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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13화 (213/371)

〈 213화 〉 인형 놀음

* * *

고의는 아니었다.

후일, 박우찬은 오늘 일을 되돌아보며 그리 변명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평소 박우찬은 의도적으로 지희의 존재를 외면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

티아마트와 마찬가지.

만에 하나라도 무슨 일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한 일종의 고육지책이다.

아무리 그래도 스플래터 무비를 찍을 수는 없으니까.

덕분에, 박우찬은 류인형의 술책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진짜로.

다만.

'응?'

위화감.

본인 앞에 음료수를 내려놓고자 다가온 인형의 모습을 보고 묘한 위화감을 느끼긴 했다.

그리고 그 위화감은 이윽고 현실이 되었다.

예의 인형과 손등이 맞닿은 순간,박우찬은 눈 앞의 인형이 가짜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공감 주술에 의한 변장이라는 건, 요컨대 눈 앞의 인형이 지희를 모방해 의태했다는 뜻이니까.

……그래.

혼혈인 지희를.

그 시점에서, 박우찬에게 실수는 없다.

접촉한 찰나.

박우찬은 인형의 정체를 간파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눈 앞의 혼혈 비슷한 무언가는 지희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파했다고 해야 할까.

물론 겉보기는 완벽했다.

적어도 여자의 헤어스타일 하나 칭찬할 수 없는 박우찬이 차이점을 분간할 정도로 만만한 물건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시각과 감각.

만약 박우찬에게 둘 중 어느 쪽을 신용할 수 있느냐 묻는다면 박우찬은 망설임 없이 후자를 선택할 테지.

이번에 일어난 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다른 헌터의 경우 당황했을지도 모르겠다.

응? 지금 이 지희가 가짜라고?

그럼 진짜 지희는 어디에 있지?

혹시 류인형 쪽이 인질로 잡은 건가?

어떻게 하지?

류인형을 제압하고 구출해야 하나?

그런 식으로.

허나.

망설임을 벗어던진 박우찬은 달랐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판단할 필요조차 없었다.

박우찬의 행동은 무언가 이론적인 이유나 사정이 있었던 게 아니다.

지희랑 닮은눈 앞의 혼혈 비슷한 무언가와 손등이 닿은 그 순간.

'씨발.'

그렇게.

박우찬은 자신이 반토막낸 지희의 모습을 발견했다.

"우와아아악!!"

박우찬이 비명을 지르는 것도 당연했다.

여하간, 눈 앞의 인형이 지희가 아니라는 사실을 되새기기도 전에 손이 먼저 나갔을 뿐이니까.

애시당초 저 물건이 인형이라는 사실도 몰랐고.

느껴지는 바에 따르면 적어도 혼혈은 아니지 싶어 공격했을 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희가 죽어있으면 그야 당황할 법도 하다.

다행스럽게도, 박우찬이 반토막낸 건 지희가 아니라 지희를 모방한 인형이었다.

덕분에 당황하던 박우찬은 한층 침착한 어조로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어, 뭐야. 가짜였네."

그리고 그게 바로 지금 둘 사이에 대치가 이어지고 있는 이유였다.

박우찬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지희가 알고 보니 가짜였으니까.

처음 당황했을 때야 어쨌든, 그 다음엔 류인형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허면, 류인형은 어떨까.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군."

"에엥."

아니, 뭘?

박우찬으로서는 그리 반문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사실 당연한 판단이었다.

적어도 담임이라는 작자가 눈 앞에 있는 조카 모습 학생을 두동강내고 보니 가짜여서 다행이라 말할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테니까.

아니, 만약 그렇다면 더더욱 문제고.

틀림없이 류인형은 교사로서는 실격에 가까운 성격이다.

실력이야 둘째치더라도, 스스로 교사 자리를 단순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는 시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런 그라고 해도 최소한의 선은 지킨다.

돈을 받은 만큼 일하는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적어도 자기가 맡은 아이들의 상태가 악화되길 바라진 않는다.

당연한 이야기 아니겠는가.

때문에.

'가짜였네, 라고?'

마치 베고 나서야 가짜라는 걸 눈치챈 듯한 어투.

무슨 이유가 있었다 해도, 자칫 잘못하면 학생을 두동강낼 뻔한 미친 놈을 담임 자리에 놓아둘 수는 없다……!!

박우찬의 체질을 모르는 류인형으로서는 당연한 판단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의무감과 교사로서의 책임감을 모조리 끌어당겨 마주서는 류인형.

물론 알고 있다.

방금 전의 일격만 봐도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던 사실.

박우찬은 류인형보다 강하다.

그의 전공이 과장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여전히 변하지 않지만, 그 실력은 틀림없이 의심할 바 없음.

하물며 류인형 쪽은 지희와 전투를 벌인지 아직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상황.

불리한 조건이라는 건 틀림없다.

그렇지만, 지금 이런 상황을 앞두고 물러설 수는 없다……!!

뜻 모를 정렬적인 시선을 받으며, 박우찬은 곤란한 듯 코를 울렸다.

아니, 최소한의 상황 파악은 마쳤다.

지희 대신 인형 따위가 들어온 걸 보면, 그 잠깐 사이 지희와 류인형 사이에 싸움이 붙었던 모양이지.

그리고 지희는 패배를 택했다.

현 시점, 지희의 실력을 고려할 경우 류인형에게 일방적으로 밀린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상성도 나쁘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 요청 따위가 오지 않았다는 건…….

'지희 쪽에서 의도한 결과라는 뜻이겠지.'

아무리 그래도 연락 수단을 모조리 차단할 만한 강력한 결계가 펼쳐졌다면 내가 눈치채지 못하긴 힘들다.

몬스터의 마력이 아니라 하더라도 마찬가지.

대침공 이전의 상식으로 따지자면 갑자기 EMP를 던져 국소적인 정전이 찾아온 느낌일까.

어지간히 눈치가 없더라도 이상 사태라는 건 파악하기 손쉽다.

즉, 지금 여기에 지희가 없는 건 아마도 지희가 선택한 결과.

다시 말해, 류인형은 다른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지금의 저 전투 태세도 그 때문이겠지.

박우찬은 그렇게 지레짐작했다.

여하간, 류인형 입장에서 보자면 기껏 위장용으로 마련한 인형까지 단번에 박살난 상황.

경계하지 않는 게 힘들다.

'문제는 상황이군.'

상대는 인간.

거기에, 몬스터의 능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즉, 지금 이 순간 박우찬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은 A+랭크 헌터 수준이라는 뜻이었다.

류인형의 전투 능력은 협회 기준으로 B+랭크.

고작해야 한 단계 차이인 만큼, 방심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다.

하물며 여기는 류인형의 거점이니까.

온갖 결계와 함정이 도사리고 있겠지.

승산은 반반.

적어도 50 대 50은 가져간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허면, 어떻게 할까.

무심코 꺼내든 대검을 움켜쥐며 내심 한숨을 돌린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만에 하나 작업을 벌여도 조금 스마트한 방법으로 움직이고 싶었다.

구태여 필요 없는 싸움을 하고 싶을 정도는 아니니까.

상대가 몬스터도 아니고.

무엇보다.

흘끔, 손에 쥔 무기를 곁눈질로 살핀다.

우악스럽기 짝이 없는 거검.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인간을 상대로 위력을 조절할 수 있을 만큼 섬세한 무기도 아니니까.

박우찬으로서는 한층 더 패널티를 짊어지게 된 셈이다.

그렇지만.

'새끼, 뒈졌다.'

승산은 반반.

어쩌면 열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우찬은 패배를 상정하지 않았다.

상황은 나쁘지만, 지고 싶은 기분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하간, 지금 이 자리에 지희는 없다.

다시 말해, 눈 앞의 이 남정네는 지희를 때려눕히고 태연한 얼굴로 돌아온 셈이다.

씨발, 다른 것도 아니고 자기 조카한테 주먹을 휘둘러?

아니, 내 제자한테?

슬쩍 대검을 바로쥔다.

물론 화를 낸다 해서 승산이 늘어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동기 부여는 됐다.

몬스터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딱히 고려해야 할 뒷사정도 없다.

상대는 인간.

죽여서는 안 되지만, 죽기 직전까지 패는 건 상관 없다.

그렇다면 자신이 해야 할 일도 마찬가지였다.

압도적으로 이긴다.

이런 놈은 별다른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듯이 치워버리고, 깔끔 떠는 얼굴로 지희를 구출해 돌아가면 그만이다.

박우찬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천천히 칼끝을 흔든다.

마찬가지로, 류인형 또한 걸음을 둔다.

거리는 가깝다.

고작해야 한 걸음.

헌터의 보폭이 아닌 일반인의 걸음으로도 한 달음에 당도할 수 있는 지척.

방금 전까지만 해도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을 뿐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그대로 두 헌터의 감각이 뒤얽히며 거실 안을 누빈다.

좁다란 방 안을 파악하고 간격을 잡는 두 명.

그리고.

마력이 움직였다.

류인형이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자택 곳곳에 숨긴 온갖 함정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마법적 함정.

전투 개시 직전은커녕, 이 저택에 들어올 때부터 박우찬이 감지하고 있던 물건들이다.

때문에 박우찬 또한 망설임 없이 앞으로 걸음을 딛었다.

구속. 원소 공격. 단순한 마력의 칼날.

어느 쪽이든, 지금 몸에 걸친 정장의 방어력을 돌파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우오오오오!!"

그러므로.

박우찬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노호성을 내지르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동시에.

가로로 길게 휘두른 일격.

작렬한 칼날이 달려드는 마법의 한 가운데를 정확히 양분한다.

아니,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대로 힘차게 휘두른 일격이, 저택을 둘로 나누고 그 지붕을 하늘로 날려버린다.

칼날의 궤적에 맞추어 잘린 저택 너머.

하늘이 빼꼼 하고 고개를 내민 아래, 두 사냥꾼 사이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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