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화 〉 몸이 나쁘면 머리가 고생한다
* * *
사실대로 말하자면, 박우찬의 생각과 달리 류인형도 그렇게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여하간, 이번 교전은 류인형에게 있어서도 예상 밖의 상황이었으니까.
당장에 준비된 함정들만 봐도 명백한 사실이다.
공교롭게도, 박우찬의 예상과 달리 현재 이 저택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함정들은 그를 사냥하기 위한 물건이 아니었다.
예의 초대형 게이트 발생 직후, 만에 하나 도심지까지 몬스터가 진입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준비한 목책.
일종의 바리케이드다.
물론 상황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철저하게 박우찬을 공략하기 위한 수단까진 아니어도, 당연히 없는 쪽보다는 나으니까.
허면.
반대로, 류인형 입장에서 볼 때 작금의 이 상황은 어떨까.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승산은 어떨까?
'어렵다.'
류인형은 그렇게 생각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알 수 있다.
헌터 협회 기준으로 볼 때, 류인형은 B+랭크.
그에 반해 박우찬은 현재 A+랭크에 준한다.
고작해야 1단계.
박우찬은 그렇게 말했지만, 이 한 단계 차이에는 얼마나 큰 간격이 있는가?
다행스럽게도, 헌터 협회는 이런 일에 참고가 될 만한 기준을 제공하고 있다.
즉, 류인형이 주로 상대하는 B+랭크 몬스터를 확실하게 토벌하기 위해선 얼마나 되는 전력이 필요할까.
같은 B랭크라 해도 어느 정도 편차는 있지만, 최소한 탱크를 포함한 기갑 전력이 투입해야 하겠지.
정말로 확실한 승부수를 원한다면 미사일이 필요할 테고.
그렇다면.
현 인류 사회의 한계 지점이라 일컬어지는 A+랭크 몬스터를 상대로 확실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한 질문에 대해, 미국 국방부 장관은 참으로 심플한 대답을 건넸다.
핵을 쏴라.
실로 간단한 해답이었다.
요컨대, 류인형이 박우찬을 상대로 승리하기 위해선 주포로 핵폭탄을 요격하는 듯한 곡예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물론 랭크가 곧 화력으로 직결하는 건 아니다.
당장 류인형 자신부터 화력이 강한 타입은 아니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만한 난이도가 있다는 건 사실이다.
충분한 준비가 전제되어 있을 시에 한하여 상위 몬스터도 토벌 가능.
헌터 협회가 류인형의 실력에 대해 내린 평가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렇게 된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상위 헌터가 부족해서.
그런 이유로 자신보다 강력한 몬스터를 토벌해야 할 상황이 닥칠 때마다 류인형에겐 어마어마한 고난이 뒤따랐다.
하물며 지금은 협회의 백업 하나 없는 상황.
당연히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익숙한 지형이니까. 함정도 준비했으니까.
고작해야 그 정도 여유를 무기로 자신보다 강력한 실력자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
'최악이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협회가 자신에게 내린 평가가 과분하다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저기서 말하는 충분한 준비란 곧 협회의 전면적인 백업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생기는 게 실전이니까.
상황을 숙지했으니까. 적당히 준비를 갖추었으니까.
고작해야 그런 이유로 상위 몬스터를 토벌할 수 있는 건 소수의 영웅이나 애초부터 솔로인 괴짜들 뿐이다.
류인형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때문에.
상황은 실로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박우찬 측에서 보자면 충분히 메꾸고도 남을 차이.
허나, 류인형 측에서 따지자면 쉽게 따라잡기 힘든 차이.
둘 사이에 놓인 간격은 그토록 절묘한 수준이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
신경줄을 튕기는 듯한 묘기를 부리면서도, 류인형은 무심코 혀를 차고 말았다.
당장 눈 앞에 있는 상대 때문이었다.
'안 보여……!!'
상태창.
류인형의 능력을 뜻하는 별칭이다.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의 능력을 일종의 그래프처럼 파악할 수 있는 능력.
현직 B+랭크에 오를 때까지 발전시킨 힘은 어느덧 타인의 능력은 물론이요 단순한 신체 능력까지 도식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능력을 통해 바라보는 박우찬의 모습은 실로 기묘하기 짝이 없었다.
단순한 근력부터 시선 처리까지, 온갖 부분이 매 순간마다 가변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류인형 또한 중견 헌터.
살면서 이런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건 아니었다.
덕분에 류인형은 언제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지 곧장 떠올릴 수 있었다.
몬스터의 목숨을 끊기 직전.
상처입은 생물이 마지막 저항을 시도할 때.
생명을 불사르는 짐승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능가하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지금 박우찬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벌써부터 저러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점이다.
계속해서 대치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
당장 눈 앞의 사내에게선 눈에 띄는 부상 하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쳐 날뛰는 상태창.
덕분에 류인형은 아슬아슬하게 박우찬의 초격을 피할 수 있었다.
저토록 가변하던 능력치가 한 순간 고정된 찰나.
명확한 의사를 품은 채, 박우찬이 칼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쩌어억!!
가로로 두동강난 저택의 상반신이 하늘에 휘날렸다.
그 너머로 반짝이는 햇빛을 받으며, 류인형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이런 미친.
마법을 발현할 수 있었던 건 거의 기적이었다.
반사적으로 움직인 마력이 저택 내의 함정을 가동한다.
그러나.
그렇게 방출한 마법이 박우찬의 정장에 부딪혀 무산되기 시작한다.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갑옷 쪽이었나……!!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차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만약 A랭크까지 능력을 단련했다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은 도구의 능력까지 분석할 수는 없었다.
뭐, 없는 걸 아쉬워할 수도 없는 노릇.
그대로 허리를 뒤로 젖힌 류인형은 마치 물구나무를 서듯 제 팔로 몸을 지탱했다.
동시에, 참격이 지나간 자리 너머로 팔을 튕겨 몸을 날린다.
쨍그랑!!
유리창을 깨트리며 마당으로 나와 거리를 벌리며,그와 함께 빈 손가락을 조작해 앞으로.
다시 한 번 구현된 마법이 박우찬을 향해 겨누어진다.
단, 고작해야 함정 수준으로 박우찬의 갑옷을 뚫고 데미지를 주기는 힘들다는 건 이미 확인했다.
허면, 이번에 사용할 마법은 실로 간단.
방어구 내의 항마력 따위로 대처할 수 없는 공격이면 된다.
차르르르륵!!
다음 순간, 허공에서 솟구친 사슬이 박우찬의 무기를 얽어 붙들었다.
당연한 이야기지.
연금술로 만들어진 도구 따위를 항마력 있는 소재로 건드린다 해서 연금술이 취소되지는 않는다.
지금 이 함정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용한 마법의 정체는 소환술.
동시에 원격 조작.
다른 장소에서 소환된 사슬을 조작해 그 움직임을 구속한다.
"큭?!"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면, 박우찬의 신체 능력이다.
물론 류인형 또한 예상했다.
방금 전 작렬한 일격.
지금 이 사슬로 박우찬의 움직임을 완전히 제동하는 건 무리다.
잘 해도 시간을 버는 정도겠지.
어쩌면 순식간에 박살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
찰나의 시간을 벌 수만 있다면.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설마 움직임을 제약당하고 뭐고 하기 이전에 공격당할 줄이야.
첫 일격을 피하고 나름 거리를 벌린 류인형.
그런 거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박우찬은 어느덧 류인형 앞까지 당도한 상태였다.
류인형이 거리를 두는 행동보다, 한 눈에 봐도 무겁기 짝이 없는 거병을 휘두른 반동에 시달리는 박우찬의 돌격 쪽이 빠르다는 불합리.
다시 말해, 단순한 신체 능력 차이였다.
투우웅!!
작렬한 공격은 단순한 앞차기.
허나, 그 결과는 간단하지 않았다.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공격을 받아낸 팔이 부러진다.
동시에, 다음 순간 류인형은 방금 전 솟구친 지붕 이상의 속도로 하늘을 날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이런 미친."
저 놈은 신체 강화 능력자라도 된다는 말인가?
고작해야 앞차기 한 번.
고작해야 일격.
그러나, 단 일격에 류인형의 몸은 공격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하늘까지 날아가버린 것이다.
물론 이 거리는 류인형에게 유리하면 유리했지 불리하진 않다.
반나절 사이에 두 번이나 부러진 왼팔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하며 다시 한 번 마법을 사용한다.
무기에 걸린 사슬을 박살내기 위해 박우찬이 멈칫할 수밖에 없는 찰나.
투두두두두!!
콩볶는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기관총이 박우찬을 향해 소사했다.
대침공 이전, 총기 규제에 엄격했던 대한민국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두 번의 대침공을 겪으며 시중에 유출된 총기.
개중에서 일부를 회수한 류인형이 설치한 함정이었다.
물론 개인 단위에서 운용하는 만큼 군처럼 어마어마한 성능을 발휘하긴 힘들겠지.
당장 총탄에 마력을 쏟아붓는 행동부터 고행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성능은 확실했다.
단 한 발로 헌터의 갑옷을 관통하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단지.
열 발. 백 발. 천 발.
끊임없이 쏟아지는 탄환의 세례에 계속해서 저항할 수 있는 헌터는 육체 강화 계통 능력 보유자가 아닌 이상 극히 드물었다.
박우찬 또한 마찬가지였다.
결국 사슬을 푸는 일보다 우선해, 머리 위로 코트를 두른다.
그 틈을 타 투척 무기를 꺼내드는 류인형의 귓가에, 청명한 소리가 들렸다.
마치 동전을 손가락으로 튕기는 듯한 소리.
묘한 금속음이 울린 다음 순간.
콰가가각!!
그가 나름의 시간을 들여 준비한 총기들이 산산히 부서졌다.
방금 전, 코트 안에서 박우찬이 위로 튕긴 쇠구슬이 순식간에 날카로운 와이어로 변하여 총기들을 절단했기 때문이다.
즉석 연금술.
얼마 전, 대장장이들의 거리를 방문한 박우찬에게 소재로 사용할 만한 투척 무기는 몇이나 있었다.
그렇지만.
"흐으읍!!"
역시 이 연속 공격은 박우찬이라 해도 초견에 대응하기 힘들었다.
피이잉!!
휘두른 코트에 의해 막혔던 시야 너머.
코트를 거둔 박우찬을 향해 투척 나이프가 날아들었다.
한 손은 코트를 쥐고 있었고, 한 손은여전히 사슬에 얽힌 무기를 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우찬의 대응은 충분히 눈부셨다.
보폭을 넓히고 몸을 움직인다.
단순한 머슬 컨트롤.
조금 자세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어깨를 향해 날아든 나이프 중 두 벌을 튕겨내고 마주 흘린다.
단.
푸욱!!
세 번째 단검까진 역시 피할 수 없었다.
그대로 직격한 나이프가 정장을 찢고 어깨에 꽂힌다.
그리고.
쿠우우우웅!!
어깨에 꽂힌 단검 손잡이 위로, 류인형의 발뒤꿈치가 작렬했다.
자신과 비슷한 높이에 떠오른 지붕을 박차고 추락하며 날린 일격이었다.
"씹!!"
만약 범상한 상대였다면 그대로 팔이 절단되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일격.
쇄골이 부러진 통증은 박우찬의 입으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게 할 정도로 강렬했다.
그렇지만.
"크, 학?!"
다음 순간.
먼저 거리를 벌린 건 류인형 쪽이었다.
비척대며 뒷걸음질치는 류인형.
그 시야가 이상할 정도로 뒤틀리고 있었다.
정신 간섭 능력, 따위는 아니다.
실로 물리적인 이유.
방금 전, 서로가 교차하는 찰나.
무기를 손에서 놓은 박우찬의 카운터가 류인형의 턱주가리에 작렬한 탓이다.
무기의 위력에 눈이 팔린 탓일까.
류인형은 방금 전부터 박우찬의 무기에 구애되었다.
무기를 봉하고 사슬을 풀 틈새를 주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견제를 던지던 류인형.
덕분에 박우찬 또한 무기에 얽힌 사슬을 박살낼 틈을 벌지 못했다.
그렇지만.
애시당초 이런 거리에서 이만한 거병은 방해가 될 뿐이다.
실제로 그런 이유 때문에 집을 토막내기도 했고.
필시 류인형이 무기를 견제했던 이유 또한 마찬가지겠지.
실내니까. 거병을 쓰기에 적합한 장소는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기엔 방금 전 작렬한 일격 덕분에 이 집은 두동강나고 말았다.
무기를 사용하는 데에 제약이 있을 리 없겠지.
그렇게 생각한 탓이다.
물론 어느 정도는 그렇게 유도한 탓도 있지만.
당연히, 이런 대인전에서는 대검보다 주먹 쪽이 쓰기 편하다.
작렬한 카운터.
흔들리는 뇌와 시야 너머로 류인형이 어떻게든 의식을 붙잡는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시야가 암흑에 떨어졌다.
혼절했기 때문, 은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본인조차 착각하고 말았지만.
그 정체는 박우찬의 손에 들려 있던 나머지 반쪽.
다시 말해, 코트였다.
"뒈져!!"
얼굴에 코트를 던져 시야를 가리고, 그 사이 두들겨 팬다.
실로 대중적인 전법이었지만, 헌터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전술은 아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
몬스터의 안구 하나를 가리기 위해 얼마나 넓은 코트가 필요하다 생각하는가.
차라리 방수포가 필요할 테지.
그러므로.
류인형 또한 대처하지 못했다.
다음 순간.
작렬한 일격이 깔끔한 호선을 그리며 다시 한 번 류인형의 턱끝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류인형의 의식이 눈꺼풀 너머 암흑 깊은 곳을 향해 떨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