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화 〉 인형 놀음
* * *
바닥에 쓰러진 지희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류인형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일이 꼬이게 된 건지 스스로도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류지희는 그렇게 말했고, 류인형 또한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허나.
류지희가 그 사실을 면전에서 지적했을 때, 류인형의 의식은 깔끔하게 날아가고 말았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눈 앞에 있는 이 광경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건물 내에 피해는 크지 않았다.
적절하게 발동한 결계 덕분이다.
팔 또한 마찬가지.
부러지긴 했지만, 이 정도는 포션만 마셔도 어떻게든 된다.
문제는 역시 지희 쪽이다.
완전히 의식을 잃은 지희.
이제 와서 지희를 깨우고 사과한들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다른 건 둘째치더라도, 지금 밖에는 담임 교사가 있다.
만에 하나 이번 싸움이 아카데미 쪽에도 알려지게 된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교사 자리를 맡는 건 아무래도 힘들어지겠지.
아니, 그 이상으로 지희의 보호자 자리를 꿰찬다는 계획 또한 차질이 생긴다.
아카데미 교사들도 바보가 아니니까.
폭력 사태를 일으킨 삼촌에게 조카를 맡기려 할 리 없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류인형은 문득 깨달았다.
지희의 신병을 손에 넣은 작금의 이 상황에서, 구태여 아카데미 교사 노릇에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
류인형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자신에게 있어 교직은 어디까지나 수단.
이미 목적을 이룬 지금,아카데미 교사 자리에 구애당할 필요는 없다.
물론 바깥의 담임 교사를 적당히 속일 필요는 있겠지만…….
'적당한 물건이 있던가?'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셈을 하며 화장실 밖으로 나서는 류인형.
싸움이야 그리 길지도 않았으니, 당장에 사용할 수 있을 만한 수단만 있다면 예의 담임도 어찌저찌 속여넘길 수 있겠지.
찰칵.
그런 생각으로 문을 닫고 떠나는 류인형의 뒷모습이 점차 멀어진다.
그렇게 10초.
착실하게 시간을 셈한 뒤에야, 류지희는 벌떡 하고 상반신을 일으켰다.
"아, 젠장."
아직도 뻐근한 옆구리를 어루만지며 류지희는 쯧 하고 혀를 찼다.
혹시나 해서 방금 전 류인형이 떠난 화장실의 문고리나 창문 등을 살펴보기도 했지만, 역시 열리지 않았다.
예의 결계의 영향이리라.
'말하자면 갇힌 셈인가.'
거기까지는 상관 없었다.
계획대로였으니까.
……이번 작전의 골자는 실로 간단했다.
류지희의 능력으로 류인형의 마음을 읽는다.
그렇지만, 그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강제로 류인형의 마음을 읽으려 드는 건 하책 중의 하책이다.
류인형은 현직 B+랭크 헌터.
어지간히 느슨한 성격이 아니라면 정신 간섭 능력에 대한 대책도 갖추어져 있겠지.
그리고 그녀가 기억하기에 류인형은 지나칠 정도로 깐깐한 타입이었다.
때문에, 류지희가 취할 수 있는 수단은 크게 세 가지.
첫 번째는 먼저 류인형의 동의를 구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방금 전 류인형의 모습은 도저히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아니, 애시당초 요즘 네 언동이 수상하니까 독심술로 살펴보겠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세상천지 얼마나 되겠냐마는.
문제는 그 이상으로 날이 서 있던 류인형의 모습이다.
스스로의 얼굴 가죽을 벗겨버릴 기세로 연거푸 세수를 반복하던 류인형.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이상 사태였다.
때문에, 류지희는 먼저 류인형의 정신을 안정시키고자 능력을 사용했다.
하지만.
직후, 류인형은 류지희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몽마의 능력이 꺼림칙한 건 주지의 사실이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과민 반응이다.
덕분에 류지희는 역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류인형은 다른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었다.
덕분에 류인형을 제압하고 기절시킨 상태에서 그 마음을 읽는다는 두 번째 계획은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만에 하나, 지금도 예의 누군가가 류인형의 정신에 간섭하고 있을 경우.
그리고 그 누군가가 모종의 목적을 지니고 류인형을 조종해 그녀를 공격하게 했을 경우.
억지로 류인형의 마음을 읽으려 했을 때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모르긴 몰라도, 즐겁게 반길 리는 없겠지.
어쩌면 류인형의 정신을 붕괴시키려 들지도 모른다.
상대는 B+랭크 헌터조차 손쉽게 조종할 수 있는 실력자.
적어도 그 잠깐 사이 그녀가 상대방의 간섭으로부터 류인형의 의식을 보호하는 데에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물론 그녀는 류 씨 일가를 좋아하진 않는다.
오히려 싫어하는 축에 가깝겠지.
다만, 정신이 무너지는 꼴을 보고 기뻐할 만큼 증오하는 건 또 아니었다.
그러므로.
류지희는 세 번째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일부러 패배한다.'
그 경우.
승리를 거두어 방심한 류인형.
나아가서는, 류인형을 통해 이번 전투를 바라보고 있었을 조종자 또한 긴장의 끈을 놓을지도 모른다.
그 틈을 타 류인형의 마음에 파고든다.
류지희는 그런 계획을 세웠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패배하는 방법.
다시 말해, 연출 쪽이다.
상대가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럽게 패배하는 건 보다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을 때에나 가능한 묘기니까.
류지희에게는 그만한 실력이 없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패배할 흐름을 유도하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류인형과 류지희의 실력은 정말로 종이 한 장 차이.
백병전 쪽이라면 역으로 우위를 점할 수도 있다.
허면, 상대는 백병전 대신 거리를 벌리고 원거리 공격에 승부를 걸겠지.
그리고.
정식 사제도 아닌 류인형에게 몽마 특유의 물리 내성을 돌파할 만한 투척 무기가 존재할 리도 없다.
즉, 그 상황에서 사용할 만한 수단은 십중팔구 마법.
개중에서도 구속이다.
말마따나 정식 사제도 아닌 류인형이 단 일격에 지희를 쓰러뜨릴 수 있을 만한 기적을 사용하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허면, 확실하게 쓰러뜨릴 수 있을 만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구속 마법을 우선하겠지.
실제로도 그랬다.
덕분에 지희는 자연스레 패배할 수 있었고, 쓰러지는 척하며 류인형의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때문에.
류지희는 알고 있었다.
지금 류인형이 어떤 상황인지.
나아가서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문제는 지금 이 결계를 돌파할 수단이 없다는 점일까.
물론 그렇게 심각한 사안은 아니었다.
어차피 곧 담임이 류인형을 쓰러뜨리고 자신을 구출하러 올 테니까.
말하자면, 이 시점에서 류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끝났다.
나머지는 붙잡힌 공주님처럼 기다리고 있으면 될 뿐.
그런 상상에 조금 미소가 나오긴 했지만, 곧 류지희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그녀가 있는 장소는 화장실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 미친 새끼."
꼴에 B+랭크 헌터라는 놈이 조카를 화장실에 가두고 지랄.
물론 신서아나 박우찬이 다루는 공간 조작 능력이 담긴 도구는 주로 A랭크 이상의 헌터나 다룰 수 있는 물건이다.
비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필이면 주변에 있는 헌터들이 지나칠 정도로 수준 높은 탓에 그런 상식을 얻을 수 없었던 류지희.
붙잡힌 공주님 노릇은 무슨, 옷에 화장실 냄새나 배어들지 않기를 기도하며 다시 한 번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
공감 주술이라는 개념이 있다.
마법적인 관점으로 볼 때, 대상과 얼추 닮은 요소가 존재하는 물건은 모종의 영적인 연결이 존재한다는 관념이다.
때문에, 누군가를 저주하고 싶은 마법사들은 대상의 머리카락이나 손톱 등을 애용하곤 했다.
대상의 신체 일부를 담은 인형을 제작한 뒤 망가뜨려 공감 주술로 연결된 상대방에게 파손된 상처를 전가한다.
가장 기본적인 저주요 그 본질이다.
이번에 류인형이 선택한 수단 또한 마찬가지였다.
평소 류인형이 상비하고 있는 주술 인형.
개중에서도 특히나 품질 좋은 물건을 사용한 결과, 류인형은 조카와 같은 외모의 인형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방금 전, 화장실 바닥을 샅샅이 뒤지며 손에 넣은 머리카락 덕분이었다.
이 정도면 썩 나쁘지 않은 완성도가 아닐까.
류인형 자신도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공감 주술에 따른 위장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점도 크겠지만.
애초에 집 주인의 발톱을 먹고 변장한 쥐의 일화 정도는 상당히 흔한 편이니까.
겉모습만 배낄 뿐이라면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일 필요도 없다.
뭐, 그렇다 쳐도 어디까지나 급조한 물건.
반나절이나 지속되면 다행일 테지.
그렇지만, 지금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앞으로 반나절, 어떻게든 지희의 담임을 속인다!'
적당히 지희 본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구실을 들어 담임을 쫓아낸다.
이후 지희 본인을 데리고 목적을 마친다.
급조한 계획이었지만 나름 나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지희랑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조금 길어졌네요."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류인형이 자리를 비운 건 얼추 20분 내지 30분.
대화 도중 자리를 비웠다기엔 지나칠 정도로 긴 시간이다.
그렇지만, 가정 방문 도중 보호자와 학생이 따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하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다.
당장 눈 앞의 교사 또한 의심하는 기색은 없었으니까.
이후는 적당히 맞장구만 치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금 착석한 류인형.
직후,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문이 열렸다.
거기에는 마실 걸 들고 온 지희의 모습이 멀뚱멀뚱 서 있었다.
물론 그 실체는 단순한 인형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 고맙다, 지희야."
자신의 앞에 마실 걸 내려놓은 인형을 향해 류인형은 적당한 인삿말을 건넨다.
물론 인형은 대답하지 않았다.
평소였다면 어색하기 그지없을 행동.
그렇지만, 지금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오히려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식으로 분위기를 만들기 편한 점도 있고.
이제는 적당히 타이밍을 보고 오늘은 돌아가달라 이야기를 꺼내면 그만이리라.
내심 눈 앞의 사내를 비웃으며 류인형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박우찬.
그 이름에 대해서는 류인형 또한 알고 있었다.
지희의 담임이라는 말에 이래저래 조사한 적도 있었으니까.
덕분에 류인형은 박우찬이라는 인간에 대해 나름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겉만 번지르르한 사기꾼이라고.
그런데 S랭크 퇴치 기록은 벌써 3회 이상이라고?
추가로 A랭크 몬스터 퇴치 경험만 해도 그 이상이고?
'농담하는 건가?'
설령 대침공 도중이었다 해도 비웃음을 샀을 경력이다.
그런데 제 2차 대침공도 종식된 지금, 고작해야 1년 사이에 S랭크 몬스터를 셋?
지나칠 정도로 터무니없는 허세다.
그래, 만에 하나 저 경력 중 일부만 진짜라고 쳐도 류인형의 실력을 압도적으로 뛰어넘는 헌터라고 말할 수 있겠지.
당연히 류인형은 그런 부분에 대해선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이 업계에 대한 상식이 있는 놈이라면 이렇게 정신 나간 이력을 당당하게 내걸고 다니진 않을 테니까.
십중팔구 협회 측이 아카데미 쪽과 작당해 만든 경력이겠지.
실제로도 그렇지 않은가?
당장 눈 앞의 사내는 자신의 얄팍한 술책도 눈치챈 기색이 없었다.
그 꼴에 내심 코웃음을 치고 있던 탓일까.
다음 순간, 류인형은 자신의 눈 앞에서 일어난 일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톡.
잔을 내려놓던 인형의 손가락이 박우찬의 손등에 살짝 닿았다.
그리고.
"우와아아악!!"
쿠우우우웅!!
집이 흔들렸다.
아니, 진짜로.
그리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인형이 잔을 내려놓은 바로 그 순간.
눈 앞의 사내는 어디선가 꺼낸 대검을 수직으로 내려쳤다.
그렇게.
류인형이 짜낸 계책.
지희의 모습을 빌린 인형은 단 일격에 정수리부터 바닥까지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방금 전 지진도 저 칼끝이 바닥에 꽂혀 일어난 일이었다.
"우와아아악!! 지희가 뒈졌다!!"
……사람의 힘으로 지진을 일으킨다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아니, 그 전에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고 비명을 지르거나 겁박할 여유도 없었다.
당장 류인형에게 있어서도 지나칠 만큼 예상 밖의 행동이었던 탓이다.
갑자기 왜?!
도대체 뭐야?!
설마 이 쪽의 계획을 눈치채기라도 한 건가?!
심지어 류인형은 무작정 놀라고 있을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경악하기에 앞서 눈 앞의 사내가 온갖 오두방정을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와아아악!! 미안하다, 지희야!! 이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이럴 생각이 아니었다면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대검의 옆면으로 정수리를 쓰다듬을 생각이라도 했었던 걸까?
류인형은 진심으로 그렇게 묻고 싶었다.
자신도 모르게 정신이 혼미해진 탓일까.
류인형은 방금 전 충격에 나동그라진 의자 너머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다리가 풀린 탓이었다.
그렇게 쓰러진 시선 너머.
바닥에 널브러진 조카의 얼굴 반쪽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게 보였다.
쉬이익!
마력이 기화하는 소리.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마법의 영향이 사라진 목각인형이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방금 전의 일격으로 인형 내부의 머리카락이나 마법을 구성하고 있던 마력이 베인 탓일까.
그렇지 않으면 처참하게 파괴된 덕분일까.
"우와아아악!! 지희가 녹아버렸다!!"
어느 쪽이든, 류인형으로서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어질어질한 기분에 류인형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 질끈 하고 두 눈을 감고 말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