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화 〉 겨울 거리
* * *
그렇게.
개학을 며칠 앞두고, 나는 다시 한 번 아카데미를 뒤로했다.
다른 점이야 어쨌든, 사실상 교직 예정자를 날려버린 지금.
단순한 구두 보고로 끝내기엔 아무래도마음이 걸렸던 탓이다.
'뭐, 그렇다 쳐도…….'
아직 개학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남은 지금.
변함없이 교장실에 출근하고 있는 최승준의 모습엔 무어라 말하기 힘든 오묘함이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방학인데 출근해야 하다니.
미친, 곧 뒤져도 못할 일이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밖으로.
차디찬 겨울 바람도 어느덧 끝자락을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누구 하나 없는 운동장 너머.
소복하게 내린 눈자락과 같이 새하얀 머리칼을 간질이며, 지희는 호호 하고 숨을 불고 있었다.
"끝났어요?"
"엉."
당연한 일이었다.
여하간, 류인형은 그녀의 삼촌이었으니까.
만에 하나 최승준이 관련된 질문을 던졌다면 그녀의 입을 빌어 대답을 들었어야 할 안제도 몇 가지는 있었다.
뭐,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질문은 없었지만.
덕분에 그녀는 여태까지 교문 앞에서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춥냐?"
"당연히 춥죠!"
"그러니까 같이 들어가자니까."
"에이."
나야 처음부터 같이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지희는 정작 그런 내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유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갔지만.
몽마의 딸이라는 호칭에 걸맞지 않게도, 지희는 낯가림이 심하다.
나야 어쨌든, 처음부터 최승준과 같은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조금 부담이 된다 그 뜻이겠지.
단순하게 따지기만 해도 그렇다.
지희는 학생. 최승준은 교장.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교장이 부르는 걸 좋아하는 학생 따위는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인정이지, 그건.
"거기에, 로맨틱하지 않아요?"
"나는 너희 나잇대 계집애들 생각은 도저히 모르겠다."
지희의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젓고 만다.
그야 그림만 따지면 괜찮긴 했지만.
우중충한 하늘 아래, 조용히 입김을 뿜으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소녀.
때 아닌 함박눈을 떠오르게 하는 그 머리카락 덕분에, 확실히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은은한 분위기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물론 지희가 구태여 바깥에 남아있고 싶어했던 이유는 저런 변명 때문이 아니었겠지만.
여하간, 류인형은 그녀의 삼촌이다.
비록 그녀에게 있어 진정한 의미에서 가족에 가까운 건 혼인회 쪽이며, 류 씨 일가는 짜증날 뿐이었다고 해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히 칼로 자르듯 나누어질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그야 놀랄 수밖에 없었겠지.
아무리 그래도 제 삼촌이라는 작자가 일가족 몰살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며, 그게 악마의 영향 때문이라니.
필요한 일이라면 대답할 수 있다.
실제로 그런 각오도 했으리라.
하지만.
만약 구태여 최승준이 부르지 않는다면, 굳이 상기하고 싶은 일은 아니다.
말하자면, 이번 사태는 지희에게 있어서 딱 그런 의미였으리라.
덕분에 나도 별다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무어라 말할 수 있겠는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홀로 스스로의 혼란을 삭이고 있던 계집애에게.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하연이는 다소 둥실둥실한 면이 있다.
애초에 이런 이야기에 크게 마음이 흔들리는 성격도 아니다.
예은이도 마찬가지.
제 오빠가 관련된 일이라면 모를까, 그 마음가짐은 이미 어느덧 어엿한 1인분 몫의 헌터다.
윤하 또한 그랬다.
윤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학생들 중에선 제일 보통인 편이지만, 일단 본인의 자질이 남다르다.
사냥꾼으로서의 마음가짐을 가장 먼저 갖춘 건, 혹은 가장 먼저 갖추려 노력한 건 역시 윤하일 테지.
그러나.
지희는 다르다.
애초부터 지희에게 헌터 노릇이란 단순한 위장 노릇에 지나지 않았다.
실력은 있다. 센스도 나쁘지 않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혼혈로서 대침공 시대를 겪은 지희의 배경이 작용한 결과다.
달리 말하자면, 본인이 원했던 일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지금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 중에서, 지희보다 능력이 뒤떨어지는 학생들은 더러 있다.
여하간, 단순한 능력만 따지면 지희는 충분히 우수한 편이니까.
스스로의 약점을 냉정하게 유추할 수 있는 판단력.
스스로의 강점을 알고 집중적으로 노력할 수 있는 통찰력.
거기에 태생적인 능력이나 경험에 더해, 여왕급 몽마의 힘이라는 기연까지.
두 번의 방학을 거치며 사실상 B랭크에 가까운 힘을 손에 넣은 지금, 지희의 능력은 학생들 중에선 틀림없이 군계일학이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하늘하늘 거리를 걷고 있는 지희의 걸음에 흔들림은 없다.
승리한 건 류인형. 패배한 건 류지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의 교전 탓에 입은 부상을 제외하더라도 상태가 더 심각한 건 류인형 쪽이었으니까.
다시 말해, 지희는 요 몇달 사이 현역 B랭크 헌터를 상회하는 능력을 갖춘 셈이었다.
다만.
딱 거기까지.
지희가 갖춘 건, 어디까지나 능력 뿐이다.
모르긴 몰라도, 혼혈로서 살아남기 위해 대침공 당시 노력했던 경험이.
혹은 어쩔 수 없이 신세계 질서와의 싸움에 내몰린 끝에 손에 넣은 강함 뿐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지희에겐 헌터가 될 만한 동기가 없다.
어쩌면 그 때문일까?
내가 담당하고 있는 학생들 중, 가장 헌터답지 않은 것 또한 바로 지희 쪽이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감성이 한없이 일반인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아니, 어쩌면 지희의 실력과 그 기반이 된 혼인회에서의 경험 때문일지도 모른다.
혼혈로서 태어나 자신의 부모를 모르던 지희.
혼인회 안에서도 그런 그녀의 입지는 한층 더 붕 뜬 상태였다.
여하간, 본디 남상원이 이끌던 난민 캠프를 박살낸 몽마의 딸이었으니까.
그런 스스로의 출신을 깨닫게 된 날.
혹은, 자신이 당연하다 생각하고 있던 혼혈로서의 삶을 자신의 피붙이들이 부정한 날.
지희는 자신의 진정한 가족은 혼인회라며, 류 씨 일가를 멀리하는 길을 택했다.
단지.
택했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어린애의 선택일 뿐이다.
단 한 번도 망설임이 없었을 리 없고, 막연한 두려움이 없었을 리 없다.
하물며 안타까움이 없었을 리도 없다.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설령 알게 되었다 해도 도저히 자랑스럽게 여기긴 힘들었던 지희.
그런 지희가 필요하다며 찾아온 류 씨 일가 사람들이 면전에서 혼혈인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모습까지.
어느 쪽이든, 아직 어린 아이였던 지희가 충격을 받지 않기엔 지나칠 정도로 과격한 사건들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가족. 자신이 있을 장소. 혼혈.
지희는 다른 학생들보다 유달리 그런 점에 구애되는 면이 컸다.
단지 그 뿐이었더라면, 딱히 나쁜 일은 아니다.
애초에 자신의 출생이나 가족에 마음을 두는 건 동서고금 누구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다만, 지희는 그 점이 다른 학생들보다 더 컸다.
단순한 성격만 따지자면,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좋다.
친절한 성격이라는 이야기도 되니까.
일전, 이예은과의 대화만 해도 그렇다.
자신이 혼혈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적당히 사귄 친구들 중 한 명.
지희는 그렇게 말했고, 그런 스스로에게 부끄러움과 부담감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 대해 면구스러움을 알고, 사과할 줄 아는 건 틀림없이 훌륭한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3할이 자신의 친지들을 몬스터에게 잃었다 일컬어지는 이 미친 시대.
머잖아 신세계 질서의 계획 하에 제 3차 대침공이 코앞까지 다가와, 우리들은 그런 놈들과 맞서 싸워야 하는 지금.
새삼스레 지희의 모습을 본다.
혼인회의 일에 마음이 흔들려, 내 앞에서 정체를 드러냈던 지희의 모습을.
자신의 정체가 폭로당한 사실에 학교를 뛰쳐나갔던 그 날의 일을.
그리고 이번 일에도 내심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는 그 모습을.
딱히 철인이 되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하던 사람이 몬스터의 한끼 밥이 되는 걸 당연하게 여겨야 하는 직종이 바로 헌터다.
허면?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헌터라는 일은 어쩌면 꽤나 고된 일이 아닐까.
필요해서. 고등학교에 다니기 위해서. 신세계 질서가 가만히 놓아두질 않으니까.
혹은, 혼혈로서 살아가는 힘을 기르기 위해.
어느 쪽이든, 힘을 기르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나 또한 그녀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데에 주력하고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방금 전 교장실에서 나왔던 말을 떠올린다.
이번 1년.
우리들은 신세계 질서에 대한 본격적인 반격으로 접어든다.
단순한 방어.
저 쪽이 먼저 손을 댔으니까 이 쪽도 불똥을 쳐낼 수밖에 없다는 요격과 달리, 이 쪽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공격.
그런 상황을 앞두니, 아무리 나라고 해도 역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지희야."
"네?"
"헌터 일, 재밌냐?"
적성에 맞느냐.
괜찮냐.
앞으로도 할 수 있겠냐.
그런 말 대신, 나는 그런 물음을 입 밖에 냈다.
도저히 내키는 말은 아니지만…….
지금.
마침 지희가 당황스러운 일을 겪은 지금이라면 그 본심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한 마디로 말하자면, 나는 이번 일로 지희가 자퇴하는 일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