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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18화 (218/371)

〈 218화 〉 일곱 마신

* * *

신년 3월 2일.

아카데미는 다시금 문을 열었다.

제 2차 대침공이 공식적으로 종료된 이후, 처음으로 발생한 초대형 게이트 때문일까.

본래 예정과는 상당히 다른 형태가 되긴 했지만.

물론 말했듯이 피해 또한 없지는 않았다.

초대형 게이트 발생 당시, 그 모습에 꺾여 아카데미를 등진 학생들만 또 몇 명이었으니까.

단순한 숫자로 따지자면 반 두어 개는 사라지고도 남을 손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2학년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 사이에서 별다른 말이 나오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예의 초대형 게이트 탓에 일부 교사들도 죽음을 맞이한 탓이다.

만일 학생들이 자퇴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교사를 새로 충원했어야 할 정도라고 하니.

도저히 다행이라 말할 만한 일은 아니었으나, 참으로 일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건 사실이었다.

덕분에, 이번 개학식의 주축이 된 건 신입생들 쪽이었다.

적어도 2학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진행하느라 그 빈자리를 느끼게 되는 일보단 나으리라는 최승준의 판단 덕분이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입학식은 그 덕에 퍽 북적이고 있었다.

작년 입학식 당시에 비하면 족히 몇 배는 되지 않을까 싶은 인원이 운동장 앞에 모인 모습이란.

슬슬 제 3차 대침공이라는 단어가 눈 앞까지 다가오고 있는 탓이겠지.

어느 누구도 입 밖에 명확히 제 3차 대침공이라는 이름을 올리진 않는다.

그렇지만.

벌써 두 번의 대침공을 겪은 사람들은 내심 어느 정도 직감하고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관련된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언론.

들썩이는 민심을 달래기 위한 뉴스가 정부의 지시 하에 연일 반복되는 가운데.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묘한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던 탓이다.

그 결과가 바로 눈 앞에 있는 인파였다.

전근대까지만 해도 국가가 불경기면 입대 신청이 늘어나는 법이라 했던가.

딱 그런 꼴이었다.

물론 저 친구들이 바라고 있는 건 공짜 배식이 아니라 대침공 시대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실력이겠지만.

거기에 맞추어 아카데미 일정도 조금 변화가 있었다.

먼저, 본디 이번 학년 강사가 될 예정이었던 교생들에 대한 처우 변화다.

작년 내내 수업을 진행하면서, 의외로 무기술 관련 동아리의 평가가 매우 높았던 덕택이다.

때문에, 최승준은 세 명을 그대로 다음 학년 교사 자리에 위임하는 대신 무기술 전문 강사라는 자리를 새로 신설했다.

저 셋을 담임 자리에 두고 새로운 전문가들을 초빙하는 쪽보다야 새 교사들을 구하는 게 더 싸게 먹힌다는 판단 덕택이었다.

물론 대우는 일전과 달리 교생이 아닌 정규 교사 취급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그러나.

나름 세 명이 전원 정규 교사 자리에 임용된 무기술 담당 선생들.

그리고 류인형이라는 알짜배기가 다른 인원으로 교체된 신입생 담당 교사들과 달리, 2학년 교사진 측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는 헌터 아카데미.

헌터들을 양성하기 위한 장소이자, 헌터들의 양성법을 확립하기 위한 시범 프로젝트다.

당연히 다른 고등학교처럼 매 학년마다 반을 바꾸거나 할 까닭도 필요도 없었다.

고작해야 1년.

우리 동아리 애들처럼 빡세게 굴린다면 모를까, 한 명 몫의 헌터로 자립하기엔 부족한 시간이다.

아니, 사실 우리 동아리 애들도 마찬가지였다.

대다수가 얼추 B랭크 가까운 실력을 손에 넣은 건 사실이지만,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이 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바로 다음 년도에 새로운 담임을 만나 새로운 교습법을 손에 넣는다?

다양한 가르침을 곧 실력으로 바꿀 수 있는 건 일부 천재 뿐.

저런 상황에 처하면 대다수는 그저 길을 잃고 방황할 따름이다.

덕분에 지금 2학년 학생들에게 바뀐 점이라고 해 봐야 일부 해체된 반의 학생들이 다른 반으로 흘러들어간 정도.

나아가서는 교실 위치 즈음일까.

모르긴 몰라도, 학년이 변함에 따라 반의 구성원 자체가 바뀌는 건 못해도 3년.

다시 말해, 아카데미 첫 입학생들이 나름의 성과를 증명한 이후의 일이 되겠지.

사실 저 정도도 짧게 잡은 거고.

평범하게 생각하면 최소 5년은 걸리지 않을까.

"반 분위기 실화냐."

그리고 그게 바로 우리들이 동아리실에 모인 이유였다.

1학년들은 운동장에서, 2학년들은 교실에서.

작년과 마찬가지로 진행되고 있는 입학식 겸 개학식.

다시 말해, 그건 이 시간동안 나와 다른 녀석들이 얼굴을 맞대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즉.

전 1학년 A반, 현 2학년 A반 내의 분위기는 씹창이 날 수밖에 없었다.

윤하와 지희.

나아가서는 우리 반에서 1학년들의 입학식을 구경하고 있는 서아까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알 수 있을 만큼 험악한 분위기가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덕분에 나는 가장 먼저 입학식 방송을 틀어둔 채 동아리방으로 대피했다.

이후 속속들이 방문하고 있는 다른 녀석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거의 내 뒤를 쫓듯 동아리방으로 대피한 하연이.

마찬가지로 거의 쫓기듯 호다닥 동아리방으로 도망친 예은이.

마지막으로 겸사겸사 우리 반에 빌붙으러 찾아왔다가 조심스레 후퇴한 티아마트까지.

특히 마지막 녀석은 평소였다면 스프레이를 뿌려서라도 쫓아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었다.

여하간, 반 내의 분위기가 암암리에 씹창이 난 건 바로 나 때문이었으니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슬쩍 동아리 안의 분위기를 살피다 호다닥 착석한 티아마트는 뒤이어 그렇게 물었다.

물론 나로서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내가 걔네들 전원 고백한 걸 차서 저런 꼴이 났다고 말할 수는 없잖냐.

쪽팔리기도 하고.

자의식 과잉 같은?

……뭐, 어느 정도는 예상한 바이기도 했다.

실제로 나 또한 이런 꼴이 나는 걸 예상해 대답을 미룬 점도 있었고.

나로서는 나름 합당한 이유였다고 생각하지만, 애초에 다들 어디까지 납득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거 참.'

아무리 당찬 성격이라 한들, 전원 사춘기 계집애들이다.

심지어 남은 한 명인 서아조차 모태 솔로.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애초에 연인이나 만들어야 할 시기에 내 제자로 들어온 기구한 팔자이기도 했다.

그야 풋풋한 마음이 거절당한 셈이니 마음의 상처가 될 수밖에.

물론 상처를 받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생각해 단행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정작 이 쪽의 사정을 납득한 제자들은 전원 그러니 포기해달라는 말엔 죽어도 고개를 끄덕이질 않았다.

나로서는 퍽 곤란한 일이었다.

"뭐, 요즘 이래저래 일도 있었으니까."

"하긴."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이런 말로 넘어갈 수 있을 만큼 요 근래 많은 일이 있었다는 점이다.

초대형 게이트 발생.

마신의 침공.

그 뒤를 이은 던전 공략 당시의 추태.

이후 지희의 친가에서 있었던 일까지.

신세계 질서에 대한 사정을 완전히 공개하고 서로의 일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는 지금.

다행스럽게도 지금 우중충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건 최근 발생한 사건들에 얽힌 녀석들이었다.

참으로 기막힌 우연이었지만, 덕분에 나 또한 어느 정도 대답을 회피할 수는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누가 나한테 고백했네 하는 걸 농담처럼 흘리고 다니기엔 조금 그렇지 않겠는가.

최근 있었던 일들 탓에 다들 마음이 무거워진 모양이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아, 그렇지."

그리고 그렇게 말이 나온 김에, 나는 동아리 교실 칠판 앞까지 걸어갔다.

쇠뿔도 단김에 뽑는다고 해야 할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여기 모인 녀석들에게라도 이번 1년 사이 우리들의 목표를 알려줘야 할 필요성을 느낀 덕택이다.

여기 없는 애들에겐 내가 따로 전하거나 해야 하겠지만…….

서아나 지희는 예의 목표들과 직접 얽힌 당사자다.

윤하는 그 성격을 고려하면 애초부터 따로 조사했을 가능성이 높고.

다시 말해, 지금 놈들에 대해 완전히 백지 상태인 건 내 눈 앞에 있는 이 녀석들 뿐이었다.

"자, 집중. 어차피 입학식이라고 해 봤자 볼 것도 없잖냐."

그렇기에.

나는 놈들에게 이번 년도 우리들의 계획을 설명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건 다시 말해 아마도 우리와 정면에서 부딪힐 신세계 질서 측의 거두들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즉.

"방금 전 이야기 나왔던 요 근래 사건들, 다들 기억하고 있지?"

"음."

"어차피 이렇게 시간도 난 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마."

"네?"

"거기에 앞서, 따로 설명해야 할 개념이 있는데……."

안 그래도 최승준 또한 따로 설명이나 리포트를 부탁하기도 했고.

말이 나온 김에, 내가 따로 조사했던 걸 먼저 정리해보도록 하자.

슥슥, 칠판 위로 그림을 그린다.

하얀색으로 그린 원이 하나, 그 속을 채운 원이 또 하나.

그리고 그 양 쪽의 원에 각기 작은 원 일곱 개를 추가로 덧그린다.

그러자 칠판에는 거대한 원이 두 개, 자그마한 원이 열 네 개가 생겼다.

개중에서도, 속을 채운 원 쪽의 작은 원 중 하나에 삭선을 덧붙이면 완료.

이윽고 속이 찬 작은 원 일곱 개 전체를 아울러 따로 한데 묶는다.

"조로아스터 교의 일곱 마신."

둘로 나뉜 거대한 원은 조로아스터 교를 이루는 두 가지 개념.

즉, 최고 선신과 최고 악신.

그리고 그 밑에 부속된 건 최고신들을 보좌하는 일곱 개념.

다시 말해, 천사와 악마다.

그리고.

우리들이 앞으로 맞서 싸워야 할 건, 개중에서도 후자.

조로아스터 교의 대악마라 할 수 있는, 최고 마신을 보필하는 일곱 기둥.

조로아스터 교의 일곱 마신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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