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화 〉 인형 놀음
* * *
류인형의 전법은 뚜렷하게 정해져 있는 편이 아니었다.
상대의 능력이나 약점, 나아가서는 환경에 따라 사용하는 무기나 전술조차 바꿀 수 있는 유연함.
박우찬과는 다른 의미에서 만능이나 다름없는 사냥꾼이다.
때문에, 류지희는 가장 먼저 시인해야만 했다.
자신의 실력으로 류인형의 전법을 예상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렇지만 몇 가지 예상할 수 있는 점은 있었다.
예를 들어, 류인형은 그녀가 몽마 혼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거기에 지금 류지희는 무기를 지니고 있지 않다.
허면, 맨손 혹은 몽마의 능력을 사용해 달려드리라는 점은 류인형 또한 예상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여기서 류인형이 선택할 만한 수단은 크게 몇 가지.
만에 하나 자잘한 수작에 당하더라도 대응할 수 있도록 한 손을 비우고, 반대쪽 손에 든 무기로 견제한다.
한 손 무기와 도수공권.
작금의 상황에 있어 류인형이 사용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전법은 역시 그 쪽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류지희로서는 류인형이 사용할 무기를 예상하려 드는 게 고작이었다.
검일까? 둔기일까?
때문에.
다음 순간 날아든 류인형의 공격에 류지희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말았다.
"염병!!"
만약 박우찬이 알았다면 눈물을 흘렸을 언어 활동과 함께, 류지희가 공중에서 급하게 몸을 틀었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그녀가 날고 있던 장소를 향해 날아들던 마력의 칼날이 허공을 갈랐다.
마법.
류인형이 가장 먼저 사용한 공격 수단은 다름 아닌 마법이었다.
마치 다른 생물처럼 움직인 빈 손이 마력을 움직이고 마법을 구성한다.
작렬하는 빛의 칼날.
참으로 적절하게도, 기독교의 비법이 당긴 공격 마법이 지희의 날개를 노리고 달려든다.
물론 류인형은 정식으로 서품받은 사제가 아니다.
당연히 그 효과 또한 진짜배기 성직자들에 비하면 훨씬 뒤떨어졌다.
아마도 시중에 유포된 교회 쪽의 기술을 체득하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몽마 혼혈인 지희에게 있어선 그 정도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상공에서 류인형을 강습할 예정이었던 지희도 지금은 스스로의 안위를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
크게 펄럭인 날개가 대기를 휘젓는다.
목과 날개를 노리고 달려드는 칼날을 피해, 다시 한 번 크게 솟구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순간, 빗나간 마력의 칼날들이 방향을 바꾸었다.
본래부터 추적 능력이 있었던 건지, 그렇지 않으면 수동 조작하고 있는 건지.
어느 쪽이든, 그녀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피피핑!!
하늘을 가르며, 빛나는 칼날이 쇄도한다.
피할 여유는 있다.
크게 날갯짓하며, 류지희는 그렇게 파악했다.
거리를 벌리고 선회.
당연한 이야기지만, 유도 능력이 있다고 해도 단순한 속도로 따지면 그녀 쪽이 더 빠르다.
피하는 게 아니라 따돌린다.
그런 생각으로 크게 움직이자, 그녀를 노리고 달려들던 마력의 칼날은 이윽고 그녀를 따라붙지 못하고 뒤쳐지고 말았다.
문제는 거기가 아니다.
다음 순간, 류지희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상공 수십 미터.
도저히 화장실이라 생각할 수 없는 높이까지도약한 류인형 때문이었다.
"흡!!"
허리춤에서 빼든 경봉이 그녀의 머리를 내려친다.
다루기도 편하고, 어느 방향으로 휘둘러도 위력을 낼 수 있다.
마치 지금처럼.
그렇게 말하듯 수직으로 내려친 일격이, 그대로 지희의 몸뚱이를 바닥에 쳐박…….
"하아앗!!"
쳐박지는 못했다.
오히려 정 반대.
다음 순간, 류인형은 조카를 노리고 도약했던 자신이 어느덧 바닥을 향해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금 전, 일어난 일은 실로 간단했다.
류지희는 류인형의 공격을 미리 간파하고 있었다.
던전 등에서 싸우며 얻었던 경험 덕분이다.
자신이 하늘을 날고 있으면, 대다수 상대는 먼저 원거리 공격으로 이 쪽을 견제한다.
견제를 통해 격추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
허나, 설령 격추하는 데에 실패하더라도 상대의 진로를 한정할 수는 있다.
그렇게 유도한 상대를 향해 일격을 먹이면 그만.
그런 식으로 꼬리를 휘두르던 용들만 벌써 몇 번을 상대했던가.
당연히 류인형이 사용할 전술 또한 어느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덕분에.
내려치는 곤봉을 피하고, 그 팔에 매달리듯 다리를 얽는다.
마치 관절기라도 거는 듯한 형상.
그러나.
거기에서 추가로 날개를 휘두른 지희는, 이윽고 자신을 향해 뒤늦게 달려들던 빛의 칼날 쪽으로 류인형의 몸을 내던졌다.
아슬아슬하게 마법을 취소해 부상을 회피한 류인형.
허나.
다음 순간, 그런 그를 향해 벽력같은 일격이 작렬했다.
"쳐먹어어엇!!"
류인형을 내던진 직후, 그를 향해 쇄도한 지희였다.
그런 그녀를 향해 다시 한 번 곤봉을 움켜쥐는 류인형.
그렇지만.
우뚝, 하고 그의 육체가 멈춘다.
달려드는 지희를 향해 시선을 돌리고 직시한 탓이었다.
몽마의 눈.
마안에 깃든 마력이, 류인형의 움직임을 제동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주 잠깐 정도밖에 효과를 발휘할 수 없겠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콰드득!!
류지희의 발차기가 류인형에게 작렬했다.
바닥에 쳐박힌 채, 수십 배는 불어난 화장실 타일들 사이로 나뒹구는 류인형.
'도저히 학생 수준은 아니군.'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자신이 가르쳤던 지희의 실력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연계다.
어쩌면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 아닐까 싶은 공격에, 역으로 류인형의 머리가 냉정해졌다.
다만.
"윽?!"
실력은 나쁘지 않아도, 경험이 부족하다.
다른 점보다,장비를 운용하는 방법에 있어서.
갑자기 손등에 달리는 통증에 놀란 류지희가 크게 뒤로 뛰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류인형은 자신도 몸을 일으켰다.
방금 전까지 비우고 있던 왼팔이 완전히 맛이 갔다.
지희의 공중 강습을 받아낸 덕분이었다.
그렇지만.
'쓸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몸에 걸치고 있던 정장의 방어력.
거기에 적절하게 충격을 분산시킨 덕분일까?
제대로 휘두르는 건 고작해야 한 두번이겠지만, 마법은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류인형은 그렇게 판단했다.
반대로, 지희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왼손에 꽂힌 단검 때문이었다.
방금 전, 류인형이 그녀에게 왼팔을 내주고 반격한 탓이다.
'미숙했어.'
그녀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몇 번이나 말했듯이, 아카데미 교복은 특수한 소재로 만들어졌다.
덕분에 어느 정도 갑옷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고.
그리고 그런 사실은 머잖아 아카데미 교사로 부임할 예정이었던 류인형 또한 알고 있었다.
때문에 류인형은 교복에 보호받지 못하는 장소를 노릴 수밖에 없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 텐데.
쯧, 짧게 혀를 찬다.
류인형의 예상대로, 그녀는 방어구를 통해 적당히 공격을 받아넘기고 반격하는 식의 전법에 둔했다.
그런 타입의 적을 상대한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순수하게 받은 데미지만 따지자면 류인형이 위.
다만, 그녀가 사용하는 전법을 고려해 보면 방금 전 교환에서 손해를 본 건 그녀 쪽.
쯧, 다시 한 번 혀를 찬다.
별로 마음에 드는 성과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식으로 한탄하고 있을 만한 여유도 없다.
다시 한 번 지희가 땅을 박찬다.
정면으로 쇄도하는 지희.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류인형은 땅을 긁듯 아래에서 위로 곤봉을 휘둘렀다.
정면으로 돌격하는 건 단순한 견제.
실제로는 날개에 따른 급기동으로 정면이 아닌 다른 빈틈을 노리려 들겠지.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그렇지 않으면 위쪽인가.
거기까지는 알 수 없다.
허면, 수를 제약한다.
아래에서 위로 휘두르는 일격이 허공을 가른다.
부웅 하고 울리는 섬뜩한 소리가 류지희의 턱끝을 스친다.
아슬아슬하게 턱을 젖힌 덕분에.
아니, 본래부터 정면으로 돌격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피할 수 있었던 공격이다.
'역시.'
여기까진 읽었다.
위로 솟구친 곤봉.
만에 하나 류지희가 위를 점거하려 들더라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위치다.
그렇다면, 류지희는 어디로 올까?
'왼쪽!'
십중팔구 왼쪽이다.
류인형은 그렇게 판단했다.
방금 전 교환에서 이 쪽의 팔이 맛이 갔다는 건 그녀 또한 짐작하고 있을 테니까.
그 점을 노린다.
미리 자아낸 마법.
동시에, 그 마력을 휘감은 주먹이 망설임 없이 휘둘러졌다.
투웅!!
"욱……!!"
수읽기에서 승리한 건 류인형이었다.
그대로 류지희의 옆구리에 작렬한 일격이 그녀의 호흡을 도려낸다.
커헉, 하는 소리와 함께 튀는 타액.
이번 전투에서 왼쪽 팔을 두 번 다시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충분한 성과다.
이대로 끝을 낸다.
그렇게 생각한 다음 순간.
류인형은 다시 한 번 시야가 뒤흔들리는 걸 느꼈다.
……확실히 방금 전의 반격은 류지희 또한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몽마의 물리 내성.
거기에 교복에 의한 방어 능력까지.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즉.
"하아아아압!!"
마지막의 마지막.
류지희를 움직인 건 터무니없는 근성론이었다.
옆구리에 일격을 허용하며, 동시에 얽힌 둘의 그림자에 간섭한다.
발목을 잡아당기는, 정말로 시시한 한 수.
그렇지만.
지금은 이 정도 수로도 충분했다.
억지로 움직인 팔.
불안정한 무게 중심.
지금이라면, 류인형을 바닥에 쳐박는 일도 용이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면, 류인형은 격투전에도 나름 용했다는 점이다.
뒤로 자빠지는 류인형.
그런 그를 향해 달려들던 류지희의 시야가 퍽 하고 천장을 향해 꺾였다.
섬머솔트 킥.
넘어지는 도중 순식간에 자세를 수습한 류인형이 역으로 그걸 공격으로 이었던 탓이다.
"크학?!"
"흠!"
그대로 한 팔로 스스로의 몸을 지탱하며 크게 발차기를 날리는 류인형.
당연히 류지희 또한 그런 공격에 당할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가드를 올린 채 거리를 두는 류지희.
문제는 류인형의 노림수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는 점이다.
단순한 교전.
심지어 격투전에 한해서는, 류지희가 류인형보다 우위다.
방금 전의 싸움을 통해 양자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도대체 그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류인형으로서는 도리어 그렇게 묻고 싶을 정도였다.
때문에.
류인형은 시원스럽게 인정했다.
단순한 격투전에서 자신이 얻은 성과는 적다.
고작해야 한 번의 유효타를 먹이고, 손등을 꿰뚫었을 뿐.
그에 비해 자신은 팔 한 쪽이 맛이 간 상황.
무엇보다, 저 매료 능력.
백병전 도중 종종 이 쪽의 의식을 날려버리는 마안에 대해선 정말로 대책이 곤란할 따름이었다.
물론 나름 대책은 있다.
그렇지만.
설령 대처한다 해도 마찬가지.
단순한 격투 능력도 밀리는 판국에, 순간순간 날아가는 의식.
그에 따른 빈틈은 실로 치명적이었다.
아무리 대책한다 해도 한 순간 의식이 날아가는 건 막을 수 없으니까.
때문에.
류인형은 시원스럽게 인정했다.
고작해야 1년 사이.
조카가 격투전으로는 자신을 능가했다는 사실을 시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
다음 순간, 류지희는 깨달았다.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이미 대책이 끝난 마안으로도, 격투 도중 빈틈을 만드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허면.
제대로 된 결계 안에서, 이미 준비한 마법으로 상대방을 결박할 경우.
그 빈틈은 얼마나 치명적으로 다가올 것인가.
결계 내에 준비된 함정.
전투 개시 전, 머리 한구석에 넣어두었던 사실이 그제서야 류지희의 발목을 붙잡았다.
물론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격투전에서 우위를 점한다 해도 그건 정말로 실낱같은 우위.
류지희에게 있어, 류인형을 상대함과 동시에 결계 내의 함정을 견제할 만한 여유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향해, 류인형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게 보였다.
결판이 났다.
* * *