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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15화 (215/371)

〈 215화 〉 몸이 나쁘면 머리가 고생한다

* * *

"염병, 더럽게 아프네."

떨그렁!

잇새로 새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나는 몸에 꽂힌 단검을 뽑아 내버렸다.

그 위에 뿌린 포션이 상처를 억지로 회복시키는 게 느껴졌다.

……반격이 제대로 들어간 덕택일까.

류인형은 눈을 뜰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내버려 둘 수도 없으니.

다시 한 번 즉석 연금술.

마력을 품은 철사가 류인형의 전신을 결박했다.

적어도 갑자기 난동을 부릴 여지는 없겠지.

'집이 날아간 건 미안하게 됐지만.'

뭐, 이제 와서다.

만약 항의라도 들어오면 돈으로 어떻게든 하자.

그런 감상과 함께 문을 열고 주변을 훑는다.

곧바로 눈에 밟히는 건 역시 화장실을 통째로 격리하고 있는 결계의 모습이다.

다행스럽게도, 결계 자체는 지극히 보통.

내부에서 문을 열 수 없도록 가두는 역할이다.

만에 하나 침입자를 요격하는 등 마법적 효과가 있었다면 일이 꽤나 귀찮게 됐겠지.

하나하나 해체하고 있을 시간도 없고, 다친 몸으로 시그니처를 써야 했으리라.

'흠.'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문득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확실히 류인형은 귀찮은 적이었다.

이래저래 준비한 함정도 있고, 다듬으면 꽤나 괜찮은 재목이 되겠지.

하지만 딱 거기까지.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상대가 인간이었다는 점을 고려해도 상당히 여유가 남았으니까.

시그니처만 해도 그렇다.

예쁘게 베기.

만에 하나, 류인형의 뒤를 이어 다른 누군가가 난입할 가능성을 경계해 잔탄을 남겨두긴 했다만…….

정작 주변엔 여전히 별다른 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지희의 행동으로 보건대 누군가 류인형을 뒤에서 조종하던 건 거의 확실한 사실.

그런데도 여태까지 별다른 반응이 없다는 건 과연 무슨 뜻일까.

정말로 류인형 하나만을 믿은 건가?

아니, 애시당초 류인형을 조종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뭐지?

도대체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뭐, 어느 쪽이든.

'직접 물어보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지희야?"

"우와아아앗?!"

붙잡히기는커녕 제 몸에 향수를 뿌리고 있던 지희의 모습을 발견했다.

아니, 뭐 하는 거야 얘.

나도 모르게 이마에 손을 짚고 말았다.

그러자 짐짓 헛기침을 반복하며 향수를 숨기는 지희.

물론 이제 와서 숨긴다 한들 향수 내음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아니, 하필이면 화장실에 붙잡힌 꼴이었으니 신경이 쓰일 수야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겐 화장실 방향제 냄새가 몽마의 체취보단 나았으니 무어라 말하기도 힘들었다.

"으, 으흠. 오셨군요?"

"그래."

"류인형 그 사람은……. 꺄, 꺄아악!! 선생님, 다치신 거 아니에요?!"

"아니, 포션 뿌렸는데."

뭐, 어쨌든.

마지막으로 지희를 탈환할 때까지, 이번 가정 방문은 별다른 문제 하나 없이 끝을 맺었다.

*

허면, 그 뒤의 이야기.

공교롭게도, 이번에 내가 벌인 행동은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여하간, 현직 아카데미 교사들 사이에 싸움이 붙었던 거니까.

다만.

다행스럽게도, 명분은 내 쪽에 있었다.

이번에 류인형이 보인 광행 때문이다.

세상에.

아카데미 교사 임관 대기자 겸 삼촌이 조카를 팼다고?

당연히 아카데미 측으로서도 류인형을 연임시킬 수는 없었다.

덕분에 최승준도 류인형을 미련 없이 잘라낼 수 있었다.

문제는 류인형의 빈 자리로 인해 발생하는 교사진의 공백 쪽인데.

"내가 더 뛸까?"

"나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만, 아무리 그래도 지나치게 혹사한다는 평가를 피하지 못하게 되겠지."

최승준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비서에게 빈 자리를 내주었다.

하긴, 매번 옆에 따라다니고 있어서 의식하지 않았을 뿐.

녀석의 비서도 현역일 적엔 A+랭크 헌터였다고 기억하고 있다.

바람을 다루는 능력을 통해 최승준을 보조하던 사이드킥 역할이었던 탓에 유명하진 않지만.

적어도 교사 역할은 맡을 수 있겠지.

"대신, 네가 설명을 좀 맡아줘야겠군.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녀 또한 다른 사람을 가르친 적은 없으니까."

"그러지 뭐."

"……생각보다 훨씬 적극적인데."

뭐, 어쨌든.

그렇게 사태 수습은 끝났다.

최승준 또한 류인형이라는 교원을 아깝게 여기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

학생을 폭행한 폭행범과 나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면 당연히 내 손을 들 수밖에 없다.

물론 정말로 그게 전부였던 건 아니지만.

"그래서? 류인형은 입원했다고?"

"그래."

내 명예를 위해 미리 말해두겠지만, 내가 두들겨팬 탓에 입원했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정 반대.

이번에 류인형이 입원한 건정신병원이었다.

당연히 내 마음에 안 든다고 대충 정신병원에 쳐박은 건 아니고.

이후 뒷처리를 위해 류인형을 방문했을 때, 류인형이 발광한 탓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처음부터 발작하고 있었다 해야 할까.

"엄밀히 말하자면, 저희가 만났을 때 류인형은 세뇌당한 상태가 아니었어요."

류인형의 마음을 엿본 지희는 그렇게 평가했다.

확실히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류인형을 제압하는 데에 성공했을 당시, 녀석에겐 몬스터의 마력은 물론 정신 간섭 능력의 흔적도 없었으니까.

즉.

류인형은 세뇌당한 상태가 아니었다.

허면, 류인형이 어느 순간 갑자기 돌아버린 걸까?

아니면 본래부터 겉모습만 그럴듯했을 뿐, 류인형이라는 인간은 처음부터 그토록 난폭한 일면이 숨어있었던 걸까.

류인형의 이상함을 지적한 지희를 향해 곧바로 주먹을 휘둘렀다는 난폭함.

그리고 상황 종료 이후 파악한 바에 따르면 제 가족들을 모조리 몰살할 계획을 세우고 있던 류인형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럴 리는 없지.'

내게도 다소 익숙한 수법이었다.

인격 성형이라고 해야 할까.

법이나 사회의 안전망이 완전히 붕괴되었던 대침공 당시, 몇 번인가 본 적 있던 악질적인 수법이다.

즉, 정신 간섭 능력의 사용법 중에서도 한없이 최악에 가까운 방법.

타인의 인격을 무너뜨리다 못해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성형하는 기법이었다.

방법은 실로 간단하다.

타인의 정신에 간섭해, 특정한 감정을 불어넣는다.

누군가에 대한 사랑.

타인에 대한 두려움.

혹은, 이번 류인형과 같이 무조건적인 적의.

그렇게 타인 속에 감정을 박아넣고 능력을 해제할 경우.

능력의 대상이 된 상대는 자신의 속에 남은 감정의 잔향에 당황하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피로 때문이리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이런 작업을 열 번, 혹은 스무 번 이상 반복할 경우.

타인에 의해 조작된 감정은 어느덧 생기를 띄고, 대상의 정신을 완전히 장악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대상이 된 당사자의 마음이 먼저 착각하는 것이다.

어째서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걸까 하는 당황.

단순한 피로에 의한 것이리라 낙관하는 마음.

그러나 그런 경험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반복되다 보면, 사람은 자신의 마음과 타인이 불어넣은 감정을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어느덧 자신이 자발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주변에 대한 무조건적인 짜증을 주입당한 류인형이 주변인 전원에게 살의를 품게 되었듯이.

덕분에.

이런 점이 드러난 류인형은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간 당장 내일이라도 류 씨 일가를 몰살시키러 떠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과연 차도가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완쾌하기를 기도해야겠지.

문제는 바로 이런 인격 성형의 원리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인격 성형에는 상당한 실력이 요구된다.

대다수 암시는 상대의 무의식에 간섭하는 걸로 이루어지는 법이니까.

요컨대,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정신에 간섭하고 있다는 걸 눈치챌 경우.

이런 암시는 손쉽게 박살날 수 있다는 뜻이다.

하물며, 자신의 근간인 무의식을 건드리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리고 류인형은 B+랭크 헌터였고, 지희의 말에 의하면 정신 간섭에 대한 대응도 상비하고 있었다.

즉.

상대는 최소 A+랭크 이상의 정신 간섭 능력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

난데없이 나타난 S랭크 정신 간섭 능력자가 하필이면 지희의 주변인에 간섭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사실상 없겠지."

내 의문에 대해, 최승준은 그리 말하며 눈썹 위로 손을 얹었다.

그래.

요컨대, 그런 이야기다.

"일곱 마신, 인가?"

언젠가 내가 이야기했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최승준.

그런 녀석을 향해 나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우리들은 그렇게 판단했다.

신세계 질서의 공격은 당분간 없으리라고.

허면?

일전에 언급했던 일곱 마신.

조로아스터 교의 마왕을 보필한다는 일곱 기둥은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

신세계 질서의 수뇌부들을 거들어 조직 내의 기강 잡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을까?

'설마.'

당연한 이야기지.

때문에, 이번 류인형 사건은 우리들에게 있어 한 가지 암시가 되었다.

조직으로서의 신세계 질서는 움직이지 않는다.

허나, 신세계 질서에 속한 몬스터들까지 전원 잠잠한 건 아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있어, 그 사실은 오히려 기회였다.

쓰러지는 척 가장하던 순간, 지희는 류인형의 속내를 완전히 간파하는 데에 성공했다.

덕분에, 마신으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류인형의 정신에 간섭할 때.

다시 말해, 류인형의 정신이 갑작스레 적의로 들끓던 시점 또한 온전히 파악한 상황.

실제로 우리들은지희가 류인형의 기억 속에서 발견한 장소들을 중심으로 그 주변을 색출하고 있었다.

그래.

신세계 질서가 움직이지 못하는 지금.

조로아스터 교의 마신이라 한들, 그 힘은 A+랭크에서 S랭크 사이.

허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짧으면 반 년, 길면 1년 이상.

이번 1년동안, 우리들은 신세계 질서 측을 역으로 습격해 마신들을 뿌리뽑을 생각이었다.

*

그리고.

불만의 마신은 손가락 위로 마력을 굴리고 있었다.

'과연.'

인간의 정신은 꽤나 불편하군.

자신이 공을 들여 정신을 뒤튼 팻감이 제압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신이 품은 감상은 고작해야 그 정도였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여하간, 마신에게 있어서 인간이란 그런 존재다.

언젠가 죽여야 할 무언가.

관심이 가고, 마음이 향한다.

구조를 알고 싶고, 해명하고 싶다.

악의 길로 끌어들이고, 세뇌하고 싶다.

그렇지만.

그런 호기심은 말하자면 인간들이 차의 구조에 대해 호기심을 품고 총의 구조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과 비슷하다.

도대체 어떻게 저 기계는 움직이고 있는 건지.

놀랍고 신기하며, 의아하고 궁금하다.

그러므로.

필요하다면 해부해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충분하다.

말하자면, 마신에게 있어서 이번 사태는 고작해야 그 정도 사안에 지나지 않았다.

이번 일 또한 마찬가지.

마침 마신들의 수족이 될 인간들의 조직이 마비 상태에 접어든 지금.

일전에 보았던 조직의 계획서 중 마음이 향하는 물건을 적당히 집어 활용할 생각이었을 뿐이다.

예의 몽마의 납치를 가장 우선하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어떻게 되어도 좋을 이야기.

하물며, 몽마를 납치하기 위해 정신이 망가진 인간의 행방 따위는 비교적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뭐, 어느 쪽이든.

이 조직에서 사냥꾼이라고 부르며 두려워하고 있던 사냥꾼의 직감에도 한계가 있다는 건 알았다.

열 번, 백 번.

사람의 정신에 간섭해 뒤튼 첨병을 상대로, 자신의 기척을 읽을 정도는 못 된다.

그걸 확인한 시점에서 충분한 성과였다.

그럼, 어떻게 할까.

앞으로 닥치는 대로 놈들을 향해 첨병을 보내도 재미있을 테지.

혹은, 군중 사이사이에 비수를 섞어 보내도 괜찮지 않을까.

어느 쪽이든, 그럭저럭 즐길 수는 있을 듯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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