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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20화 (220/371)

〈 220화 〉 자경단

* * *

다행스럽게도, 일곱 마신들에 대해 설명하는 사이 개학식은 끝을 맺었다.

덕분에 나도 흉흉한 분위기가 한창인 교실까지 돌아갈 필요 없이 곧바로 퇴근할 수 있었다.

물론 하숙집에서 서아와 마주치는 건 피할 수 없겠지만.

참으로 곤란한 일이었다.

……슬쩍 시선을 돌려 하연이의 안색을 살핀다.

요 최근 어색한 하숙집 내의 분위기에 대해 묻고 싶어서, 는 당연히 아니었다.

방금 전 이야기한 일곱 마신들 때문이다.

하연이의 출생은 신세계 질서, 나아가서는 놈들이 섬기고 있는 규격 외 등급 몬스터와도 관련이 있다.

요 최근 급격하게 늘어난 마력.

던전 토벌 당시 발휘한 힘도 그 일환이겠지.

적어도 하연이는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

예의 거룡.

그리고 악의의 마신과 조우할 당시.

하연이는 자신의 능력이 성장하는 걸 느꼈다고 했다.

그렇지만.

'정작 트리거가 뭔지 모르겠단 말이지.'

단순한 설명이나 지식만으로는 효과가 없는 건가?

나로서는 그리 추론할 수밖에 없었다.

여하간, 당사자인 하연이도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를 알고 있진 못했으니까.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

결국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검증할 따름이다.

뭐, 어느 쪽이든…….

'단순히 좋다고 반길 일은 아니겠지.'

상대는 악마.

갑자기 손에 들어온 힘 따위, 좋답시고 반길 일은 절대로 아니다.

분명히 무언가 있다.

외상이든, 그렇지 않으면 무언가의 의도나 주술적인 계약이든.

나로서는 그리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

담임인 박우찬이 일곱 마신들에 대한 설명을 마친 직후, 개학식도 끝을 맺었다.

그런 사실에 감사하며 문득 한숨을 내쉰 이예은은, 그대로 머리카락을 귓가 너머로 넘기며 짐을 챙겼다.

여하간, 이예은은 바보가 아니다.

것보다, 어지간한 바보라 해도 눈치챌 수밖에 없으리라.

류지희. 황윤하. 신서아.

이 셋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면, 당장 반 안을 감싸고 있는 험악한 분위기가 어디서 나온 건지 쉬이 유추할 수 있다.

박우찬이나 티아마트 수준으로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면.

덕분에, 이예은은 진심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말 없이 우중충한 분위기를 두르고 있는 지희와 윤하 사이로 끼어들 필요가 없다는 점이.

그리고 어쩌면…….

짤막하게 이어지던 사고를 억지로 끊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짐을 꾸린 이예은은 그대로 아카데미 후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기에는 이미 약속 상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늦었네."

"매너가 없네. 별로 안 기다렸다고 해야지."

"그런 건 여자친구 상대로도 충분해."

상대, 다시 말해 정필연은 조금 지친 기색으로 부르르 턱끝을 떨었다.

이 나이대 학생들이 으레 그렇듯이, 연애 사업에 쩔쩔매고 있는 모습이란.

이예은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오르는 법이라더니.

저 목석같은 녀석이 설마 여자친구 운운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던 탓이다.

분명히 상대는 같은 학년 누구랬던가?

가물가물한 기억을 떠올리다 고개를 젓는다.

당장에 중요한 건 정필연의 연애 전선 사업이 아니었다.

"그래서? 요즘은 좀 어때?"

"어떻긴 뭘 어때, 매번 똑같지."

그 말에 둘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이 만남이 시작된 게 어언 반 년 전이거늘, 아직까지 별다른 차도는 보이지 않았다.

자경단.

일부 사람들은 당장 여기에 있는 둘을 포함한 일부 사람들의 활동을 그렇게 불렀다.

예의 초대형 게이트 발생 이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도시는 완전히 혼란에 접어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게이트에서 나타난 구울들의 공격으로 발생한 피해는 비단 헌터들에게만 국한된 건 아니었으니까.

난생 처음 구울을 맞닥뜨린 헌터들에 의해 토벌이 지연된다.

그렇게 지연된 시간 사이, 구울들은 사람들을 죽이고 건물을 무너뜨렸다.

추산된 인명 피해만 최소 네 자릿수.

재산 피해는 그 이상이다.

하물며, 그 직후 곧바로 겨울이 닥친 게 또 문제였다.

과연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구울들에게 집을 잃고 겨울의 한파에 목숨을 빼앗겼을까.

담임인 박우찬은 그렇게 말했다.

안타까움을 느끼는 건 좋다.

분개를 삼키며 몬스터에 대한 미움을 되새기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런 마음에 잡아먹혀서는 안 된다.

현실적으로, 헌터가 이런 전후 처리에서 도와줄 수 있는 점은 정말로 얼마 되지 않는다.

원한다면 기부라는 이름으로 사비를 털어 산재 복원에 쓰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

허나, 딱 거기까지.

구울조차 단칼에 쓰러뜨릴 수 있는 헌터라 한들, 피해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중장비 대용.

그조차 건물 구조에 대한 지식이 없는 만큼 실질적으론 반쪽짜리에 지나지 않는다.

만에 하나 헌터의 힘으로 무너진 건물을 건드리다 폭락이라도 일어나는 날에는 이만저만한 일이 아닐 테니.

때문에 박우찬도 구태여 그런 말을 한 거겠지.

헌터라 한들 결국 그 본질은 힘을 손에 넣은 일반인.

자기 전문 분야도 아닌데 사람 목숨이 걸린 일에 나서서 좋을 리도 없다.

이예은도 그런 말을 어길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그렇다 쳐도, 가만히 손을 놓고 있기는 힘들었다.

여하간, 그녀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의 초대형 게이트는 신세계 질서의 소행이다.

그리고 신세계 질서는 그녀를 납치하기 위해 그런 일을 벌였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를 납치해 규격 외 몬스터를 소환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해야 하겠지.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다.

나쁜 건 어디까지나 신세계 질서.

그러나 이예은은 그런 식으로 칼로 자르듯 생각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거리를 전전하던 와중 비슷한 일에 손을 거들고 있던 정필연과 만나 행동을 같이 하게 된 것이었다.

자경단이라고 해도, 딱히 명확하게 무슨 일을 한다고 정해진 건 없다.

다른 자경단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굳이 말하자면 초대형 게이트 발생 이후 위태로워진 치안 관련 업무가 대부분일까.

여하간, 구울 토벌 당시 주거지를 잃은 사람들 또한 더러 있었으니까.

당연히 거기에 따른 보상 또한 나오긴 했지만, 반대로 그만한 재난이다.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보상을 받거나 주거지를 되찾을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대기업의 기부. 정부의 지원.

단순한 돈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시간이나 현실적인 여건에서 비롯된 문제다.

덕분에 현재 신도심 외곽으론 때 아닌 난민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사태가 수습된 직후보단 낫다고 해도,지금도 여전히 거기서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판국이니.

자경단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레 시작된 행동이었다.

배급품 관련 문제로 일어나는 갈등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그런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활동이다.

하지만.

정필연도 이예은도 알고 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야기.

실제로 문제가 되는 건 당장 눈 앞에서 게이트가 열리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이다.

제 2차 대침공이 종식된 이후,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초대형 게이트.

덕분에 때 아닌 재난에 직면하게 된 시민들 중에는 아예 훼까닥 맛이 가 버린 사람도 더러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해, 제 3차 대침공.

나아가서는, 사회의 붕괴를 기정 사실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도시가 혼란에 빠진 지금 아무렇지도 않게 범죄에 손을 대는 경우도 빈번했다.

이런 상황을 틈타 범죄를 저지르는 양아치들이 차라리 나을 정도로.

이성. 사회. 문명.

어제 그랬듯이, 내일도 동쪽에서 해가 뜨고 서쪽에서 지리라는 확신을 완전히 잃어버린 사람들.

그런 이들은 이윽고 완전히 자포자기한 채로 무언가 끊어지기라도 한 듯 온갖 일에 손을 대기도 했다.

자경단이라 자처하며 다른 사람들을 겁박하는 양아치 따위는 힘으로 찍어누르면 그만.

정필연이나 이예은이 주의깊게 바라보고 있는 건 오히려 저런 부류들이었다.

문제는 요 최근 그런 계통의 범죄가 한층 더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글쎄, 어째서일까.

살아남기도 급급했던 겨울이 끝났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으면, 어중간하게 보상을 받은 사람들이 늘어나서.

다시 말해, 소외된 감각이 들었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이예은으로서는 쉬이 짐작할 수 없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이토록 위태위태하다.

별다른 문제 하나 없이 보내고 있는 듯한 일상도, 사실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한 고행이 연신.

그러다 보니, 문득 깨닫고 마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들은 더 이상 대침공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고작해야 게이트의 발생 유무 한 번만으로도 무너질 만큼 위태롭다는 사실을.

덕분에 내일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게 된 사람들은 벼랑 끝에 내몰린 기분으로 저런 일을 저지르고 마는 것이다.

'거기까지는 알고 있지만.'

문득 한숨을 내쉬고야 만다.

이런 세상이다. 이런 사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마신.

이런 세상 속에 숨어 사람의 마음을 이간질한다는 악마인 것이다.

방금 전, 담임인 박우찬이 말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날 상대했던 거대한 용의 모습을 떠올린다.

동시에, 그럴 때마다 새삼스레 생각하고 만다.

용이나 악마라면 칼을 휘둘러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악의. 불만.

그런 건 과연 사람의 손으로 죽일 수 있는 걸까 하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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