초부터 네게는 그럴 만한 용기도 없을 테니까."
"씨발아."
"문제는 내가 믿는다 해서 어떻게 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겠지."
염병할 일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도 그랬으니까.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평소처럼 최승준이나 이준구가 어떻게든 커버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상대가 여고생이었기 때문이다.
여고생이라는 직업은 그토록 강력하기 짝이 없었다.
현직 S랭크 헌터 겸 아카데미 교장인 최승준의 변호조차 여고생 애호가라는 딱지를 붙여버릴 만큼 초월적인 힘.
서브컬처 최강의 종족에겐 그럴 만한 능력이 있었다.
"씨발, 간신히 쌓은 내 이미지가……!!"
"네게 무너질 만한 이미지가 있었느냐 하는 점은 차처하더라도, 꽤나 곤란한 일인 건 사실이지."
공교롭게도, 이미 일어난 일은 어떻게 할 수도 없다.
하물며 대다수 학생들이 눈 앞에서 목격한 사건을 은폐한다는 건 아무래도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고.
심지어 그 나이 계집애들이 좋아할 만한 가십거리에, 상대는 담임 교사와 우등생?
이건 힘들지.
나로서는 그런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허면, 현실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점은 단 하나.
예은이가 이런 일을 벌인 까닭이다.
아무리 그래도 예은이가 이런 일을 벌일 만한 이유를 모르겠다.
아니, 고백이라느니 연심이라느니 하는수준의 이야기가 아니잖아……!!
단순히 성추행이야, 이거……!!
실행자가 여고생이고 피해자가 20대 후반 아저씨라서 티가 안 날 뿐이지, 범죄라고……!!
만에 하나, 이준구 그 새끼가 교육을 잘못한 탓이라면 나는 오늘 그 놈을 회치고 감옥에 들어갈 테지.
그러나.
만약 그 뿐이라면 손을 쓸 수도 없다.
때문에, 지금은 반대로 생각해야 할 때였다.
보다 생산적인 사고를 궁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만에 하나 이준구 그 새끼가 교육을 잘못한 게 아니라면?
"놈들이 개입했으리라고 보나?"
"아니, 내 희망 사항인데."
"……뭐,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
일단 어드밴티지는 있다.
내 사회적인 명예를 완전히 보내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수단이겠지.
당장 마력의 흔적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호랑이처럼 날아든 하연이가 예은이를 제압한 직후.
지희를 부르려다 무서워서 따로 사용한 독심 능력 보유자의 마력 결정 또한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예은이의 사고 능력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는 뜻이다.
다만.
세뇌는 아니라고 단언하긴 힘들었다.
여하간, 우리들은 알고 있었으니까.
요 최근, 정신 간섭의 흔적 따위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던 마신의 끄나풀이 벌였던 행동을.
다행스럽게도, 인격 성형까지는 아무래도 시간이 없었겠지만…….
"상대가 정말로 예의 마신이라면, 가볍게 건드리기만 해도 충분하겠지."
상대는 사춘기 여고생.
도도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이런 일에 흥미가 없지는 않겠지.
행동을 유도하는 건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다.
"문제는 이번 상대가 추정 불만의 마신이라는 점인데."
"씨발."
차갑게 식은 최승준의 시선이 비수가 되어 날아와 꽂힌다.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터트리기도 잠시, 애써 놈의 면상을 외면하며 방금 전 예은이의 언동을 떠올린다.
만약 이 추측이 사실이라면, 예은이는 평소 내게 그런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게 되겠지.
알고는 있다.
악의의 마신과 불만의 마신.
둘 다 정신 간섭 계통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 동일하나, 그 방향성은 다르다.
악의의 마신은 누구나 품고 있기 마련인 악의를 증폭시킨다.
즉, 조로아스터 교에서 말하는 사악한 마음.
누군가의 불행에 기뻐하고 스스로의 악행을 즐거워하는 감정이다.
때문에, 악의의 마신이 가진 힘은 강력한 개인을 대상으로 하기에 걸맞다.
서아에게 그랬듯,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누군가를 악의 구렁텅이에 빠트리는 것.
그게 악의의 마신이 지닌 역할이겠지.
반대로, 불만의 마신은 타인에게 품은 불만을 부풀린다.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짜증은 곧 소통의 장애가 되고 방해가 된다.
즉, 사회의 붕괴다.
말하자면, 불만의 마신이 가진 힘은 개인이 아닌 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능력.
사회를 좀먹는 독이다.
내가 예은이에게 의구심을 품었고, 예은이가 이번 행동으로 내 사회적 평판을 완전히 보내버렸듯이.
무심코 흐르는 한숨을 거의 반강제로 억누른다.
일단 한 가지 확실한 점이 있다고 한다면, 여태까지 신세계 질서가 주도한 모든 공격 중 내게 이번만큼 지대한 데미지를 준 사건은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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